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 가까운 친척에게 좋은 일이 생길 때
기뻐하는 게 아니라 오히려 시기하고 질투하는 못된 심리를 꼬집는 속담이다.
근대 이전의 가부장적 사회에서는 자식이 여럿이어도
부모의 재산을 모두 장남에게 물려주었다.
이에 대해서 동생들이 불만을 갖지 않았던 이유는
장남이 동생들의 생계와 교육을 책임졌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이렇게 경제 공동체인 가족이기에 "형제가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는
속담은 생길 수 없었으리라.
그러나 사촌의 경우 어릴 때 한 동네에 살면서 치고받고
함께 뒹굴고 놀았다고 해도 장성한 후에는 경제적으로 '남'이 된다.
내가 어려움에 처할 때 사촌이 나를 어느 정도 도울 수는 있겠지만 한계가 있다.
가까운 사촌은 나와의 비교대상이 되기도 하기에
사촌의 과도한 성공은 나에게 열등감을 줄 수 있다.
나와 무관한 빌 게이츠가 땅을 사면
배가 아프지 않지만,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픈 이유다.
현대는 '자기 PR 시대'라고 한다. PR은 '홍보'를 의미한다. 현대 사회에서는
자기를 홍보하고, 자랑하는 것이 흠이 아니라 권장할 일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과거 우리나라에서는 어떠했는가?
누군가가 과도하게 자신을 자랑하면,
'팔불출(八不出)이라고 부르면서 흉을 보았다.
팔불출의 어의(語義)에 대해 여러 가지 해석을 하지만,
필자가 알기로는 '남에게 내보이지(出) 말아야(不) 할 것
여덟 가지(八)를 내보이는 어리석은 사람'을 의미한다. 그 여덟 가지란
①자기 자랑, ②아내(배우자) 자랑, ③자식 자랑, ④학벌 자랑,
⑤가문 자랑, ⑥재산 자랑, ⑦형제 자랑, ⑧친구 자랑'의 여덟 가지다.
과거 우리사회에서는 남과의 대화에서 이런 여덟 가지 가운데
어느 것을 드러내면서 자랑하는 사람을 '좀 덜 떨어진 사람'이라고
간주했기에 이를 숙어화 하여 '팔불출'이라고 수근거렸다.
대화 중에 누군가가 팔불출 가운데 어느 하나를 내보일 경우,
이를 들은 상대방은 겉으로는 칭송하겠지만,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라고 하듯이, 내심 불편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주변 사람들과 우의 깊고 돈독한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서
팔불출의 일들을 가능한 한 내보이지 않으려 했다.
혹시 드러난다고 해도 낮추고 숨기고 물러서는 것이 예의였다.
참으로 섬세하고 사려깊고 수준 높은 도덕 의식이었다.
이렇게 팔불출의 일들을 남에게 내보이는 것도 좋은 행위가 아니지만,
이를 접하고서 심기가 불편한 것 역시 올바를 마음이 아니다.
자비희사(慈悲喜捨)의 사무량심 가운데 회심(喜心)은 누군가에게
좋을 일이 생겼을 때 함께 기뻐하는 마음을 의미한다.
사촌이 땅을 샀다고 할 때 함게 기뻐하는 마음을 의미한다.
사촌이 땅을 샀다고 할 때 질투하는 마음이 든다면 즉시 참회하고서,
기뻐하는 마음으로 전환해야 한다.
우리는 불교의례를 마무리할 때 사홍서원(四弘誓願)의 다짐을 발한다.
사홍서원의 사홍서원의 첫 구절인 '중생무변서원도(衆生無籩誓願度)'는
"한량 없는 중생을 모두 제도하겠다."는 의미다.
성불을 지향하는 보리심의 다짐이다.
그런데 사촌이 땅을 샀을 때 배가 아프다면 이는 말뿐인 거짓 다짐이리라.
티벳불교 겔룩파의 교과서,《보리도차제광론》에서는
"그 마음에 질투심이 있다면 '모든 중생의 성불을 원한다.'는
그의 보리심은 속임수에 불과하다."고 가르친다.
진정한 불자라면 사촌이 땅을 샀을 때 기쁜 마음을 내야 하리라.
속담 속에 담은 불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