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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소개
나는 김수련이다. 1991년에 태어났고
빼어날 수秀에 단련할 연鍊 자를 쓴다
나는 중환자실에서 일하는 간호사다
이것은 내가 간호사로서 7년간 겪어온 경험의 기록이다
“나는 실체를 가진 간호사로서 침묵을 깰 의무를 지닌다.”
여기 한 사람이 있다. 그는 서울의 한 대형 병원 중환자실에서 7년간 간호사 생활을 했다. 그가 『밑바닥에서』라는 책을 펴냈다. 위의 문장이 바로 저자가 책을 쓴 이유다. 그가 간호사로서 쓴 경험은 이제껏 드러난 적이 거의 없는 내용이다. 그는 자신을 밑바닥 존재로 규정지었다. 바닥은 더럽고 깊고 어둡다. 그 바닥에서 울리는 자기 목소리를 사람들이 달갑잖게 여길까 두려웠지만, 절망이 평생 계속될까봐 입에 메가폰을 댔다. 그 소리는 멀리 깊게 퍼져나간다. 그의 정직하고 다정한 글을 통해서.
👩🏫 저자 소개
김수련
신촌세브란스병원 암병원 중환자실CAICU에서 간호사로 약 7년간 근무했고, 2020년 코로나19 확산 초기에 대구의 코로나19 중환자실에 파견되어 근무했다. ‘건강권 실현을 위한 행동하는 간호사회’의 운영위원으로, 간호사 1인당 환자 수 법제화, 대한간호협회 직선제 촉구, 직장 내 괴롭힘 피해 간호사 연대와 같은 간호사 처우 개선 운동과 공공의료 강화 운동에 참여했다. 현재 국경없는의사회 소속 파견 인력으로 미파견 기간 중 미국 적십자 재난 의료팀American Red Cross Disaster Health Services Team 멤버로 활동 중이며, 뉴욕 시립병원 외과계 외상 중환자실Surgical-Trauma ICU에서 근무하고 있다. 공저로 『포스트 코로나 사회』가 있다.
📜 목차
추천 서문: 철저하게 무너지다_강경화 한림대 간호대학 교수
추천 서문: 현실을 방치하면 되돌아오는 것들_최규진 인하대 의과대학 교수
문을 열며─여기 목소리가 있다
들어가며
1장
밑바닥에서
말벌들
작고 예쁘고 소소한 것
소용돌이
아가미
2장
미나
아버지에 대하여
영광과 시간
외도
말할 수 없는
죽음의 모양
반인반수와 공감: 우리 마음은 비어 있어야 한다
하지 못한 말
3장
강가에 고요히 앉아
진술서(박선욱 간호사: 프리셉터 제도의 문제점)
원내 사고발생 신고서
늑대가 나타났다
문을 닫으며─그럼에도 불구하고
📖 책 속으로
내가 보낸 날들에 대해서 말하고 싶다. 이렇게 초라해도, 엉망이어도 살아가는 것에 대해서. 지난날들 매일 트집 잡아 사소하게 불행했고 많은 날이 내 탓으로 구겨지며 너덜너덜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느 날은 햇살같이 빛났다. 그 얘기를 하고 싶었다.
--- p.21
인턴이 처방을 내겠다고 했으나 처방을 내지 않으면 전화로 다시 알려야 했다. 인턴도 바빴다. 수술실에 들어갔거나 MRI실을 가서 처방을 못 내기도 했고 그 상태로 내 근무가 끝날 때까지 처방이 안 나기도 했다. 나는 처방을 받을 때까지 안달복달하며 여기저기 전화를 해야 했다. 인턴은 종종 처방을 잘못 냈다. 그들도 처음이었다, 내가 처음인 것처럼. 정정하려면 그들이 받을 때까지 전화해야 했고 다시 내는 처방도 용량 따위가 틀리곤 했다. 별것 아닌 일들이 자꾸 꼬여 점점 늘어났다.
