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 , 파이팅 어제 알림란에 실린 글입니다. 구정모 신부님의 모친 강신순 카타리나님(향년 89세)의 선종에 관련된 관구장 알림입니다. 회원들의 기도와 문상을 부탁드립니다. 아, 누구보다 효자였던 구 신부가 이제 고아가 되었구나. 하니 참 안타까운 순간었습니다. 구 신부는 어머니의 파이팅을 외치며, 늘 핸드폰의 화면에 ‘어머니, 파이팅’을 달고 살았습니다. 그 어머니 강신순 카타리나 님의 마지막을 보내 드리며, 저도 그 어머니를 위해 기도합니다. 오늘 구 신부가 아버지를 보내 드리며 쓴 글을 여러분들과 함께 나눕니다. 우리들에게 마지막까지 남은 것 - 구정모 신부 저는 지금 잠시의 일정으로 한국을 방문하고 있습니다. 수도회 일 때문에 왔는데, 병석에 누워 계신 부모님을 두고 멀리 떠나 있는 저로서는 이렇게 방문할 수 있다는 것이 여간 기다려지는 일이 아닐 수가 없습니다. 장상 신부께서 “선교 나간 것이면 그곳에 뼈를 묻을 각오로 임해야지, 자주 들어오면 못쓴다.”고 말씀하신 일도 있고 해서 삼가려고 조심하고는 있으나, 사정이 사정이라 ‘부모님 살아 계신 동안만’이라는 단서를 달면서 번번이 변명 같은 모습으로, 부끄럽게 방문하고 있는 지경입니다. 저는 일을 마치자마자 우선 아버지가 입원 중인 음성 꽃동네의 인곡자애병원을 찾았습니다. 아버지는 그동안 병이 위중해졌습니다. 치매도 심해지고, 기력도 떨어지고 파킨슨병에다가 간질 증세도 보이고 있다고 합니다. 밤에 갑자기 소리를 지르면서 발작을 일으키기도 하고, 복도 등을 혼자 서성이는 일도 많아지셨습니다. 저는 일주일에 두세 번 전화를 드리는 편인데 최근 몇 달간은 대화가 제대로 이어지질 못했습니다. 옛날 말씀을 하시다가 갑자기 재산 문제를 말씀하시고, 작은아버지들을 만나야 한다고 떼를 쓰기도 하시고, 그러다가 정신이 들기도 하시고… 그러나 말할 기력조차 쇠잔해 버린 아버지의 목소리는 점점 작아지고 그러다 수화기를 떨어뜨리시거나 잠이 들어버리시거나, 그래서 잠꼬대 같은 아버지의 목소리가 메아리처럼 울리면 그날의 전화는 끝이 납니다. 제가 병실을 들어섰을 때, 아버지는 침대 위에 앉아서 문 쪽을 바라보고 계셨습니다. 마치 자식이 올 것을 알고나 계셨다는 듯이…. 문 쪽을 바라보고 계시던 아버지의 눈과 제 눈이 마주쳤습니다. 눈이 마주치고, 마음이 마주쳤습니다. 아버지의 입가에서 작은 탄성이 흘러 나왔습니다. “어, 왔구먼!” 저는 돌아온 탕자처럼 아버지께 다가갔습니다. “예, 아버지 저 왔어요.” “그려, 잘 왔구먼, 바쁜데 뭘 왔어.” “아버지도 참, 이 손목 좀 봐, 팔뚝 좀 봐, 많이 말랐네, 많이 마르셨네….” 아버지의 팔은 그동안 많이 마르고, 또 멍이며 상처가 여기저기 눈에 띕니다. 주사 바늘 자국 때문인 것도 있고, 발작이 일어나면 움직이지 못하도록 묶어놓은 곳에 생긴 상처의 딱지 같은 것이기도 합니다. “아버지 여기 상처 좀 봐, 왜 그랬어요?” “몰라, 언제 생겼나? 어디다 부딪혔나 보지.” “아버지 병원에는 언제 입원하셨어요?” “몰라, 어제 온 것 같기도 하구….” “아버지 배고프셔? 점심은 드셨어요?” “몰라, 먹은 것 같기도 하구….” “아버지는 아무것도 모르시네. 그럼 내가 누군지 알아요?” “막내아들이지.” “막내가 어디서 온지 알아요?” “일본에서 왔지. 