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감정이 없는 차가운 괴물이었다"
"당신 덕분입니다. 우리가 자유롭고 평화롭게 살 수 있는 것은."
기원전 31년
지구 반대편 서쪽 지중해 세계에서 갤리선 500척 이상의 함선들이 맞붙은 엄청난 규모의 대형 함대전이 벌어졌습니다. 이 해전은 두 거대제국의 충돌도 아니었고 단지 누가 권력을 쥐게 되느냐를 결정할 일개 공화국의 내전이었습니다.
후에 악티훔 해전이라 불리게 되는 이 해전에서 승리한 이의 이름은 "가이우스 율리우스 카이사르 옥타비아누스" 입니다.
1. 내전 종결
당시 로마공화국은 위 사진에서와 같이 카이사르의 후계자이자 외종손인 가이우스 옥타비아누스의 지중해 서부,
그리고 카이사르의 충신이자 전 군단장이었던 마르쿠스 안토니우스와 그의 부인이자 이집트의 여왕 클레오파트라가 다스리고 있던 지중해 동부로 둘로 갈라져 내전을 벌이고 있었습니다.
이 시기 로마공화국은 이미 카이사르와 폼페이우스의 내전을 시작으로 지중해 전체가 오랜시간 동안 고통을 겪고 있었습니다.
이 악티움 해전은 로마인들에겐 지긋지긋했던 기나긴 내전의 끝을 의미했습니다. 시민들은 환호했으며 저마다 이미 훌륭한 정치력을 보여주고 있던 카이사르의 이 젊은 후계자를 찬미했죠.
2. 공화국의 수호자, 공화정의 회복과 평화를 선언하다
내전을 끝낸 뒤, 옥타비아누스는 원로원에 출마하여 공식 선언을 합니다.
"내가 부여받은 모든 권력을 다시 로마시민들과 원로원에 반환하겠다."
안토니우스의 병력까지 모두 흡수하여 이제 무려 40만 까지 불어난 대군의 총지휘관인 그가 마음만 먹는다면 독재를 하는 것도 가능했습니다. 하지만 옥타비아누스는 군대를 20만으로 감축하고 그마저도 국경을 지키도록 변경에 주둔시킵니다. 대신 1만에 달하는 수도 근위대를 창설하여 수도의 치안을 강화합니다.
그 후 옥타비아누스는 호민관(거부권이라는 강력한 무기가 하나 있지만 직접적인 권력을 행사할 수 있는 권한은 거의 없는 직책) 직책을 제외한 모든 권력을 내려놓겠다 선언하였고 당연히 옥타비아누스의 이 선언에 로마전체가 미친듯이 환호합니다. 로마공화국의 상징, SPQR(Senatus Populus Que Romanus:로마의 의회와 시민) 이 다시금 빛을 발하는 듯 합니다. 그리고 이야기는 여기서부터 시작됩니다.
3. 존엄한 자. 제1시민
원로원은 옥타비아누스에게 크게 감동하여 그에게 "존엄한 자" 라는 뜻의 "아우구스투스" 라는 호칭을 부여합니다. 그리고 로마의 귀감이자 모든 시민의 본보기라는 뜻의 "제1시민" 프린켑스라는 호칭도 부여합니다.
이때부터 그는 아우구스투스라는 호칭으로 불리게 되며 그 자신도 이 호칭을 가장 좋아했습니다.
그리고 그는 클레오파트라에게 완전히 넘어가 "내가 죽으면 이집트에 묻히겠다" 라고 얘기했던 안토니우스와는 달리 "죽어서까지 로마에 뼈를 묻겠다" 라고 선언하며 자신의 "영묘" 를 수도 로마에 건설하여 또 한번 로마 시민들을 감동케 합니다.
원로원 또한 다시 한번 감동하여 그에게 이미 국부인 카이사르가 받았던 명예인 달력에 이름을 올리는 명예를 부여합니다(현재 영어로 7월이 July 이고 8월이 August 인데 July는 카이사르의 이름인 Julius 이고 August는 옥타비아누스의 호칭인 Augustus). 그리고 더 나아가 후에는 국부로서 "신격화" 됩니다.
