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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 력: 1948년 3월 26일 음/평: 1948년 2월 16일 여자
시 일 월 년 @ 庚 乙 戊 @ 戌 卯 子
丙 丁 戊 己 庚 辛 壬 癸 甲 대운: 역행 午 未 申 酉 戌 亥 子 丑 寅 86 76 66 56 46 36 26 16 6.12
대운 시작: 6세 12월 10일 현재 나이: 64 세 현재 대운: 酉 |
양 력: 1948년 5월 4일 음/평: 1948년 3월 26일 여자
시 일 월 년 @ 己 丙 戊 @ 丑 辰 子
丁 戊 己 庚 辛 壬 癸 甲 乙 대운: 역행 未 申 酉 戌 亥 子 丑 寅 卯 89 79 69 59 49 39 29 19 9.11
대운 시작: 9세 11월 5일 현재 나이: 64 세 현재 대운: 戌 |
지독한 완벽주의 그거 다 버렸다 2011.11.22
돌아온 정경화 … 내달 서울공연 뒤 세계투어
정경화씨는 연습벌레다. 40년이 넘게 흐르니 왼손의 손금마저 달라졌다. 바이올린 지판(指板)을 짚느라 손금이 한쪽으로 몰렸다고 했다. 또한 그는 완벽주의다. 1967년 미국 레벤트리트 콩쿠르에서1등이 발표되는 순간 ‘꿈 풍선’이 폭하고 터지듯 중압감이 밀려왔고, 찬사를 받았던 데뷔 콘서트후 두 번째 공연이 가장 힘들었다 회상할 정도다. 그가 다음 달 무대로 돌아온다. 손가락 부상, 가족의 죽음 이후 그 자신을 멀리서, 차분하게 돌아보게 됐다고 했다.
“89년 11월에 굉장히 큰 차 사고가 났다. 약한 기억상실증이 올 정도였다. 어떤 기억은 아예 잊어버렸다. 그래도 부모님이나 매니저 아무한테도 말을 안 했다. 녹음을 취소 했더니 주위 사람이 다 화가 났는데 그래도 차 사고란 말을 안 했다. 사람들이 병신 됐다고 그럴까 봐. 그런데 지금 봐라. 다 쓱쓱 말하지 않나?”
‘동양의 마녀’로 불렸던 바이올리니스트, 정경화(63)씨가 환한 웃음을 지었다. 19일 오전 서울 구기동의 자택에서였다.
정씨는 1967년 미국 레벤트리트 콩쿠르에서 우승하며 세계무대에 데뷔했다. 이후 그의 화두는 줄곧 ‘완벽’이었다. 불완전한 모습은 가족에게도 보이지 않았다. “주변 사람을 실망시키기도 싫었지만 가장 참을 수 없는 건 스스로가 실망하는 거였다. 음표 하나라도 잘못 나가면 내 경력은 끝이라 생각했다.”
40년 가까운 시간이었다. 안달복달하며 음표를 하나하나 매만지고 살았다. 2005년 서울 공연에서 부상으로 무대를 떠나기 전까지였다. 그는 왼손 부상을 이유로 공연을 취소했고 모든 활동을 접었다. 2년 후 줄리아드 음대에서 학생을 가르친다는 소식을 전했다. 하지만 70년대 음반에서 들려줬던 불 같고 서릿발 같던 소리는 들을 수 없었다.
그런 그가 돌아온다. 다음 달 26일 서울 예술의전당 독주회가 ‘제2 시작’이다. 내년엔 지방 도시와 중국 3개 도시를 순회한다. 2013년엔 일본 4개 도시를 거쳐 유럽으로 나간다. 70년대 정경화에 열광했던 런던 무대를 시작으로 독일, 그리고 미국 대륙까지 돈다.
- 지난해 오케스트라와 협주곡 한 곡을 협연하긴 했지만, 이번 세계 투어 계획은 진정한 복귀 선언으로 보인다. 어떻게 결심하게 됐나.
“몇 번이고 연주 계획을 잡았다 포기했다. 순전히 몸 때문이었다. 손 다치고 3개월 후엔 어깨를 또 다쳤다. 지금도 몸이 따라오지 않는다. 열 시간씩 연습하고 싶은데 많이 해야 두 세 시간이다. 하지만 50년 동안 바이올린 하면서 음악이 내 몸에 스며들어있다. 이거, 청중한테 그래도 들려줘야지. 안 하는 것보다는 하는 게 낫다. 완벽주의? 그거 버리고 난 완전히 바뀌었다.”
- 바뀌었다는 건.
“말도 못하는 압박감이 있었다. 아무리 다른 사람이 잘 한다고 해도 나는 만족하지 못했다. 하루는 아버지가 ‘네가 못하는 거면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하냐?’고 묻길래 ‘다른 사람이 무슨 상관이에요’라고 대꾸했다. 그런데 지난 5년, 지옥 같이 더 내려갈 데가 없을 정도로 내려간 후 다 비웠다.”