--- pp.30~31
당신에게 나는 사람도 아니었을까? 그런 게 궁금해요. 아니면 내가 모르는 새 무슨 지독한 잘못을 했을까? (…) 당신과의 시간이 없었으면, 나는 어떤 사람이 됐을까. 그걸 상상하는 것은 고통스러운 일입니다. 내 마음은 더 건강했을 것이고, 벼랑 끝이 어떤 모양인지 생각도 해본 적이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런 가정은 의미가 없습니다. 이것들은 나를 지나쳐갔고, 내 마음은 무른 점토판 같아서 아무리 기쁜 일들이 일어나도 나를 할퀴고 지나간 것들은 지워지지 않아요. 2017년을 기억하세요? 그게 당신에게 어떤 해였는지, 그날들에 무엇을 했는지 기억하나요? 나는 그날들에 죽음과 함께 살았습니다.
--- pp.69~70
고백하건대, 나는 내 글에 대해 부채감을 느낀다. 그 속절없는 죽음들에 대해 내 글은 솔직하지 못했다. 나는 내부에서 일어난 일들을 사실 그대로 담지 못했다. 내가 기록한 현장의 일들은 모두 가장 인력 상황이 좋고 물자 지원이 나쁘지 않았던 몇 번의 기억을 모아 누덕누덕 기운 것이다. (…) 내 글은 엉망이 된 시신 위에 덮은 흰 시트 같은 것이다. (…) 우리는 의욕만큼 달려보지도 못했다. 우리가 열심히 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간호사가 너무 모자라서, 훈련되어 있지 않아서. 아무리 애써도, 매일 녹초가 되도록 진을 빼도 도무지 닿을 수가 없어서 속절없이 환자들을 잃어버렸다. 그것들을 적지 못했다. 나는 지금 이 글에서조차 솔직하지 않다. 죽음의 모서리를 환자의 가족들이 모르기를 바란다. 아니, 알아야 한다. 그들의 죽음이 석연치 못했다는 것, 다른 환경에서는 어떤 가능성이 있었을지도 모른다는 것, 그래서 그 죽음들이 존중받지 못한 죽음이라는 것을 알았으면 한다.
--- pp.150~151
그리고 또 하나의 요소가 있다. 머릿수다. 아무리 경력이 많아도 환자 수에 비해 간호사가 적으면 그 중환자실에 있는 모두가 궁지에 몰린다. 주도면밀한 모니터링과 빠른 대응이 우리 일인데, 한 명 한 명이 더 많은 환자를 봐야 한다면 주의력은 떨어지고 피로도는 급격히 상승한다. 대부분 정해진 휴식 시간 없이 장시간 일하는 간호사들은 피로가 누적될수록 실수가 늘어나고 종종 중대한 징후를 놓친다. 그것은 때로 치명적이다. 그래서 환자와 간호사의 비율은 환자의 사망률과 매우 뚜렷한 상관관계를 보인다. 간호사 한 명이 담당하는 환자가 한 명 증가할 때마다 환자의 사망률은 7퍼센트 증가한다. 담당 환자가 한 명 더 늘면 14퍼센트, 거기서 한 명 더 늘면 31퍼센트. 이 숫자는 끝도 없이 늘어난다.
--- pp.200~201
🖋 출판사 서평
24시간, 매초가 그들을 갉아내린다
간호사들의 근무는 3교대로 이뤄진다. 데이 출근날이면 그는 새벽 3시에 눈을 뜬다. 신규 때는 밤새 얕게 잠들거나 아니면 아예 못 잤다. 장독 같은 이불에서 몸을 빼 병원에 도착하면 4시. 전산을 보며 환자의 병력과 현 상태를 살피고 적는다. 5시, 병동에 들어가 야간 근무자들과 교체하고 물건 개수를 처치 개수와 대조하며 센다. 정맥주사용 빈카 20게이지 짧은 것 40개, 22게이지 40개, 폴리 카테터 18프렌치 2개, 16프렌치 5개, 투명 테이프 10개…. 물건은 종종 개수가 안 맞거나 가위 같은 게 사라져 그는 똥 묻은 기저귀와 가래 묻은 휴지가 뒤섞인 쓰레기통을 뒤진다. 6시 전 인계를 받는다. 인계 속도는 너무 빨라 긴장되고 꼭 실수가 생긴다.
