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르웨이 군대가 왔으나, 그 수는 겨우 천에도 미치지 못했다.
그러나 잉글랜드 또한 현재 동원할 수 있는 병력이 간신히 천을 넘기는 정도였다.
이는 아직 점령지 잉글랜드의 문화와 점령 페널티가 풀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사실상 노르망디 본토에서 군대를 동원하는것이 고작인 상황이었다.
그 와중에, 노르웨이 왕은 또다시 군대를 모아 미들섹스를 포위했다.
둘 다 싸울 여력이 거의 없음에도, 이 정신나간 전쟁을 계속 할 작정인가.
결국 윌리엄1세는 슬슬 바닥을 보이는 국고를 털어 스위스 용병대를 고용하기로 결정하셨다.
그 후로도 수많은 전투가 있었으나, 대부분은 도저히 왕국과 왕국 간의 전쟁이라고는 볼 수 없는 전투였다.
윌리엄 1세는 한 전투의 보고를 듣고는 "이 전쟁이 대체 왕국 간의 싸움인지 백작 둘이 싸우는지 모르겠다"
라고 말하셨다.
이 말 때문이 이 전쟁은 잉글랜드 백작전쟁이라고 불리게 된다.
이후로 가끔 잉글랜드의 왕들은 자신을 가끔 잉글랜드 백작이라고 칭하는 농담에 가까운 전통이 생겼다.
전쟁은 노르웨이 왕이 바뀌고서도 4년 넘게 계속되었다.
그러나 여전히 노르웨이는 잉글랜드의 땅 한뼘도 차지하지 못했다.
결국 시간은 잉글랜드의 편이었고,
노르웨이는 패배를 인정했다.
그러나 두 왕국 모두 지칠 대로 지친 상황이었다.
하지만 윌리엄은 쉬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빨리 행동하지 않으면, 더 큰 위기가 오는 것을 알고 계셨기 때문이다.
바로 프랑스 왕을 암살하는 것이었다.
옛 주군 필립은, 윌리엄 1세가 독립함으로써 그의 땅 전체에 대한 강한 클레임이 있었다.
현재의 상황에서, 프랑스가 침공하는 순간, 잉글랜드는 이미 진 것이나 다름없었다.
간신히 정복 페널티는 사라졌지만, 아직 문화 패널티는 남아있고,
프랑스의 강력함은, 설령 잉글랜드가 멀쩡해도 질 가능성이 높을 정도였다.
따라서 프랑스 왕의 암살은 최우선순위였다.
다행히도 암살은 성공, 발각되는 일도 없었다.
아직 weak 클레임이 있긴 하지만, 저들이 당분간 잉글랜드를 노리지는 못할 것이다.
평화가 찾아오자, 윌리엄 1세는 영국 전역의 개발을 지시하셨다.
약혼자가 성인이 되어, 윌리엄 1세는 재혼하셨다.
지참금은 잉글랜드 개발에 큰 도움을 줄 것이다.
왕국이 안정되자, 윌리엄 1세는 계승법을 변경,
가장 능력 있는 자가 왕위에 오를 수 있는 선거제로 바꾸었다.
그러나 투표를 할 수 있는 공작은 현재 잉글랜드에 하나도 없다.
따라서 사실상 윌리엄 1세 마음대로 후계 변경이 가능해진 것이다.
당장은 큰아들 아르날드가 후계자로 지명되었다.
이렇게 내정을 다지며 시간을 보내는 동안, 카톨릭 세계에 큰 일이 벌어졌다.
교황 성하께서 성지 예루살렘을 되찾기 위한 십자군을 선포하신 것이다!
기독교 세계의 일원으로써마샬 +2의 크루세이더 트레잇을 위해십자군을 무시할 순 없는 노릇.
윌리엄 1세는 있는 군대 없는 군대 쥐어짜, 6천의 군대로 예루살렘에 도달했다.
그러나 당시 파티마조 이교도들은 강했다.
십자군은 결국 큰 손실을 보며 패배하고 만다.
그 와중에 왕실에 기쁜 일이 벌어졌다.
새 왕비가 천재를 낳은 것이다.
왕은 이 아이를 헨리라고 이름지었다.
헨리는 즉시 큰아들을 제치고 후계자에 지명되었다.
그리고 4년 후, 결국 십자군은 실패한다.
윌리엄 1세는 첫 전멸 후로, 이번 십자군의 실패를 예견하고 군대를 보내지 않았다.
첫댓글 역시 브리튼의 왕은 모에모에해.
그런데 눈에 안대 같은 걸 하셨네요. 뭘까요ㅡ
부상당하면 저렇게 됩미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