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죽으면 염습을 마친 후 병풍 뒤에 모셔놓고 그 앞에 사잣밥 세 그릇을 떠놓는다.
그래서 사람이 죽었다고 직설적으로 말하기가 저어되어 ‘그 사람 어젯밤에 사잣밥 먹었데여’
하고 에둘러 말하기도 한다. 그 말 때문에 사잣밥을 ‘死者ㅅ밥’으로 오해하는 사람이 많다.
그러나 죽은 자는 밥을 먹을 수 없는 터, 사잣밥은 망자의 영혼을 데려가기 위해 내려온 저승
사자를 대접하기 위해 떠놓은 使者ㅅ밥이다. 사자가 몇 분이나 오실지 모르겠지만, 먼 길 오시
느라 시장하실테니 잘 잡수시고 망자의 영혼을 좋은 곳으로 인도해주십사 하는 대접인 것이다.
우리 민족의 전통신앙은 샤머니즘을 근간으로 한 다신교다. 우주를 다스리시는 천지신명을 필
두로 돈달산 산신령, 옹녀봉 산신령처럼 모든 자연물에는 그를 주재하는 신이 깃들어 있다고
믿어왔다.내가 초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우리 큰집에서도 해마다 추수가 끝나면 음식을 푸짐
하게 장만해놓고 다음해에도 온 가족 건강하게 지켜주시고 풍년이 들게 해달라며 고사를 지냈
었다. 그때 집안 구석구석은 물론 살구나무와 배나무 밑에도 시루떡을 한 접시씩 차려놓고 큰
어머니가 목욕재계하고 흰옷 차림으로 단정하게 꿇어앉아 간절히 소원을 빌었는데, 그렇게 온
집안을 한 바퀴 도는데 한두 시간은 족히 걸렸을 정도로 가족들을 지키고 집안을 돌봐주는 신
들이 많았다. 전통신앙에서 집안을 지켜주는 가신(家神)에는 다음과 같은 분들이 계신다.
상량신 ; 대들보 위에서 집안의 길흉화복을 맡아보는 신
조상신 ; 안방 윗목에서 후손을 보살펴주는 신
삼신 ; 안방 아랫목에서 어린애를 낳고 기르는 일을 돌봐주는 신
조왕신 ; 부엌에서 집안의 크고 작은 일을 옥황상제에게 일일이 보고하는 신
지신 ; 마당에서 집터를 지켜주는 신
수문신 ; 대문에서 집안으로 들어오는 재액을 막아주는 신
외양신 ; 외양간에서 집에서 기르는 우마의 번식을 돌봐주는 신
철륭신 ; 장독대에서 간장과 된장의 맛을 돌봐주는 신
정신(井神) ; 우물이 마르지 않도록 돌봐주는 신
정낭각시 ; 뒷간에서 올라오는 액을 막아주는 신
우리가 자주 쓰는 말 가운데는 우리말인 줄 알고 무심히 사용하는 외래어도 많다.
빵 ; 포르투갈어 팡(pao)에서 온 말이다. 이게 왜국으로 들어와 ㅍ 발음을 할 수 없는 왜인들이
빵이라고 부르기 시작했으며, 우리나라 사람들도 멋모르고 빵이라 따라하게 되었다.
가방 ; 네덜란드어 Kabas에서 온 말
구두 ; 표준국어대사전에는 왜어 ‘くつ(kutsu, 靴)’를 어원으로 해석해놓았는데, 반대로 왜어사
전는 ‘くつ(kutsu, 靴)’의 어원을 한국어 ‘구두’에서 유래한 것으로 해석해놓았다. 한국어의 조상
語인 르완다어 ‘Guta(가죽이라는 뜻)’에서 왔다는 설이 가장 유력하다.
혜성의 천문기호 ; ☄
공룡이 지구상에 존속한 기간 ; 약 1억 6천만 년
발트海 연안에는 ‘발틱 3국’으로 불리는 에스토니아‧라트비아‧리투아니아가 있다. 이들 3국은
1795년 러시아제국에 합병되었다가 1991년 소비에트공산주의연방이 붕괴되기 직전인 1990년
3월에 먼저 독립했다.
그러나 리투아니아와 폴란드 사이에 끼어있는 칼리닌그라드(223㎢)는 원래 리투아니아 영토였지
만 상굿도 러시아가 지배하고 있다. 러시아는 삼차대전이 일어나는 한이 있어도 절대 칼리닌그라
드를 분리‧독립시켜줄 의사가 없다.칼리닌그라드에는 발트海를 거쳐 대서양으로 진출할 수 있는
러시아해군의 유일한 부동항이 자리잡고 있기 때문이다.
러일전쟁 이전까지 러시아제국이 세계 최고라고 자랑하던 발틱함대의 근거지도 바로 칼리닌그라
드였다.
1901년 호주는 6개 주가 통합하여 호주연방을 수립하고 영연방으로 독립하게 되었다. 이때 수도
를 어디로 정할 것이냐를 두고 시드니와 멜버른이 한 치도 양보 없이 팽팽하게 맞섰다.
양 도시 시민들은 서로 자기 도시를 수도로 삼지 않으면 연방에서 탈퇴하겠다고 경고했다.
이때 헨리 파크스 연방총리가 중재안을 제시하여 두 도시 의회로부터 동의를 얻어냈다.
즉, 두 도시의 중간지점에 신도시 캔버라를 건설하여 호주연방의 수도로 삼겠다는 안이었다.
왜정시대 때 조선음식점 태화관은 원래 순화궁 ※이었는데, 이완용이 인수하여 별장으로 사용했었
다. 1905년 이완용과 이토 히로부미의 을사늑약 밀의, 1907년 7월 고종황제를 퇴위시키고 순종을
옹립하자는 음모, 1910년 왜국의 대한제국 강제 병탄조약 준비 등의 역적행위가 모두 이곳에서 모
의되었다. 궁중요리사 출신인 안순환이 이완용의 별장을 인수하여 태화관을 차리자,민족대표 33인
은 바로 이 한서린 장소에서 독립선언식을 거행함으로써 여기서 모의되었던 매국적인 모든 조약을
무효화한다는 상징적인 의미를 만천하에 보여주기로 했다.
그런 깊은 뜻도 모르고 TV에서 역사 강의로 인기를 누리고 있는 설민석이라는 자가 ‘민족지도자들
이 태화관이라는 룸싸롱에서 양주를 마시며 독립만세를 외쳤다’면서 3‧1운동과 민족대표들을 폄
하했다. 아무리 무지몽매한 자라도 민족지도자들을 그렇게 모욕해서는 안 된다. 심지어 왜인들조차
도 그러지는 않는다. 그래서 나는 철부지한 인기강사들의 강의를 듣거나 책을 읽지 않는다.
※ 순화궁 ; 세종의 8남인 영응대군의 딸 내외가 살던 집
문중13에서 옮긴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