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생을 사서 한다
베품
"고생을 사서 한다."
"여러 정황을 봐서 스스로 어려운 일을 맡아서 고생한다."고 푼다.
여기서 말하는 '사서'는 "값을 치르고 물건을 산다."고 할 때의 '사다'에서
파생된 말이다. 하지 않아도 될 고생을 굳이 자청해서 한다는뜻이다.
"젊어 고생은 사서도 한다."거나 "초년고생은 사서라도 한다."는 속담에도
'고생'이나 '사다'와 같은 단어가 들어가 있긴 하지만, 그 뜻은 약간 다르다.
"힘들고 고생스러운 젊은 시절을 겪을 경우
그것이 자량이 되어 성공적인 인생을 꾸릴 수 있다."는 뜻이다.
젊어서 고생이 많았던 사람이 이를 잘 극복할 경우
나중에 남보다 더 많은 돈을 벌고, 더 높은 권력을 누리고,
더 큰 명예를 날리게 되더라도 세속적 격려의 말이다. 사실 그렇다.
대통령이나 지금 이 시대, 우리사회의 젊은이들 사이에서는 이 속담이
"젊어서 고생하는 사람은 평생 고생한다."는 냉소적인 격언으로 탈바꿈하여
회자되고 있다. 신자유주의적 경제 운용으로 빈익빈,
부익부가 심화되면서 계층 간 장벽이 점차 높아지기 때문일 것이다.
"고생을 사서 한다."는 속담에서 말하듯이 사서 고생하는 불교수행이 있다.
바로 대승보살도의 수행이다. 끝없이 탄생과 죽음을 되풀이하는 고통의 윤회에서
벗어나서 아라한이 될 수 있는데도 불구하고, 이를 무한 세월 뒤로 미루고 윤회의
세계에 머물면서, 자신을 희생하고 항상 남을 돕고 살아가는 보살도의 수행이다.
불전에서는 3아승기 대겁과 이에 덧붙여 100겁의 세월 동안 보살도를 닦아야
성불한다고 가르친다. 3아승기 대겁 동안 남을 도우며 인연복(因緣福)을
지어서 그 마음에 선업(善業)의 종자가 가득한 보신(報身)의 자량을 쌓는다.
교화대상을 넓히기 위한 복덕의 축적이다.
그 후 나머지 100겁의 세월 동안 32상 80종호를 갖춘 화신(化身)의 성숙을 위한
자량을 쌓아서 비로소 부처로 현신할 수 있다는 것이다. 무한 정진의 보살도다.
세친(4~5세기)이 저술한 『아비달마구사론』에서는 불교 수행을
세 단계로 나눈 후 각 수행단계의 목표에 대해 다음과 같이 노래한다.
"소인배〔하사〕는 갖가지 방편을 통해 자신의 쾌락을 추구한다.
중사는 쾌락이 아니라 고통의 소멸만을 추구한다.
왜냐하면 쾌락의 본질은 고통이기 때문이다. 가장 뛰어난 자〔상사〕는
자신이 고통을 겪더라도, 남들에게 행복만 있고 고통이 전혀 없기를 추구한다.
왜냐하면 그는 남들의 고통을 보고서 고통스러워하는 자이기 때문이다."
요컨대 하사는 윤회 내에서 향상을 추구하고,
중사는 윤회에서 벗어나는 해탈을 추구하며, 상사는 고통의 윤회 속에
그대로 머물면서 오직 남들의 행복만을 추구하면서 살아간다.
그 목표를 드러내면 하사도는 세간도, 중사도는 나한도,
상사도는 보살도라고 바꿔 쓸 수 있을 것이다. 『아비달마구사론』
이 소위 '소승불교의 문헌이긴 하지만,
대승적 보살도인 상사도를 불교수행의 최정상에 놓는 것이다.
『구사론』의 이러한 삼사도(三士道)의 조망은 티벳불교의 대 학장(鶴匠)
쫑카빠(1357-1419) 스님이 저술한 『보리도차제론』의 골격이 되었다.
삼사도에서 가장 최고의 수행은 남들의 행복을 위해서 고생을 사서 하는 것이다.
나약함일 수도 있는 '수동적 착함'이 아니라, 대승보살의 '능동적 선(善)'이다.
불교 속에 담은 불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