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의 창
6.25전쟁으로 군입대, 월북…1회 생물학과 입학생 중 나 혼자 졸업
서울대총동창신문 제555호(2024.06.17)
조완규 (생물48-52)
전 모교 총장국제백신연구소 상임고문
장비 없어 연필과 종이로 연구 기초과학 역량 제고에 노력 보태
지난해 10월 30일 국제백신연구소 나의 사무실 문에 ‘대한민국과학기술유공자’ 패를 부착하는 명패헌정행사가 있었다. 1945년 해방 이후 황무지 같던, 6·25전쟁이 3년을 지속하는 가운데 경제기반이 거의 바닥이던 대한민국이 10대 경제대국에 이를 만큼 성장한 건 결정적으로 과학기술력의 기여라 할 수 있다. 2015년 정부는 해방 후 과학기술에 크게 기여한 학자 82명을 유공자로 선정했다. 그 중 62명은 이미 타계했고 생존자 20명이 ‘과학기술유공자회’를 구성했다. 내가 유공자회장으로 선임됐다.
1948년, 2년간 서울대 문리대 예과과정을 거친 나는 화학과를 희망했으나 예과생 200명 가운데 90여 명이 화학과로 진입함으로써 15명이 선택한 신설학과인 생물학과를 택했다. 생물학과에 적을 두더라도 화학을 청강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생물학과엔 일본북해도제국대학에서 세포학과 식물생리학을 각각 전공한 동물학 교수와 식물학 교수 두 분뿐이었다. 실습용 장비도 매우 빈약해 학생용 현미경 3대와 정온기뿐이였다. 당시 첨단 분야인 세포학에 흥미가 있어서 전공분야로 택했다. 3학년 때 6·25전쟁이 터졌고 동급생들 대부분이 군 입대, 월북 혹은 행방불명 등으로 결국 나 혼자 생물학과를 졸업했다. 대학원 진학도 나 혼자였다.
1957년 문리대 생물학과 전임강사로 발령받은 나는 열악한 연구여건으로 인해 연필과 종이로 할 수 있는 연구과제, 즉 우리나라 출생성비와 관련된 분야를 연구주제로 택했다. 1930년 영국 학자는 우리나라 남아 출생률이 여성 출생 100명에 118명으로 세계에서 가장 높다고 했고, 한편 서울대 의대 내과 일본인 교수는 100대 100으로 남아 출생률이 세계에서 가장 낮다고 발표했다. 어느 쪽이 옳은지 밝히고 싶었다. 의대 산부인과 자료를 수집했고 한반도 전 지역 주부를 면담하며 자녀 출생상황을 집계했다, 그 결과 여아 출산 100에 남아 출생 110의 결과를 얻었다.
일러스트 김나은(디자인17-23) 그래픽 디자이너
1964년부터 2년간 록펠러재단 연구장학생으로 맡았던 미국 펜실베이니아대 연구원에 이어 1970년부터 WHO 지원을 받아 존스홉킨스대에서 4개월, 하버드 의대에서 10개월, 귀국 전 8개월은 영국 케임브리지대 연구소에서 보냈다. 1968년 학생들의 반정부 및 민주화 쟁취를 위한 소요가 극심할 때 문리대 학생과장으로 임명됐다. 피곤해도 근무가 끝나는 대로 연구실로 복귀해 연구하고 대학원생을 지도했다. 당시 제자가 소위 ‘설랑동문회’ 이름으로 한 해 두세 번 모여 지난 1년의 연구활동을 소개하는 등 40년간 모임을 이어가고 있다.
1995년 UNDP 주도로 후진국 어린이 전염병 예방용 값싼 백신 개발을 목적으로 하는 국제백신연구소(IVI) 유치위원장으로 선임된 나는 우리나라를 방문한 연구소 입지선정위원회에 서울대가 연구공원 내 5000평 부지를 제공하고 정부가 연구소 건물을 건립, 지원할 것이란 확고한 의지를 밝혔고 결국 국제백신연구소 유치에 성공했다. 현재 외국 과학자 50명을 포함한 80명의 연구요원이 백신 개발에 열중하고 있다. 20여 년간 빌게이츠 재단이 총 1억5000만 달러를 후원했고 정부와 우리 국민의 도움을 받아 3년 전 후진국 어린이 콜레라 예방용으로 2000원짜리 경구용 백신개발에 성공했다. 현재도 연구소 한국후원회 상임고문으로 출근하며 연구사업을 돕고 있다.
정부가 1979년 14개 대학에 기초과학 특정분야 연구과제를 지정하고 ‘기초과학연구소’ 사업을 계획했을 땐 문교부 기초과학분과위원회 위원장을 맡아 연구소 평가위원회를 구성하고 매해 연구소들의 연구사업을 평가했다. 평가의 중점은 대학원 석,박사 양성과정 강화에 두었다. 이 사업으로 우리나라 기초과학 연구역량이 크게 향상됐으니 내 생애 가장 큰 보람이다. 지난날을 회상하면 내 생애는 오로지 과학기술 분야 육성과 관련됐다. 이를 평가해 정부가 나를 ‘과학기술 유공자’로 선정했을 것이다. 여생을 계속해 과학기술 분야 발전을 위해 봉사할 것을 다짐할 뿐이다.
*위 글은 원고지 40장 분량의 ‘과학기술 유공자가 되고’의 일부를 축약한 것입니다. 전문은 총동창회 홈페이지 동창신문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이 글과 함께 조완규 총장의 ‘자랑스러운 서울대인상을 받고-서울대 재임 회고’ 글도 홈페이지에 게재했습니다.
-편집자 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