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밤의 숙취...랄 것도 없지만 그래도 위장을 위로해야 하는 법.
전날 사온 야채와 들고온 과일들을 씻어 정리해놓고 나주 지인에게 사온 모두부를 으깨서 복아달라고 부탁했다.
나만의 레시피로 야채 샐러드를 만들어 위가 편안한 아침을 대접하고 싶었다.
물론 시요일 멤버가 들고온 올리브유나 발사믹, 트러블도 넣고 쥔장이 만들어 가져온 수제 오디식초를 베이스로 했다.
거기에 시요일 멤버가 챙겨온 올리브 열매는 얼마나 환상적인 맛이던지, 뜯어온 돋나물과 씀바귀로 장식하고
각자 먹을만큼만 덜어가는 것로 하고 챙겨온 히말라야 암반은 추가하지 않았다.
아니어도 이미 간은 적당하게 스며들었으므로 다른 그 무엇도 필요하지 않았다.
게다가 파란 유리잔에, 와인잔과 머그컵에 각자 원하는 스타일대로 차를 더하니 그야말로 성찬이 따로 없다.
수분이 날아간 두부를 베이스로 다양한 야채와 각종 과일 특히 오렌지가 뿜어내는 상큼함이 더해져
내어놓은 샐러드는 지인들의 극찬을 받았고 다들 네접시 정도는 먹어대면서 흐뭇해하였다...아침은 그렇게 완료.
후에 챙겨간 망고로 그럴듯하게 장식한뒤 후식으로 등장시키니 다들 완벽한 아침 성찬이었노라고 엄지척.
이후에 집안 정리정돈을 하고 길을 나섰다.
담양으로 가는 길...한두번 가본 곳도 아니건만 여전히 설렌다.
대나무가 뿜어내는 에너지를 흡수하기에 충분한 여정이다.
이르게 도착하였다고 했으나 와우, 관광버스 대절이라니....게다가 왁자지껄 학생들의 동참까지.
하였어도 약간의 기대감을 갖고 "소쇄원"으로 들어가자니 역시나 세월값을 하느라 예전의 소쇄원 느낌이 아니다.
고요하고 조용하다, 라고 한때 생각했건만 이제는 너무 유명해져서 소쇄원의 매력이 사라졌다.
더군다나 무지의 행태들을 하는 소인배들을 보자니 짜증도 나고 해서 오래도록 머물지 못한 채 튀켠에서 오도마니
소쇄원의 바람결을 즐기다 대나무를 즐감하고 내 좋아하는 색상의 돌자락에 한 컷 진심을 부리다가 돌아나왔다.
그러니까 무엇이든 너무 유명세를 타면 볼썽 사나운 꼴만 접하게 될 듯 싶더라니만 시작점부터가 그러했고
그후로 찾아든 매표소가 존재하는 메타쉐콰이어 길도 그러했다.
다시금 "식영정"을 향해 간다....참으로 불친절한 안내판, 눈에 뜨이는 곳에 안내표지 하나 있으면 좋으련만
어찌 그리 자그마하게 보이지도 않는 곳에 표지판을 숨겨놓았다는 건지.
예전에 찾아왔던 기억이 없었더라면 찾지 못했을 그런.
암튼 간신히 찾아들어 식영정 계단을 오른다.
담양이 정자의 고장이라는 말이 실감나는 그런 곳이다.
지금이야 29개의 정자가 현존한다고 하지만 예전에는 빼어난 경관 덕분에 70여개의 정자가 있었다고 한다.
식영정에 올라 돌아드는 강물을 바라보니 더더욱 그랬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낭만과 운치는 동의어 라는 생각도...선조들이 절경을 보고 읊조린 시어들도 기억하라고
함께한 시요일 멤버가 굳이 찾아서 낭독하는 수고로움을 자처한다.
역시나 글쟁이들의 감성은 어쩔 수 없다 였으며 국어선생님의 한탄왈
"현장에 오지 않고 애들에게 수업만 하였다는 사실이 민망스러울 정도로 식영정에서의 현장감은 감동"이라고.
그렇게 우리는 한참을 머물며 시간을, 조상들의 낭만을 낚았다.
그 와중에도 가는 곳곳, 소화기나 빗자루가 눈에 뜨였다.
산림자원 연구소나 식영정은 물론 환벽당도 마찬가지였다.
한 컷에 방해될 요소이지만 남도사람들, 그들의 배려하는 심성을 온 몸으로 느낀다.
떨어질 나무나 먼지를 알아서 적당히 처리하라는 메시지였으므로....
여하튼 뒤이어 찾아든 "환벽당"은 두칸의 방을 지니고 있다.
"정"과 "당"의 차이를 확연하게 알려주는 곳이기도 하다.
먼 시야로 바라보는 정경을 보고 있자니 절로 편안함이 스며들고 벽오동 나무와 함께 세월을 낚는다.
예전에 있었을 연못은 쇠퇴하였고 멋진 두그루의 배롱나무는 존재감이 스러졌다...아쉬운 마음이다.
촘촘한 선조들의 낭만 가득한 마음을 가슴에 안고 돌아나오는 길,
너무 많은 사람들의 발길로 훼손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함께 였다.
그렇게 힐링의 시간을 마무리 하고 죽녹원 앞 "죽녹원 1st 첫집" 으로 점심을 먹으로 간다.
물론 현지인 추천을 기반으로 한다.
역시나 현지인의 입맛을 사로잡은 떡갈비와 죽순무침과 생선구이, 대통밥은 명불허전이다.
어느 곳을 찾아가도 비슷할 것이라는 생각은 접어라.
