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제향(祭享) 때 사용하는 악기 가운데 돌로 만든 석경(石磬)은 중국에서 보내 준 한 채뿐이고,
나머지는 모두 기와로 만든 와경(瓦磬)입니다.
지금 경기 남양(南陽)에서 나는 돌이 소리가 좋습니다.
옥 다듬는 사람을 보내어 캐가지고 와서 옛 제도대로 만들어 시험하기를 청합니다."
이는 《세종실록》 29권, 세종 7년(1425년) 8월 26일 기록으로
경기 남양(南陽, 지금의 화성)에서 나오는 돌을 깎아 석경을 만들도록 내용입니다.
석경은 지금 종묘제례악에서 쓰이는 ㄱ자 모양의 석경 한 대를 매단 ‘특경(特磬)’을 말합니다.
특경 말고 6개의 석경을 매단 편경(編磬)도 있지요.
석경은 재질이 돌이기 때문에 온도나 습도 변화에 영향받지 않고 음색과 음정이 절대 변하지 않습니다.
이 때문에 조선시대 모든 국악기를 조율할 때 ‘절대음감’의 기준이 되는 표준 악기 역할을 했습니다.
만드는 과정이 매우 까다롭고 귀한 악기였기에, 병자호란 같은 국가적 재난 때에는
왕실 문서나 종묘 신주처럼 땅속 구덩이에 파묻어 극비리에 보존했을 만큼 국보급 대우를 받았습니다.
▲ 석경 1개를 매단 '특경'(왼쪽), 16개를 매단 '편경'(국립국악원 제공)
음높이는 돌의 두께로 조절합니다.
돌이 두꺼울수록 높은 소리가 나고, 얇을수록 낮은 소리가 납니다.
음정이 맞지 않으면 돌의 표면을 갈아내며 미세하게 음고를 맞추었습니다.
각퇴(角槌)라고 불리는 소의 뿔로 만든 망치로
ㄱ자 모양의 긴 쪽(고, 鼓) 끝부분을 쳐서 청아하고 맑은 소리를 냅니다.
위 《세종실록》의 기록처럼 조선 초기에는 중국 곧 명나라에서 수입한 석경에 의존했으나,
세종 때에 경기 남양(현재의 화성)에서 질 좋은 경석(磬石)이 발견되면서
박연을 중심으로 조선 자체 제작에 성공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