인계가 끝나면 환자 상태를 머리부터 발끝까지 확인한다. 약 개수를 세고 아침 약을 투여한다. 정맥투여되고 있는 약물의 잔여량을 확인한다. 배액관, 카테터, 환자의 피부와 가래 상태, 인공호흡기 투석기 투여량, 체온계의 배터리 등을 점검한다. 불행히도 이 중 뭔가 하나에는 늘 문제가 일어나고, 그걸 놓치면 뒷일들이 줄지어 꼬인다. 그 와중에 보호자들이 전화를 걸어와 환자 상태를 설명해달라고 요구한다.
매 듀티마다 해야 하는 일의 목록은 이렇다. 투약, 환자 체위 변경, 구강 간호, 석션, 검체검사, 처방 처리, 전동과 입실 준비…. 검체검사 결과 이상이 있으면 레지던트에게 전화해 알려야 하지만 그들은 종종 전화를 인 빋거나 혹은 통화 도중 끊어버린다. 간호사들은 늘 빚쟁이처럼 레지던트를 따라다니며 달라붙는다. 그러는 동안 환자에게서 갑자기 혈뇨가 나오거나 인공호흡기 서킷이 분리되거나 모니터를 붙인 잭이 헐거워져 알람이 울린다. 만약 레지던트에게 재차 전화하는 걸 잊은 채 근무가 끝나면 ‘근접오류 보고서’를 써야 한다. 일종의 시말서다.
많은 간호사의 일상은 꼬인 실타래 같다. 모든 것이 갑자기 엉킨다. 수많은 펌프를 꽂을 전원이 부족한데 잠깐 미루면 배터리 알람이 울리고, 환자가 기침했는데 전화를 먼저 받으면 인공호흡기 서킷이 가래로 더러워지고, 환자가 잠들도록 투여하는 약의 농도가 모자라 투약을 먼저 하면 환자가 몸부림치기 시작해 투약 라인이 빠져 줄줄 샌다. 투석기에 연결할 투석액에 모자란 전해질을 섞으려고 혈액검사 결과를 기다리면 그사이 다른 일들이 닥쳐 처리한 후 급하게 달려와 전해질을 섞고, 그 전해질을 섞는 동안 다른 환자를 재우는 약이 다 닳았다는 알람이 울려댄다.
환자의 목숨을 돌보는 간호사들은 너무 많은 일을 하고, 급한 마음 때문에 실수를 연발한다. 인계를 하고 나면 정확하지 못한 일 처리 때문에 선배 간호사들의 화가 기다리고 있다. 엄청난 일의 압도감은 완벽하지 못한 수행으로 나타나고, 제 실수를 매일 거울처럼 들여다보는 이들은 자기비하에 능한 사람이 된다. ‘그래, 나는 답 없는 인간이지. 아무것도 아닌 놈이지. 원래 나란 존재는 엉망이야.’ 그러다 컴컴한 거리를 헤매면서 자기 뺨을 때린다.
