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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종이 댕댕댕(조현미)
할머니, 할아버지 때문에 나는 기분이 무척 나빴어.
“송송아, 큰 공 물어와!”
“어서!”
할머니가 큰 공과 작은 공을 동시에 던지며 명령했고, 할아버지가 재촉했어. 이렇게 시시한 일을 몇 번이나 시키다니 말이야. 나는 또르르 달려가 일부러 작은 공을 물어왔어. 시키는 대로 계속했지만 끝나지 않았거든.
“아까는 곧잘 하더니….”
“소발에 쥐 잡은 거구먼.”
할머니 말에 할아버지가 ‘그럼, 그렇지.’ 하는 표정으로 너털웃음을 웃었어.
나는 개야. 아이들은 멍멍이, 어떤 사람들은 댕댕이라고 하더라. 얼마 전에 할머니, 할아버지 집에 왔어. 엄마가 바빠서 당분간 여기서 지내야 한다나 봐.
“아직 어려서 그런가?”
할머니가 못마땅한 표정으로 나를 봤어.
“그러게. 어떻게 하면 상만이처럼 똑똑해질까?”
“송송이도 학교에 보내야 할까요?”
할아버지 물음에 할머니가 되물었어.
상만이는 산책하러 놀이터에 갔다가 만난 이웃집 개야. 이름에서 풍기는 분위기와 달리 나랑 비슷한 나이더라. 상만이 할머니는 어쩐 일로 산책을 다 나왔느냐며 할머니와 반갑게 인사했어.
“상만아, 시소 두 바퀴 돌고 와!”
“상만아, 큰 공 물어와.”
“상만이 뽀뽀!”
상만이는 명령대로 움직이고 간식을 받아먹었어. 먹을 것에 목매는 것 같았지만, 활동적인 것을 좋아하는 개라 생각하기로 했어.
“오, 어쩌면 이렇게 똑똑해요?”
할머니가 부럽다는 듯 상만이 할머니한테 물었어.
“요즘은 개도 유치원에 다닌다더니 얘도 유치원에 다니나 보오?”
할아버지도 궁금한 것 같았어.
“에이, 유치원 교육으로는 어림없어요. 우리 상만이는 학교에 다녀요.”
“개 학교가 있단 말이오?”
할아버지 눈이 둥그레졌어.
“그럼요. 제대로 키우려면 개도 학교에 보내야지요. 뭐 학교에 다닌다고 다 우리 상만이처럼 똑똑해진다는 보장은 없지만.”
상만이 할머니가 우쭐하며 나를 쓱 봤어. 나는 아무렇지 않았는데 할머니는 기분이 나빴나 봐.
“그 할멈 은근히 사람 속을 긁네.”
돌아오는 길에 이렇게 말한 것을 보면 말이야.
우리는 사람과 달라서 뭐든 습득이 빨라. 태어나자마자 걸을 수 있고 문자, 숫자는 물론 세상의 이치도 빨리 깨치는 편이지. 사람들이 사용하는 말도 어느 나라 말이건 쉽게 터득해. 성대 구조가 달라 사람 말을 할 수는 없지만 말이야. 우리는 아는 척하는 것을 점잖지 않은 일로 여겨서 잘 표현하지 않아. 그러니 우리가 많은 것을 안다는 걸 사람들은 당연히 모르지. 가끔 사람의 목숨을 구하는 개, 봤지? 사람들이 생각하듯이 우리가 아무것도 모른다면 어떻게 그런 일을 할 수 있겠어?
“안 되겠어요. 아무래도 학교를 좀 알아봐야겠어요.”
저녁을 먹고 났을 때야. 간식을 받아먹으며 명령대로 움직이던 상만이가 떠올라서 개와 음식의 관계에 대해 생각하고 있는데 할머니가 갑자기 이러는 거야.
“어휴, 뭘 개를 학교까지 보내려고 그래? 더군다나 지은이가 언제 데려갈지도 모르는데.”
컴퓨터로 갈까 말까 카드 게임을 하던 할아버지가 심드렁하게 대꾸했어.
“영감, 비켜 봐요.”
할머니가 할아버지를 컴퓨터 앞에서 밀어냈어.
“상만이가 다닌다는 학교 좀 찾아봐야겠어요. 우리 지은이 키울 때 마음껏 못 가르친 것도 속상한데 개까지 기죽이고 싶지 않아요.”
