ㅡ염라대왕ㅡ옛날 아주 가난한 선비가 있었다.과거를 보러 가기 위해서 열심히 공부하다가 먹을 것이 없어서 사흘을 굶어 혼절한 끝에 깨어나지 못하였다.어찌어찌 정신을 차리고 보니 저승사자에 이끌려서 넓은 사막을 걸어 가고 있었다.한참 끌려 가다가 보니 난데없이 어떤 노파가 나타나서 막걸리 한잔을 마시라고 주었다.선비는 "내가 과거에 합격하지 않고는 절대로 술을 마시지 않겠다고 맹세하였거늘 내가 이제 술을 마시겠는가"하고 술을 물리쳤다.사막을 가로지르는 불이 타는 강을 간신히 건넜는데 또 다시 그 노파가 나타나서 막걸리 한잔 마시라고권하는데 결심이 굳은 선비는 같은 이유로 이를 거절하였다.온갓 악귀가 설치는 사막을 걷느라 땀을 흘리고 갈증이 극에 달하였는데, 아까 그 노파가 또 나타나서 "애고, 가엾어라. 목이나 축이시유"하고 막걸리 한 잔을 코 밑에 들이 댔다.그래도 그 선비는 "내 비록 죽었으나 사내 대장부가 초심을 버리랴"하고 그 술을 마시지 않았다.선비는 아무것도 모르고 오로지 굳은 의지로 물린 것이었는데, 사실은 그 노파의 술은 이승의 기억을 모두지우는 '망각의 술'이었다.이 술의 유혹을 세번씩이나 물린 덕에 선비는 자기 전생을 모두 기억할 수 있게 되었다. 천신만고 끝에 사막을 지나 드디어 염라대왕 앞에 서게 된다.염라대왕은 "너는 제 공부 한답시고 가족을 돌보지 않은 죄가 크다. 다음 생은 축생(畜生)이니라"고 선포하니, 무시무시한 턱수염을 휘날리는 수문장이 그 선비를 대문 밖으로 걷어찼다.정신이 들고 보니 자기가 소(牛)로 태어나 있었다.선비는 가족을 잘 돌보려고 그렇게 열심히 공부한 생각을 하니 너무 억울해서 빨리 다시 인간으로태어나려고 풀 한포기 뜯어 먹지 않고 굶어서 죽었다. 다시, 염라대왕 앞에 서니 "자기 목숨이라고 자기 마음대로 하다니! 괘씸한 자로다"라고 꾸짖으며 이번에는 염라대왕이 직접 선비를 발로 걷어 차 내쫓았다.선비가 정신 차리고 보니 자기 꼴이 자기 집 마당에 뛰어 노는 강아지였다.이럴 수는 없다고 생각한 선비는 머리를 짜 냈다.이번에는 내가 죽는 것이 아니라 남이 나를 죽이도록 해서 염라대왕의 노여움에서 벗어나야겠다고생각하였다.하루는 개장수가 왔는데, 기회는 이때다 하며 개장수에게 달려가서 그의 발뒤꿈치를 힘껏 깨물었다.화가 머리 끝까지 뻗친 개장수가 그 자리에서 개를 때려 죽였다. 선비는 다시 염라대왕 앞에 가서 부디 사람으로 태어나게 해 달라고 애걸을 하였는데 저승사자가 자초지종을다 일러 바쳐서 염라대왕이 화가 치밀어서 "저 놈, 감히 내 질서를 어기다니! 내 처라!"라고 천둥치듯 소리 지르니, 시종이 그 선비를 걷어찼다.한참 까무라쳐 있다가 정신 차리고 주변을 살피니 구렁이 한 마리가 자기를 아주 대견한 듯 사랑스런 눈으로보고 있었다.어미 구렁이를 따라다니면서도 선비는 과거 급제 생각에 조바심을 버릴 수 없었다.어느 날 신작로 길에 마차가 지나가는 것을 본 선비 구렁이가 재빨리 기어나가 그 바퀴에 깔려 죽는다. 다시 그 선비가 온 것을 알고 염라대왕이 기가 막혀 "엤따, 모르겠다. 