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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오스트레일리아의 여성 블로거 벨 깁슨은 암을 물리친 비결이라며 신선한 사과를 발효시켜 만든 식초 '애플 사이다 비니거'(Apple Cider Vinegar, 국내에선 줄여서 '애사비'라고 불린다)의 효능을 알린다며 어플리케이션을 만들어 뿌렸다. 4년 전에 스무 살의 그녀는 "악성 뇌종양" 진단을 받았으며 "6주나 길어야 4개월" 밖에 살 날이 남지 않았다는 말을 들었다고 털어놓았다. 그럼에도 자신은 항암이나 방사선 치료를 마다하고 "영양 요법이나 견뎌냄, 결단력과 사랑 등을 통해 스스로를 자연적으로 치유하기로" 했다고 덧붙였다.
인스타그램 팬만 20만명을 비롯해 그녀의 말을 곧이 듣고 이 앱을 다운로드하는 이들이 줄을 이었고, 말기 암 환자의 치료에 도움을 주는 식단을 일러주는 요리책 'The Whole Pantry'을 찾아 읽는 이들이 적지 않았다. 그녀가 "내 목숨을 구하기 위해 스스로를 다독이도록" 영감을 제공한다는 찬사까지 쏟아졌다. 잡지 엘르 오스트레일리아는 "올해 당신이 만난 가장 고무적인 여성"이라고 칭하는가 하면, 이듬해 코스모폴리탄은 그녀에게 '재미있고 용감무쌍한 여성상'을 수여하기도 했다.
새빨간 거짓말이었다. 6일 넷플릭스에 올라온 리미티드 시리즈(6부작) '애플 사이다 비니거'는 치명적인 병을 치료할 수 있다며 웰니스 요법을 예찬한 두 젊은 여성이 스스로도 모른 채, 혹은 알면서도 고의로 세상 사람들을 현혹시킨 이야기를 펼쳐 보인다. 예고편 가운데 눈에 띄는 것은 자막으로 '진실스러운(true-ish)이라고 단 것이다.
깁슨은 암 진단을 받지도, 2014년 인스타그램 포스트에서도 주장한 대로 "암이 핏속에, 비장(지라), 뇌, 자궁과 간"에 전이된 것도 아니었다. 그 때부터 벌써 현지 언론은 그녀가 사기를 치고 있는지 모른다고 의혹을 제기하기 시작했다. 결국 이듬해 4월 그녀는 위민스 위클리 인터뷰를 통해 진실을 인정하기에 이르렀다. "아니, 진실은 하나도 없다"고 말했지만 책임을 져야 할 일은 없다고 했다. 알아듣기 힘들게 "난 여전히 내가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과 현실 사이를 건너 뛰어 다닌다. 난 살아왔는데 난 정말로 거기 있지도 않았다"라고 답했다.
현실을 뭉개 혼란스럽게 하는 것(obfuscation)과 깁슨이 자신의 행동을 "설명"할 때 마음훈련(mental gymnastics)은 넷플릭스 드라마의 기둥 줄거리가 된다고 영국 BBC는 5일(현지시간) 전했다. 이 시리즈의 쇼러너(크리에이터) 서맨서 스트라우스는 깁슨이 이야기를 하는 방식 가운데 진실과의 불안한 관계에 천착한다.
2009년 이전과 그 뒤 2015년까지의 일들과 캐릭터들을 혼란스럽게 배열한 데다 언론에 보도된 팩트와 지어낸 장면들을 뒤섞어 혼돈스럽다. 주인공 캐릭터들이 브리트니 스피어스의 히트곡 '톡식'(Toxic)에 맞춰 립싱크하는 과장된 장면도 있고, 깁슨이 자신을 치료했다고 주장했지만 실존하는지 증명된 적이 없는 의사 캐릭터도 등장한다.
BBC는 이 미니시리즈가 작정하고 실제로 일어난 일이 무엇인지 파악하기 어렵게 만들어졌다고 지적했다. 그래서 병적인 거짓말쟁이에 바탕을 둔 드라마가 어떻게 전모를 제대로 보여줄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고개를 든다고 했다.
