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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먹거나 너무 많이 먹는 것이 정신질환이라고?
“박사님, 제 환자를 한 번 봐주시기 바랍니다.”
1866년 1월 17일 영국 런던의 의사 켈슨 라이트(Kelson Wright)는 도저히 왜 그런지 이해할 수 없는 환자를 선배 의사 윌리엄 걸(Sir William Gull, 1816~1890년)에게 의뢰했다. 17세 소녀 A양은 167센티미터의 키에 몸무게가 37킬로그램에 불과했다. 수개월에 걸쳐 약 15킬로그램의 체중이 줄어들었는데 그 원인을 찾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일 년 전부터 월경을 하지 않았지만, 다른 신체징후에는 이상 없었다. 설사를 하지도 않았고, 다른 감염의 증거도 없었다. 심박수만 55~60회로 떨어진 것이 관찰될 뿐이었다.
“저는 먹고 싶지 않을 뿐입니다.”
A양은 모든 종류의 육식을 거부했고, 다른 음식도 거의 섭취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힘들어서 누워만 있는 것도 아니었고, 일상 활동은 도리어 활발하게 하는 편이었다. 걸은 심박수가 낮고 저체온이 특징적인 이 환자의 체온을 높여주는 것이 도움된다고 판단했다. 다양한 방법으로 이 환자가 음식을 먹게 하려 노력했고, 또 여러 가지 약을 처방해서 식욕을 돋우려고 하면서 약 3년간 치료했다. 마침내 1868년 3월 A양은 몸무게가 58킬로그램이 되면서 정상이 되었다.
걸은 그 즈음에 이와 유사한 환자들을 여러 명 진료했고, 체중 저하가 단순히 감염질환이나 영양실조 때문이 아니라는 심증을 굳혔다. 이 환자들은 자발적으로 굶는 사람들로, 여기에는 심리적인 원인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 걸은 A양을 포함한 환자 3명의 병세를 자세히 묘사하여, 1873년 ‘신경성 식욕부진증(anorexia nervosa, 이하 거식증)’을 발표했다. 그는 거식증이 젊은 여성에게 많이 발생하고 지나치게 마르려고 하는 특이한 병으로, 세 명 중 한 명이 사망한 것으로 보아 쉽게 좋아질 병이 아니라고 보았다. 또한 정신적인 것이 원인으로 생각되며 이를 히스테리 상태로 보는 것이 좋겠다고 주장했다.
프랑스 의사 어니스트-샤를 라세그. 거식증의 심리적 측면을 중요하게 생각했으며, 부모의 영향과 가족 내 상호작용에 주목했다. <출처: wikipedia>
같은 시기인 1873년 프랑스의 살피트리에 병원의 어니스트-샤를 라세그(Ernest-Charles Lasègue, 1816~1883년)도 이와 유사한 환자를 보고하는 논문을 발표했다. 히스테리성 거식증은 독립적으로 진단할 만한 문제이며, 이런 증상은 환자가 고통을 피하기 위한 노력에서 시작된다는 가설을 세웠다. 라세그는 걸에 비해 상대적으로 거식증의 심리적 측면을 중요하게 보았고, 특히 부모의 영향과 가족 내 상호작용에 주목해서 현대적 정신의학에서 진단하는 거식증의 특징을 포착했다.
시몬드 증후군에 걸린 사람의 사진. 전반적인 생체기능이 떨어지면서 체중이 줄어드는 증상이다. <출처: Loss Of Weight Allegiance>
일부러 굶어서 살을 뺀다는 것은 본능에 역행하는 행동이다. 20세기 초반까지도 구미에서 가난에 의해 영양실조로 죽는 사람이 부지기수였다는 점을 생각해 보면 이런 현상을 이해하기는 더욱 더 어렵다. 20세기 초반에는 뇌하수체의 기능 저하로 전반적인 생체기능이 떨어지면서 체중이 줄어드는 ‘시몬드 증후군(Simmond syndrome)’1)이 관심을 받으면서 거식증을 이 문제로 설명하려고도 했다. 그렇지만 걸이 보고서에서 썼듯이, 거식증의 근본적인 원인은 정신적인 문제라는 점이 차차 밝혀졌다.