당시 다신교 국가였던 로마는 독재에는 거부반응을 보였었지만 신격화에는 거부감이 없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이렇듯, 내전에서 승리한 후 아우구스투스의 모든 행보는 권력과는 무관한 "명예" 를 추구하는 것처럼 보였고 또 그가 가지고 있는 "호민관" 이라는 직책 또한 민중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직책이라는 점에서 당시 로마시민의 귀감인 "공익의 추구" 와 "독재는 멀리" 와도 완벽히 부합하는 것이었습니다.
점점 이렇게 아우구스투스의 명예는 높아져 갔습니다. 물론 이 "명예" 라는 것 또한 로마시민들과 원로원이 계속 높여준 것임은 물론입니다.
4. 자문위원회
존귀한 아우구스투스는 로마의 국익을 위해 토론하고 국가비상사태시 상대적으로 대처가 느린 원로원의 표결방식의 단점을 보완하기 위해 또 하나의 자문기관인 "제1시민의 자문위원회" 를 창설합니다. 몇명의 원로원 의원들과 입법가,행정가,기사계급등으로 구성된 이 자문위원회 또한 물론 아무런 공식 권력을 행사할 수 있는 건 아니었습니다. 이때까지는.....
5.국고 관할
아우구스투스는 오랜 내전으로 인한 행정력 감퇴로 인해 국고가 텅 빈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원로원은 이렇다 할 대책도 못 세우고 있었죠. 이렇게 국가재정이 마비상태가 되자 또 다시 구원투수로 등장, 아우구스투스는 개인재산을 풀어 기금을 만들고 공화국 각지의 각 속주에 군대기금을 만들어 국고의 부담을 줄이고 세제를 개편하여 순식간에 국가재정을 회복시킵니다. 그리고 국고관할권을 유능한 이들을 직접 선발하여 관리토록 합니다.
이렇게 또 한번 아우구스투스가 로마를 살립니다. 그의 명예는 더욱 높아져만 갔습니다.
6. 이집트
당시 이집트는 나일강 유역의 자연적인 이점과 로마의 관개시설이 더해져 당시 지중해 세계에서 최고의 곡창지역이었고 로마공화국의 식량 거의 절반은 이 이집트에 의존하고 있었습니다. 때문에 이집트를 비롯한 동부를 장악했었던 안토니우스가 지중해 세계의 식량을 장악하게 된 것이나 다름없었고 로마공화국 전체가 식량난에 허덕였었습니다. 내전에서 승리 후 아우구스투스는 다시는 이런 일이 없도록 하기 위해 이집트를 자신이 직접 장관을 임명하여 관리토록 하여 이집트를 자신의 속주로 삼습니다.
이 결정에 시민들은 또 다시 환호합니다.
원래 당시 로마세계에선 자신이 제패한 지역은 자신이 직접 보호자가 되는 것이 원칙이어서 이 원칙에도 완벽히 들어맞으며 무엇보다 인간이 살아가는데 가장 필요한 먹을것을 가장 믿을만한 사람이 보장해준다는데 마다할 사람은 없었습니다.
7. 영토 확장
노란색이 원래 로마영토, 초록색은 아우구스투스가 넓힌 지역, 분홍색은 아우구스투스 시대에 확보한 동맹국(사실상 조공국)
영토도 확장합니다. 로마시민으로서의 덕목인 "공익" 에 이어 지휘관으로서의 최고 덕목인 "군사적 역량" 까지 보여줍니다. 그가 확립한 시리아 국경선과 도나우 강 국경선은 향후 수백년 동안 제 기능을 발휘합니다.
8. 로마제국 초대 황제, 유럽 최초의 황제
아우구스투스 시대에 로마제국은 비로소 폭발적인 번영을 시작하게 되었으며 내전 종결, 국경 방위선 확립으로 인해 상업과 농업이 모두 안정적으로 원활히 돌아가기 시작했으며 이렇듯 아우구스투스는 로마에 평화와 질서, 번영을 가져다준 제1시민 으로서 모든 로마시민들의 존경을 한 몸에 받게 됩니다.
그리고 그는 황제가 됩니다.