지난해 넷플릭스는 '베이비 레인디어' 에피소드를 시작할 때마다 "이것은 진짜 이야기"란 자막을 내보냈는데 '애플 사이다 비니거'에는 "이것은 거짓말에 바탕을 둔 진짜스러운(true-ish) 이야기"라며 "다음은 진짜 이야기에 영감을 얻은 것이다. 어떤 캐릭터와 사건들은 창조되거나 꾸며낸 것"이란 경고문(disclaimer)을 붙였다.
넷플릭스 미니시리즈 '애나 만들기'(Inventing Anna)는 애나 소로킨, 훌루와 디즈니 플러스의 'The Dropout'은 엘리자베스 홈스란 여자 사기꾼의 행각을 다뤄 화제를 모았다. 소로킨과 홈스처럼 깁슨(케이틀린 디버)도 긍정적인 자조(自助, self-help) 주문보다 "성공할 때까지 속이는 거야"가 끝내 위험한 이데올로기가 돼버린 (성공을 위해 열심히 일하는 것을 권장하는) 허슬 컬처(hustle culture)의 끝판을 체화한 인물로 그려낸다.
깁슨은 소셜미디어와 앱으로 사람들을 속인 신종 사기꾼의 첫 주자가 아니다. 데이트 앱으로 여인네 주머니를 턴 '데이트 앱 사기극, 당신을 노린다'(Simon Leviev, The Tinder Swindler, 넷플릭스)도 있고 유명 배우와 감독인 척 굴어 할리우드에서 일하는 이들을 등쳐 먹은 'Hargobind Tahilramani, The Hollywood Con Queen'(애플TV플러스)도 있다. 이들의 사기 스캔들과 비교해도 깁슨의 사기는 혼을 쏙 빼갈 정도로 잔혹한 속임수로 남아 있는데 말기 암 환자인 척 굴어 취약한 이들의 돈을 온라인 후원으로 갈취하고 상업적 수익과 명성을 얻으니 말이다.
깁슨의 실제 친구 샤넬레 매콜리프에 바탕을 둬 그녀의 매니저 샤넬레(에이샤 디) 캐릭터를 만들었는데 샤넬레는 "당신이 이해할 필요가 있는 하나는 벨르가 친구들이 없다는 점이다. 그녀는 숙주들만 있었다"면서 "만약 그녀가 당신이 가치있음을 알아채면 엉겨 붙을 방법을 찾아낼 것"이라고 말했다.
깁슨의 거짓말이 파괴적인 영향을 미친 것은 시리즈에 등장하는 다른 두 여성의 스토리를 비교하면 명백해진다. 밀라 블레이크(앨리시아 데브넘캐리)는 깁슨이 상피육종을 갖고 있음을 알아내고 그녀의 질환에 대한 블로그들을 파악한 스물두 살의 기자다. 그녀는 실제 인물 제시카 에인스코프를 모델로 하고 있는데 개인 홈페이지 '웰니스 워리어'를 운영하며 깁슨과 같은 암 진단을 받고 투병하는 모습을 기록해 거의 같은 시기에 온라인 명성을 누리고 있었다. 에인스코프 역시 논쟁적인 대체 치료법을 권유했는데 대표적으로 멕시코에 있는 거슨 연구소(Gerson Institute)는 유기와 식물 위주 식단, 생주스, 커피 관장(coffee enema)과 자연 보충재 등을 섭취해 스스로 치유하는 능력을 길러야 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에인스코프는 나중에 서른 나이에 세상을 뜨고 말았다.
시리즈에서 깁슨은 블레이크에게 꽂혀 그녀의 온라인 커뮤니티 일원이 됐고, 그녀의 암 경험 뿐만아니라 그녀의 목소리 톤과 문구까지 빌려와 자신의 소셜미디어 페르소나로 삼았다. 블레이크처럼 깁슨은 추종자들에게 믿을 만하고 사랑스러우며 정직한 친구로서 질환들에 대한 대체 치료법을 강하게 옹호하며 인생 조언을 하는 척했다. (호사가들을 위해 얘기하자면, 시리즈 제목 '애플 사이다 비니거'는 깁슨이 이 액체를 마시고 입에서 촌충들을 제거했다고 주장한 일화에서 따온 것이다) 두 아가씨는 소셜미디어가 선호하는 암 투병 인플루언서가 되겠다는 경쟁이 어두운 민낯을 드러낸다는 점을 보여준다.