정씨는 2005년부터 5년을 이렇게 기억했다. 2007년에 일곱 남매의 첫째인 정명소씨가 작고했다. 70년 음반사 데카에서 기적 같은 데뷔 앨범을 만들어줬던 프로듀서 크리스토퍼 레이번도 같은 해 사망했다. 또 올 5월엔 어머니 이원숙 여사도 세상을 떠났다.
“매일 고민을 나누던 이가 큰 언니다. 병을 발견한 지 3주 만에 하나님이 데려갔다. 이해가 안됐다. 사람을 아예 안 만났다. 형제들하고도 얘기를 안 했다. 왜 나에게 이런 시련을 줄까, 그 소명을 찾느라 시간을 다 보냈다.” 끊임없이 기도하던 중 이런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인생이 이렇구나. 완벽한 건 없구나.’
“내가 끝까지 걸어갔을 때 나오는 목소리가 어떨까 궁금하다. 이젠 완벽한 걸 보여주려는 게 아니다. 예술은 완벽할 수가 없다. 나는 죽음 앞에서 머리를 숙였다.”
베일 듯 날카롭던 그가 넉넉해져 있었다. 집 안에선 슈만의 아내와 브람스 이름을 딴 강아지 두 마리, 클라라와 요하네스가 뛰어 놀고 있었다. “지금도 생각만큼 연습하지 못할 때마다 어쩔 수 없이 우울해진다. 하지만 내 형제들, 두 아들, 그리고 강아지들…. 이렇게 껴안고 사랑하면서 이긴다.” 정씨는 이제 완벽 대신 ‘사랑’을 안고 무대에 오른다.
행복한 정경화, 팬들은 그녀의 가족까지 사랑한다 2011.11.21
"손가락 부상으로 오랫동안 연주를 하지 못했지만 아쉽거나 마음이 아프지는 않았다. 오히려 나를 돌아볼 수 있는 뜻깊은 기회로 작용했다. 여태까지 완벽주의자로 살아왔는데 나를 내려놓을 수 있는 마음의 여유와 긍정의 에너지를 가슴에 품을 수 있게 됐다. 성숙의 시간이었다."
2005년 손가락 부상으로 5년여간 무대를 떠난 바이올리니스트 정경화(63)의 달라진 인생관이다. 정씨 그는 2011년 12월 26일 오후 8시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리사이틀 `쉬 이스 백`을 연다. 국내에서 펼치는 9년만의 독주회다.
"실내악과 협연 등을 많이 하지만 원하는 프로그램을 다양하게 할 수 있기 때문에 독주회를 가장 좋아한다. 바이올린으로 독주회를 한다는 것은 흔하지 않은 기회이고 10년이면 강산도 변하는데 오랜만에 고국에서 리사이틀을 하게 되니 정말 꿈만 같다."
이번 연주회에서는 모차르트의 `바이올린 소나타 제21번`, 브람스의 `바이올린 소나타 제1번`, 바흐의 `G선상의 아리아`, 프랑크의 `바이올린 소나타` 등을 들려준다. 올해 `대관령국제음악제`에서 호흡을 맞춘 피아니스트 케빈 케너(48)가 협연한다. 연주곡은 가족과 스승, 친구를 위한 추모의 성격도 지닌다. 정경화는 그동안 손가락 부상으로 고생을 하기도 했지만 가장 사랑하고 존경하는 분들을 잃었다. 12세 정경화를 줄리아드로 이끈 명소 언니(2007년 작고), 국내 라이선스 음반 1호를 기록한 정경화의 데뷔음반 이후 줄곧 정경화의 녹음 스튜디오를 지킨 프로듀서 크리스토버 레이번(2007년 작고), 그리고 어머니(2011년)다.
"손가락 부상으로 하루아침에 바이올린을 못하게 됐지만 인생을 정리할 시간을 주었다고 받아들였다. 그러나 그 정리하는 시간이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 보내는 시간이라고는 전혀 생각지 못했다. 이분들에 대한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감사와 존경, 사랑을 담아 연주곡을 선정했다. 인간이기에 겪을 수밖에 없었던 나의 기쁨과 아픔, 시련과 행복, 믿음과 사랑을 고국의 팬들과 고스란히 나누려 한다." 독주회에 앞서 12월13일 명화(67)·명훈(58) 남매와 함께 지난 2011년 5월 별세한 어머니 이원숙 여사를 기리는 추모 음악회 `우리들의 어머니를 위하여`를 공연한다.
"어머니의 모교인 이화여대에서 공연하게 돼 더 영광이다. 어머니와 인연이 닿은 분들을 초대하는 초청공연이다. 오랜만의 정트리오 콘서트를 많은 분들이 함께 하지 못하게 된 것은 아쉽지만 우리가 이 자리에 있도록 이끈 어머니를 위한 추모 공연을 꼭 열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 자리에 함께 한 모든 사람들이 자신들의 어머니를 생각하고 감사와 사랑의 마음을 공유했으면 한다." 다음달 19일 인천종합문화예술회관, 21일 대전 문화예술의전당, 25일 춘천문화예술회관에서도 독주회를 연다. 독주회 VIP석 15만원~C석 3만원. 02-518-7343
정경화(1948년 3월 26일~)는 대한민국의 바이올리니스트이다. 영문 이름은 Kyung-wha Chung이다.
