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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 19: 12 가이사의 충신 - 요 19: 15 십자가에 못 박게
요 19: 12 가이사의 충신 - 이러하므로 빌라도가 예수를 놓으려고 힘썼으나 유대인들이 소리 질러 이르되, 이 사람을 놓으면 가이사의 충신이 아니니이다. 무릇 자기를 왕이라 하는 자는 가이사를 반역하는 것이니이다. ( 이러하므로 빌라도가 예수를 놓으려고 힘썼으나 유대인들이 소리 질러 가로되, 이 사람을 놓으면 가이사의 충신이 아니니이다. 무릇 자기를 왕이라. 하는 자는 가이사를 반역하는 것이니이다. )
빌라도는 예수께서 하신 말씀을 듣고 자신은 그 죄를 뒤집어쓰지 않으려는 노력이 계속되었다.
1] 이러하므로 빌라도가 예수를 놓으려고 힘썼으나
예수님의 말씀을 들은 빌라도는, 공포심에 끌려서 그를 넣으려고 다시 애쓴 것이다. 빌라도는 예수님을 두려워하는 듯한 태도를 가진 것이다.
힘썼으나(ejzhvtei 에제테이)는 미완료 과거 능동태로 빌라도의 노력이 계속되고 있다는 것을 말해준다.
빌라도는 예수를 놓으려고 힘썼다. 그는 예수의 무죄함을 알았다. 그는 심지어 예수께 대한 어떤 두려움을 가졌다.
2] 유대인들이 소리 질러 이르되,
소리 질러(kravzw 크라조)는 "외치다, 소리 지르다"로 크게 고함을 지르면서 일종의 빌로도에 대한 시위로 압력을 가하고 있다.
3] 이 사람을 놓으면 가이사의 충신이 아니니이다. 무릇 자기를 왕이라 하는 자는 가이사를 반역하는 것이니이다.
그러나 유대 지도자들은 그가 예수를 놓아준다면 가이사에게 불충성하는 것이라고 압박하였다. 그것은 참으로 교묘한 압박이었다. 악한 자들은 악한 일에 놀라운 지혜를 발휘했고 빌라도로 하여금 잘못된 판결을 하도록 몰아대었다.
그들의 악한 계획은 승리하고 있었다. 빌라도는 이성과 양심의 판단을 따를 것인가, 아니면 총독직의 안정을 구할 것인가 하는 갈림길에서 잘못된 길로 이끌리고 있었다. 이 사람을 놓으면 가이사의 충신이 아니니이다라고 말함으로 최대의 협박을 당하고 있다.
유대인들이 얼마나 예수를 죽이려고 혈안이 되었는지 하나님의 뜻은 잃어버리고 '가이사의 충신'이 아니라고 협박한다. 하나님을 믿는 백성으로서 이 얼마나 모순인가?
요 19: 13 끌고 나가서 - 빌라도가 이 말을 듣고 예수를 끌고 나가서 돌을 깐 뜰(히브리말로 가바다)에 있는 재판석에 앉아 있더라. ( 빌라도가 이 말을 듣고 예수를 끌고 나와서 박석(히브리말로 가바다)이란 곳에서 재판석에 앉았더라. )
빌라도는 유대인들의 교묘한 압박의 말을 듣고 예수를 끌고 나와서 재판석에 앉았다. 그는 자신의 총독직의 안정을 포기하지 않으면 예수를 놓을 수 없었고 또 그렇다고 이 재판을 회피할 수도 없었다. 그는 유대인들의 말을 듣고 예수를 끌고 나와서 재판석에 앉았다.
1] 빌라도가 이 말을 듣고 예수를 끌고 나가서 돌을 깐
"돌을 깐"은 "돌로 깔은 곳"이란 의미를 가진다. 그 때 유대인들이 쓰던 말로는 가바다(* )라고 하는데 언덕을 의미한다. 이곳은 아마도 돌을 깔아 놓은 높은 장소를 가리킨 듯하다.
2] 뜰(히브리말로 가바다)에 있는 재판석에 앉아 있더라.
뜰 (히브리말로 가바다) legovmenon(리도스토로톤)은 "넓적한 돌이 깔린 곳" 즉 재판석을 말한다. 이 단어는 구약성경 대하 7: 3. 겔 4: 1. 겔 40: 17-18. 겔 42: 3에 나온다.
* 대하 7: 3 – 이스라엘 모든 자손은 불이 내리는 것과 여호와의 영광이 성전 위에 있는 것을 보고, 돌을 깐 땅에 엎드려 경배하며 여호와께 감사하여 이르되, 선하시도다. 그의 인자하심이 영원하도다. 하니라.