동경에서 교수님이시지.” “아버지 일본에서 빵 사왔는데 좀 드시겠어요?” “그려, 조금만 줘 봐.” 빵을 드시는 아버지, 눈을 꾹 감고 빵을 드시는 아버지. ‘눈은 왜 감으시는 걸까? 너무 맛이 좋아서일까? 목이 메신 것일까? 눈물을 감추시려는 것일까? 아니면 사라져 가는 당신의 기억력을 되살려 보려는 노력이실까…?’ 아버지는 그동안 자신의 많은 부분들을 잊거나 잃어버리고 계셨습니다. 당신이 현재 어디에 있는지, 언제 여기로 왔으며 왜 오게 되었는지에서부터 시작해서, 자신이 누구인지에 대한 자아 인식에 이르기까지, 아버지는 마치 자신을 온전히 바쳐 불살라 버린 다음, 가볍고 조그맣게 줄어들고 있는 마른 장작개비의 불꽃처럼 그렇게 자신의 마지막 남은 생명을 태우고 계셨습니다. ‘생명은 이렇게 누구에게나 마지막의 순간이 오는 것일 터인데, (그 순간이 천천히 올 수도 있겠고 갑자기 올 수도 있겠고) 그때 생명은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다시 하느님께 돌려 드리게 되는 것일 터인데, 이렇게 마지막의 마지막 순간까지 생명 안에 남아서, 한 생명을 참 생명이 되게 하는 것이 무엇일까? 하는 질문이 마음을 두드렸습니다. 저는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지금까지의 신학이나 철학 공부 등을 통해서 얻을 수는 없었고, 다만 병실에 누워 계신 아버지의 모습을 통해서 어렴풋이 짐작하고 있었습니다. 자신이 지금 어디에 와 있는지도 모르고, 자신을 서서히 잊어가고 있는 아버지. 그러나 삶의 햇빛과 그늘, 보람과 아쉬움 속에, 처음부터 끝까지 잊혀질 수도 잊을 수도 없는 단 하나의 사실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사랑이었습니다. 당신과 만나서 60년 가까이 함께 사신 ‘강신순姜信順이, 나한테 시집와서 고생만 한 강 가타리나’와, 고향에서 외롭게 살고 있는 ‘그 아들 생각하면 가슴이 메어진다’고 하시는 셋째 아들 구 요한,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막내아들 구 마르코 신부’, 미국에 있는 큰아들 구 베드로 신부와 대전에 살고 있는 둘째 아들 구 프란치스코… 그리고 지금까지 당신이 사랑했던 사람들에 대한 애정이었습니다. 어떤 이는 ‘사람은 마지막에 그의 노랫소리만이 남아서 하늘로 올려진다.’고 하시고, 또 어떤 시인은 ‘모든 것이 썩어 없어지더라도 시詩를 쓰게 하는 이 마음만큼은 어떻게 되지 않겠느냐’고 하셨다는데, 저의 아버지 구 요셉에게는 시詩도 아니고 노래도 아니고, 다만 자신이 사랑한 사람들에 대한 고마움과 미안함, 죄책감과 아쉬움뿐이었습니다. 그 눈물겨운 사랑뿐이었습니다. 그것뿐이었습니다. 사람은 한 번 태어나서 한 번 살고, 늙고 병들고, 잊혀지고 사라지고 마는 법인데…, 모든 것이 사라진 후에도 구름처럼 남아서 하늘로 올려지고 하느님의 일부가 되는 것은, 진심으로 사랑했던 흔적만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것뿐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류해욱 신부/예수회 영성 지도 신부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