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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족하는 마음
딤전 6:6-10
6 그러나 자족하는 마음이 있으면 경건은 큰 이익이 되느니라
7 우리가 세상에 아무 것도 가지고 온 것이 없으매 또한 아무 것도 가지고 가지 못하리니
8 우리가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은즉 족한 줄로 알 것이니라
9 부하려 하는 자들은 시험과 올무와 여러 가지 어리석고 해로운 욕심에 떨어지나니 곧 사람으로 파멸과 멸망에 빠지게 하는 것이라
10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 이것을 탐내는 자들은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 많은 근심으로써 자기를 찔렀도다
딤전 6:6-10 / 진정한 부자가 되기를 원합니까? 만일 그대가 지금 행복과 만족을 느낀다면 그대는 이미 부자입니다. 7) 우리는 세상에 태어날 때 일전 한푼 손에 들고 나오지 않았습니다. 또 우리가 세상을 떠날 때 역시 빈손으로 갈 것입니다. 8) 먹을 것과 입을 것만 있으면 모든 것이 만족입니다. 9) 그런데도 사람들은 돈을 모아 부자가 되려고 서슴지 않고 온갖 악한 짓을 저지릅니다. 그러고는 낭패를 당하고 마음이 악해져서 마침내 지옥으로 끌려가고 맙니다. 10) 그러므로 돈을 사랑하는 것은 온갖 죄의 길로 빠지는 첫걸음입니다. 돈을 사랑하여 하나님을 떠나 버린 탓으로 결국 극심한 고통을 당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사도는 ‘자족함’을 말하면서 재물에 대한 과도한 집착을 이기라고 교훈하고 있습니다.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은즉 족한 줄로 알 것이니라”(딤 6:8)
자족하는 마음(6) 자족하는 마음은 진정으로 영혼에 변화를 겪을 때 생깁니다(빌 4:11). 그래서 자족에 바탕을 둔 경건이야말로 진정한 경건입니다. 바울이 앞 절과 비교해 보면 거짓 경건도 분명히 있습니다. 이익의 방도가 되어버린 경건은 거짓 경건입니다. 이것은 신자가 항상 경계해야 할 대상입니다. 이에 반해 바울은 자족을 동반하는 경건은 큰 유익이 된다고 말합니다. 그 유익이란 물질에 묶이지 않는 것이며, 육체에 속박되지 않는 것이며, 사람에게 매이지 않는 것입니다. 자족을 동반하는 경건의 유익은 성령과 진리 안에서 하나님을 즐기는 것입니다.
자족의 근거(7-8) 바울은 앞 절에 대한 근거로 구약성경을 인용합니다. 7절은 “내가 모태에서 알몸으로 나왔사온즉 또한 알몸이 그리로 돌아가올지라”(욥 1:21)를 인용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다면 족할 줄로 알아야 합니다. 또한 우리가 자족을 누리는 것은 그 근거가 하나님에게 있기 때문입니다. 시편 23편에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라”고 했습니다.
돈에 대한 사랑은 일만 악의 뿌리(9-10) 사도는 먹을 것과 입을 것으로 만족하지 않고 부하려는 자들이 시험, 올무, 여러 가지 어리석고 해로운 욕심을 마주할 것이라고 경고합니다. 이들은 자신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도 멸망과 파멸에 빠지게 합니다. 배가 침몰하듯이 시험과 올무와 욕심을 감당하지 못해침몰할 것을 경고합니다. 경계에 경계를 더해야 합니다. 돈의 위력은 대단합니다. 돈은 세상의 신이 되었습니다. 돈을 사랑하면 하나님에 대한 사랑이 식어갑니다. 돈을 탐내면 돈에게 고삐를 잡히게 됩니다. 믿음에서 멀어지는 것은 순간입니다. 그래서 일만 악의 뿌리가 된다고 했습니다.
적용: 돈 때문에 유혹과 근심에 빠져 본 적이 있습니까? 자족하는 마음이 흔들리며 불평과 불만이 쏟아질 때는 주로 언제인가요? 항상 자족함을 누리기 위해 내가 바꾸어야 할 생각과 태도는 무엇인가요? 시편 23편을 암송하십시오.
