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6월 24일 수요일 (백) 성 요한 세례자 탄생 대축일 이사 49,1-6; 사도 13,22-26; 루카 1,57-66.80
제1독서 <나는 너를 민족들의 빛으로 세운다.> ▥ 이사야서의 말씀입니다.49,1-6 1 섬들아, 내 말을 들어라. 먼 곳에 사는 민족들아, 귀를 기울여라. 주님께서 나를 모태에서부터 부르시고 어머니 배 속에서부터 내 이름을 지어 주셨다. 2 그분께서 내 입을 날카로운 칼처럼 만드시고 당신의 손 그늘에 나를 숨겨 주셨다. 나를 날카로운 화살처럼 만드시어 당신의 화살 통 속에 감추셨다. 3 그분께서 나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나의 종이다. 이스라엘아, 너에게서 내 영광이 드러나리라.” 4 그러나 나는 말하였다. “나는 쓸데없이 고생만 하였다. 허무하고 허망한 것에 내 힘을 다 써 버렸다. 그러나 내 권리는 나의 주님께 있고 내 보상은 나의 하느님께 있다.” 5 이제 주님께서 말씀하신다. 그분께서는 야곱을 당신께 돌아오게 하시고 이스라엘이 당신께 모여들게 하시려고 나를 모태에서부터 당신 종으로 빚어 만드셨다. 나는 주님의 눈에 소중하게 여겨졌고 나의 하느님께서 나의 힘이 되어 주셨다. 6 그분께서 말씀하신다. “네가 나의 종이 되어 야곱의 지파들을 다시 일으키고 이스라엘의 생존자들을 돌아오게 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나의 구원이 땅끝까지 다다르도록 나는 너를 민족들의 빛으로 세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제2독서 <그리스도께서 오시기 전에 요한이 미리 선포하였습니다.> ▥ 사도행전의 말씀입니다.13,22-26 그 무렵 바오로가 말하였다. “하느님께서는 조상들에게 22 다윗을 임금으로 세우셨습니다. 그에 대해서는 ‘내가 이사이의 아들 다윗을 찾아냈으니, 그는 내 마음에 드는 사람으로 나의 뜻을 모두 실천할 것이다.’ 하고 증언해 주셨습니다. 23 이 다윗의 후손 가운데에서, 하느님께서는 약속하신 대로 예수님을 구원자로 이스라엘에 보내셨습니다. 24 이분께서 오시기 전에 요한이 이스라엘 온 백성에게 회개의 세례를 미리 선포하였습니다. 25 요한은 사명을 다 마칠 무렵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너희는 내가 누구라고 생각하느냐? 나는 그분이 아니다. 그분께서는 내 뒤에 오시는데, 나는 그분의 신발 끈을 풀어 드리기에도 합당하지 않다.’ 26 형제 여러분, 아브라함의 후손 여러분, 그리고 하느님을 경외하는 여러분, 이 구원의 말씀이 바로 우리에게 파견되셨습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그의 이름은 요한이다.>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1,57-66.80 57 엘리사벳은 해산달이 차서 아들을 낳았다. 58 이웃과 친척들은 주님께서 엘리사벳에게 큰 자비를 베푸셨다는 것을 듣고, 그와 함께 기뻐하였다. 59 여드레째 되는 날, 그들은 아기의 할례식에 갔다가 아버지의 이름을 따서 아기를 즈카르야라고 부르려 하였다. 60 그러나 아기 어머니는 “안 됩니다. 요한이라고 불러야 합니다.” 하고 말하였다. 61 그들은 “당신의 친척 가운데에는 그런 이름을 가진 이가 없습니다.” 하며, 62 그 아버지에게 아기의 이름을 무엇이라 하겠느냐고 손짓으로 물었다. 63 즈카르야는 글 쓰는 판을 달라고 하여 ‘그의 이름은 요한’이라고 썼다. 그러자 모두 놀라워하였다. 64 그때에 즈카르야는 즉시 입이 열리고 혀가 풀려 말을 하기 시작하면서 하느님을 찬미하였다. 65 그리하여 이웃이 모두 두려움에 휩싸였다. 그리고 이 모든 일이 유다의 온 산악 지방에서 화제가 되었다. 66 소문을 들은 이들은 모두 그것을 마음에 새기며, “이 아기가 대체 무엇이 될 것인가?” 하고 말하였다. 정녕 주님의 손길이 그를 보살피고 계셨던 것이다. 80 아기는 자라면서 정신도 굳세어졌다. 그리고 그는 이스라엘 백성 앞에 나타날 때까지 광야에서 살았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말씀의 씨앗 Semina Verbi: 6.24 성 요한 세례자 탄생 대축일
주님의 길을 준비하는 목소리
성 요한 세례자 탄생 대축일은 온전히 다른 분을 가리키려고 존재했던 한 삶의 신비를 묵상하도록 초대합니다. 오늘의 독서들은 하느님께서 당신이 선택하신 이들을 태중에서부터 부르시고 거룩하게 하시며 파견하심을 보여줍니다.
