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옥처럼 추격전을 벌이며 마침내 승리한 백홍석 9단(오른쪽)이 저우루이양 5단과 간단한 눈복기를 마친 후 돌을 쓸어담고 있다. 백홍석 9단은 이 승리로 제4회 비씨카드배에서 유일하게 4강에 진출한 한국 선수가 됐다. |
백홍석 9단이 불리했던 바둑을 끊임없이 흔들며 승리, 한국 선수 중 유일하게 4강 고지를 밟았다.
17일 한국기원 1층 바둑TV스튜디오에서 열린 제4회 비씨카드배 월드바둑챔피언십 8강전에서 백홍석 9단이 저우루이양 5단에게 337수 만에 흑1집반승을 거두고 8강에 진출했다
'후...'
가슴 속에서 끌어올려진 백홍석 9단의 한숨 소리가 방송으로 들려 왔다. 중반까지만 해도 백홍석 9단은 한숨만 연거푸 내쉬고 있었다. 손쉬운 길을 마다하고 어렵게 싸웠는데 좌상 흑은 초토화되고 있었다.
그전까지 상대 돌은 3군데로 흩어져 혼비백산해 달아나고 있었으므로 맘껏 공격하고 있었는데 그 기회를 이렇게 만들어 놓은 데 대한 자책감이었다. 시간마저 부족했다. 더 이상 남은 한국 선수가 없어 더 암울하고 고통스러운 상황이었다.
콩지에 9단을 물리치고 8강에 올라온 저우루이양 5단은 전에 없이 좋은 컨디션으로 지속적인 호착을 보여주고 있었다. 한국 정상 10위권을 상대로 11전 전패를 하면서 한국 기사에 약한 모습을 보이던 그였으나 이번만큼은 신랄한 타개과 날카로움이 빛났고, 백홍석 9단의 강력한 공격을 잘 비켜가면서 실리에서 앞섰다.
아마도 무난하게 계속 전개됐다면 저우루이양 5단의 승리였을 것이다. 그러나 크지 않은 집 차이, 윤곽이 모호한 영역들은 저우루이양 5단의 마음속에 끊임없이 노크질 했다. 참다 못한 저우루이양 5단은 결정타를 날리자는 심산으로 좌중앙에서 변화를 택했다.
"고맙죠" 이 바둑을 바둑TV에서 해설하던 유창혁 9단의 말이었다. 가뜩이나 불리하던 백홍석 9단에게 새로운 변화는 고마운 일이었다. 백홍석 9단은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중앙에서 백을 얼마간 잡으면서 차이를 좁혔다.
그후로도 끝내기에서 어려운 곳이 많았지만 이미 냉정을 되찾은 백홍석 9단은 지옥처럼 꾸역꾸역 반격했다. 결국 좌하귀 패공방이 승부가 됐는데, 여기서 굴복을 얻어내면서 미세한 차이로 흑의 승리가 확정됐다.
백홍석 9단은 이 승리로 '한국 전멸'이라는 최악의 시나리오를 막으며 한국 우승의 희망을 이어갔다. 이 바둑을 바둑TV에서 해설한 유창혁 9단은 "저우루이양 5단은 좌상 접전에서 성공한 후 지나치게 낙관한 나머지 악수도 불사하는 등 방심한 게 패인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4강전은 5월 9일 열린다. 상대는 잠시 후 오후 5시부터 펼쳐지는 후야오위 8단-씨에허 9단 간 승자다. 백홍석 9단은 약 3주간 4강전을 대비할 시간적 여유가 있다.
바둑TV인터뷰/ 한국 유일 4강 진출자 백홍석
- 축하한다. 오늘 바둑 총평해 보면? “초반 요석 2점을 잡아 좋은 형세였는데 중반에 지독하게 나빠져 돌을 거둘까 생각까지 했었다. 하지만 상대가 낙관했는지 기회를 허용해 역전할 수 있었다.”
- 응원을 많이 받고 있겠다. “한국기사들이 너무 많이 탈락해서 나에게 응원이 몰리고 있다. 주변 지인들로부터 응원 메시지를 많이 받는데, 우리나라 모든 바둑팬들이 응원해주고 계시리라 생각한다.”
- 4강전에는 임하는 각오는? “4강에 오를 실력은 아닌데 올랐다. 또 4강 이후에도 강자들이 포진해 있다. 하지만 많은 분들이 나를 응원해주고 계시니 다시 한 번 기적이 일어나지 말라는 법도 없을 것이다.”
- 씨에허-후야오위 간 승자가 상대가 된다. 어느 쪽이 편한가? “본선에 진입한 이후 상대가 누군지 신경 쓰지 않고 있다. 또 누가 올라오든 내가 어찌할 수 없는 일이기도 하다. “
- 어떻게 준비할 텐가? “마무리 부분이 나의 약점이다. 보완하기 위해 노력하겠다. 상대포석도 연구하고… 뭐, 열심히 하는 수밖에 없는 것 같다.”
비씨카드배 월드바둑챔피언십은 세계 최초의 컷오프 상금제 대회를 도입했으며 국내외 프로, 아마추어 등 모든 바둑인에게 문호를 개방한 전면적 오픈제 방식을 채택한 세계대회다. 제한시간으로 각자 2시간에 초읽기 60초 3회를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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