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리가 사라진 세상
짓궂은 질문을 해봅니다.
‘사람’과 ‘인간’은 같은 거야?
사전의 설명은 비슷하지만,
아무래도 “저 인간!” 하면 부정적 이미지가 앞서죠.
“저 사람 인품이 좋아”로는 써도 “저 인간 인품이 좋다”고 말하지 않는 것과 같습니다.
세상에 사람 같지 않은 인간이 많다보니 용례까지 헷갈립니다.
초등학교 국어 교과서의
‘의좋은 형제’를 생각하면 지금도 마음이 훈훈합니다.
우애 좋은 형제가 가을 수확을 마치고 들판에 볏단으로 노적가리를 만듭니다.
형이 보니 아우네 것이 적어 보입니다.
그날 밤,
어려운 아우 형편을 안 형이 자신의 볏단을 옮겨 놓고,
다음날 밤은 식솔 많은 형을 생각한 아우가 반대로 볏단을 옮기지요.
노적가리가 줄지 않자 형제 다 고개를 갸우뚱합니다. 마침내 볏단을 옮기던 형제가 달빛 아래 마주치면서 얘기는 끝나죠.
그때의 감동으로 습자시간이면 붓글씨를 ‘노적가리 풍년일세’만 썼던 기억이 납니다. 가난해도 마음은 풍년인 사람들이 살던 시절이 있었지요.
엊그제 복권 당첨금이 살인흉기가 된 사건이 났습니다.
우애 좋은 형제가 복권 당첨으로
수억 원의 당첨금을 받아 배분까지는 성공했는데, 그 돈으로 사업을 했던 형이 망하며 사단이 납니다.
돈을 더 요구하는 형과 보증을 선 동생 간에 감정이 충돌하다 동생을 살해하는 일이 벌어진 겁니다.
황금만큼 요괴스러운 것은 없습니다.
돈 앞에 장사가 없다지요.
일본 속담에 ‘담배꽁초와 돈은 쌓일수록 냄새가 난다’고 했습니다. 돈이 사람을 부패하게 만든다는 뜻이겠지요.
사는 것은 전보다 풍족해도 인성은 강퍅해졌습니다.
돈을 둘러싼 이기적 욕망이 칼끝처럼 첨예하게 부딪치는 세상입니다.
개신교의 큰 어른이셨던 목사님이 생전에 우리교회에 오셔서 당신이 붓으로 큼직하게 쓴 ‘의리를 지키자’란 글귀를 강단에 내리고 설교를 하신 적이 있습니다.
세상이 오죽하면 의리를 부탁했을까요.
사람과 사람관계 사이에 의리가 사라졌다고 탄식하는 소리가 높아만 집니다.
제목을 잊은 영화입니다.
세 친구가 딱 한 번 은행을 털어 깨끗하게 살자며 치밀한 준비를 합니다.
그들의 거사는 성공했고 무사히 안전지대에 도착하자 돈다발을 놓고 환호합니다.
한 친구가 축배를 들자며 나갔다가 술에 독을 타서 옵니다.
욕심이 생긴 거죠.
태연하게 돌아온 친구가 술잔을 건네고 축배를 외칠 때,
팡팡!
술 사온 친구가 고꾸라지고 남은 둘은 낄낄댑니다.
뛰는 놈 위에 나는 놈이 있거든요.
둘은 더 큰소리로 건배를 외치지만 독배를 든 이들도 쓰러집니다.
‘사람에게 의리 빼면 시체’ 라고 말하던 세상이 있었지요.
의리란 뜻은 ‘사람관계에서 마땅히 지켜야 할 도리’로, 여기엔 사람이 갖춰야 할 덕목이 다 녹아져 있죠.
가난은 견뎌내기 어려운 것임을 경험한 세대가 모이면 그래도 그때가 좋았다고 반추합니다.
의리가 사라진 곳에 먹잇감을 놓고 으르렁 대는 동물세계가 어른댑니다.
사람 사이 흐르는 체온 대신 물질을 향한 충혈된 눈빛만 섬뜩하니 사람은 없고 인간만 남아 보입니다.
다시 사전을 봅니다.
‘인간’이란 단어의 기본설명 뒤로
‘사람의 모습은 하고 있되 사람답지 못하다는 뜻.’을 추가하고 예문도 달았군요.
“저 인간이 한 짓을 생각하면 돌아버리겠어.”
너무도 흔히 듣는 슬픈 말이 됐습니다.^^~(근심)
- 이관순의 에세이 중에서 -
*오늘도 당신은 좋은 일만 있을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