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약과 만돌린이 있는 정물
폴 고갱
1885년
캔버스에 유채
64 x 53cm

알리스캉 풍경
폴 고갱
1888년
캔버스에 유채
92 x 73cm

설교후의 환영 혹은 야곱과 천사와의
싸움
폴 고갱
1888년
캔버스에 유채

노란 낟가리
폴 고갱
1889년
캔버스에 유채
73 x 92cm

안녕하세요, 고갱씨
폴 고갱
1889년
캔버스에 유채

황색 그리스도
폴 고갱
1889년
캔버스에 유채

모자를 쓴 자화상, 폴 고갱, 1893∼94년, 캔버스에 유채, 46 x 93cm
1895년 고갱이 파리 생활을 청산하고 타히티로 떠나기 1년여 전 그린 작품으로, 프랑스에서 그린 최후의 자화상으로 남아 있다. 이 작품 역시 고갱의 다른 자화상처럼 3/4 정면 자세를 취하고 있다. 앞서 그려진 세 점의 자화상 - <후광이 있는 자화상>(워싱턴 내셔널 갤러리 소장), <황색 그리스도가 있는 자화상>(오르세 미술관 소장), <팔레트를 든 자화상>(파시데나 미술관 소장) -보다 훨씬 어두운 색조로 그려진 이 작품에는 당시 고갱의 힘겨웠던 삶이 깔려 있다.
1893년 코펜하겐의 친정집에서 아이들과 함께 기거하고 있던 고갱의 부인, 메테는 파리로 돌아와 다시 함께 생활하자는 고갱의 제안을 거절하였다. 가족에 대한 그리움으로 외로워하던 고갱은 다시 안나라는 여인과 동거하였으나, 1894년 그녀마저 그의 집을 털어 달아났다. 게다가 다리의 부상으로 육체적인 고통까지 겪었던 고갱은 결국 파리 생활에 염증을 느껴 다시 타히티로 돌아가게 된다.
<황색의 그리스도가 있는 자화상>과 마찬가지로 이 작품에서도 자신의 그림을 배경 속에 집어넣었다. 자화상 뒤로 보이는 그림은 1892년에 그려진 <마나오 투파파우>로서, 거울에 비친 모습으로 그려졌다

부르타뉴의 여인들, 폴 고갱, 1894년, 캔버스에 유채, 66 x 92.5cm
1886년 7월 고갱은 문명에 대한 회의를 품고 파리를 떠나 프랑스 서부 부르타뉴 지방의 퐁 타방(Pont-Aven)에 체류한다. 페루의 리마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던 고갱은 줄곧 문명에 대하여 회의하였다. 그는 자신의 예술을 마음껏 펼칠 수 있는 이상향, 자연의 순수함을 찾아 퐁 타방으로 향한 것이다.
이 그림은 1894년에 그려진 작품으로 경제적 궁핍과 악화된 건강 등으로 고갱의 일생 중 가장 힘든 때 그려진 작품이다. 1891년 원시의 야만성을 찾아 타히티로 떠났던 고갱이 다시 브르타뉴를 찾았을 때, 그는 퐁 타방 근처의 여인숙에 맡겨 두었던 그림들도 되찾지 못하고 경제적으로도, 심리적으로도 위축된 상태에 있었다.
전면에 우뚝 서 있는 두 여인들은 부르타뉴 지방의 민속 의상을 입고 있긴 하지만, 황토색의 투박한 얼굴 생김새, 크고 검은 발의 모습 등이 오히려 타히티 여인에 가깝다. 오른쪽의 숲 역시 타히티의 열대림을 연상시킨다. 프랑스에 돌아와서도 타히티의 순수한 자연을 그리워했던 고갱의 안타까움, 타히티의 강렬한 영향력이 묻어난다.

아름다운 앙젤, 폴 고갱, 1889년, 캔버스에 유채, 92 x 73cm
이 작품은 1888년 고갱이 브르타뉴 지방의 퐁 타방에 체류할 때 교분을 가졌던 젊은 부인의 초상이다. 브르타뉴의 퐁 타뱅에 머물렀던 동안 사트르라는 부부에게 많은 도움을 받았던 고갱은 감사의 뜻으로 부인 앙젤(Mme. Satre)의 초상을 선물하였다. 그러나 이 작품을 받은 사트르 부부는 탐탁해 하지 않았고 결국 그림은 고갱에게 돌아왔다. 후에 드가는 이 작품의 조형적 가치를 알아보고 이 그림을 450프랑에 구입하였다.
그림 속의 그림의 형식을 취하고 있는 독특한 이 그림은 고갱이 생애 마지막 3년 동안 이루어 놓았던 모든 조형적 특징들을 집약하여 보여준다. 꽃무늬가 그려진 배경을 뒤로 후광처럼 보이는 원 속에 마치 여인이 갇혀 있는 듯 보인다. 후광뿐만 아니라, 그녀의 이름 역시 중세의 이콘화에서처럼 화면 하단에 쓰여 있다. 후광처럼 보이는 원, 그리고 원시 조각을 중심으로 상, 하 수평으로 나뉘어진 화면, 공간은 이렇게 잘라지고 구획 지어졌다.
그러나 다른 한편, 원과 원시 조각 두 모티프는 화면을 분할하는 동시에 장식적인 배경 속에 자연스럽게 융화되고 있다. 구획 지어진 원과 캔버스의 사각형이 이루어 내는 시각적인 조응, 장식적인 배경과 모티프의 자연스러운 융합, 이 모든 요소들은 공간의 깊이감을 차단시키고 장식성과 평면성을 강조하고 있다.
초상화임에도 불구하고 사실적인 재현보다는 감정적이고 정신적인 가치를 중요시한 고갱의 회화 세계의 일면을 엿볼 수 있다.

슈페네커의 아틀리에, 폴 고갱, 1889년, 캔버스에 유채, 73.5 x 92cm
<슈페네커 가족>으로도 알려져 있는 이 작품에서 고갱은 친구이자 화가였던 에밀 슈페네커의 아틀리에와 가족을 그리고 있다. 슈페네커 역시 고갱과 마찬가지로 증권 거래소를 그만 두고 어렵게 생계를 이어가며 그림을 그렸다. 1888년 12월 고갱은 반 고흐와 함께 지낸 두 달간의 아를르 생활을 정리하고 파리로 돌아왔다. 고갱은 파리에 돌아와 친구 에밀 슈페네커의 집에서 신세를 지고 있었는데, 이 작품은 그 무렵에 그려진 것이다.
고갱은 캔버스가 자리한 화가의 아틀리에를 배경으로 하여 슈페네커의 부인과 두 딸을 화폭에 담았다. 고갱은 노란 색 바닥과 푸른 색 벽면, 두 딸의 옷에서 사실적인 색상이 아니라 자신의 주관적인 감정이 담겨진 강렬한 색채를 사용하였다. 이 작품에서 고갱이 선택한 생생한 색채들은 그가 남프랑스 아를르에서 탐구했던 것을 반영하는 것이다. 화가 앞에 놓여진 이젤, 그리고 화면 오른쪽 벽에 붙여진 그림들을 통해 이 곳이 아틀리에임을 알려준다.

대표작품《황색의 그리스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