할머니는 새삼 분한 얼굴이었어.
“하긴 이제 우리도 여유가 있으니 미물이어도 가르칠 수 있으면 가르치면 좋지.”
할아버지 맞장구에 나는 한숨이 나왔어. 상만이에게 들은 바대로라면 학교는 혼자 조용히 생각에 잠기는 것을 좋아하는 나와는 맞지 않았기 때문이야.
“학교 가기 싫어요!”
목청껏 내 마음을 알렸어.
“밤늦게 왜 이렇게 짖어? 짖을 때와 짖지 않을 때도 구분 못 하니 학교에 꼭 가야겠어!”
활활 타오르는 할머니 교육열에 기름을 부은 꼴만 됐지. 나는 얼른 입을 다물고 할머니가 검색하는 것을 쳐다봤어. 할머니는 상만이가 다닌다는 학교를 어렵지 않게 찾아냈어. 몇 달 후에 신입생을 뽑는다는 공지 사항을 보고 할머니 입이 함지박만 해지더라.
“이것 좀 봐요.”
하지만 할머니는 곧 걱정스러운 얼굴을 했어.
“왜? 학비가 비싼가?”
“학비가 문제가 아니라 입학 자격이 까다롭네요.”
할머니 대답에 나는 인터넷 창을 자세히 들여다봤어. 할머니 말과는 달리 신호 줄 때까지 기다리기, 대소변 가리기, 다른 개 공격하지 않기 같은 시시한 것들뿐이었어. 하지만 다음 항목을 보고 입이 딱 벌어지고 말았어.
-음식 앞에서 침 흘리지 않기
너무한다 싶었어. 음식 앞에서 침이 나오는 건 개나 사람이나 본능이잖아. 아무리 우리가 지적이어도 제어할 수 없는 부분이고 말이야.
‘그럼, 상만이는 이걸 한단 말이야?’
상만이가 대단하게 여겨졌어.
‘또 만나면 방법을 물어봐야지.’
하지만 이렇게 폭력적인 학교라면 더더욱 가고 싶지 않았어. 도저히 할 수 없는 일을 시키는 건 폭력이잖아.
다음 날부터 당장 훈련이 시작됐어. 물론 나는 전혀 협조하지 않았지. 할머니, 할아버지가 “기다려!”라고 하면 마구 뛰어다녔어. 산책길에 다른 개를 만나면 잡아먹을 듯이 으르렁거렸고, 오줌과 똥은 꼭 내 전용 화장실 바깥에 쌌어. 일부러 하는 거지만 천방지축 내 행동이 속상했어. 간식의 유혹을 물리치는 것도 사실 좀 힘들었고. 하지만 큰 그림을 그려야 하니까 꾹 참았어. 그래도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포기하지 않아서 급기야 소파에 오줌까지 싸고 말았지 뭐야. 아무리 큰 그림을 위해 하는 일이지만, 부끄러움이 봄날 황사처럼 몰려왔어. 내 삶에 대해 생각하느라 며칠 동안 먹는 둥, 마는 둥 엎드려 있었어. 나는 깊이 생각할 일이 있을 때는 음식을 먹지 않는 편이거든.
“여보, 아무래도 안 되겠어요.”
할머니가 드디어 백기를 들었나 봐. 나는 쾌재를 불렀어.
“송송이 행동이 지나치게 과하더니 이제는 또 저러고 늘어져 있네요. 상태가 심각해 보여요. 전문가를 불러야겠어요.”
‘맙소사!’
며칠 후, 어떤 아줌마가 찾아왔어. 할머니와 할아버지는 아줌마를 원장님이라 부르며 깍듯하게 대했어. 원장님 말투는 다정하지만 단호했어. 꼭 텔레비전에 나오는 동물행동 교정사 같았어. 왜 동물들의 이상 행동을 진단하고 교정해 주는 프로그램 있잖아. 거기에 나오는 사람 말이야. 할머니, 할아버지가 요즘 부쩍 많이 봐서 나도 잘 알고 있거든.
“원래 활달한 성격은 아니지만, 요 며칠 지나치게 처져있어요.”
할머니가 걱정스레 말했어.
“송송아, 이리 온.”
