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d가 세상의 신이 되어가고 있는 이 시점에서 이런글 하나쯤은 올려야 겠다고 생각했습니다.
god팬들께 진심으로 사죄?의 말씀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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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온글>내용이 조금 길더라도 끝까지 읽어 보세요.
나이를 떠나서 god나 또는 god의 노래를 좋아하는 분 많으시죠.
저도 god의 노래를 좋아 하지만, 우리들이 미쳐 생각하지
못했던 것을 "옳다, 그르다"를 판단하기 전에 한번쯤은
생각해 봐야 할 것 같아서 퍼왔어요.
god를 보며 이 시대를 읽어 보고자 한다.
왜 우리는 "god" 좋아하는가?
기독인으로서 우리는 무엇을 조심해야 하는가? 등에 대해서
잠깐 살펴 보고자 한다.
그들이 정한 "god" 이름은 "groove over dose" 로서
"내 안에 있는 또 하나의 나" 무한한 가능성을 지니고 있는
그 숨겨진 자아를 말하고 있다.
하지만 이것은 그들만의 생각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조심스럽게 해 본다.
단어 하나씩의 의미를 볼 때 먼저 groove이란 단어는
"흠" "관례" "태도"정도의 뜻을 가지고 있으며
"dose"는 "약" "혼합물" "임질의 감염" 정도의 뜻이다.
이 단어들을 합쳐서 뜻을 아무리 해석해 보아도 그들이 말하는
god는 나오지 않는다는게 나의 생각이다.
이 단어를 가지고 해석을 해 본다면 "약의 틈"
"혼합물 넘어의 관례"등이 될 것이다.
심리학에서 "내 안에 있는 또 하나의 나"라는 존재를 설명하는데
그 단어는 "ego" 라는 단어이다. 여기서 ego는 "자아"를 가리키는데
심리학적으로 "내 안에 있는 자기 자신"을 가리킨다.
그렇다면 "god"라는 단어의 다른 뜻은 없는가?
기독교에서 "God" 는 하나님을 가리킨다.
하지만 하나님이란 단어는 대문자 "G"를 사용한다
그 이유는 사람 이름이나 대명사에는
대문자를 사용하는 법칙이 있기 때문이다.
소문자를 사용한 신도 역시 존재한다.
그 신은 바로 "우상" "잡신"을 말하는데
이때 사용되는 단어가 "god" 이다.
그렇다면 그들은 진정 잡신을 말하는 것일까?
이름을 정리하는 것은 참으로 중요하다.
그 이름 안에는 그들의 가치와 철학등이 담겨져 있기 때문이다.
그들의 방향이 정해지며 그들이 추구하는 것들이
잠재적으로 남아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god가 만든 공식 홈페이지에 들어 간 본적이 있다.
그들은 첫 화면에 철학자 니체의 말을 인용하여
이런 첫 화면을 제공한다.
1884년"신은 죽었다."(God is dead) 그리고 2000년
god가 다시 돌아 왔다라는 주요 내용이다.
참으로도 웃기는 내용이다.
니체가 말한 신은 죽었다라는 내용을
이해하지 못한체 사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들이 진정으로 god라는 이름을
"내 안에 있는 또 하나의 나"라 한다면 왜 그들은
니체의 말에서 나온 하나님을 사용하였을까?
우리는 생각해 보아야 한다.
나의 추측으로는 기독교인들을 의식했다는 것이다.
미국엔 안티예수 즉 적그리스도주의자라고 활동하는 가수들이 있다.
그들은 예수그리스도를 인정하면서도 사탄을 찬양하는
신종교의 의미를 지니고 있다.
우린 그들과 같은 적그리스도를 뉴에이지(new age)라고 한다.
그들은 그런한 모습을 감춘것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한국에서는 아직까지 그러한 뉴에이지가 활동을
쉽게 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god라는 이름이 자신들이 말하는
"내 안에 있는 또 하나의 내가 최고를 만든다" 할지라도
이것은 성서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의미이다.