제1독서에서 주님의 종은 “주님께서는 나를 모태에서부터 부르셨다”(이사 49,1)고 고백합니다. ‘부르심’은 하느님의 주도권에서 시작되는 인격적이고 무상한 소명입니다. 요한이라는 이름도 “하느님께서 은총을 베푸셨다”는 뜻입니다.
이웃들과 친척들이 아이의 이름이 요한으로 정해진 것을 보고 놀란 것은, 그 아이의 삶이 하느님의 뜻에 속해 있음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자기 주장과 성공, 가시적인 인정만을 추구하는 오늘의 시대에 요한은 참된 정체성이 우리가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존재하기 전부터 알고 사랑하신 하느님의 부르심에서 비롯됨을 일깨워 줍니다.
이사야 예언자는 매우 의미심장한 표현을 사용합니다. “그분께서 내 입을 날카로운 칼처럼 만드셨다”(49,2). ‘입’은 예언자적 사명을 뜻하고, ‘칼’은 사람의 마음을 꿰뚫는 진리의 힘을 상징합니다. 요한 세례자는 바로 잠들어 있는 양심을 깨우는 목소리였습니다.
복음은 “주님의 손길이 그 아이를 보살피고 계셨다”(1,66)고 전합니다. 여기서 ‘손’(χείρ)은 역사 안에서 활동하시는 하느님의 강력하고 섭리적인 능력을 뜻합니다.
오늘날 우리는 거짓 정보와 왜곡, 피상성이 진리의 인식을 어렵게 만드는 시대를 살아갑니다. 이러한 현실에서 요한은 그리스도인의 사명이 이념을 강요하거나 권력을 추구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을 회개로 이끄는 복음의 진리를 용기 있게 선포하는 데 있음을 가르쳐 줍니다.
제2독서에서 바오로 사도는 요한이 메시아께서 오시기 전에 회개의 세례를 선포하였음을 상기시킵니다. ‘회개’는 마음과 삶의 방향을 근본적으로 바꾸는 것입니다. 요한은 자신의 정체성과 한계를 분명히 알고 있었습니다. “나는 그분이 아니다”(사도 13,25). 이러한 겸손은 오늘날 가장 절실하게 필요한 덕목의 하나입니다.
우리는 끊임없이 자기 홍보와 이미지 구축, 인정 욕구를 부추기는 사회에 살고 있습니다. 그러나 요한은 중심 자리를 차지하지 않음으로써 오히려 위대해졌습니다. 바로 이 지점에서 아씨시의 성 프란치스코의 영성이 빛을 발합니다.
프란치스코 성인은 자신을 주님의 도구로 여기며 모든 사람 가운데 "작은" "형제"로 살아가고자 하였습니다. 그는 그리스도의 빛을 비추되 그것을 자신의 것으로 삼지 않았습니다. 요한 세례자처럼 프란치스코도 그리스도께서 커지시고 자신은 작아질 때 참된 기쁨이 온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복음은 또한 이 모든 일을 목격한 사람들의 놀라움을 강조합니다. “이 아기가 대체 무엇이 될 것인가?”(루카 1,66)라는 질문은 호기심이 아니라 하느님의 신비로운 활동을 알아본 데서 나온 것입니다. 요한은 광야에서 자라며 영적으로 강해졌고, 장차 맡게 될 사명을 준비하였습니다. 광야는 성경 영성에서 매우 중요한 장소입니다. 그곳은 침묵과 경청, 정화의 공간입니다.
오늘날 세상은 소음과 자극, 끊임없는 소통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많은 사람이 내적 피로와 산만함, 삶의 의미 상실을 경험합니다. 요한의 모습은 우리에게 영적 광야를 다시 찾으라고 초대합니다. 곧 침묵의 시간, 성체조배, 의식 성찰, 하느님 말씀 경청의 시간을 마련하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내적 공간이 없다면 수많은 목소리 속에서 주님의 목소리를 알아듣기 어렵습니다.
오늘 대축일은 우리 자신의 소명을 다시 성찰하도록 초대합니다. 요한 세례자는 자신을 위해 살지 않았고, 그의 전 존재는 그리스도의 오심을 준비하는 일이었습니다. 우리도 다른 이들을 주님께 이끄는 표지가 되도록 부름받았습니다.
이를 위해 우리는 겸손을 키우고, 진리를 용기 있게 추구하며, 하느님의 말씀을 듣는 침묵의 시간을 마련하고, 이웃을 아낌없이 섬겨야 합니다. 개인주의와 무관심, 희망의 상실로 상처 입은 오늘의 사회에서 그리스도인은 자비를 선포하는 목소리가 되고, 그리스도를 가리키는 빛이 되어야 합니다.
성 요한 세례자와 아씨시의 성 프란치스코를 본받아, 우리의 말과 선택과 행동이 자신을 드러내는 데 머무르지 않고, 사람들을 구원하러 오시는 주님께로 이끄는 통로가 되도록 살아가야 하겠습니다.
▶기경호프란치스코 of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