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숙 논설위원 미·중 갈등 전면화로 충돌 위기 韓 취약성 드러낸 요소수 대란 中 원자재 수출 무기화 가능성 安美經中 낡은 문법서 벗어나 동맹·자유진영 협력 강화 통해 中 리스크 탈피 국가전략 짜야 헨리 키신저 전 미국 국무장관이 신작 ‘인공지능시대(Age of AI)’에서 미·중 관계가 상호 불신에서 실제적 충돌 단계로 치닫고 있어 지극히 위태로운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에릭 슈밋 전 구글 회장, 댄 허텐로처 MIT대 컴퓨터대 학장과 함께 쓴 이 책에서 그는 미·중 적대감이 외교·안보·경제 등 전통적 영역에서 AI 첨단무기 개발 등으로까지 확대된 현 상황을 제1차 세계대전 전야에 비유했다. 파국을 막으려면 미·중이 대화로 불확실성을 해소해야 한다는 제언이다. 올해 98세인 미·중 화해의 주역이 던지는 마지막 충고인 셈인데, 현실은 그의 바람과 정반대로 흘러가는 듯하다. 조 바이든 미 대통령이 시진핑(習近平) 중국 주석과 오는 15일 첫 회담을 화상으로 하는 것에서도 그런 기류가 읽힌다. 정상 대면을 꺼리는 것을 보면 기존의 입장차를 재확인하는 자리가 될 가능성이 크다. 바이든 대통령이 중국을 전략적 경쟁자로 규정한 뒤 중국의 부상을 억제하는 정책을 추진한 데 대해 시 주석은 “중국을 괴롭히면 피를 보게 될 것”이라며 호전적 태도로 맞서왔다. 바이든-시진핑 회담이 키신저 전 장관이 희망하는 양국 관계 불확실성의 해소 계기가 되기보다 미·중 패권전쟁을 공식화하는 무대가 되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미·중 관계는 우호·협력의 달콤한 ‘허니문’ 시대를 끝내고 갈등·충돌의 쓰디쓴 ‘비터문(bitter moon)’ 시대로 진입하게 된다. 미·중 관계 악화로 가장 피해를 보는 나라는 대한민국이다. 중국발 요소수 파동은 미·중 갈등 시대 한국이 지닌 구조적 취약성을 단적으로 드러냈다. 중국 관세청이 요소 등에 대한 수출 전 검사 의무화 고시를 지난 10월 11일 슬그머니 발표했을 때만 해도 중국의 요소 수출 제한이 한국 경제를 단숨에 멈춰 세울 만큼 위력을 발휘할 것이라고 아무도 생각지 않았다. 그러나 보름도 지나지 않아 요소수 기근으로 물류 마비 조짐이 보이자 온 나라가 대혼란에 빠졌다. 요소수 대란은 10일 중국 측이 시혜를 베풀듯 수출검사 절차를 진행하겠다고 밝히면서 일단 급한 불은 끄게 됐지만, 산업용 요소의 97%를 중국에 의존한다는 점에서 언제든 재발할 수 있다. 자동차의 마그네슘 100%, 2차전지의 망간 99%, 반도체의 산화텅스텐 94.7%를 중국에서 수입한다. 대중의존도가 80% 이상인 산업핵심 품목도 1850개다. 한국 경제의 심각한 ‘중국 중독증’을 보여주는 수치다. 중국이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원자재 수출 중단 카드로 한국을 쥐고 흔들 수 있다. 한국이 가까운 중국에서 값싼 원자재를 무제한 수입하며 안심하고 경제를 키울 수 있었던 것은 미국이 중국과 수교 후 지속해온 대중 관여 정책 덕분이다. 한국은 1992년 중국과 수교한 뒤 안미경중이란 논리로 중국과 경제를 밀착시켰다. 값싼 중국산을 수입하는 게 경제적이라는 이유로 요소처럼 저렴하지만 필수적인 품목의 생산을 포기하고 중국으로 아웃소싱했다. 그러나 미국이 대중관여정책을 접은 뒤 구축하는 자유진영 글로벌 공급망에 한국이 참여하려 하자 중국은 핵심 수출 품목 무기화를 내비치며 한국의 목을 조르는 것이다. 중국이 여야 대선후보가 확정된 국면에 요소수 파동을 일으킨 것은 차기 정부 길들이기 성격이 강하다. 문재인 정부 초기 때인 2017년 중국은 사드 보복을 통해 ‘3불 합의’를 받아낸 바 있다. 문 대통령은 한발 더 나아가 중국몽과 함께하겠다는 ‘충성서약’까지 했다. 이제 대선 정국에 위력을 과시해 한국이 중국 품을 떠나 동맹 쪽으로 밀착하는 것을 막겠다는 속셈이다. 그런 만큼 더 큰 위기를 맞기 전에 요소수 파동을 교훈 삼아 대한민국에 드리운 중국 리스크를 걷어내는 전략을 만들어야 한다. 다행히 바이든 대통령이 자유진영 글로벌 공급망 구축을 위해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때 별도 회의를 했고 일본과 유럽연합(EU) 등 자유진영 국가들도 적극 호응하고 있다. 4개국 협의체인 쿼드도 첨단기술 및 희토류 협력에 나서고 있는 만큼, 우리도 적극 참여해 원자재 중국 의존증에서 탈피해야 한다. 그 과정은 고통스럽겠지만, 생존을 위해 불가피한 길이다. 한·중 비터문 시대는 뉴노멀인 만큼 동맹·자유진영과 함께 새로운 미래 로드맵을 짜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