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몽준 회장이 지난 1993년부터 대한축구협회를 이끌면서 아쉽게도 협회는 ‘독선’과 ‘아집’을 앞세운 행정을 펼쳐왔다. 97년 정 회장과 협회의 전횡에 경종을 울리기 위해 축구인들은 일명 ‘축축모’(축구를 사랑하는 축구인들의 모임)를 결성해 회장 후보로 허승표씨를 옹립해 경선에 참여했다.
당시 월드컵을 유치한 공으로 정 회장이 국민적인 영웅으로 대접받던 사회적 분위기임에도 축구인들은 올바른 축구 행정을 위해, 아니 협회의 전횡을 막기 위해 현장에 있는 지도자를 중심으로 대항을 했던 것이다.
결과는 뻔한 싸움이었다. 정 회장의 독선을 견제하겠다는 순진한() 시도는 오히려 철저한 보복으로 이어졌고, 축구계는 엄청난 갈등을 내재하게 됐다. 축축모 멤버들은 각종 불이익과 소외를 당하며 음지로 쫓겼고, 이는 곧 축구계에 ‘여당’, ‘야당’이라는 볼썽 사나운 등식을 갖게 했다.
이와 더불어 축구계가 정치화되는 심각한 현상에 직면하게 된다. 협회는 문화단체의 순수한 기능을 멀리하고, 대표팀만을 적극 활용해 방송 중계권료 등으로 막대한 수입을 올리고, 이런 예산을 바탕으로 ‘축구와 정치’를 한 묶음으로 해 대선을 준비한다는 의혹과 비판을 받기도 했다.
여기서 비롯된 것이 바로 지난해말 ‘회장사퇴 촉구서명’ 사건이었다. 이 사건은 서명을 주도한 핵심인물이 특정정당에 소속해 의도를 의심 받았지만, 분명한 것은 이 사건을 기해 축구인들은 잃었던 주권의식을 찾고자 하는 열망을 표출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대선 후유증과 서명파 징계와 사면 등 행정의 난맥상을 보인 현 집행부는 불난 호떡집 같은 현 축구계의 갈등 상황을 치유할 소방수가 불행하게도 없다. 협회에 쓴 소리를 했던 축구인들이 공개적·비공개적으로 인신공격을 당했고, 재야축구인들은 협회에 등을 돌린지 이미 오래 됐기 때문이다.
이제 모든 분란과 혼돈에 대한 수습은 정 회장이 직접 나서야 한다. 10년여 동안 축구계의 직언과 고언을 외면해온 결과에 대한 책임이기 때문이다. 이번 사태 이전부터 이미 불신을 받아오고 있는 집행부는 총사퇴해야 한다. 그리고 새 집행부를 짜 협회에 대한 불신과 불만을 해소하고, 법인화 등 개혁조처를 취해야 한다.
더불어 ‘협회는 축구인이 주인’이라는 새로운 의식의 전환도 뒤따라야 한다. 이런 측면에서 축구를 정치 도구화했다는 의혹을 받는 정 회장도 축구인 뿐만 아니라 정치권·국민의 심판을 받아야 한다고 본다.
이미 축구는 지난 월드컵을 통해 국민 모두의 사랑을 받는 문화현상이 됐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