누구도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그는 그렇게 황제가 되어 있었습니다.
아우구스투스 생전에는 그 자신과 최측근들을 제외하면 아무도 몰랐었고 인정하지 않았지만 그가 죽고나자 모두가 깨닫게 됩니다.
그가 생전에 쌓아온 수많은 명예와 권위는 초기에는 아무런 권력의 징후가 보이지 않았으나 나중에는 온전히 권력으로 전환됩니다.
1.수도 근위대 - 1만에 달하는 수도 주둔군은 단순히 치안강화(물론 훌륭히 치안 기능은 했지만)만이 목적이 아니었습니다. 수도에서의 어떠한 정적들도 제거할 수 있는 엄청난 정치적 압박 수단이었습니다.
2.이집트 장관 - 개인 관할지로 이 이집트 속주만을 공익을 위한다는 명분으로(물론 실제로도 그렇게 기능했지만) 사유지로 삼았지만 이 이집트는 당시 로마제국 전체 식량생산의 거의 절반을 생산해내던 지역이었습니다. 이것을 장악했다는 것은 로마시민들의 먹을것의 절반을 장악했다는 것이나 다름 없었습니다.
3.군통수권 - 물론 40만 군대를 20만으로 낮춰 군비를 감축하고 국경방어로 돌려 군비는 감축하고 방위력은 더 보강했지만 어쨌든 이 20만 군대의 최고 통수권자였습니다. 그가 마음만 먹는다면 어느 누가 반란을 일으키거나 권위에 도전해도 이 20만 군대를 끌고 와 박살낼수 있었습니다. 더구나 이 군비감축을 하며 시민들과 원로원의 환심을 사며 은근슬쩍 자신의 친위대인 수도 근위대를 창설하는 교묘함을 부렸습니다.
4.국고 관할권 - 물론 당시 국고는 전혀 제 기능을 할 수 없는 상태라 당시 어떤 의원도 이 국고관할권을 장악하려 생각조차 하지 않았지만 아우구스투스는 자신의 역량으로 이 국고를 다시 원상태로, 아니 더욱 더 강화시키는 수완을 발휘하며 자신의 것으로 만들었는데 이것은 국정운영의 가장 큰 관건인 조세권마저 장악했다는 뜻이었습니다.
5.호민관 직책 - 아우구스투스는 이 입법과 사법, 거부권을 모두 관장하는 당시의 대통령이라 할 수 있는 집정관 직위 대신 이 호민관 직책만을 유지했습니다. 그가 주목한 것은 호민관의 "거부권" 이었습니다. 이것은 원로원의 어떤 결정도 가결될 수 없도록 하는 무서운 무기이면서 권력의 냄새는 나지 않는 치밀한 한 수였습니다.
6.자문위원회 - 처음에는 단지 제1시민과 함께 로마의 국익을 위한 토론과 의회에 좋은 정책들을 건의하도록 조언하자는 취지였지만 재위 후기 대에 이르러서는 원로원과 입법가,행정가,부유한 기사계급 등 점점 존귀한 아우구스투스의 명성과 매력에 이끌려 모든 권력계층의 엘리트들이 이곳에 모여들었고 모두 아우구스투스의 측근이 되었으며 결국 나중에는 입법권마저 장악하게 되어 완전히 황제의 "내각" 으로서 기능하게 됩니다.
7.명예 - 존엄한 자, 제1시민, 영묘 등등....이 모든 명예들은 로마시민과 원로원이 직접 부여한 것이고 권력과는 무관한데다 어디까지나 법의 테두리 안에서 "공익" 을 위해 힘쓴 그에게 감사의 의미로 부여된 것들이었지만 이 모든 것들이 결국에는 위에 열거한 수많은 권력을 한 손에 틀어쥔 자에게 신성한 권위마저 부여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상기에 열거한 모든 직위와 권한은 후계자인 티베리우스에게 세습되었습니다.
조세권, 행정권, 군통수권, 수도치안권, 입법권, 거부권, 그리고 식량장악까지......거기다 이 모든 것들이 후계자에게 세습됩니다. 공화정의 회복을 선언한 그는 이렇게 공화정을 무너뜨리고 제정을 창립합니다.
