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Daum
  • |
  • 카페
  • |
  • 테이블
  • |
  • 메일
  • |
  • 카페앱 설치
 
카페정보
道論道談
 
 
 
 

친구 카페

 
 
카페 게시글
자유게시판 죽음을 끝없이 의식하였던 헤밍웨이
이강 추천 0 조회 197 14.11.12 14:27 댓글 14
게시글 본문내용
 
다음검색
댓글
  • 작성자 14.11.12 14:31

    첫댓글 이제 나방이 아닌 인간은 어떻게 죽음을 받아들이고 반응할지 볼까요. 유명한 킬리만자로의 눈 입니다. 이 단편은 번역하기가 까다로워 누가 번역을 잘했는지 알 수 없을 정도로 국내에 수십명이 번역하였습니다. 줄거리는 단순합니다. 부인과 함께 아프리카 사냥 여행을 하는 도중 남자가 다리에 상처를 입었고 소독을 하지 않는 바람에 괴저병으로 다리가 썩어 나가면서 죽음에 대해 분노하고 짜증을 내다가 서서히 죽음이 밀려오니 온갖 무상했던 옛일이 뭉개뭉개 떠오르는 것입니다.

  • 작성자 14.11.12 14:36

    죽어가는 남자 해리는 헤밍웨이 그 자신입니다. 죽어가니 아파죽겠다가 나중에 과거일이 무상하게 환영처럼 의식속에 나부낍니다. 전쟁, 도박, 연애, 바람끼, 상류계층의 생활.....그것이 자신을 파멸시켰고, 자신이 할 수 있는 최고의 글쓰기 능력도 다 망가지고, 허세로 허풍만 치듯이 인생을 다 소진해 버렸다는 자각이 물밀듯이 밀려 옵니다.

  • 작성자 14.11.12 14:40

    헤밍웨이는 전쟁에서 끔직하고 참혹한 장면을 많이 보았나 봅니다. 폭탄이 터져 건장한 장교의 내장이 터져나와 철망에 걸려 제발 죽여 달라고 하소연 할 때 자신의 모르핀 약도 준 이야기 하며, 술과 여자와 도박에 빠져 허랑방탕하게 보냈던 젊은날의 만행, 이 여자 저 여자와 섹스도 많이 했는데, 엉덩이 뒤에 베개를 가져다 대지 않아도 되는 여자 이야기도 나오죠. 저도 스물살 때 이게 뭔 뜻인지 곰곰히 생각했던 적도 있습니다.

  • 작성자 14.11.12 14:42

    마지막 남은 작가로서 글쓰기도 나중에 써지 뭐 하면서 내팽겨쳤지만, 죽음의 목전 앞에 서니, 그것도 다 변명이었고 자신에게 그런 능력조차 있었나 갈등과 회의도 합니다. 마지막이 압권인데, 비행기가 날아와 그를 구조하고 그는 비행기를 타고 햇빛 속에서 눈부시게 환히 빛나는 킬리만자로 산의 눈을 보고, 자신이 마지막 가야 할 곳이 그곳이라는 걸 직감하죠.

  • 작성자 14.11.12 14:44

    그런데 알고보니 이게 생애 최후의 환상이 펼쳐진 자기 환영에 불과 합니다. 이미 죽음은 자기 목 끝에 달랑 붙어 있었죠. 그래서 허무하게 무릅꿇고 맙니다. 이 소설에 나오는 모든 상황과 물건은 전부 죽음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 작성자 14.11.12 14:49

    존 레논과 폴 메카트니 사이 처럼, 헤밍웨이와 피츠젤러드 사이도 여러권 책이 나왔을 정도로 괴이하죠. 피츠젤러드는 헤밍웨이의 잠재력을 알아보고, 그를 도와주고 돈도 주고 프로모션도 많이 하고 했습니다. 말하자면 헤밍웨이는 신세를 많이졌지요. 그런데 헤밍웨이는 죽을 때까지 피츠젤러드 욕을 합니다. 남자가 말이지 계집애 처럼 생겨 쳐 먹어가지고, 여자처럼 징징 짜기나 하고 글도 계집애처럼 잉잉 울듯이 쓴다고.....죽을 때까지 뒤로 욕했다고 합니다.

