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소 시국 언론에 활발하고 감명 깊게 읽엇던
김삼웅선생이 이희승씨를 이리도 구구절절이 칭송 했다니
머릿 속이 혼란스러워집니다.
몇년전 "말모이" 라는 영화를 개봉 했을때
문재인 전대통령과 당시 여당 주요 인사들 민주당 의원들이
개봉 영화를 관람하고 각종 뉴스메이커에서는 대대적으로 보도 하는 것을 본 나는
참으로 이 나라는 역사를 어떻게 재단하는 것인가 ㅡ 한탄 하면서
언어는 인간이 지닌 유일한 소통이며 역사라는 사실을
여,야할 것 없이 망각하며
친일 국문학자들을 옹호하는 모양새를 보면서 개탄을 금치 안았고
과연ㅡ 진보주의자들에 역사관은 무엇일까
근대사만 바로 잡으면 역사가 바로 잡힐까
아니면 친일역사관에 너무도 세뇌된 나머지 표면적인 것만 저지하면 되는 양 행동하는 것일까
라는 의구심이 들면서
공부하지 안는 여야 의원들을 이자리를 빌어서 질타하지 안을 수가 없다,
[ 말모이는 친일 국문학자들이 " 훈민정음"을 지키는 것이 아니라
일제와 타협하여 훈민정음을 말 그대로 박살 낸 것이다 ]
그에 앞장 선 사람들이 이희승, 주시경 등등
해방후 서울에 위치한 각대학 국문학 교수등으로 재임하고 그 계보가 지금도 이어지고 있으며
그리하여 우리에 말이 절름발이 언어가 되어 , 아직도 해석하지 못하는 단어들이 많다는 사실이다.
(그 단어들이 산스끄리뜨어와 빨리어 속에 고스란히 남아 잇다는 것은 차지하고라도)
그리고 그들은 해방후 망가진 훈민정음을 회복 시킨 것이 아니라
아예 '한글" 이라고 개명하여 공표하였고
9월 9일이 "훈민정음"에 날이 아니라 한글날로 둔갑 시킨 것이며
한글 표준어라는 미명하에 우리말에 근본을 없애는 작업으로 인하여
지금 사용하는 언어가 되엇다.
(사전마다 조금씩 다르지만 주시경은 1907 년도부터 "한글" 이라는 칭호를 사용했다고 한다,
그렇다고 친일 행위가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마치 조선일보가 단군역사를 연구했다고 친일신문이 아니라면 뉴라이트들에 말처럼 ,
이 땅에는 친일파가 없다는 논리가 성립된다).)
친일국문학 계보를 이은 학자는 말한다
ㅡ 언어란 시간에 따라 변하기 마련이다 ㅡ 라고
그 말을 어느정도 인정한다고 해도
훈민정음과 우리 언어 발음은 수많은 세월이 흘러 자연스럽게 변형 된 것이 아니라
강제로 물리적으로 급격하게 변화 시켯다는 것이며 ,
조선에 정신과 문화를 없애기 위한 작업에 일환이라는 것을 간과한 것이고
우리 언어에 뿌리를 훼손하는 사건이라 할수 있으며,어원을 찿을 수 없게 만든 것이다.
(라틴어나 영어에 뿌리가 우리 언어라면 ㅡ 미친놈 취급하듯이ㅡ)
이는 요즘 뉴라이트들에 상투적인 역사 왜곡에 발음이나 다름 없다는 것임을
학자 스스로가 자신들에 깊고 깊이 박혀있는 친일사관을 드러낸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혹자들은 훈민정음과 한글이 머가 다르지 ? 한다면
우리 언에에 뿌리를 찿고자하는 유투브와
세계 유일무이한 언어학자 고 강상원 박사님에 유투브를 보라고 권하고 싶다.
딸깍발이에 관한 기억은 약 40 여년전 학창시절 국어 시간에 읽던 인물론에서
게다짝 소리를 딸깍거린다고 해서 딸깍발이 선비 이희승이라는 별명이 붙었다는,
글을 접할 때
제대로 정신이 박힌 독립투쟁가들및 학자는 절대로 게다짝을 신지 안는다는 것을 상기하고 싶다.
훈민정음,
즉 범어는 한국 팔도 사트리임을 입증하는 역사적 사료들은 넘치며
현 네팔, 인도 ,스리랑카및 판찰라스 지역에는
산스끄리뜨어와 빨리어를 모태로 골격이 살아있는 변형된 언어를 사용하고 있다는 사실을
의원및 학자들은 연구를 게을리 하지 말아야할 것이다. ㅡ김삼웅 선생 기고글에 대한 댓글 중에서 ㅡ
삼가 도원 합장 ()
한민족백과사전 ㅡ
<한글맞춤법>은 1933년 공표 이후 부분적 수정을 거쳤으나,
1950년대 후반에 점차 자리를 잡으면서 사문화되거나 사정을 기다리는 사항이 분명해졌다.
그러나 이에 대한 보완이 이루어지지 않아 거의 그대로 사회적으로 수용됨으로써 사전 및 교과서에까지 반영되었다.
그 동안 표준어 사정의 필요성이 제기되어
1979년 문교부에서는 <표준말재사정시안> 및 <한글맞춤법개정시안>·<외래어표기법개정시안> 등을 마련했다가
1981년 학술원으로 이 작업이 이관되었고,
1985년 국어연구소(1990년 국립국어연구원으로 격상됨)가 발족하면서 다시 이 연구소로 이관되어
문교부 국어심의회의 심의를 거쳐 1988년 1월 <표준어규정>과 함께 <한글맞춤법>이
문교부 고시 제88-1호로 관보 제10837호에 고시되었으며, 1989년 3월 1일부터는 이 새로운 맞춤법이 시행되기에 이르렀다.
1908년 국어연구학회가 창립된 이래 여러 시련에도 불구하고 한글연구의 명맥은 꾸준히 이어졌으며,
한글날 제정, 사전편찬, 맞춤법 제정 등 많은 성과들을 일구어냈다.
광복후 '조선어학회'가 활동을 재개하였고 1949년에 '한글학회'로 개칭되면서
한글 표준화 사업등 많은 노력이 있었다. 그 결과 한글은 한국어를 표기하는 국어로서의 위상을 지키게 되었다.
ㅡ 요즘 백과사전 , 특히 위키 사전은 역사 왜곡에 첨병이라 해도 과언이 아님을 아는이 몇이나 될까 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