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의 매년 겨울.
'한라산'에 갔었다.
한 해의 끝과 시작이 공존하는 겨울에 대한민국에서 제일 높은 산인 '한라산'에서 새로운 출발을 다짐했고, 한 해의 돌보심에 깊은 감사기도를 드렸다.
2019년 연말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래서 해마다 봄쯤에 연말 항공권을 미리 예약해 두곤 했었다.
나는 그동안 한국사람들이 대부분 '백록담'에 가보았을 것으로 믿고 있었다.
그런데 작년 8월달에 '부산 5산 종주'를 마치고, 해운대 바닷가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는데 거기에 있던 친구들이 모두 백록담을 보지 못했다고 했다.
사실 적잖은 충격을 받았다.
꽤 산을 좋아하고 잘 타는 마니아들인데도 저들의 입에서 그런 말이 나오다니.
처음에는 농담하는 줄 알았다.
그런데 알고 보니 아니었다.
내가 먼저 초대한 것은 아니었지만 친구들이 모두 나의 겨울일정에 동행하겠다고 했다.
대화 중 순식간에 그리 결정되었다.
의기투합.
단, 조건이 있다고 했다.
무조건 '부부동반'이라고 했다.
그래서 고교친구들 5명, 부부동반으로 10명이 12월 둘째주에 제주공항에서 만났다.
첫날은 '올레길' 트레킹을 하면서 워밍업을 했고 둘째날 본격적으로 '한라산' 산행에 나섰다.
'성판악'에서 '백록담'까지 왕복하는 20K 코스였다.
우리 부부를 빼고 모두 초행길이었기에 전체 가이드 역할을 맡은 나는 체력안배와 속도조절에 신경을 썼다.
매년 겨울에 한라산을 탐방했었지만 눈을 보지 못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다소 생경했고 이채로웠다.
그 나름대로 운치가 있었다.
색다른 겨울풍경에 감탄이 흘렀지만, 친구들에게 환상적인 한라산의 설경을 소개할 수 없어서 내심 안타까움이 컸다.
그러나 자연현상은 존재하는 그대로, 연출되는 그대로를 감사하는 마음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순리일 터였다.
그것이 자연에 대한 예의이기도 했고.
산 중턱쯤에 당도했을 때 갑자기 진눈깨비가 쏟아졌다.
눈앞을 분간할 수 없을만큼 짙은 운무속을 뚫고 전진했기 때문이었다.
사람들은 걱정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이러다 우리 조난당하는 거 아니에요?"
나는 속으로 웃음이 나왔다.
"조금만 더 올라가면 맑은 태양을 다시 만나게 된다"고 얘기했다.
구름이 많이 낀 날 겨울철, 한라산만의 독특한 풍경이자 특성이었으니까.
국내, 국외를 막론하고 산과 들 그리고 강과 호수를 자주 탐방했었다.
자연과 하나가 되어 휴식과 운동을 즐겼다.
완벽한 '물아일체'가 그렇게도 행복할 수가 없었다.
감동과 찬미의 스토리텔링을 내 나름대로는 꽤 많이 엮었다고 자부한다.
나는 타고난 중증 '천석고황' 환자였다.
언제부턴가 주변에서 '가이드'를 부탁하는 요청들이 밀려왔다.
특별한 케이스를 제외하고 거부한 적은 없었다.
사랑하는 이들을 위해 갔던 곳을 여러번 재탐방하기도 했지만 매번 감사했다.
자연은 우리에게 가장 값진 선물이요 최후의 축복이었으니까.
자연과 사람만이 행복의 화수분이라고 믿었고 그런 철학으로 평생을 흔들림 없이 살았으니까.
긴 인생길을 가다보면, 어느 영역에선가 나는 누구의 가이드 역할을 기꺼이 하곤 했다.
앞으로도 할 것이다.
역으로 다른 영역에서는 누군가가 고맙게도 나의 가이드를 자처했다.
"그래, 바로 그거다"
서로 이끌어 주고 뒤에서 밀며 함께 가는 것이 인생일 테니까.
동고동락하는 삶 속에 진정한 사랑, 감사, 감동이 흐르는 법이니까.
왕복 20K 산행을 무사히 마치고 숙소에 들어왔다.
특히 친구 아내들이 힘들었던 모양이었다.
다음 날 공항에서 보니까 대개 다리를 질질 끌고 있었다.
"푸훗"
속으로 웃음이 나왔다.
다시는 산행을 안하겠노라며 농담 반 진담 반으로 환하게 웃으며 작별인사를 건네는 좋은 사람들.
그들과의 또 한번의 소중한 추억이 그렇게도 고마울 수가 없었다.
손을 흔들며 각자의 집으로 향하는 사람들의 행복한 표정들이 살갑고 감사했다.
다음엔 관음사, 어리목, 영실, 돈내코지 코스로 한번씩 더 도전해보자는 친구도 있었다.
서울경인지역 2가족, 경상도 2가족, 대전 1가족이라 비행기 노선이 다 달랐다.
일주일쯤 지났을까?
친구들로부터 다시 연락이 오기 시작했다.
이구동성으로 다음 도전 코스는 어디냐고 물었다.
무엇보다 아내들이 더 열정적이며 또 다른 이벤트를 기다린다고 했다.
"아이고 주여"
난 유구무언이었다.
친구들과 상의하여 봄에 대청호 200K 트레킹에 도전하기로 했다.
이제는 각자 아내들이 자신의 체력관리를 위해 스스로 운동을 하고 있다고 했다.
좋은 변화였고 바람직한 현상이었다.
대청호반길은 과거, '청남대 울트라 마라톤' 100K를 10년 동안 연속해서 참전했던 곳이라 내겐 매우 익숙하고 푸근한 곳이었다.
설날연휴가 곧 시작된다.
사랑하는 가족들과 함께 각자의 고향에서 즐겁고 멋진 추억들을 많이 만들기를 기원한다.
또한 시간이 나는 대로 고향산천도 돌아보면서 자연의 숨소리와 환영의 갈채를 영혼에 담아보기를 바란다.
건강하고 행복한 명절이 되기를.
브라보.
살며 사랑하며 배우며
첫댓글 저도 아직 한라산 오르지 못했는데요.. ㅎㅎ
기모 형과 재영 형 얼굴이 확실하네요.
이렇게 사진으로라도 보니 또 반갑네요.
더 건강하시고
친구분들과의 다음 도전도 더 멋진 시간이기를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