원장님이 손을 내밀며 나를 불렀어. 나는 할머니가 돌아오기 전까지 읽고 있던 신문에 두 발을 올리고 원장님을 멀뚱멀뚱 쳐다봤어.
“말씀대로 의욕이 전혀 없네요. 잠깐만 기다려 보세요.”
원장님이 내 발밑에 있는 신문을 잡아당겼어. 나는 앞발에 힘을 꽉 주고 이를 드러내 보였어. 원장님이 나를 보고 활짝 웃었어. 웃는 얼굴에 방심한 사이 신문을 휙 당겨 가져가 버리지 뭐야. 원장님은 신문을 돌돌 말아 막대기 모양을 만들더니 바닥을 가볍게 두드렸어.
“이리 오렴.”
이러면서.
“어머, 며칠 내내 꼼짝도 하지 않더니 정말 움직이네요!”
“그러게. 방법이 뭐요?”
내가 막대기 모양 신문을 쫓아 펄쩍펄쩍 뛰자,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손뼉까지 치며 물었어.
“제가 들어올 때부터 송송이가 신문에서 발을 떼지 않았어요. 이 신문이 말하자면 송송이의 애착 인형 같은 거죠. 송송이가 애착을 두고 있는 물건을 이용해 움직이게 하는 거예요. 이런 활동으로 의욕이 없는 송송이에게 활력을 주는 겁니다.”
이유는 달랐지만, 원장님 말이 맞기는 했어. 조금 전까지 나는 ‘아동의 인권’이라는 기사를 보고 있었거든. 사람들이 그러더라. 애랑 개는 똑같다고. 그렇다면 아이들의 권리는 곧 개의 권리인 거잖아. 한참 열심히 읽다 빼앗겼는데 뒷부분이 궁금한 건 당연하지.
학교 입학 자격 익히기에 원장님의 처방까지 더해져서 그날 이후 나는 더 괴로워졌어. 다 배우고 갈 거면 학교는 도대체 왜 가는 건지 모르겠더라고.
‘안 되겠어! 방법을 바꿔야지!’
내가 잘못 생각했다는 것을 깨달았어. 학교에 들어갈 자격을 갖추지 않아서 ‘못’ 들어가려고 했었는데 통하지 않았어.
‘좋아, 많은 것을 알고 있다는 걸 보여주겠어!’
못 들어가는 게 아니라 안 들어간다는 것을 말이야.
나는 대소변을 사람 화장실 변기에 보고 물까지 내렸어. 그뿐 아니라 길에서 개를 만나면 꼬리를 흔들며 인사를 건넸고, 크기뿐 아니라 길이 차이가 나는 물건도 맞추었어. 문제는 음식 앞에서 침 흘리지 않기였지만, 결국 이것도 해내고 말았어. 처음에는 ‘이건 먹는 게 아니다’를 되뇌며 주문을 걸었어. 물론 아무 소용이 없었지. 사람과 비교할 수 없게 예민한 내 코가 솔솔 풍기는 음식 냄새를 놓칠 리 없잖아. 온갖 상상과 방법을 동원하다 침이 고여도 입만 벌리지 않으면 된다는 간단한 원리를 터득했어. 할머니와 할아버지는 당연히 뛸 듯이 기뻐했지. 하지만 그즈음부터 나는 할머니, 할아버지에게 뽀뽀를 해주지 않았어. 그냥 소심한 반항 같은 거라고 해둘게.
할머니, 할아버지는 다른 여러 가지로 나를 자꾸 시험하고 칭찬했어.
“송송아, 할아버지 양말 좀 갖다줘.”
“할머니 머리빗이 어디 있더라?”
어렵지도 않은 일을 하고 과한 칭찬을 받으니 쑥스럽고 불편했어. 하지만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이렇게 말할 날이 곧 올 것 같아서 꾹 참았어.
“우리 송송이는 학교에 갈 필요가 없네요.”
“그러게, 말이야. 그냥 집에서 다 같이 조용히 지냅시다!”
하지만 이번에도 내 예상은 빗나가고 말았어.
“영감, 상만이가 다니는 반은 초급반이고, 중급이랑 고급반이 있어요.”
“그래?”
“여기 좀 봐요.”
할머니가 컴퓨터 모니터를 할아버지 쪽으로 돌려주며 말했어.
“정말 그러네. 우리 송송이 정도면 중급반 입학도 가능하겠는걸!”