공화정의 회복을 선언했던 그는 이렇듯 구렁이 담 넘어가듯이 모든 권력을 다 쥐고 황제가 됩니다. 5천만이 넘는 국민들 모두 공화정의 회복을 진심으로 믿게 만들면서 말이죠.
아우구스투스 옥타비아누스
로마제국, 유럽의 초대 황제는 이렇게 페르시아의 샤, 중화의 천자, 초원의 칸 과는 사뭇 다른 방식으로 탄생합니다. 그리고 그가 죽은 후에나 사람들이 사실상 왕관만 안 썼을 뿐이지 그가 제왕이었다는 것을 깨달았을 정도로 그는 그야말로 "무관의 제왕" 이었습니다.
"내가 인생이라는 연극에서 내 배역을 잘 연기하지 않았더냐? 박수를 쳐다오"
-임종 직전 남긴 말-
출처: 아이러브사커 원문보기 글쓴이: 코비_메시_샤비_인혜
첫댓글 좋은글 잘봤습니다 코비-메시-샤비-인혜님 은 정말 역사에 관신많으신분인듯^^
잘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ㅎ 역사가 재밌어서요. 그런데 솔직히 제국사나 전쟁 쪽만 관심분야고 나머지는 젬병입니다.
권력을 움켜쥐고 하고 싶은대로 했는데 욕까지 안먹었으니 대단한 정치력이네요...
222 카이사르와 가장 다른 점이 이 정치적 이중성과 냉철함이죠. 오직 평민들만 신경 쓰고 평민들의 힘을 등에 업고 자신의 역량만으로 원로원을 대놓고 무시하고 독재권력을 행사했고 거리낌 없이 직설적이었던 카이사르와는 달리 아우구스투스는 평생동안 가면을 쓰고 있었고 이 가면으로 평민들 뿐만 아니라 원로원마저 구워삶았죠.지중해 세계 전체를 무대삼아 벌인 한판의 연극에서 정치력으로 교묘히 황제가 된 인물. 이렇게 요약이 가능할 듯 합니다.
왠지 현시대에도 있을법하네요
저도 이 생각을 해본 적이 있는데 현재처럼 미디어가 발달하고 국민들의 지식수준이 높은 상황에선 아무래도 눈치채지 않았을까요.아무리 통치를 잘 하고 국력과 복지, 시민들의 삶의 질과 안전을 계속 높인 공인이라고는 해도 말로만 제1시민이지 실상은 황제라는 걸 많은 사람들이 깨달을 거라 봅니다. 적어도 세습만큼은 국민들이 막으려고 하지 않을까요?물론 아우구스투스가 그 미디어와 매체마저 장악하여 대국민 세뇌에 들어간다면 또 어찌 될지는 모르는 일이죠. 참 어려운 가정입니다.
능력과 윤리의식을 가진 절대권력이 어찌보면 가장 효율적인 정치채제죠이게 지속성이 없어서 문제지만....
당시 로마공화국이 안고 있던 여러 문제와 모순을 아우구스투스가 공화정을 죽이고 제정을 창립하는 방식으로 해결한건 사실이지만 역시 제정은 이게 문제죠. 명군이 있을때는 문제가 안되지만 암군이 나오면 어쩔 수 없이 삐걱거릴 수 밖에요. 아우구스투스 같은 천재가 계속 나올리도 없고요.공화정은 언제나 그래왔듯이 결국은 극복해내고 천천히 계속 개선되었을 것이다....라고 보며 아우구스투스의 제정을 비난하는 역사가들도 소수지만 있습니다. 저는 당시 상황에서는 제정으로의 전환은 어쩔 수 없었다고 생각 합니다만....
재미있게 잘 봤습니다
감사합니다! ^^
선리플후감상합니다. 항상 양질의 자료 감사합니다.
저도 항상 KG님의 응원해주시는 댓글에 힘이 납니다. 감사합니다 ^^
잘 읽었어요. 자주 올려주세요!