거식증 환자들은 절대 식욕이 없는 것이 아니다. 식욕은 있지만 먹고 싶어 하지 않고, 지나치게 말랐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뚱뚱하다고 굳게 믿는다. 마치 왜곡된 거울에 비친 자신을 바라보는 것처럼 자신의 신체 이미지가 왜곡되어 있는 것이다. 음식을 먹지 않고 열심히 운동하며, 먹더라도 바로 토하고 설사제나 변비약을 사용해서 먹은 음식물을 몸 밖으로 배출하려고 애쓴다. 일반적인 영양실조와 달리 서서히 살을 뺀 것이기 때문에 빈혈 증상은 없고, 혈액검사도 대부분 정상범위에 있다. 피골이 상접했지만 일상 활동은 다 하기 때문에 가족들도 문제의 심각성을 인지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이들은 자기가 먹는 것은 거부하지만, 요리를 좋아하고, 레시피를 모으고, 음식을 만든 후 데코레이션하여 그릇에 예쁘게 담고, 음식을 잘게 쪼개는 것에 몰두하는 등의 음식과 관련한 기이한 행동을 하는 것이 특징이다. 즉, 음식을 먹는 것은 싫어하나, 음식에 대해 하루 종일 생각하고, 자신의 체중 변화에 대해 과도한 관심을 가지며 칼로리와 운동량 등에 박학다식하다.
역사적으로 의학계에 이런 기이한 현상이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1613년 페드로 메히오(Pedro Mexio)에 의해서다. 그는 프랑스 콩폴랑 지역에 살던 제인 발랑(Jane Balan)이라는 한 소녀가 10세 때부터 3년간 고기와 음료를 마시지 않은 채 살아가는 것을 학계에 처음으로 보고했다. 이후에도 몇 개의 사례가 있었으나, 걸이 처음으로 이 증상을 체계적으로 집대성하여 ‘신경성 식욕부진증’이란 지금의 진단명을 사용했다.
미국의 정신과교수 힐데 브루흐. 거식증의 원인과 가능한 치료법을 제안했다. <출처: www.psychoanalytikerinnen.de/>
흔치 않고 기이한 병으로만 인식되던 거식증은 20세기 들어서면서 서서히 그 사례가 늘어나기 시작했다. 1978년 미국 휴스턴의 베일러 의대 정신과 교수이자 정신분석가 힐데 브루흐(Hilde Bruch, 1904~1984년)가 1960년부터 치료해 온 70명의 실제 사례를 『황금 새장: 신경성 식욕부진증의 수수께끼(the golden cage: the enigma of anorexia nervosa)』란 제목의 책을 냄으로써 더 널리 알려졌다. 브루흐는 사례를 세세히 묘사했으며 자신이 생각한 거식증의 원인과 가능한 치료법을 제안했다. 그에 따르면 대부분의 환자는 청소년기의 소녀들로 좋은 가정에서 자라났고, 부모는 정신분석적으로 완벽주의적인 면이 강하며 자식을 컨트롤하려는 경향이 있었다. 즉 환자의 입장에서는 부모가 달성할 수 없는 목표를 제시하는 것이 마치 황금으로 만든 새장 안에 가두어 키우는 것처럼 느껴진다는 것이다. 이에 대한 무의식적인 반항으로 자라는 것을 거부하고, 더 이상 성숙하지 않은 채 그 상태로 머무르려고 하는 것이 거식증 환자의 전형적인 정신역동이라고 해석했다. 브루흐 박사는 미국의 젊은 여성들 사이에서 거식증을 광범위하게 발견할 수 있는데, 이는 날씬한 사람을 지나치게 선호하고 뚱뚱한 사람은 게으르고 무능한 사람으로 여기는 문화적 풍토에 기인한 면이 크다고 주장했다. 이 책은 15만 부 이상 팔릴 정도로 수십 년 동안 대중적 인기를 얻었다.