[편집] 삶
1948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3살 때 피아노를 처음 배우기 시작했지만, 5살 무렵에 바이올린으로 옮겼다. 이미 어린 시절부터 다른 형제들과 함께 하는 가족 음악회를 통해 공연을 시작한 정경화는 9살 때 콩쿨에서 우승해 서울시립 교향악단과 멘델스존 협주곡을 연주했다. 13세가 되던 1961년에 미국 줄리어드 음악학교에 전액 장학생으로 선발되어 당대에 명조련사로 알려진 이반 갈라미언 밑에서 교육을 받았다.
1967년에 레벤트리트 국제 음악 콩쿠르에서 동문인 핀커스 주커만과 공동 우승을 하면서 처음으로 세계 무대에 이름을 알렸다. 그후 1970년 앙드레 프레빈이 지휘한 런던 교향악단과 차이코프스키 협주곡을 협연한 런던 데뷔 무대는 세계에 이름을 알리는 무대였다. 동양인 클래식 음악가로서 세계적인 명성을 얻은 거의 최초의 인물인 그녀는, 첼리스트인 언니 정명화, 피아니스트이자 후에 지휘자로 영역을 확장하는 남동생 정명훈과 함께 국제적인 주목을 얻었다. 이때 이후로 정경화는 런던을 중심으로 활동 무대를 옮겼다.
1971년 무렵에는 명 바이올리니스트인 요제프 시게티의 지도를 받아 문학과 예술 전반에 대한 더욱 깊은 이해를 얻었다. 이 때부터 결혼을 하게되는 1984년까지 한 해 평균 100회가 넘는 연주회를 소화하며 정력적인 활동을 펼쳤다. 그녀가 협연한 지휘자들은 게오르그 솔티, 사이먼 래틀, 로린 마젤, 베르나드 하이팅크, 제임스 레바인, 클라우스 텐슈타트, 클라우디오 아바도 등을 아우른다. 1982년 영국의 선데이 타임즈 지는 정경화를 지난 20년간 영국 문화계에 가장 지대한 공헌을 한 인물로 선정하기도 했다.
연주회와 함께 음반 활동도 활발히 한 정경화는 1970년, 데뷔 무대를 함께한 프레빈과 런던 교향악단과 함께 차이콥스키/시벨리우스 협주곡으로 첫 음반을 녹음했다. 이후 데카 음반회사의 전속 아티스트로 1989년까지 다양한 음반을 녹음했으며, 현재는 또 다른 주요 음반사인 EMI의 전속 아티스트로 최근까지 활발한 녹음 활동을 계속했다.
스트라빈스키/월톤 협주곡 음반은 에디슨 상, 베토벤/브루흐 협주곡 음반은 일본 레코드 아카데미, 레스피기/리햐르트 슈트라우스 소나타 음반과 바르톡 협주곡 2번/랩소디 음반은 그라모폰, 브람스 소나타 음반은 디아파종 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정경화의 음반 레퍼토리는 주로 후기 낭만파와 20세기 전반의 작품들을 아우르고 있으며, 특히 부르흐, 차이코프스키, 생상스, 바르톡, 월톤 등의 작품에서 높은 평을 듣고 있다.
정경화의 연주는 젊은 시절 얻은 '현의 마녀', '암호랑이' 같은 별명에서 알 수 있듯이, 대단히 정열적이며 찌를듯한 엄격함과 강한 집중력을 보여준다. 그에 더해 전 음역에 걸친 아름다운 톤, 안정된 테크닉, 정확한 리듬 감각, 곡의 순간 순간에 감정을 입혀내는 표현력 등은 그녀가 현재까지 세계 1급의 연주자로 명성을 지키는 밑바탕이 되었다.
다소 과장된 효과, 경직된 보잉, 한정된 레퍼토리라는 비판도 있으나, 근래에 들어 모차르트 및 바로크 레퍼토리 같은 영역으로 연주를 확대하는 한편, 훨씬 여유있는 호흡과 깊이를 보여준다는 평을 얻고 있다. 솔리스트로서 주로 활동하고 있지만, 종종 형제인 정명화와 정명훈과 함께 정 트리오라는 이름으로 활동, 실내악 연주가로서의 재능도 발휘한다.
1984년 영국인 사업가 제프리 리케트 씨와 결혼한 정경화는 슬하에 두 아들을 두고 있으며, 현재 미국에 거주하고 있다. 1997년 세계무대 데뷔 30주년 기념 연주회를 한국과 런던 바비칸 센터에서 가졌으며, 가장 최근에 녹음한 음반들은 비발디의 사계와 브람스 협주곡이 있다.
2005년 9월 모국에서 연주회를 준비하다가 입은 손가락 부상의 영향으로 정경화는 현재까지 공개적인 연주 활동을 쉬고 있다. 이를 후배 양성의 기회로 삼은 그녀는 2007년 9월부터 모교인 미국 줄리어드 음대에 교수로 초빙되어 활동 중이다.
첫댓글 음력인 듯... 신강하니...화토운 흉...수목금운 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