내 안에 있는 내가 최고를 만들 수 있는가? 아니다.
과거 조성모가 리메이크해서 불른 "가시나무"에 이런 가사가 있다
"내속에 내가 너무나 많아" 그 노래는 자신의 부족한 모습을
담고 있으며 자신 안에는 자신도 어떻게 할 수 없는 자아가
있다는 것에 대해서 힘들어 한다.
자기 자신을 자기 자신이 다루는 것이 가장 어렵다고 한다.
요즘 인기몰이를 하고 있는 도울은 자신의 수련과 연단을 통해서
자기 자신을 극복할 수 있다고 논어를 강의한다.
불교에서도, 힌두교에서도 마찬가지이다.
하지만 기독교에서는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오직 주님만이 우리의 모습을 가능케 하신 분이라는 것이라는 것이다.
자기 자신의 힘보다도 예수님의 힘, 성령의 법 만이
우릴 움직일 수 있으며 가능케 하신다는 것이다.
그런 성서에 기초하여 본다는 god라는 이름은 성서에 비추어서
그 의미도 그 단어도 다시 생각해야 할 것이다.
왜 이 시대에 사람들은 god를 좋아하는 것일까?
많은 사람들은 그들이 편한 이미지에 착하고,
성실하기 때문, 예의 바르고 정직하기 때문에 그들을
연령에 관계 없이 좋아 한다고들 한다.
그들 자신들도 "우리는 여러분과 똑 같은 사람입니다." 라는
말로 편하게 다가서려고 노력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이러한 편한 god가 인기를 누리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그렇다면 왜 이같은 현상 편한 느낌을 가진 가수가
국민적인 인기를 누리는가를 우리는 신중하게 살펴봐야 한다.
21세기는 사랑이 죽어버린 사회라는 어느 책에서 읽은 적이 있다.
이 구절과 god를 함께 생각해보자면 그들은 사랑이 죽어버린
시대에 나와서 많은 사람들에게 잔잔한 사랑의 감정을
불어주고 있다는 것이다.
사랑이 죽어버린 이 사회에 그들의 제공하는 감동이 많은
사람을 그들의 사람으로 만들고 있다는 것이다.
Hot의 강타가 음주운전으로 그들의 이미지가 한순간에 무너진 지금,
백지영이 포르노 테입을 만들었다는 지금,
주병진이란 연예인이 성폭행 사건으로 시끄러운 지금,
부모를 죽이고 형제를 간음하고 친구를 속이는 지금,
그들의 모습은 대중매체를 통해서 많은 사람들에게
희망과 소망으로 다가오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점을 우리는 주의 깊게 살펴 보아야 한다.
그들이 가면 모든 것이 해결이 된다.
기울어져 가는 가정도 다시 일어나며,
힘든 청소년들고 다시 힘을 얻는다.
그리고 그들은 고백한다. "god 형, 오빠 감사해요" 라고..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예수그리스도가 있어야할 그 곳에 god가 있다는 생각이 든다.
왜 일까? 왜 예수님이 그 자리를 내 비우신 것일까?
그것은 바로 우리의 모습 때문일 것이다. 예수님은 우릴 위해
십자가에 죽으시면서 그 많은 능력과 그 의무와 권리를
우리에게 주셨다. "형제 자매를 사랑하라.."
하지만 우린 그 권리와 의무를 책임지려하지 않는다.
그 권리와 의무를 멀리하며 외면한다.
그때 바로 god라는 새로운 이름이
이미 예수님의 자리를 차지하고 만 것이다.
이 시대를 영적으로 바로 보자.
god의 노래를 듣고 즐기며 그들을 좋아하는 것
참으로 좋은 문화이다. 하지만 우린 기억해야 한다.
이 사회 안에서 god에게 예수님의 자리를 빼앗겨서는 안된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