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농정을 활성화하려면 지역 거버넌스를 강화하고 농림사업 투·융자 방식을 개선해야 하며, 지방농정 활성화를 위한 전담부서도 필요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지방자치가 본격화한 지 21년이 지났지만 지방농정은 여전히 초보적 단계라는 평가가 나온다. 농림사업을 기획하고 예산을 배정하는 역할은
여전히 중앙정부의 몫이고, 지방정부는 중앙정부가 제시한 매뉴얼에 따라 국고보조사업을 이행·관리하는 수준에 머물러 있는 것이다. 이러한 지방농정을
활성화하기 위해서는 지역 거버넌스를 강화하고, 농림사업 투·융자 방식을 개선해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또 지방농정 활성화를 위한
전담부서가 필요하다는 의견도 나온다.
◆지방농정 거버넌스 활성화해야=거버넌스란 ‘국가가 정책을 만들고 실행하는 모든
과정’을 말한다. 아직 통일된 개념 없이 시대 변화에 따라 다르게 정의되고 있지만, 어떠한 현안에 정부·시민단체·민간 등 다양한 주체들이 협력해
대응하는 것이라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지방농정 거버넌스를 활성화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농민의 역량을 키워 이들을 민간의 농정
주체로 육성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그래야만 지자체 등과 대등한 위치에서 이들을 견제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수십년간 정책의 대상자로만
살아온 농민에게 ‘지방농정에 능동적으로 참여하라’ ‘사업을 주도해보라’는 주문을 하기가 쉽지는 않다.
따라서 농민의 거버넌스
참여를 위해서는 교육이 선행돼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마상진 한국농촌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민주주의가 무엇이고, 지방자치가 무엇인가에
대한 개념 이해부터 시작해서 ‘지방자치법’ 등에 의해 보장되는 다양한 참여 방식에 대한 이해가 선행돼야 한다”고 밝혔다.
각
지자체도 지방농정은 농민의 참여를 기반으로 할 때 더 활성화될 수 있다는 인식을 갖고, 농민의 참여를 확대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구축해나가야
한다는 지적이다. 전남 함평군 등 일부 지자체가 제정한 ‘주민참여 기본 조례’가 좋은 사례다.
◆농림사업 투·융자
방식 개선 필요=지방농정 활성화를 위해서는 기존 농림사업 투·융자 방식도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즉 지방정부의 자율성 확대를 위해
예산 지원방식의 전환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포괄보조 지원방식의 범위를 일반사업으로 확대하는 것도 좋은 방안이며, 농림축산식품사업시행지침으로
대표되는 매뉴얼 방식 사업을 사업의 성격·내용 및 영향 등을 고려해 다양한 방식으로 지원할 수 있는 방안도 고려돼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지자체의 농림 투·융자를 위한 예산이 보다 효율적으로 사용돼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다시 말해 쌀 직불금과 같이 국고
지원 100%인 사업에 대해 별도의 지방비를 편성해 지원하는 것이나, 비료 위주의 투입재 지원사업 등은 지자체 농림 예산의 비효율성을 초래한다는
것이다.
박준기 농경연 연구위원은 “쌀 직불금 지원은 지방정부의 역할에서 벗어나며, 투입재 지원은 농산물 가격 왜곡을 초래하는
부작용이 있으므로 지원을 최소화 혹은 중단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밝혔다.
시·군이 추진하고 있는 농림 투·융자사업 중 소액사업과
유사사업의 통폐합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나온다. 한 연구에 따르면 시·군의 농림사업 중 1억원 미만 사업 비중이 70% 이상에 달한다. 이는
행정비용 유발과 효율성 저하 등의 문제를 일으키고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중앙정부와 지방정부간 원활한 소통도 중요하다는
의견이다. 즉 지방정부의 예산 일정에 대한 고려 없는 중앙정부의 농림사업 추진으로 지방정부가 어려움을 호소하는 사례가 있어 양측의 긴밀한 협의와
의견 교환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지역맞춤형 농정지원 전담부서 필요성도 제기=지방농정 활성화를 위해서는 지역맞춤형
농정사업 등을 담당할 전담조직을 농림축산식품부 내에 설치하고, 중장기적으로는 이 전담 조직과 협력할 수 있는 지방조직도 운영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이 나온다. 이 조직으로 하여금 각종 농정사업 추진 때 농식품부 사업부서간 조정 역할을 하도록 하고, 지자체와의 파트너십도 구축하자는
것이다.
길청순 지역농업네트워크 연구원은 ‘지역맞춤형 농정지원 체계 도입 방안 연구 보고서’에서 “지방조직은 농식품부 내
전담조직의 정책 파트너로서 기존 농업 관련 기관(농업기술센터·한국농어촌공사 등)과 연계하거나 권역별 농정국의 형태로 신설하는 방안을 고려할 수
있다”고 밝혔다.
일본 지방농정국이 이러한 전담조직 성격이다. 일본도 지방의 실정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채 농정을 수립·집행하는
데 대해 비판이 있었고, 농림수산성은 이에 대한 대응으로 1963년 지방농정국을 설치했다. 지방농정국은 전국을 7개의 권역으로 나눠 설치했으며,
종합식료국·소비안전국·생산국·경영국·농촌진흥국·대신관방 등으로 구성돼 있다.
지방농정국이 도입되기 이전에는 농림수산성의
농지과·식료과 등 각 과가 개별적으로 지방을 상대로 농업정책을 추진했으나, 도입 이후 지방의 현청이 농림수산성을 직접 상대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권역별로 농업 상황이 다르기 때문에 농정국에 따라 중점을 두는 업무가 다를 수 있다는 설명이다. 예를 들어 관동농정국은
대도시인 도쿄 인근에 위치해 있기 때문에 식품표시 문제, 동북 지역은 낙농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