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치 ; 한림읍 금릉리 1494-13번지의 북쪽 바닷가
유형 ; 어로시설
시대 ; 미상(조선시대 추정)
금능마을의 옛이름은 버렝이다.(또는 베렝이, 베렝이는 벌레의 뜻인지는 확실하지 않다.) 그래서 이 마을의 포구를 흔히 버렝이개라 한다. 탐라순력도 등 옛지도에는 ‘盃令浦’라 되어 있다.
배령포는 지금의 한림읍 금릉리에 있는 개창을 두고 이르는 말이며,「제주삼현도」에 나와 있는 배령촌(杯令村)이라는 마을의 이름을 취한 포구의 이름이다. 『남사록』에서는 이곳을 배령포(杯令浦)라고 하였으며, 병선도 감출 수 있는 곳이라고 하였다. 「제주삼현도」에서는 배령촌 앞에 배령포가 있다고 하였다. 한림읍 금릉리의 옛 이름이 베렝이이다. 즉, 배령포는 베렝이라는 마을에 있는 포구라는 말이다.
한림읍 금릉리 마을의 바다 밭은 서쪽 한림읍 월령리와 경계점인 진여에서부터 서쪽 한림읍 협재리와 경계점인 원까지이다. 그 안에 돈지 또는 개창이라는 포구가 하나 있다. 이 마을의 개창이라는 포구는 장사코지와 올림이코지 사이 후미진 곳에 있다. 길게 뻗어나간 장사코지는 동풍을 막아준다.
멀리 있는 비양도는 하늬바람을 걸러준다. 그러나 버렝이개의 북쪽을 완전히 막아주지는 못한다. 때문에 포구는 북쪽을 향해 겹으로 성을 쌓아 칸살을 나눠 놓았다. 바깥쪽의 것을 밧개창, 안쪽의 것을 안개창이라고 부른다. 밧개창은 조간대 중층에, 그리고 안개창은 상층에 걸쳐 있다.
썰물에는 안개창이나 밧개창이 모두 무리 빠진다. 따라서 출어할 때에는 미리 포구 밖으로 내어놓아 매어두기도 하고, 들어올 때에는 포구 바깥에서 밀물을 기다려 매어 두어야 한다. 이곳을 튼석이라고 하며 집알모살터가 바로 이 곳이다. 배를 개창 안으로 들여 매고자 할 때는 그 어귀에 있는 서애비아덜여((여 세 개가 나란히 서 있어서 붙은 이름)로 가늠하며, 여가 물속에 완전히 잠길 정도라야 배를 개창 안으로 들여 맨다.
포구 주위에는 펄낭 쪽의 소왕물과 양어장 쪽의 집알물 두 곳에서 담수가 솟는다. 그러나 배 밑바닥에서 서식하는 船食蟲(흔히 소라고 부름)이 서식하지 못할 만큼 흐르는 것은 아니다.
포구는 두 곳으로 구분하여 이용되어왔다. 포구의 동쪽은 동동네 배들이, 그리고 서쪽은 섯동네 배들만이 정박했다. 포구 보수나 관리도 따로 해왔다. 지금 독다리가 설치되기 전에는 동서를 왕래하는 데는 뭍쪽의 동네길로 돌아서 내왕해야 했기 때문이다. 새마을운동이 한창인 때 양어장을 조성했다. 둑을 만들면서 둑다리까지 만들어서 동서동네 왕래가 가능해졌다. 때문에 지금에 와서는 동서동네가 서로 나눔이 없어졌다.
배령포는 한때 30척에 가까운 어선들이 북적거렸을 정도로 비교적 큰 어항이었다. 1940년대부터 개발되기 시작해 방파제와 선착장 등이 주민들에 의해 만들어졌으며, 1990년에는 사업비 3,000만 원을 들여 어선 긴급 대피 및 수리를 위해 선가대(船架臺) 시설을 만들어 놓았다.(제주민속유적 287~289쪽, 디지털제주시문화대전)
《작성 1404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