* 겔 4: 1 - 너 인자야 토판을 가져다가 그것을 네 앞에 놓고 한 성읍 곧 예루살렘을 그 위에 그리고
* 겔 40: 17-18 – 17 그가 나를 데리고 바깥뜰에 들어가니 뜰 삼면에 박석 깔린 땅이 있고, 그 박석 깔린 땅 위에 여러 방이 있는데 모두 서른이며 18 그 박석 깔린 땅의 위치는 각 문간의 좌우편인데 그 너비가 문간 길이와 같으니 이는 아래 박석 땅이며
* 겔 42: 3 - 그 방 삼층에 회랑들이 있는데 한 방의 회랑은 스무 척 되는 안뜰과 마주 대하였고 다른 한 방의 회랑은 바깥뜰 박석 깔린 곳과 마주 대하였으며
앉아 있더라(ejkavqisen 에카디센)은 자동사와 타동사로도 사용되어 자동사로 볼 때는 빌라도가 재판석에 앉은 것이 되지만 타동사로 보면 예수께서 재판을 받기 위해 앉으신 것이 된다.
빌라도가 재판을 하기 위해 자리에 앉았다면 그 다음에 재판한 것이 없다는 점에서 타동사로 보는 견해와 다른 곳에서(마 25: 31. 행 12: 21. 행 25: 6) 이 단어는 자동사로 사용되었기 때문에 이곳에서만 타동사로 사용되었다고 보기 어렵다는 주장이 맞서고 있다.
* 마 25: 31 - 인자가 자기 영광으로 모든 천사와 함께 올 때에 자기 영광의 보좌에 앉으리니
* 행 12: 21 - 헤롯이 날을 택하여 왕복을 입고 단상에 앉아 백성에게 연설하니
* 행 25: 6 - 베스도가 그들 가운데서 팔 일 혹은 십 일을 지낸 후 가이사랴로 내려가서 이튿날 재판 자리에 앉고 바울을 데려오라. 명하니
그러나 또 다른 주장은 요한이 이중적인 의미를 사용하는 습관이 있어(요 3: 3) 실제로 제판석에 앉은 자는 빌라도이었지만 인간 배후에 있는 심판자이신(요 5: 22) 예수께서 그곳에 왕으로 앉아 계신 것이라는 것이다.
* 요 3: 3 -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
* 요 5: 22 - 아버지께서 아무도 심판하지 아니하시고 심판을 다 아들에게 맡기셨으니
요 19: 14 유월절의 준비일 - 이날은 유월절의 준비일이요 때는 제 육시라. 빌라도가 유대인들에게 이르되, 보라. 너희 왕이로다. ( 이 날은 유월절의 예비일이요 때는 제 육시라. 빌라도가 유대인들에게 이르되, 보라. 너희 왕이로다. )
요한은 이 역사적인 시점에서 그때를 다시 알려주고 있다. 그러나 이날과 시간이 공관복음과 차이를 보인다. 공관복음은 마지막 만찬이 유월절 식사였다고 전한다.
1] 이날은 유월절의 준비일이요 때는 제 육시라.
‘유월절의 예비일’이라는 말은 유월절 주간의 안식일 예비일 즉 금요일이라는 뜻일 것이다.‘ 제6시경’은 오전 6시경을 가리킨다고 본다.
(1) 유월절
여기 이른바 "유월절의 예비일"이란 말은, 얼른 보면 모순된 듯하다. 예수님께서 잡히시기 전날 밤에 벌써 유월절 만찬을 잡수시지 않았는가? 이것은 문제 될 듯하다. 이 "유월절의 예비일"이란 말에 대하여 두 가지 해석이 있다.
Ⓐ "참 유월절"의 준비일
곧, "참 유월절" 양이신 그리스도께서 죽으심이 되는 날이라는 뜻이다. (Grosheide)
Ⓑ 유월절 주간의 안식일의 예비일.
곧 금요일을 의미한 것이라고 한다. (Lenski). 이 둘째 해석이 옳다.
* 마 27: 62 - 그 이튿날은 준비일 다음 날이라.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이 함께 빌라도에게 모여 이르되
* 막 15: 42 – 이르되, 예수여 당신의 나라에 임하실 때에 나를 기억하소서. 하니
* 눅 23: 54 - 이 날은 준비일이요 안식일이 거의 되었더라.
유대인들은 유월절 안식일이 겹치기 전에 서둘러 예수를 처형하려 한 것과(요 19: 31) 유월절을 시작으로 무교절로 이어지기 때문에 이 기간에는 처형이 없었다는 점(마 26: 5)을 고려할 때 최후의 만찬은 유월절 식사였다고 보기 어렵다는 것이다.
* 요 19: 31 - 이날은 준비일이라. 유대인들은 그 안식일이 큰 날이므로 그 안식일에 시체들을 십자가에 두지 아니하려 하여 빌라도에게 그들의 다리를 꺾어 시체를 치워 달라. 하니
* 마 26: 5 - 말하기를 민란이 날까 하노니 명절에는 하지 말자. 하더라.