감사합니다 ㅋㅋㅋㅋ 자주 올리긴 힘들지만요. 어쩌다 한번 필이 꽂혀야 올리는데 이게 언제일지는 저도 사실 모르고 기약이 없습니다 ㅜ
재밌는 글 잘 봤습니다. 역사,, 세계사는 언제봐도 재밌네요 ^^
감사합니다! 사실 역사에 재미붙이면 한도 끝도 없이 재밌죠 ㅎㅎ
잘봤습니다. 드라마 Rome 다시 보고 싶네요. 거기서 옥타비아누스가 SM 성향이었...
그거 시즌2 아직도 소장 중입니다. 능구렁이 괴물 같았던 차가운 옥타비아누스를 정말 잘 묘사했다고 생각해요.
그가 절대 권력을 누릴수 있게 기반을 쌓은 카이사르가 정말 대단한 사람이었죠. 카이사르가 암살 안당하고 끝까지 살다 죽었어도 결국 후계자로서 아우구스투스가 물려받았을겁니다.
아우구스투스는 정치의 속성을 참 잘 알았던 군주였죠. 재정,군사력 두 가지를 다 휘어잡았고 로마의 전통인 공화정을 구색만 맞춰서 살려놈으로서 반발도 못하게 만드는 등 정말 무서울 정도로 치밀한 정책을 펼쳤습니다.
@Jerry Sloan 정말 천재라고 할 수 있네요ㅎㄷㄷ
@광속스텝 그의 인생을 보다 보면 소름이 돋을 정도로 무서운 천재입니다.죽기전 한 말을 보세요. 저는 저걸 보고 오싹했습니다.
팬입니다~~~로마인 이야기 다시한번 읽어야겠네요^^
글마다 항상 응원댓글 주셔서 감사합니다 ^^
잘 배워갑니다 ㅎ
항상 감사합니다 ^^
잘봤습니다. ㅎㅎ 서양사쪽은 제겐 미지의 분야인지라 이런 이야기 읽을때마다 참 흥미롭습니다.
평소 댓글들 보고 역사에 해박하신 줄 알았는데 서양사 쪽은 모르셨었군요 ㅋㅋㅋ딴 건 몰라도 로마제국사는 정말 볼만합니다. 저도 동아시아사나 이슬람사가 더 재밌긴 한데 가장 좋아하는 건 로마사입니다 ㅎ 서양사 중엔 유일하게 로마사만 재밌더군요 저는
@코비_메시_샤비_인혜 ㅎㅎ한국사가 전공이라서 진짜 디테일한 세계사로 가면 까막눈이나 마찬가지에요ㅎㅎ 다음글도 기대하겠습니다.
억.. 읽고나니 소름돋는 부분이 제가 세계사에서 이부분 읽을때마다 아우구스투스가 굉장히 능력자지만 황제라고 생각하지 않았는데..... 그 이후로 계속 황제.... 후대 사람들 조차 은근슬쩍 알아차리기 힘듦
아우구스투스의 일대기를 읽는 내내 저도 '에이 황제 아니네' 라고 생각했다가 나중에 2대 황제 티베리우스 대에 이르러 세습된 아우구스투스의 권력과 권한들을 찬찬히 다시 되돌아보고 나서야 황제라는 걸 깨달았습니다. 단지 칼집에서 칼만 빼지 않았을 뿐, 단지 공화정 수호를 연기했을 뿐 실상은 그게 아니었죠. 전 소름이 돋더군요.
한마디로 정치 천재네요.
222 지중해 세계 전체를 무대삼아 5천만 관객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각본,감독,주연 모두 그가 직접 맡은 40년간의 연극이었죠.제목은 "공화정의 회복" 이고 이 연극이 끝나고 막이 내리고 나서야 제목이 "황제의 탄생" 으로 바뀌어 있는 그런....
삭제된 댓글 입니다.