세 번째 캐릭터 루시(틸다 코브험허비)는 허구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야기를 엮어 나가는 데 중요한 인물이다. 그녀는 진짜로 암 진단을 받아 깁슨을 팔로우했고, 아마도 재래적이며 의학적으로 승인된 치료법을 그만 두거나 유기농 채소를 먹고 아유르베다(명상 의학) 약물이나 산소 테라피, 부교감신경 테라피 등을 선호하는 식으로 영향받았을지 모르는, 정확히 숫자를 헤아릴 수 없는 이들을 대표한다. 소셜미디어에 게재된 화환들과 자매애가 넘쳐나는 웰니스 휴양지의 건강하고 그림처럼 완벽한 세계가 어떻게 매력적이고 위안이 되는 안전한 공간이 될 수 있는지 쉽게 알 수 있지만, 시리즈는 밑바닥 현실의 욕지기를 보여주기 위해 신중하게 구성된 이미지를 채찍질한다.
시리즈에서 자세히 묘사된 대로 깁슨의 정체는 멜버른 신문 '디 에이지'의 두 탐사 기자 보 도넬리와 닉 토스카노에 의해 들통 났는데 둘의 공저 'The Woman Who Fooled the World'(2017)를 원작으로 삼고 있다. 2015년 초에 두 사람은 깁슨이 기부했다고 주장한 많은 자선단체들에 실제로 건너간 돈이 30만 호주달러가 아니라 7000 호주달러 밖에 안된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일단 재정적 반칙이 드러나자 그녀의 건강을 둘러싼 상충되는 얘기들이 나오고 의심이 증폭됐다. 그리고 깁슨이 위민스 위클리에 고해하는 인터뷰를 했고, 같은 해 6월 호주판 '60분' 인터뷰에 응했다. 그녀는 또 다시 어느 정도는 사기를 쳤음을 인정하면서도 자신도 피해자라고 항변했다. 그녀는 앞에 언급한 적이 있으며 한 번도 만난 적이 없는 돌팔이 의사에 "속았다"거나 "속임수에 넘어갔다"면서 분명하게 그를 "마크 존스'라고 했다가 다른 때는 "닥터 필"이라고 말했다.
어마무시한 넷플릭스 구독자 수만큼 '애플 사이다 비니거'는 검증되지 않은 인플루언서의 의료 조언을 온라인 팔로우 수만 보고 맹목적으로 따라 하는 이들에게 경종이어야 한다. 2023년 글로벌 웰니스 산업의 값어치는 6조 3000억 달러로 평가됐지만, 계속해서 더 암울한 요소들을 갖고 있다. 골격계, 순환계, 신경계, 소화계 등 모든 시스템이 서로 밀접하게 연결돼 있다고 보고 치료하는 전인 치유(holistic therapy)에 나섰다가 다치는 이들도 늘고 있다.
가장 최근에는 지난해 12월 샤오홍치란 대체 치료술사가 일흔한 살 당뇨병 여성 환자에게 인슐린 주사를 맞지 말라고 해 죽음에 이르게 해 과실치사로 유죄 판결을 받았다. 같은 해 브라질의 웰니스 인플루언서 캇 토레스도 인신매매와 노예화로 유죄가 선고됐다.
넷플릭스 시리즈는 물론, 이전 두 차례 인터뷰들도 왜 깁슨이 그렇게 대놓고 거짓을 꾸몄는지 이유를 정확히 밝히지는 못한다고 방송은 전했다. 그녀가 주장한 대로 힘들었던 어린 시절 때문이었을까? 열두 살에 벌써 가출해 그녀는 어디로 간 것일까? 명성과 관심을 끌기 위해서였을까, 아니면 순전히 돈을 벌려고 이런 계략을 꾸민 것일까? 등에 답을 찾지 못했다는 것이다.