(학자들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두 가지 주장을 하고 있다. 공관 복음서와 요한복음이 사용한 달력이 다르다는 것이다. 공관복음은 예수와 제자들이 사용한 개인 달력이었고 요한은 예루살렘의 공식 달력을 사용했다는 것이다. 이 문제를 이해하려면 현재 우리가 사용하는 달력이 정착되기 전이라는 사실이다. 공관 복음서의 저자들이 하루 전에 유월절을 먹었지만, 의미상 유월절 식사로 보았다는 것이다.)
(2) 때는 제 육시라.
이것은, 예수님이 빌라도에게 재판의 판결을 받으신 시각이다. 이른 아침부터 재판이 열렸다. 그 재판은 공정한 심리와 올바른 판단과는 거리가 먼 재판이었다.
거기에는 군중의 부르짖음만 있었다. 유대 지도자들은 군중을 선동하는 지혜가 있었다.
* 마 27: 20 -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이 무리를 권하여 바라바를 달라 하게 하고 예수를 죽이자 하게 하였더니.
막 15: 25에는, 예수님의 십자가에 못 박히신 시간을 "제 삼시"라고 하였다.
여기서 요한은 예수님의 재판 받으신 시간을 "제 육시"라고 하였다. 여기서 이 두 사건에 있어서 시간상 선후가 맞지 않는 듯하다. 그러나 이 문제는 다음과 같이 해결된다. 곧 요한은 로마의 시간 계산법대로 말한 것이다.
로마의 시간 계산법(오늘날 우리의 시간 계산법과 같음)대로 오전 6시에 예수님이 빌라도에게 판결받으셨다.
* 요 19: 14-16 – 14 이 날은 유월절의 준비일이요, 때는 제육시라. 빌라도가 유대인들에게 이르되, 보라. 너희 왕이로다. 15 그들이 소리 지르되, 없이 하소서. 없이 하소서. 그를 십자가에 못 박게 하소서. 빌라도가 이르되, 내가 너희 왕을 십자가에 못 박으랴? 대제사장들이 대답하되, 가이사 외에는 우리에게 왕이 없나이다. 하니 16 이에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도록 그들에게 넘겨 주니라.
* 마 27: 1-2 – 1 새벽에 모든 대제사장과 백성의 장로들이 예수를 죽이려고 함께 의논하고 2 결박하여 끌고 가서 총독 빌라도에게 넘겨 주니라.
골고다까지 끌려가시는 데는 상당한 시간이 걸렸을 것이다.
* 눅 23: 26-31 – 26 그들이 예수를 끌고 갈 때에 시몬이라는 구레네 사람이 시골에서 오는 것을 붙들어 그에게 십자가를 지워 예수를 따르게 하더라. 27 또 백성과 및 그를 위하여 가슴을 치며 슬피 우는 여자의 큰 무리가 따라오는지라. 28 예수께서 돌이켜 그들을 향하여 이르시되, 예루살렘의 딸들아. 나를 위하여 울지 말고 너희와 너희 자녀를 위하여 울라. 29 보라. 날이 이르면 사람이 말하기를 잉태하지 못하는 이와 해산하지 못한 배와 먹이지 못한 젖이 복이 있다. 하리라. 30 그 때에 사람이 산들을 대하여 우리 위에 무너지라. 하며 작은 산들을 대하여 우리를 덮으라. 하리라. 31 푸른 나무에도 이같이 하거든 마른 나무에는 어떻게 되리요. 하시니라.
그 후에 그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시간은 오전 9시였다. 오전 9시는 유대의 시간 계산법대로 "제 삼시"이다. 막 15: 25에는 십자가에 달리신 것이 '제 삼시'였다.
* 막 15: 25 - 때가 제삼시가 되어 십자가에 못 박으니라.
요한은, 예수님이 빌라도에게서 최후 판결을 받으신 시간을 말하였고, 마가는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히신 시간을 말하였으니, 그 두 기록이 시간 문제에 있어서 서로 다를 수밖에 없다.
(이 문제에 대한 학자들의 의견은 마가의 제3시는 예수를 처형시킨 시간이 아니라 막 15: 24의 병사들이 제비뽑고 십자가형 이전에 태형과 조롱의 시간이 있어 상당히 시간이 흘렀을 것이다. 요한은 로마의 시간법 즉 밤 0시에 하루가 시작되는 시간법을 따르고 마가는 일출을 시작을 구분으로보는 팔레스타인 시간법을 따라 기록했다고 보는 것이다. 이렇게 보면 본서가 가리키는 시간은 오전 6시가 되고 마가의 것은 9시가 된다. 약간의 시간 차가 줄기는 했지만 아주 일치되지는 않는다.)