대중의 관심이 폭발적으로 늘어나게 된 것은 이 책이 출간되고 5년 후인 1983년, 최고의 인기를 누리던 남매 듀오 카펜터즈의 카렌 카펜터(Karen Carpenter)가 33세에 요절하면서였다. 그녀가 다이어트를 심하게 하던 끝에 거식증에 걸렸고 결국 후유증으로 사망했는데 그 사실이 세간에 알려지면서 대중적으로 거식증의 심각성이 부각되었고, 실제로 환자들이 속속 발견되기 시작한 것이다.
1980년 거식증이 DSM-III(정신질환 진단 및 통계 편람 3판)2)에 포함되면서 정신의학 분야에 공식적으로 등장한 후 환자 수도 많아지고, 역학조사의 대상이 되었다. 지금까지 알려지기로 거식증은 5대 1 정도로 여성에게 많고, 약 0.5퍼센트 정도의 여성에서 발생한다.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10년 내 사망률이 5~10퍼센트에 이를 정도로 중증의 질환이기도 하다. 치료가 어려울뿐더러 만성화되는 경향이 강하다.
심각한 수준의 체중 저하가 있을 때에는 입원 치료를 원칙으로 하는데, 이때 일차적인 중요 목표는 신체 건강을 회복하고, 체중을 증가시키는 것이다. 그러나 너무 급격한 체중의 증가는 도리어 신체에 무리를 주기 때문에 체중을 서서히 증가시키고 영양공급을 체계적으로 하면서, 먹고 토하는 행위를 하지 못하게 막는 것이 필요하다. 매일 아침 환자들이 소변을 보게 한 후 같은 시간에 체중을 재고, 매끼 식사를 하고 난 다음에는 충분히 소화가 될 때까지 한 시간 동안 로비에 머물게 해서 화장실이나 그외 보이지 않는 장소에 가서 구토하지 못하게 막는다. 이들은 체중이 조금이라도 늘어나는 것에 대해서 극심한 공포를 갖고 있고 먹지 않고 지내는 것에 익숙한 상태이기 때문에, 아주 소량만 섭취하더라도 매우 불편해하며 몸에서 빼내고 싶은 강박적 노력을 하고 싶어 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체중을 늘린다고 해도, 퇴원 후에는 다시 먹기를 거부하거나, 폭식 후에 구토를 반복하는 등 재발 위험이 높고 만성화되는 사례가 훨씬 많다.
거식증과 같이 급격하고 위험한 수준의 체중 저하 없이 정상범위의 체중을 유지하지만 과도한 양의 음식을 짧은 시간 안에 먹고, 경우에 따라서는 포만감을 없애기 위해 의도적으로 토하기를 반복하는 신경성 폭식증(bulimia nervosa, 이하 폭식증)도 음식과 관련한 정신질환의 하나다. 거식증과 달리 폭식증은 그 역사가 훨씬 깊어서 로마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로마 귀족들은 만찬을 즐기다가 배가 부르면 더 많이 먹고 마시기 위해 의도적으로 구토했고, 이때 토사물을 받아내는 쟁반을 ‘vomitorium(구토물 담는 용기)’이라고 부를 정도였다. 로마 황제 클라우디우스와 비텔리우스는 비만과 폭식으로 유명했다. 한편 고대 이집트인들은 병에 걸리는 것을 막기 위해 한 달에 세 번 토함으로써 몸을 가볍게 하고 몸 안의 독소를 배출하는 것이 좋다고 믿었다.