감사합니다! ^^ 필이 또 언제 꽂힐지 몰라서 자주 올리는건 장담해드리지 못하지만요 ㅜ
이런 사람을 어렸을때부터 후계자로 지목한 카이사르가 더 대단하죠ㄷㄷ
천재는 천재를 알아본다는 명언이 있죠. 원로원파의 마지막 우두머리이자 천재인 술라가 그때 당시 아무도 주목하지 않았던 날라리 꼬마 카이사르를 알아보고 죽이려고 한 걸 보면....당시 카이사르는 성인도 안 된 어린 꼬마였고 술라가 원로원을 강화시키려 정적들을 모두 죽일 때 저 어린 카이사르도 죽이려고 했었죠. 측근들이 모두 말려 그만두었지만 살생부에 카이사르의 이름을 빼면서도 끝까지 툴툴거렸죠. 저 자식은 위험한 놈이라고....결국 결과는 술라의 생각대로였죠.어릴때 카이사르는 열심히 노는 것밖에 몰랐었는데 대체 이 속을 어떻게 꿰뚫어 본건지 정말 신기하기만 합니다.
재밌는글 잘 읽었습니다 담에도 또 올려주세요~! 티베리우스도 현명한 군주였는지 궁금하네요
감사합니다! 티베리우스도 아우구스투스의 옆에서 모든걸 보고 배워 똑같이 냉철하고 무서웠고 국가재정을 더욱 튼실히 하여 통치는 만점이었지만 아우구스투스와는 달리 인기와 명예에는 전혀 신경쓰지 않았고 겉으로는 원로원을 존중했던 아우구스투스와는 달랐습니다. 치세 후기에는 아예 수도를 떠나 카스피 섬에 칩거하여 거기서 제국을 통치하죠.이 티베리우스 치세 때에 이르러 비로소 로마시민들은 공화정이 끝났다는 것을 실감했고 아우구스투스가 황제였다는 것을 깨달았죠.
잘보았습니다.
감사합니다 ^^
개인적으로 카이사르의 몰락을 직접 봐서 완벽한 각본을 구상했다고 생각도 되네요~ 좋은글 잘읽었습니다.ㅎ
저도 이게 굉장히 큰 영향을 끼쳤다고 생각합니다. 카이사르는 평민들의 인기만 신경쓰고 원로원을 너무 대놓고 무시했다가 바로 그 원로원 의원들에게 시해당했으니까요. 실제로 아우구스투스는 항상 밖에 나갈 때 호위병들을 대동했었고 기사계급,원로원 등 모든 계층을 구워삶는데 신경을 많이 썼었죠.
황제가 되었지만 원로원 자신들이 여전히 로마를 지배하고 있다고 끝까지 착각하게 만든 진짜 천재.사기를 치는 클라스가 다른 양반인듯
22222 역대 어떤 정치가도 이렇게까지 거대한 스케일로 완벽하게 사기를 치지는 못했죠.
갑자기 미드 "Rome"이 또 보고 싶어지네요. ^^너무 재미있게 잘 읽었습니다.
첫댓글 좋은글 잘봤습니다 코비-메시-샤비-인혜님 은 정말 역사에 관신많으신분인듯^^
잘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ㅎ 역사가 재밌어서요. 그런데 솔직히 제국사나 전쟁 쪽만 관심분야고 나머지는 젬병입니다.
권력을 움켜쥐고 하고 싶은대로 했는데 욕까지 안먹었으니 대단한 정치력이네요...
222 카이사르와 가장 다른 점이 이 정치적 이중성과 냉철함이죠. 오직 평민들만 신경 쓰고 평민들의 힘을 등에 업고 자신의 역량만으로 원로원을 대놓고 무시하고 독재권력을 행사했고 거리낌 없이 직설적이었던 카이사르와는 달리 아우구스투스는 평생동안 가면을 쓰고 있었고 이 가면으로 평민들 뿐만 아니라 원로원마저 구워삶았죠.
지중해 세계 전체를 무대삼아 벌인 한판의 연극에서 정치력으로 교묘히 황제가 된 인물. 이렇게 요약이 가능할 듯 합니다.
왠지 현시대에도 있을법하네요
저도 이 생각을 해본 적이 있는데 현재처럼 미디어가 발달하고 국민들의 지식수준이 높은 상황에선 아무래도 눈치채지 않았을까요.
아무리 통치를 잘 하고 국력과 복지, 시민들의 삶의 질과 안전을 계속 높인 공인이라고는 해도 말로만 제1시민이지 실상은 황제라는 걸 많은 사람들이 깨달을 거라 봅니다. 적어도 세습만큼은 국민들이 막으려고 하지 않을까요?