결국 이러한 시간 차이의 문제는 현재와 같이 시간이 표준화되어있지 않은 데서 오는 것이다. 또한 그 시간을 보는 것도 하늘의 해만 쳐다보고 3시인지 6시인지 사람마다 차이를 보일 수 있다는 것을 이해해야 할 것이다.
2] 빌라도가 유대인들에게 이르되, 보라. 너희 왕이로다.
빌라도는 예수를 놓아주려고 애쓴 것에 비해서 유대인들이 자신에 야유와 소리를 지르며 협박하는 것에 대해서 예수님의 현재 몰골이 너희들의 왕이라고 조롱한다.
요 19: 15 십자가에 못 박게 - 그들이 소리 지르되, 없이 하소서. 없이 하소서. 그를 십자가에 못 박게 하소서. 빌라도가 이르되, 내가 너희 왕을 십자가에 못 박으랴? 대제사장들이 대답하되, 가이사 외에는 우리에게 왕이 없나이다. 하니 ( 저희가 소리 지르되, 없이 하소서. 없이 하소서. 저를 십자가에 못 박게 하소서. 빌라도가 가로되, 내가 너희 왕을 십자가에 못 박으랴? 대제사장들이 대답하되, 가이사 외에는 우리에게 왕이 없나이다. 하니 )
사람들은 소리를 질렀다. “없이 하소서, 없이 하소서, 저를 십자가에 못박게 하소서.” 빌라도가 “내가 너희 왕을 십자가에 못박으랴”라고 말했다.
대제사장들은 대답했다. “가이사 외에는 우리에게 왕이 없나이다.” 그들은 하나님의 왕권, 메시아의 왕권을 포기하였다.
1] 그들이 소리 지르되, 없이 하소서. 없이 하소서. 그를 십자가에 못 박게 하소서.
그들이란 말은 일반 유대인들, 곧 군중을 가리킨 것이다(12절). 군중은 저렇게 대제사장들이나 기타 종교 지도자들의 선전에 넘어가 그들의 수족 노릇을 한다.
군중들이 예수님의 선한 일들을 본 적도 있었으련만, 그들은 그것을 아는 듯, 모르는 듯 저렇게 부화 뇌동하여 대제사장들의 시키는 대로 악하게 움직인다.
못 박게 하소서(&Aron a\ron, stauvrwson 아론 아론 스타우로온) a\ron은 ai[rw(아이로)의 어근으로 "들어 올리다, 달리다"의 뜻으로 문자적으로는 [매달아라 매달아라 십자가에]이다. 그런데 이 말은 예수께서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 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에서 예언하신 것이다.
* 요 3: 14 -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 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
* 요 12: 34 - 이에 무리가 대답하되, 우리는 율법에서 그리스도가 영원히 계신다. 함을 들었거늘 너는 어찌하여 인자가 들려야 하리라 하느냐? 이 인자는 누구냐?
2] 빌라도가 이르되, 내가 너희 왕을 십자가에 못 박으랴?
빌라도는 유대인들의 굴욕감에 자극을 주고 있다.
유대인의 왕을 로마 정부에 의해서 죽인다면 수치가 아니냐는 의미로 한 말이다.
3] 대제사장들이 대답하되, 가이사 외에는 우리에게 왕이 없나이다. 하니
"가이사 외에는 우리에게 왕이 없나이다." 대제사장들은 간교하게도 이렇게 마음에 없는 말을 한다. 그들이 로마 황제 가이사를 사랑하여 저런 말을 한 것은 아니다. 그들은 가이사를 미워한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예수님을 가장 미워하는 것만큼, 다른 미운 사람들은 모두 다 그들에게 한편처럼 느껴진 것이다.
이와 같은 일은 흔히 도의(道義)나 양심이 없는 세계에서 되어지는 것이다. 그런 사람들은 자기 개인의 이해 관계만 생각하고 행동한다. 그들에게는 진리나 도덕의 일정한 표준이 없다.
이 말이 빌라도가 아닌 대제사장들이 했다는 것은 그들이 이미 하나님을 떠나있다는 것을 말한다. 유대인의 왕은 역사적으로 상징적으로 오직 여호와 하나님만이 유일하며 영원한 왕으로 생각되어 왔다.
* 삿 8: 23 - 기드온이 그들에게 이르되, 내가 너희를 다스리지 아니하겠고 나의 아들도 너희를 다스리지 아니할 것이요, 여호와께서 너희를 다스리시리라. 하니라.
대제사장이 스스로 '가이사 외에는 왕이 없다'라고 한 것은 충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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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설교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오늘도 새롭고 좋은 일만 가득 하시길 소망 합니다.
밝은 미소와 기쁨이 가득 담은 행복에 문을 살포시 열어 봅니다.
향기에 예쁜 하루 행복하게 보내세요.💖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