19세기까지 유럽 등에서 폭식증에 대한 언급은 주로 거식증 증상의 일환으로 설명하는 정도였고, 20세기 초반부터 체중 조절을 위해 설사제를 사용하는 사례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점차 거식증이 아닌 환자들 중에서 폭식과 구토를 반복하는 사례가 발견되기 시작했다. 피에르 자네(Pierre Janet, 1859~1947년)는 1908년 프랑스 의사 장 마르탱 샤르코(Jean-Martin Charcot, 1825~1893년)가 치료한 기이한 사례를 보고했다. 한 소녀가 장밋빛 리본을 허리에 두르고 왔는데, 허리에 감은 리본 길이 이상으로 절대 살찌지 않겠다는 의미였고, 거기에 맞춰서 먹고 토하는 것을 반복했다. 정신분석가 칼 아브라함(Karl Abraham, 1877~1925년)은 1916년 ‘신경성 허기(neurotic hunger)’라는 개념을 통해 정신분석적으로 폭식을 해석했다. 깊은 무의식 속의 불안과 내적 갈등이 공허함을 불러일으키는데, 이 감정을 해결할 수 없을 때 ‘배고픔’으로 전환되어 먹는 행동을 통해 어떻게든 해소해 보려고 노력한다는 것이다. 이 해석은 지금도 ‘정서적 허기(emotional hunger)’라는 개념으로 상당히 유용하게 적용할 수 있다.
그후 수십 년 동안 다양한 종류의 폭식증 환자들이 보고되었다. 그때까지 대부분의 의사들은 폭식증을 거식증의 한 아형(亞形)으로 여겼다. 만성화된 거식증으로 환자의 체중은 회복되었으나 폭식 습관이 남아 있는 것으로 보거나, 앞으로 거식증으로 진행하게 될 환자의 상태로 분류한 것이다. 시간이 지나면서 거식증 같은 급격한 체중 저하가 뚜렷하게 보이지 않지만 조절하기 어려운 심한 폭식과 구토를 반복하는 환자들이 존재하고, 거식증 환자보다 그 수가 훨씬 많다는 것이 알려지기 시작했다. 이들은 거식증 환자들과 달리 정서적으로도 불안정하고, 체중 증가와 체형에 대한 집착이 더 강하며, 대인관계에 예민함과 어려움을 느낄 뿐 아니라, 술이나 마약 등에 대한 의존 증상이나 성격장애가 공존한다. 또 거식증보다 발생 연령이 높고, 가족이나 본인이 비만이었던 경우가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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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영국의 의사 제럴드 러셀. 런던 모즐리 병원에 식이장애 클리닉을 개설했다. <출처: BrainFacts.org> 2 러셀징후의 사진. 폭식 후 구토를 위해 손가락을 입 속에 넣다보면 굳은 살이 박이는 징후이다. <출처: wikipedia> |
신경성 폭식증이 독립적 질환으로 확립된 것은 런던 모즐리 병원에 식이장애 클리닉을 개설한 제럴드 러셀(Gerald Russell, 1928~)에 의해서다. 폭식을 하고 나서 구토를 위해 손가락을 입 속에 집어넣다 보면 손등에 굳은살이 박인다. 그는 환자의 손등에서 이런 굳은살이 보이는 것이 폭식증 환자의 중요한 징후의 하나로 보았고, 나중에 러셀징후(Russell’s sign)라는 이름이 붙었다. 그는 1970년대에 폭식증 환자들의 특징적인 신체 증상을 찾아내서 체계화했다. 턱밑의 침샘이 비대화하는 것, 구토 시 역류한 위산으로 치아의 안쪽 에나멜이 부식되는 것이 대표적이다.