물론 아우구스투스가 그 미디어와 매체마저 장악하여 대국민 세뇌에 들어간다면 또 어찌 될지는 모르는 일이죠. 참 어려운 가정입니다.
능력과 윤리의식을 가진 절대권력이 어찌보면 가장 효율적인 정치채제죠
이게 지속성이 없어서 문제지만....
당시 로마공화국이 안고 있던 여러 문제와 모순을 아우구스투스가 공화정을 죽이고 제정을 창립하는 방식으로 해결한건 사실이지만 역시 제정은 이게 문제죠. 명군이 있을때는 문제가 안되지만 암군이 나오면 어쩔 수 없이 삐걱거릴 수 밖에요. 아우구스투스 같은 천재가 계속 나올리도 없고요.
공화정은 언제나 그래왔듯이 결국은 극복해내고 천천히 계속 개선되었을 것이다....라고 보며 아우구스투스의 제정을 비난하는 역사가들도 소수지만 있습니다. 저는 당시 상황에서는 제정으로의 전환은 어쩔 수 없었다고 생각 합니다만....
재미있게 잘 봤습니다
감사합니다! ^^
선리플후감상합니다. 항상 양질의 자료 감사합니다.
저도 항상 KG님의 응원해주시는 댓글에 힘이 납니다. 감사합니다 ^^
잘 읽었어요. 자주 올려주세요!
감사합니다 ㅋㅋㅋㅋ 자주 올리긴 힘들지만요. 어쩌다 한번 필이 꽂혀야 올리는데 이게 언제일지는 저도 사실 모르고 기약이 없습니다 ㅜ
재밌는 글 잘 봤습니다. 역사,, 세계사는 언제봐도 재밌네요 ^^
감사합니다! 사실 역사에 재미붙이면 한도 끝도 없이 재밌죠 ㅎㅎ
잘봤습니다. 드라마 Rome 다시 보고 싶네요. 거기서 옥타비아누스가 SM 성향이었...
그거 시즌2 아직도 소장 중입니다. 능구렁이 괴물 같았던 차가운 옥타비아누스를 정말 잘 묘사했다고 생각해요.
그가 절대 권력을 누릴수 있게 기반을 쌓은 카이사르가 정말 대단한 사람이었죠. 카이사르가 암살 안당하고 끝까지 살다 죽었어도 결국 후계자로서 아우구스투스가 물려받았을겁니다.
아우구스투스는 정치의 속성을 참 잘 알았던 군주였죠. 재정,군사력 두 가지를 다 휘어잡았고 로마의 전통인 공화정을 구색만 맞춰서 살려놈으로서 반발도 못하게 만드는 등 정말 무서울 정도로 치밀한 정책을 펼쳤습니다.
@Jerry Sloan 정말 천재라고 할 수 있네요ㅎㄷㄷ
@광속스텝 그의 인생을 보다 보면 소름이 돋을 정도로 무서운 천재입니다.
죽기전 한 말을 보세요. 저는 저걸 보고 오싹했습니다.
팬입니다~~~로마인 이야기 다시한번 읽어야겠네요^^
글마다 항상 응원댓글 주셔서 감사합니다 ^^
잘 배워갑니다 ㅎ
항상 감사합니다 ^^
잘봤습니다. ㅎㅎ 서양사쪽은 제겐 미지의 분야인지라 이런 이야기 읽을때마다 참 흥미롭습니다.
평소 댓글들 보고 역사에 해박하신 줄 알았는데 서양사 쪽은 모르셨었군요 ㅋㅋㅋ
딴 건 몰라도 로마제국사는 정말 볼만합니다. 저도 동아시아사나 이슬람사가 더 재밌긴 한데 가장 좋아하는 건 로마사입니다 ㅎ 서양사 중엔 유일하게 로마사만 재밌더군요 저는
@코비_메시_샤비_인혜 ㅎㅎ한국사가 전공이라서 진짜 디테일한 세계사로 가면 까막눈이나 마찬가지에요ㅎㅎ 다음글도 기대하겠습니다.
