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송월을 실은 북한 공연단을 태운 만경봉호가 묵호항을 떠나는 것을, 나는 동문산 자락의 동해바다가 내려다 보이는 내 아파트에서, 막걸리를 마시면서 내려다 보았다.
그날은 난 가면을 쓰고 있지 않았다. 복면달호가 아니었다.
평창 올림픽 실사단이 강릉에 오는 날, 난리가 났다. 시청에서는 통장 이장을 동원해서 실사단을 환영하는, 마치 북한의 관중 동원을 닮은, 손에는 깃발을 들고 있는 사람들 속에서. 나는 복면달호가 되어 뛰쳐나왔다.
시청직원들에게 제압 당하여 끌려갔다.
그 후로 강릉에서의 내 별명은 복면달호가 되었다.
창피해서나 겁이나서 복면을 쓴 것은 아니었다. 난 강릉에서 태어나 고교까지 강릉에서 다녔고, 친척들도 전부 강릉에 거주하는 토박이 중에 토박이다.
내가 복면달호가 된 이유는, 오로지 친척들이나 친구들을 통해 아버지에게 알려질 것이 두려웠기 때문이었다.
난 대단한 강심장이지만, 아버지에게는 순한 양이었다.
내가 동계올림픽을 반대한 이유는, 공적인 세금이, 공적으로 쓰여지지 않는 다는 우려였다.
무식한 인간들은, 공적인 것을 강조하면, 빨갱이고 좌파라 생각하고, 사적인 자유를 얘기하는 것은 보수 우파 윤석열 같은 양아치 들이다.
동계올림픽을 치루기 위해서, 강릉의 야산을 허믈어서 경기장을 지어야 했다.
그 순간은 공적인 세금이 사적인 대기업 건설사로 이동하는 순간이다.
물론, 사적 업체에 정부 투자가 되더라도, 결과가 지극히 공적이라면 문제가 될 것이 없으나, 동계 올림픽이 끝나고, 경기장들은 골치 아픈 존재가 되었다. 매년 그것을 유지 보수 하는데 수억의 지방비 국비가 들어가고 있다. 아마, 그것들이 허물어지기 전까지 영원히 매년 써야 할 것이다.
그것은 분명히 공적인 세금이 잘못 쓰여지는 것이다.
10 여년도 더 전에, 평창 올림픽에 반대하여, 올림픽 조사단이 강릉을 방문할 때, 환호 짓는 사람들 틈에서 홀로 반대를 외치다가, 강릉시 공무원들에게 개 끌리듯 끌려 간 적이 있을 정도로 평창 동계 올림픽은 이미 나의 관심 밖이었다.
그리고는 까맣게 잊고 묵호항에 생선 장사를 하러 왔는데, 뜻 밖에 반갑지도 않은 동계 올림픽의 흔적을 보게 된 것이다.
그런데, 왜 내 가슴이 그토록 설랬는지. 아무리 그 이유를 곰곰히 생각해 보아도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국제올림픽위원회(IOC)가 2018년 평창 겨울올림픽과 2020년 도쿄 여름올림픽의 경기장을 한국과 일본이 서로 나눠 치르는 방안을 제안했다.
건설비용은 막대한데 사후 활용 가능성은 적은 봅슬레이·루지·스켈레톤 등 썰매 종목의 경기장을 다른 나라의 기존 시설로 돌리자는 것이다.
올림픽위원회는 일본 나가노 등 썰매 종목 경기장 후보지 12곳 명단을 한국에 보내고 1~2월 중 직접 방문해 세부 내용을 협의할 방침이라고 한다.
이런 방안을 내놓지 않으면 안 될 정도로 올림픽 개최를 둘러싼 재정문제는 심각하다. 올림픽 개최 도시는 막대한 경기장·기반시설 공사비와 산더미처럼 불어나는 사후 유지·운영 비용에 허덕이고 있다.
겨울올림픽을 치른 러시아 소치가 500억달러의 적자를 기록하는 등 올림픽 유치 도시 대부분이 빚더미에 올라 있다.
2022년 겨울올림픽도 유력 도시들이 유치를 포기한 상태다. 도쿄도도 경기장 신축 계획을 일부 취소했다고 한다.
평창은 상황이 더 열악하다.
강원도의 부채규모는 지금도 6000억원에 육박한다. 그런데도 올림픽 관련 시설에는 사업비의 70~75%를 국가가 부담하게 한 특별법 때문에 사전 환경성 검토나 예비 타당성 조사도 없이 건설 투자가 이뤄지고 있다.
그런 투자 가운데 과잉·중복 투자는 왜 없겠는가. 경제성을 기대하기 힘들다는 썰매경기장도 올해 하반기에 1200억원 규모로 이미 착공된 상태다.
이들 비용은 결국 국민이 세금으로 부담하게 된다. 경기장마다 매년 수십억원 이상일 것이라는 유지·관리 비용도 갈수록 늘어날 것이다.
올림픽위원회의 제안은 권고일 뿐 강제성은 없다. 이미 경기장 건설을 시작했으니 때늦은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유지·관리 비용과 장래 활용도 등을 생각하면 공사 중단에 따른 매몰비용과 보상금, 위약금 등을 부담하더라도 지금 중단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더 나은 선택일 수 있다. 국민 의견을 충분히 수렴하되, 예산을 절감하고 재정압박을 최소화하자면 적극적으로 대안을 모색하는 게 옳다.
그런데 복면달호인 나는 2002년 올림픽의 즐겁고 아름다운 추억이 생생하다.
2002년의 주역들이 지금도 방송을 장악하고 있는 것은, 공적인 세금이 지금도 여전히 사적인 곳으로 줄줄 새고 있다는 명백한 증거이다.
그리고 2002년은 태극기를 극도로 싫어하는 아나키스트 장성열이 유일하게 애국심에 몸소리 치던 해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