짓이기는 시스템, 강요당한 슬픔
위 내용은 신규 간호사 시절 저자가 매일같이 겪은 일상이다. 그는 20대의 자신이 “노인처럼 늙어가면서 가끔 머릿속에 죽음을 떠올렸다”고 썼다. 이 시절은 모두 지나갔지만, 지금 그때의 자신처럼 똑같은 일상을 마주하고 있을 후배들을 위해 기억을 헤집고, 병원 시스템을 파헤치며, 서로에게 위해를 가하고 괴롭히는 근본 원인들을 짚는다. 그 시절 차지 간호사로부터의 괴롭힘은 여러 양상으로 펼쳐졌다. 저자가 결막염에 걸리자 꾀병 부리지 말라 했고, 어느 날엔 리넨 장으로 끌고 가 ‘너를 이제 없는 사람 취급하겠다’고 협박했다. ‘여기 네 편 아무도 없어. 다 너 싫어해!’ 어떤 선배는 손바닥으로 등을 때렸다. 또 목덜미를 끌고 다니며 환자들 앞에서 망신을 줬다. 이건 간호사들 사이에서 흔히 ‘태움 문화’라 불리는 폭력 행위다(하지만 저자는 이 용어에 반대한다).
저자는 2017년을 잊지 못한다. 자신이 한계가 많은 사람이란 건 알았지만, 그해 한 선배 간호사는 견딜 수 없을 만큼 가혹했다(물론 다른 많은 선배는 너그럽고 좋은 사람들이었다). 당시 저자는 격무에 시달려 우울증을 깊이 앓던 중이었고, 수면장애를 겪었다. 하지만 강바닥 같은 현실에서 있는 힘을 다해 고개를 수면 밖으로 내밀면 선배의 발이 자신을 밟아 물속으로 밀어넣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 시절 이른바 ‘태움’으로 자기 삶을 끝낸 박선욱 간호사의 부고를 접하면서 저자는 내가 바로 그였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의사와 간호사의 수직 구조에서 발생하는 짓이기는 슬픔도 이 책에서 자세히 드러난다. 간호사들 업무 중 상당수는 의사의 결정이 있어야만 이뤄지는데, 레지던트들은 저들대로 바빠 종종 전화를 받지 않거나 문자에 답장을 하지 않았다. 의사와 간호사 사이에서 이렇게 소통 부재로 발생하는 문제는 간호사들의 책임으로 돌아와 그들은 근접오류 보고서를 쓰곤 한다. 나아가 너무나 뻔하게 이뤄지는 의사의 성희롱이나 성추행을 이들 간호사는 두려움에 벌벌 떨며 털어놓는다. 성희롱한 의사지만 그의 도움 없이는 업무 수행이 불가능할 때가 많았다. 그게 두려워 그들은 종종 입을 다물었다.
이것은 모두 시스템에서 비롯되는 폭력이다. 간호사가 선 자리에서 저 위를 올려다봐야만 원인이 파악된다. 저자는 간호사 충원을 계속 미루며 자본주의 논리에 따라서만 운영되는 병원 시스템의 문제점을 통계와 자료를 세세히 들어가며 지적한다.
우리도 환자를 살리고 싶다
한 환자가 있었다. 그는 신장암 수술을 받고 중환자실로 옮겨져 의식을 회복하던 중 혈압이 조금 떨어졌다. 담당 간호사가 수술 부위를 확인하려고 복대를 열었다가 다시 매는 순간 환자는 아프고 짜증났던 것 같다. 그래서 갑자기 간호사 얼굴을 후려쳤다. 또 다른 환자가 있었다. 그는 복강 내 출혈로 출혈 부위 혈관을 막고 왔었다. 시스가 들어간 오른쪽 대퇴동맥을 구부려서는 안 되었기에 간호사는 움직이지 말 것을 당부했지만 그는 계속 움직였다. 안전을 위해 간호사가 오른 다리를 편 상태로 억제대를 적용하자 환자는 화가 났던지 휴지에 침을 뱉어 바닥에 던졌다.