“아유, 무슨 소리예요. 조금 더 훈련해서 고급반으로 바로 들어가야죠.”
나를 보는 할머니 눈에서 빛이 나왔어. 하지만 나는 그 빛 때문에 절망에 빠져 앞이 캄캄했어.
‘그냥 학교에 갈까?’
이런 생각마저 들었다니까.
‘아니야. 입학 자격도 이렇게 귀찮은데 학교는 더 많은 걸 요구할 거야.’
곧 고개를 저었지만 말이야.
“제발 나를 그냥 내버려 두세요. 조용히 생각 좀 하자고요!”
나를 인정하지 않고 다른 개처럼 만들려는 할머니, 할아버지가 원망스러워 울부짖었어. 할머니의 상만이 할머니에 대한 자존심 대결에 내 등만 터진 꼴이었어. 그러다 엄마가 왔던 날이 퍼뜩 떠올랐어.
“어머니, 아버지도 집에만 계시지 말고, 노치원에 다니는 건 어떨까요?”
“노치원? 설마 노인 유치원 말이냐?”
엄마 말에 할아버지가 놀라 물었어.
“네. 프로그램이 다양해서 치매 예방에도 좋다고 들었어요.”
“우리 둘 다 번잡스러운 것 질색하는 거 몰라서 또 그러니?”
할머니 목소리가 단번에 높아졌어.
“사람 많이 만나는 거 피곤하다.”
할아버지도 언짢아했어.
“그래도 집에만 계시는 것보다 운동 겸 움직이시는 게 좋잖아요.”
“송송이 오고부터는 산책을 매일 하니 걱정하지 마라.”
할머니가 화를 냈어.
“제 친구 어머니도 다니는데 너무 좋다고 하신대요.”
“좋은 사람이나 실컷 다니라고 해. 나는 싫다!”
할머니는 벌떡 일어나 안방으로 들어가더니 문을 쾅, 닫았어.
“나도 싫다.”
할아버지도 엄마에게 등을 보였어.
‘그래. 바로 그거야!’
나는 기뻐서 거실을 뱅뱅 돌았어.
며칠 후였어. 할머니, 할아버지가 마트에 간 사이 나는 노치원을 검색했어. 할머니가 검색할 때 방법을 익혀뒀거든. 여러 노치원 중 집이랑 제일 멀고, 입학 자격이 제일 까다롭고, 프로그램과 사람도 제일 많은 곳의 입학원서와 모집 요강을 출력했어. 할머니, 할아버지가 돌아올까 봐 내내 가슴이 쿵덕거렸어.
“후유….”
인쇄된 입학원서와 모집 요강을 소파 아래에 감추고, 방석에 엎드리자마자 할머니, 할아버지가 돌아왔어.
‘이제 엄마만 오면 돼!’
엄마를 기다리는 사이에도 훈련은 계속되었고, 나는 하기 싫어서 낑낑거렸어.
“쯧쯧, 훈련이 어지간히 싫은가 보네. 하지만 이게 다 널 위해서란다.”
“그럼. 그럼.”
할머니, 할아버지는 이러면서 멈추지 않았어.
일주일 정도 뒤 드디어 엄마가 왔어. 나는 소파 밑으로 들어가 감추어 둔 것들을 물고 나왔어. 아무도 눈치채지 못하게 엄마 옆에 슬그머니 가져다 놓는 데까지 성공했지.
“어머니, 아버지 노치원 가시게요? 잘 생각하셨어요. 여기 정말 좋네요!”
모집 요강을 발견한 엄마는 반색했어.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나를 학교에 보내려고 할 때의 눈빛과 비슷해서 좀 섬찟했어. 할머니, 할아버지 얼굴이 구겨진 종잇장처럼 일그러지더라.
그날 밤이었어. 비몽사몽 중 나는 할머니와 할아버지의 두런두런 얘기 소리에 잠이 깼어.
“할멈, 우리가 노치원 가기 싫듯이 송송이도 학교에 가기 싫은 거 아닐까?”
“영감도 그 생각했구려. 나도 훈련할 때마다 낑낑거리던 송송이 생각을 하고 있었어요.”
나는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외쳤어.
“맞아요!”
그러고는 소파로 달려가 할머니와 할아버지 얼굴을 마구 핥으며 뽀뽀 세례를 퍼부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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