억.. 읽고나니 소름돋는 부분이 제가 세계사에서 이부분 읽을때마다 아우구스투스가 굉장히 능력자지만 황제라고 생각하지 않았는데..... 그 이후로 계속 황제.... 후대 사람들 조차 은근슬쩍 알아차리기 힘듦
아우구스투스의 일대기를 읽는 내내 저도 '에이 황제 아니네' 라고 생각했다가 나중에 2대 황제 티베리우스 대에 이르러 세습된 아우구스투스의 권력과 권한들을 찬찬히 다시 되돌아보고 나서야 황제라는 걸 깨달았습니다. 단지 칼집에서 칼만 빼지 않았을 뿐, 단지 공화정 수호를 연기했을 뿐 실상은 그게 아니었죠. 전 소름이 돋더군요.
한마디로 정치 천재네요.
222 지중해 세계 전체를 무대삼아 5천만 관객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각본,감독,주연 모두 그가 직접 맡은 40년간의 연극이었죠.
제목은 "공화정의 회복" 이고 이 연극이 끝나고 막이 내리고 나서야 제목이 "황제의 탄생" 으로 바뀌어 있는 그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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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 필이 또 언제 꽂힐지 몰라서 자주 올리는건 장담해드리지 못하지만요 ㅜ
이런 사람을 어렸을때부터 후계자로 지목한 카이사르가 더 대단하죠ㄷㄷ
천재는 천재를 알아본다는 명언이 있죠. 원로원파의 마지막 우두머리이자 천재인 술라가 그때 당시 아무도 주목하지 않았던 날라리 꼬마 카이사르를 알아보고 죽이려고 한 걸 보면....
당시 카이사르는 성인도 안 된 어린 꼬마였고 술라가 원로원을 강화시키려 정적들을 모두 죽일 때 저 어린 카이사르도 죽이려고 했었죠. 측근들이 모두 말려 그만두었지만 살생부에 카이사르의 이름을 빼면서도 끝까지 툴툴거렸죠. 저 자식은 위험한 놈이라고....결국 결과는 술라의 생각대로였죠.
어릴때 카이사르는 열심히 노는 것밖에 몰랐었는데 대체 이 속을 어떻게 꿰뚫어 본건지 정말 신기하기만 합니다.
재밌는글 잘 읽었습니다 담에도 또 올려주세요~! 티베리우스도 현명한 군주였는지 궁금하네요
감사합니다! 티베리우스도 아우구스투스의 옆에서 모든걸 보고 배워 똑같이 냉철하고 무서웠고 국가재정을 더욱 튼실히 하여 통치는 만점이었지만 아우구스투스와는 달리 인기와 명예에는 전혀 신경쓰지 않았고 겉으로는 원로원을 존중했던 아우구스투스와는 달랐습니다. 치세 후기에는 아예 수도를 떠나 카스피 섬에 칩거하여 거기서 제국을 통치하죠.
이 티베리우스 치세 때에 이르러 비로소 로마시민들은 공화정이 끝났다는 것을 실감했고 아우구스투스가 황제였다는 것을 깨달았죠.
잘보았습니다.
감사합니다 ^^
개인적으로 카이사르의 몰락을 직접 봐서 완벽한 각본을 구상했다고 생각도 되네요~ 좋은글 잘읽었습니다.ㅎ
저도 이게 굉장히 큰 영향을 끼쳤다고 생각합니다. 카이사르는 평민들의 인기만 신경쓰고 원로원을 너무 대놓고 무시했다가 바로 그 원로원 의원들에게 시해당했으니까요. 실제로 아우구스투스는 항상 밖에 나갈 때 호위병들을 대동했었고 기사계급,원로원 등 모든 계층을 구워삶는데 신경을 많이 썼었죠.
황제가 되었지만 원로원 자신들이 여전히 로마를 지배하고 있다고 끝까지 착각하게 만든 진짜 천재.
사기를 치는 클라스가 다른 양반인듯
22222 역대 어떤 정치가도 이렇게까지 거대한 스케일로 완벽하게 사기를 치지는 못했죠.
갑자기 미드 "Rome"이 또 보고 싶어지네요. ^^
너무 재미있게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