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2001년 우리는 KBS 드라마 ‘명성황후’에서 조수미의 노래
<나, 가거든>을 들으면서 주먹을 불끈 쥐고 통곡을 한 사람이 많을 것입니다.
131년 전인 1895년 오늘(8월 20일)은 ‘을미사변’ 곧 대한제국 국모 명성황후가
일제의 ‘여우사냥’이란 음모에 의해 처참하게 시해당한 날입니다.
청ㆍ일 전쟁의 승리로 기세가 올랐던 일본은 명성황후를
조선 침략에 가장 큰 걸림돌이라고 생각하고 거침없이 제거한 것입니다.
사건 당시 서울 현지에서 이를 지휘한 일본 쪽 우두머리는 부임한 지 37일밖에 안 되는
일본공사 미우라(三浦梧樓)였으며,
그 하수인들은 서울 주둔의 일본군 수비대와 낭인배 등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때 미우라는 대원군이 사건을 주모하였으며
황후의 시해는 조선군 훈련대가 자행한 것이라고 우겼습니다.
그리고 지금까지도 일본은 이 천인공노할 만행을 인정하지도,
사과하지도 않았는데 그것은 시작일 뿐이었습니다.
이후 저들은 명백한 증거가 있는 일본군성노예에 대해서도,
일제강제동원에 대해서도 입을 다물고 있습니다.
▲ 호리구치 구마이치가 명성황후를 시해했다는 내용의 편지를
고향 친구에게 보냈던 편지봉투, 사진에는 9통으로 보이지만,
아래쪽 왼쪽 2개가 1개로 되어 있어 모두 8통이다. 2021.11.16. 아사히신문 갈무리
그런데 지난 2021년 11월 16일, ‘명성황후 시해사건’과 관련된 편지가
일본에서 발견되었다고 아사히신문이 크게 보도했습니다.
이날 공개된 편지는 단순한 시해사건 내용이 아니라,
‘자신들이 궁궐에 들어가 명성황후를 시해했다’라는 자백의 편지라 더욱 큰 충격을 주었지요.
‘자신들이 왕비를 죽였다’라고 자백한 사람은 당시 조선의 영사관보였던 호리구치 구마이치(1865~1945)입니다.
이때 발견된 편지는 호리구치가 자신의 고향에 사는 친한 친구이자 한학자인
타케이시 사다마츠에게 1894년 11월 17일로부터 사건 직후인 1895년 10월 18일까지 보낸 8통의 편지입니다.
이런 명백한 물증이 있음에도 일본은 아직도 ‘명성황후 시해’ 사실을 인정하지 않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