몇몇 사람들은 깁슨이 뻔히 알면서 거짓 주장을 하는 것을 관심을 끌거나 동정, 심리적 돌봄을 얻기 위해 아프다고 호소하거나 자해하는 등 인위성 장애(factitious disorder)를 의미하는 뮌하우젠 신드롬으로 그녀의 동기를 얘기하기도 한다. 신경학자 쥘 몬터규는 2015년 영국 일간 가디언 기고문에 "인위성 장애와 꾀병은 겹칠 수 있다. 외부 자극들은 초반 행동을 이끌지 못할 수 있지만 그 뒤로는 따라올 수 있다. 깁슨은 어쩌면 처음에는 아픈 역할을 연기하는 것을 즐겼을지 모른다. 하지만 그 뒤 흘러 들어온 돈을 마다하지 않았다"고 적었다.
2000년 마크 펠드먼 박사는 좀 더 특정된 주제 '인터넷에 의한 뮌하우젠'(Munchausen by internet, MBI)을 내놓았다. MBI는 현재 영국건강보험(NHS)에 의해 "한 사람이 심각한 건강 여건의 사람을 인터넷 응원집단에 가입하는 일과 그들 자신이 질환을 갖고 있다고 주장하는 곳"이라고 규정돼 있는데 이것은 깁슨에게 좀 더 잘 들어맞을 수 있다. 깁슨이 몽상가인지, 아니면 "진실을 조작하는 장인"이 맞는지 헷갈리는 것처럼, 뮌하우젠 신드롬이나 MBI 조짐을 보이는 사람들이 환자인지 가해자인지를 둘러싼 의문들은 항상 있어 왔다.
펠드먼은 2015년 가디언에 "때로는 둘 다이지만 깁슨 사례에서는 그녀 계략의 대담함과 돈을 부당하게 관리한 일은 '가해자'란 단어를 더 어울리게 할 수도 있다.
토스카노 기자는 2017년 가디언에 "항상 미심쩍은 물약(snake-oil)을 파는 판매원들은 있다"면서 "(깁슨 같은) 사람들은 늘 있다. 그러나 이 스토리는 그녀가 폭발하듯 성공했다는 점에서 달라지며 믿기지 않는 그녀의 영향력이 강렬하게 현대적인 힘들에 의해 가능해졌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깁슨 사건은 불편하게 만드는 얘기인데 사기꾼들에 대해 상대적으로 나이브한 때 인터넷 문화와 관련해 최악의 상황(perfect storm)이 되며, 건강과 웰니스 커뮤니티는 모든 사람에게서 선을 찾으려 하며, 그리고 그녀는 어쩌면 자신의 망상 때문에 고통스러워 하는 사기꾼이다. 무엇보다도 그녀는 진실이 끝까지 드러나지 않을 것이라고 어떻게 믿을 수 있었다는 것인가?
넷플릭스는 깁슨에게 스토리를 제공한 대가를 지불하지 않았으며 그녀는 이 시리즈가 제작됐다는 사실도 알지 못한다는 점을 애써 강조하고 있다. 실제로 깁슨은 스캔들이 터진 뒤로는 대중 앞에 모습을 드러낸 적이 거의 없다. 2020년 그녀는 멜버른에서 촬영한 동영상에 나타났는데 에티오피아 부족인 오모로 커뮤니티의 일원이라고 주장했다. 그녀는 현재 "사본투(Sabontu)"로 불리는데 그 커뮤니티를 위해 기금을 모금하고 싶다고 주장했다.
지난해 2월 채널 9의 'A Current Affair' 소속 기자들이 한 주유소에서 그녀에게 왜 벌금을 납입하지 않았는지 따져 물었다. 그녀는 "인류애를 좀 가져달라"면서 "내가 여력이 되지 않아 그걸 내지 않은 것"이라고 답했다.
깁슨은 가장 악명 높은 "웰니스" 사기꾼들 중 한 명으로 남아 있지만, 그 마지막도 아닐 것이다. '애플 사이다 비니거' 같은 쇼들은 인터넷이 신중하게 구성된 정체성(진짜와 가짜 모두)들을 가진 사람들로 가득하며 유일하게 정말로 건강한 행동 방침은 회의주의란 처방으로 접근하는 것이란 사실을 상기시키는 데 결정적이며 필요한 일이라고 방송은 결론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