  • 작성자 14.11.12 14:52

    그런데 여기에 묘한 정신분석 이야기가 있습니다. 남자처럼 억세고 다부지게 용감하게 살아야 한다는 헤밍웨이가 정작 자기 내면에는 여자처럼 여자같은 모습이 더 강하게 작용하고 있었다는 것이죠. 따라서 그가 용감한 척 했던 모든 남성미는 그 자신의 여성성을 두려워 하였기에, 여자 처럼 보이는 피츠젤러드가 자신의 투사물이 되어 더 혐오했다고 합니다.

  • 작성자 14.11.12 14:54

    피츠젤러드의 글은 감성이 풍부하고 센티멘탈 합니다. 상당히 여성취향의 글쓰기이지요. 그런데 헤밍웨이와는 달리 안과 밖으로 나약하고 여성적으로 살았지만, 심지는 헤밍웨이보다 더 낙관적이고 강인했다고 합니다. 아무튼 친구를 못잡아 먹어서 안달하지 않고서는 살지 못했던 헤밍웨이는 피츠젤러드보다 죽음을 더 두려워 하고 겁냈다는 것이지요.

  • 작성자 14.11.12 14:59

    자나깨나 죽음이 무서운 사람이 죽음을 피해 다나는 게 아니라, 반동형성이 생겨나 헤밍웨이는 전쟁, 사냥, 투우 같이 잔인한 장소를 찾아 다니면서 죽음 옆에 있어야만 죽음의 공포를 이겨냈다는 말은 맞는 것 같아요. 그게 극한으로 치달아서 엽총 자살 하였겠지요. 차라리 내가 그 속으로 뛰어들겠다는 마음으로. 헤밍웨이 역시도 죽음을 냄새나고, 텅비고, 교활하고, 모든 걸 산산히 날려 버리는 걸로 보고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서서히 죽음을 맞이하는 한 남자의 심리적 동태와 정황이 모든 인간이 겪는 보편적 정서와 맞아 떨어지기에, 이 단편은 오랫동안 사랑받는 것 같습니다.

  • 작성자 14.11.12 15:06

    비정한 하드 보일드 스타일의 냉정한 문체, 풍부하고 섬세하며 빛처럼 떨리는 감상적 문체. 1 라운드는 피츠젤러드가 승자였고 2 라운드는 헤밍웨이가 이겼고 3라운드는 다시 피츠젤러드가 역전했습니다. 2라운드에서 피츠젤러드는 떡 실신 할 정도로 몰락했습니다. 그가 죽자 헤밍웨이가 한물간 작가가 되었고, 피츠젤러드가 다시 부상했지요.

  • 작성자 14.11.12 15:08

    무라카미 하루키는 피츠젤러드의 광팬이었는데, 그가 왜 헤밍웨이를 싫어하고 피츠젤러드를 좋아 했을까요. 가슴이 알쏭달쏭 흔들리면서 애잔한 느낌을 자아내는 서정성의 취향 때문일 것입니다. 하루키의 '상실의 시대'에서 대학교 때 피츠젤러드의 '위대한 게츠비'를 읽지 않고 좋아하지 않는 사람과는 말도 나누지 않겠다는 주인공 이야기가 흘러 나오죠.

  • 작성자 14.11.12 15:11

    '위대한 개츠비'에서 나오는 초록의 불빛(the green light)은 하루키의 상실의 시대에서 한 밤중에 희미하게 반짝이는 반딧불로 나옵니다. 그렇고 보니 그게 일본판 '위대한 개츠비'인 것 처럼도 보이네요. 하루키가 헤밍웨이 처럼 써지는 않겠죠. 스타일 차이이지요.

  • 14.11.13 10:37

    지기님 덧글들이 난 더 잼나요. ㅎ

  • 14.11.13 09:50

    요새 영어 올리시는거 아주 좋습니다. 종종 올려주세요.
    피츠제럴드원작 밴쟈민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 란 영화 봤는데 아주 재밌었어요.

최신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