러셀은 중증 거식증 환자들뿐 아니라 날씬해지고 싶어 하는 구미의 정상적인 여자 대학생들이나 20대들 사이에서 생각보다 흔히 발견된다면서, 폭식증을 독립적인 질환으로 보고, 절제가 안 되고 일상생활에 어려움을 갖는 환자들을 집중적으로 찾아내서 치료해야 한다고 했다. 1980년 신경성 폭식증이 DSM-III에 포함되자 본격적인 역학조사가 있었고, 연구에 따라서는 10대나 20대 여성에서 10퍼센트 가까이 발생한다고 알려졌다. 일반적으로는 10만 명에 14명 정도가 폭식증으로 진단 가능하다고 추산한다.
왜 이런 식이장애가 현대사회에 만연하게 된 것일까? 1940년대 이후 서구사회의 ‘날씬함에 대한 추구’가 폭식증과 거식증이 하나의 정신질환으로 자리 잡게 되는데 가장 큰 영향을 준 것은 분명하다. 날씬함은 독립성, 자율성, 자기 절제의 상징처럼 인식되었고, 미디어에서 보이는 모델이나 스타들은 비정상적인 수준의 날씬함을 유지하고, 청소년과 젊은 여성들은 그들을 따라하고 싶은 욕망을 갖는 수순을 따랐기 때문이다. 완벽한 여성의 이미지를 획득하기 위해 지난하게 투쟁하며 자신의 신체 이미지를 왜곡하는 사람이 생기고, 살찌는 것에 대한 병적인 공포가 발생한다. 그래서 먹는 것에 대해 과민해지고 항상 먹는 것에 대해 생각하고 지나치게 굶고 억제하다 보면, 어느 순간 억제를 감당하지 못하고 폭식의 방아쇠가 당겨진다. 그 폭식을 견디고 감당하지 못하기에 토하는 악순환과, 그에 대한 죄의식이 반복되면서 정상적인 생활이 불가능해지는 사람들이 발생하게 된 것이다.
200년 전만 해도 수많은 사람들이 먹을 것이 없어서 굶어죽었고, 16세기 초상화 속 미인들은 통통하고 살집 있는 사람이 대부분이었다. 19세기 산업혁명 이후 서구사회는 윤택해지고, 20세기 이후 산업화와 현대화로 삶의 질이 더 향상되면서 날씬함은 ‘미덕이자 추구해야 할 가치’가 된 반면, 뚱뚱함은 ‘추한 것이자 자기 관리에 실패한 것’이라는 이미지가 덧씌워진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그런 사회심리적 환경의 변화와 압력으로 사람들은 자신의 몸을 바라보는 신체 이미지에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그중 일부 사람들에게는 먹는 것, 살찌는 것 자체를 거부하는 거식증이라는 심한 정신질환이 발생되었고, 더 많은 이들에게는 먹는 것에 대한 두려움과 그 억제를 견디지 못하고 무너져내려 폭식과 구토를 반복하는 증상이 생긴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도 이 두 가지 질환은 드문 병이 아니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의 통계자료에 의하면 2013년 거식증으로 치료받은 환자는 1,905명, 신경성 폭식증으로 치료받은 환자는 1,597명이었다. 일반적 역학으로는 거식증이 훨씬 적은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세부자료를 보면 거식증의 경우 60세 이상 노인 환자에게 진단을 내린 것이 59퍼센트로 많았다. 이는 우울, 불안, 불면 등의 신경증적 증상으로 식욕 저하를 보이는 노인 환자에게 진단을 잘못 내린 것으로 추정된다. 이를 감안해도 거식증으로 수백 명, 폭식증으로 수천 명 수준의 환자가 매년 치료받고 있고, 치료의 영역에 들어오지 않은 환자는 이보다 훨씬 더 많을 것이 분명하다.
정신질환은 생물학적인 변인이 가장 중요한 요인이 되기도 하지만, 이처럼 사회적 환경의 변화에 따라 증상이 부각되고, 진단명이 생기며, 또 치료의 대상이 되는 질환도 있다. 그렇기 때문에 정신과적 진단과 정신질환은 한 시대의 기준으로 고정적이어서는 안 되고 세상의 변화에 맞춰서 거듭나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