남도의 식당 순례를 하였던 기억으로 봐서도 어느 곳이나 밑반찬을 비롯하여
자신들만의 필살기는 타도의 추종을 불허할 터이다.
이곳 역시 그러하다.
주종목인 떡갈비와 죽순무침은 말할 필요 없고 소소할 것 같았던 밑반찬들의 등장은 거창했다.
반찬 가짓수가 중요하지 않다는 사실을 이해하고 작지만 크다 라는 말을 실감할 정도로 말이다.
그 유명한 대통밥을 거부하고 죽순무침에 빠지거나 떡갈비에 휘둘린 시간이 아깝지 않았다.
먹는 내내 역시나 맛있다를 연발하였고 말할 틈이 없도록 흡입하였다면 그것이 전부다.
그렇게 온힘을 다해 식탐을 부리고 먹거리에 진심을 담아 점심을 끝내고 "관방제림"을 향해 간다.
멀고도 긴 산책의 시작이었다....한 시간이 넘는, 만보 이상의 걸음을 포기하지 않게 하는 곳.
군데 군데 "어싱"을 하는 사람들도 보이고 시요일 멤버 역시 맨발의 청춘이 외었다.
면적은 12만을 넘나들며 수령 300년 나무가 존재하는 곳, 비가 많이 내리는 담양의 수해를 방지하기 위해
나무를 심기 시작한 이래로 숱한 세월을 거쳐와 지금은 천연기념물이 되었다고 하는 그런 곳.
그 곁자락에 관방제림을 자신들의 정원처럼 활용하는 사람들은 행복하겠다 싶었지만
또다른 개념으로 보자면 날이면 날마다 시끄러움을 감수할 요량이었을 터이니 짜증이 수반될 날들도 허다할 것이다.
그 길을 걸으며 계속 감탄사를 내지르고 자신만의 명패를 지닌 나무가 170여종이 넘었고
어싱을 하는 사람들이나 그저 산책길로 삼는 사람들이거나 솔솔 불어오는 바람을 맞는 사람들이나
모두가 행복한 그런 관방제림이 그곳에 존재한다는 사실만으로도 담양 사람들은 행복할 것 같다는 생각을 한다.
요즘이야 전국 어디나 일상이던 관광차원이던 공원을 만들고 녹지를 조성하긴 하지만
그 옛날 1638년 조선시대부터 나무를 심었다는 사실과 눈밝은 조상과 지혜로움을 가진 선조가 있었으며
그뜻을 따라 함께 한 이들이 있었다는 사실이 더욱더 놀라웠다.
한참을 걸었다....화장실이 급해질 무렵 끝자락이 보였다.
하여 일행을 남겨두고 메타쉐콰이어 나무 숲길이 보이는 건너편으로 주차장이 보여 찾아가는 길.
정말 짜증이 확 일었다.
티비에서 보던 광경을 목도하게 된 것....메타세콰이어 길을 걸으려면 돈을 내야 한다는 사실에 기함할 뻔 했다.
와중에 기꺼이 돈을 내고 걷는 이들도 있으니 뭐라 할 말은 아니지만 존재하는 모든 것들을 돈으로 환산하는 것,
그 무엇이던지 간에 관광자원이라고 생각하는 일차원적인 마인드에 짜증과 분노가 일었다.
세금을 내는 국민들에게 그냥 무상으로 그 정도 휴식처 정도를 제공할 수는 없다는 말인지,
조만간 관방제림도 돈을 내고 걸어야 하는 것은 아닌지 심히 염려스럽기도 하더라는.
어쨋거나 긴 시간을 걸어 다시 원점으로 돌아와 근처 카페에서 테이크아웃으로 커피를 마시며 주차장으로 향한다.
서울로 돌아가는 길....중간에 입장휴게소에서 서방을 만나 안성으로 돌아온다.
그러면서 한마디 종알거린다.
여기도 메타세콰이어 길이 있다구요...왕년의 시장이 굳이 멋진 단풍나무와 벚꽃길을 훼손하며
기어이 어울리지도 않게 메타쉐콰이어 길을 만들어서 얼마나 황당했던지 싶은 기억이 스멀스멀.
사실 멀리 갈 것도 없다.
무설재 마당으로 들어서는 순간 줄지어 선 메타쉐콰이어를 만날테니 말이다.
초록이 왕성해지는 나무들을 보면서 늘 뿌듯했더라는....타지역에서 만나는 자연과 초록의 향연은 색다른 느낌이긴 하지만
역시 내 집 앞의 초록만큼 안온하고 편안한 곳은 없지 싶다.
하였어도 이번 여행은 눈도 입도 맛도 온몸이 즐거웠던 힐링여행이긴 했다.
굳이 멀리 나갈 이유가 필요하지 않은 산속 마님의 경우에도 가끔은 일탈이 필요하니 말이다.
또한 그리운 사람을 만나는 재미를 포기하고 싶지도 않으니 말이다.
어쨋거나 알차게 휘리릭 달려온 1박 2일의 묘미는 그렇게 마무리 되. 었. 다
추신 : 아침 샐러드 사진과 관방제림 사진은 지인에게 빌렸다.
샐러드와 차를 준비한다고 손이 바빠서,
관방제림은 걸으면서 수다만 떠느라고....미처 한컷은 생각 못했다는
첫댓글 다녀온곳이라도 덕분에 잘 보고 잘 누렸네요. 맞아요 너무 유명해지면 기대한 만큼 조용하질 않아서리...
그래서 예전 기억들이 더 좋더라는.
또 누구와 가는지 목적이 뭔지에 따라서
여행어 맛과 멋도 달라지니까..
이번엔 정말 편하게 다녀왔음.
운전도 안했으니 더더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