니 맘대로 살아라"라고 염라대왕이 직접 걷어 찼는데, 이게 왠 일인가 사람으로 태어난 것이 아닌가. 하도 기뻐서 그 선비는태를 가르기도 전에 두 손을 흔들며 "얼씨구 좋아. 절시구 좋아!"라고 노래하며 춤을 추었다.이에 기겁을 하고 놀란 부모가 집안에 귀신이 태어났다며 한 밤 중에 남몰래 깊은 산속에 갖다 버렸고, 선비는 산 짐승들의 밥이 되어 형체조차 없어지고 말았다. 청산에 은둔하며 도를 닦으시는 신선 같은 노 스님이 이 과정을 지켜 보면서 그 선비를 가엾이 여겼다.어느 날, 노스님은 비바람 속을 떠 도는 그 선비의 영혼을 자기 토굴로 불러 들여 다짐한다.어느 마을에 마음씨는 착하나 자식이 없어 눈물로 기도하는 내외에게 너를 태어나게 해 줄 터이니 15년 동안입 딱 다물고 혼자 열심히 공부하여 과거에 급제하도록 하라 하고, 그 부모를 잘 섬기고 그 고을도 잘다스려야 하느니라. 평생 동안 정성을 다하여 불도를 닦고 불법을 널리 알리도록 애쓰면 너의 소원이이루어지느니라 라고 단단히 일렀다. 선비는 잠깐 꿈을 꾼 듯 깨어보니 아주 부잣집 외아들로 태어나고 있었다.부모는 우리들의 기도를 부처님께서 받아 주시었다고 감사하며 마을 사람들을 위하여 앞산 양지 바른 터에큰 절을 지었다. 그런데, 기쁨도 잠시, 그 내외는 다시 시름에 잠긴다.그토록 애 타게 기다리다 얻은 아들이 일곱살이 되어도 말을 못 배우는 것이었다.더 없이 총명하여 말귀는 다 알아 듣는데 저 말 못하는 자식 불쌍해서 어쩌나 애간장이 다 타들어 갔다.이웃 사람들은 벙어리 주제에 책만 끼고 산다고 빈정거리는 소리도 해 댔다.그래도 부모는 애지중지 그 선비를 잘 키우고 있었다.아이가 열 다섯살 되는 해에 옷을 깨끗이 잘 갖추어 입고 부모 앞에 나타나서 큰 절을 올리며 "이제 우리 가문을 위해서 한양에 가서 알성급제를 하고 오겠습니다"라고 아뢴다.부모는 갑자기 말을 청산유수처럼 잘하는 아들을 보고 기절할 듯 놀랐으나 속이 깊어 그의 말을 믿고뒷바라지를 열심히 하였다.
(불교 윤회사상을 뒷받침하는 감로탱화)선비가 과거에 급제하고 집으로 돌아 가는 길에 옛날 자기가 살던 집을 찾아갔다.늙어서 백발이 된 아내는 장독대 위에 정화수 한 사발 떠 놓고 가난 때문에 굶어서 죽은 남편의 영혼을위로하고 극락왕생을 위해서 애절하게 기도하고 있었다.이승과 저승을 넘나들다가 노스님을 만나 금생을 잘 살게 된 것이 아내의 기도 덕택이었음 깨닫는다.선비는 그 노스님께 감사하기 위해 찾아 갔으나 토굴은 간데 없고, 그 앞에 서 있던 소나무 한 그루만 바위끝에 청청하고, 그 소나무 가지에 노스님의 지팡이가 걸려 있었다.그제야 선비는 그 노스님이 부처님의 현신이었음을 깨닫고 황급히 엎드려 합장하였다. 선비는 고을 원이 되어 훌륭한 목민관이 되었다.선정을 베푸는 한편으로 새벽마다 절에 가서 내세에는 저 아내의 지아비로 태어나게 해 달라고 지성으로기도하며 불법을 널리 보급하는데 힘썼다 한다. * * *.
출처: 6070 낭만길걷기 원문보기 글쓴이: 미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