한국사 이야기 577 신정일의 새로 쓰는 택리지 6 : 북한
두만강이 휘감아 돌아가는 은덕군
두만강 바로 아래는 은덕군이다. “서수라곶(西水羅串)은 관아의 남쪽 65리에 있다”라고 『여지도서』에 실려 있는 우리나라의 끝자락에 자리한 은덕군은 함경북도 북동부 두만강 하류 연안에 있는 군으로 북서쪽은 새별군, 서쪽은 회령시, 남쪽은 선봉군과 라진시에 잇닿아 있으며, 북동부는 두만강을 사이에 두고 중국에 인접한다.
두만강이 휘감아 돌아가는 곳오랑캐 산 빽빽이 자리 잡았네.붉은 단풍 짙게 들어 담장에 물들고잠자던 새 일어나 방죽에서 지저귀네.옛적의 나라 관문의 성 밖으로다섯 채 오두막 강물 서쪽에 있네.경치는 마땅히 이와 같아야 하는데눈을 드니 마음은 서울에서 헤매네.
택당(澤堂) 이식이 노래한 경흥, 즉 은덕군의 옛 이름은 공주(公州), 공성(孔城)이다. 세종이 옛 성을 수리하고 부근의 백성 300호를 떼어 현을 설치한 후 공성이라 했다고 한다. 세종 19년(1437)에 이곳이 이성계의 고조부인 목조가 처음 산 땅이라 하여 경흥군(慶興郡)으로 바꿨다. “고을이 후미진 한쪽 구석에 있어서 풍속이 매우 검소하고 인색하며 화려함을 숭상하지 않는다. 남자는 곡식 농사를 지으며, 여자는 삼베와 모시를 짠다. 조금이라도 풍년이 들면 곡식이 흙처럼 흔해져서 서로 꾸어주며, 음식이 흘러넘치니 전혀 아껴 쓰지 않는다. 만약 흉년이 닥치면 사고파는 것이 끊어지고 서로 의지할 길이 없어서 구원할 방법이 다른 도(道)에 비해 더욱 어렵다.
바닷가 백성은 풍년이나 흉년에 관계없이 고기잡이로 살아간다”라고 『여지도서』「풍속」조에 실려 있는 경흥군은 1977년 9월 김일성의 은덕을 잊지 않겠다는 뜻에서 은덕군으로 이름을 바꾸었다.이곳에 북한의 정치범을 수용하는 무서운 곳으로 알려진 아오지탄광이 있었다. 『여지도서』에 “아오지고성(阿吾地古城)은 관아의 남쪽 55리에 있다. 두만강에서 5리다. 돌로 쌓았으며, 둘레는 2100척, 높이는 8척이다. 1509년(중종 4) 여기에 보(堡)를 설치했다가 1521년(중종 16)에 옛 진(鎭)으로 돌아갔다”라고 실려 있는 아오지를 1981년에 학송리로 바꾸어 아오지라는 이름은 영원히 사라져버렸다.한편 두만강 하구의 모래섬인 녹둔도(鹿屯島)에는 보가 설치되어 있었다.
녹둔도는 우리나라 수군들이 야인의 동태를 감시했던 곳으로, 정약용의 『대동수경(大東水經)』에는 “녹둔도는 조산의 남쪽 20리 되는 곳에 있는데 사차마도라고도 한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이 지방의 방언으로 사슴을 사차마라 하기 때문에 이렇게 이름 지은 것이다. 『동국문헌비고』에는 “두만강은 또 동으로 흘러 조산을 지나서 녹둔도에 이르러 바다에 들어간다”라고 하였는데, 현재 이 섬은 러시아에 귀속돼 있다. 『여지도서』에 실린 글을 보자.
녹둔도는 사차마라고도 한다. 관아의 남쪽 56리, 두만강에서 바다로 들어가는 곳에 있다. 조산보(造山堡)까지 30리다. 예전에는 토성과 병선이 있었다. 조산보 만호가 관할하는 곳이다. 여름이면 조산보의 수군이 여기를 나누어 지켰는데, 지금은 없어지고 다만 옛터만 남아 있다.지금은 강 건너 청나라에 맞닿았다.
계미년(선조 16, 1583) 오랑캐의 변란 이후 감사 정언신이 군량을 비축하기 위해 이 섬에 둔전을 설치하려고 부사 원호에게 개간하게 하였다. 병술년 조정에서 신전과 김경눌에게 보내어 둔전관이라 부르며 울짱[책(柵)]을 설치하고, 섬 안에는 남도의 군역에서 빠진 군명을 농부로 예속시켜 개간하고 씨를 뿌리며 작물을 심게 하였다.이듬해인 정해년(1587)에 조산만호(造山萬戶)인 이순신에게 둔전의 일을 겸해 맡게 하였다.
기축옥사의 최대 피해자였던 정언신과 인진왜란의 영웅 이순신이 차례로 와서 그 흔적을 남긴 곳이 나라의 최북단인 경흥의 녹둔도였다. 이곳에 대해 김수령이 “누른 구름은 국경에 가득하여 나그네의 근심을 자아내는데, 성 아래 강물은 한 줄기가 길게 흐른다. 구슬픈 오랑캐의 피리 소리 행여나 나그네의 귓전을 스치지 말아다오. 소리마다 국경의 나그네를 괴롭혀주느니”라고 노래하였다. 이덕숭은 “기다란 두만강이 국경의 산을 격했는데, 나그네의 돌아갈 꿈은 찬란한 오색구름 속이로다. 오랑캐의 지역에 바람씨가 맵다고 말하지 마라. 임금께서 주신 겹갖옷은 추위도 무섭지 않다”라고 하였다.<검색창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