간호사가 쓰레기통을 침대 위로 올려주자 쳐서 바닥에 떨어뜨리더니 말했다. “야, 너는 허드렛일 좀 해.” 이런 환자도 있었다. 그는 찬물을 떠달라고 했는데 간호사가 준 물이 충분히 차갑지 않았던 모양이다. 물컵을 던지며 그가 말했다. “다시 떠와. 너 이게 찬물이야? 내가 병신인 줄 알아?” 저자는 말한다. “우리 일은 인간의 가장 소소한 욕구와 지저분한 일까지 돌봐주는 것이다. 그게 전인 간호다. 그렇지만 우리가 괄시받고 화풀이 대상까지 되어야 할까?” 환자의 자세를 바꿔주고 옮기느라 허리와 손목이 망가지지만 간호사들은 사실 늘 환자에게 공감하고픈 마음이 있다. 하지만 쉽지 않다. 어느 날 한 후배는 괴로워하며 말했다. “제가 환자를 물건처럼 보게 되는 것 같아요. 그냥 너무 힘들고 자꾸 퉁명스러워져요.”
저자는 “병원은 간호사들이 기계가 되길 바라는 것 같지만 우리는 섬세한 감정을 가진 인간이다”라고 말한다. 그래서 병원에 요구하며 목소리를 높일 수밖에 없다. 간호사들은 덜 바쁘고 덜 힘들고 덜 비참하면 환자에게 더 친절하고 더 관대할 수 있다고 말한다. 그러려면 간호사를 더 충원해야 한다. 그런 법을 제정할 기회가 수십 번 있었다. 하지만 국가와 병원은 그걸 놓쳤고 그래서 간호사들은 자신이 반은 인간이고 반은 환자에게 공감 못하는 짐승이라 느낀다.
2020년 봄, 1차 팬데믹 때 저자는 대구의 중환자실에 파견돼 코로나19 환자들을 돌봤다. 그녀가 그곳에서 맡은 환자들은 모두 예외 없이 죽었다. 이에 그녀는 더 목소리 높여 말한다. ‘국가는 공공 병상을 확대해야 한다.’ 감염병이나 외상같이 돈벌이는 안 되지만 필수적인 의료 영역은 국가가 운영해야 한다는 것이다.
환자의 가장 가까이서 그들의 상태를 수시로 간파하며 기민하게 움직여야 할 간호사들은 매 순간 완전히 소진된 상태로 병원을 떠난다. 2020년, 두려움 속에서 희생해온 간호사들은 안전과 인력 충원을 호소했지만 그들의 목소리는 지워졌다. 지금도 OECD 평균의 3분의 1밖에 안 되는 간호사들이 OECD 평균의 5배나 되는 병상을 감당한다. 그들은 늘 착취당하고, 바쁘고, 지쳤다. 환자와 간호사의 비율은 환자의 사망률과 매우 뚜렷한 상관관계를 보인다. 간호사 한 명이 담당하는 환자가 한 명 증가할 때마다 환자의 사망률은 7퍼센트 증가한다. 담당 환자가 한 명 더 늘면 14퍼센트, 거기서 한 명 더 늘면 31퍼센트. 이 숫자는 끝도 없이 늘어난다. 이 퍼센티지는 그 자체로 누군가의 목숨이다.
대부분의 사람은 간호사가 하는 일이 정확히 뭔지 잘 모른다. 저자는 주사 놓고 똥 치우고 환자 손발 닦는 일 말고 자신들이 무슨 일을 하는지 이 책에 자세히 풀어놓았다. 그들은 속도가 관건인 환자에 대한 대응을 일선에서 하고 있다. 중환자를 보는 데 있어 모든 것은 속도와 시기에 대한 문제고, 그래서 간호사들이 치료의 질을 결정한다. 트레이닝된 간호사들의 능숙함과 판단력, 빠른 실행력에 환자들의 목숨이 달려 있을 때가 많다. 하지만 이 책에서 지적하듯 간호사들의 프리셉터-프리셉티 교육제도는 고질적인 문제로 남아 있고, 여러 제도적 난관이 그들을 그만두게 만든다. 우리는 누구나 환자가 될 수 있다. 병원과 국가와 사회가 간호사의 입을 틀어막은 값을 지금도 병원으로 실려오는 우리 모두가 치를 가능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