“나를 안다는 건 부족함을 안다, 자족한다는 의미입니다. 과거 저는 재일한국인으로 태어난 상태를 뛰어넘으려 했기 때문에 무리를 했어요. ‘나가노 데쓰오’에서 ‘강상중’으로 이름을 바꾸면서 저는 자연스러움에 가까워졌지요. 우리는 아침부터 밤까지 ‘나’에 집착해요. ‘나’라는 우상에서 빠져나올 수 없으니 괴롭죠. 노력으로 변화시킬 수 없는 것과 변화시킬 수 있는 것을 인정하고 있는 그대로의 나를 긍정해 보세요.” - 일본 인문학자 강상중
< 설 교 >
먹을 것과 입을 것만 있으면
딤전 6;6-10 / 강문호 목사
중국에서 여자 정치인으로 대표적인 사람을 찾으라고 하면 등 영초여사입니다. 그가 1992년 7월 11일 세상을 떠났습니다. 중국 공산당 정치국원이었습니다. 중국 수상 주 은래 아내입니다. 그의 유서가 공개되자 온 중국이 놀랬습니다. 그는 청념결백하고 공정하고 살았습니다. 그는 죽기 오래 전엔 1978년 7월 1일 유서를 써놓고 살았음이 밝혀졌습니다. <내가 죽은 후 장례식이나 고별식이나 추도식을 하지 말아라. 내 시신은 의과대학 해부 연구용으로 기증하여라. 남은 시신은 화장하여 남기지 말고 뿌려 버려라. 내가 살고 있는 집은 죽은 후 국고에 넣어라. 유명한 사람이 살던 집이라고 기념관을 만들지 말아라. 내 친척에게도 특혜를 주지 말아라.>
그런데 그의 남편 주 은래 수상도 이런 유언을 하였습니다. <내 시체는 화장하여 뿌림으로 한 줌의 재라도 이 땅을 비옥하게 만드는 데 사용하여라.> 그래서 그가 죽은 후 화장하여 비행기에서 가루를 땅에 뿌렸습니다. 부부가 감동을 주었습니다. 그래서 중국인들은 주 은래와 등 영초 부부를 살아서 정치할 때에도 존경하였지만 죽고 나서 더 존경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디모데에게 편지를 쓰면서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지족하는 마음이 있으면 경건이 큰 이익이 되느니라. 우리가 세상에 아무 것도 가지고 온 것이 없으매 또한 아무 것도 가지고 가지 못하리니 우리가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은즉 족한 줄로 알 것이니라 부하려 하는 자들은 시험과 올무와 여러가지 어리석고 해로운 정욕에 떨어지나니 곧 사람으로 침륜과 멸망에 빠지게 하는 것이라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 이것을 사모하는 자들이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 많은 근심으로써 자기를 찔렀도다.>
오늘 본문에서 주목하여 보아야 할 말씀이 몇 구절이 보이고 있습니다.
아무 것도 가지고 온 것이 없으매
이 세상에 오는 사람들은 모두 빈 손으로 왔습니다. 나오자 말자 당장 먹을 젖을 좀 가지고 오는 사람은 없습니다. 당장 똥 오줌을 싸야 하니까 기저귀를 몇 개 가지고 오는 사람도 없습니다. 당장 부끄러운 곳을 가릴 옷 한 벌 가지고 오는 이도 없습니다. 모두 완전 빈 손으로 옵니다.
또한 아무 것도 가지고 가지 못 하리니
이 세상에 올 때에 빈 손으로 왔습니다. 그러나 갈 때에도 빈 손으로 갑니다. 돈을 많이 벌었다고 수표 한 장 가지고 가지 않습니다. 금 한 돈 손가락 끼고 가지 않습니다.
알렉산더 왕은 30세에 온 세상을 점령하였던 왕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알렉산더 대왕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그가 죽을 때 이렇게 예언하였습니다. <내가 죽으면 관에 넣을 때 양 쪽에 손을 내밀어 나오게 하여라. 그리고 내 관이 무덤으로 갈 때 사람들로 하여금 인생은 빈 손으로 왔다가 빈 손으로 가는 것임을 보여 주어라.> 그래서 그렇게 하였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말했습니다.
<그러나 지족하는 마음이 있으면 경건이 큰 이익이 되느니라. 우리가 세상에 아무 것도 가지고 온 것이 없으매 또한 아무 것도 가지고 가지 못하리니
그래서 가수 최 희준은 노래합니다.
<인생은 나그네 길. 어디서 왔다가 어디로 가는 지. 구름이 흘러가듯 떠 돌다 가던 길엔 정이랑 두지 말자. 미련이랑 두지 말자. 인생은 나그네 길. 어디서 왔다가 어디로 가는 지.>
탈무드 이야기입니다. 사치를 좋아 하는 왕이 있었습니다. 그 왕은 날마다 화려한 옷을 입고 금관, 금 목걸이, 금팔지를 걸고 거울을 보며 즐겼습니다. 도취감에 빠져서 즐거워 하였습니다. 왕의 사치 때문에 국민들은 세금을 많이 내야 했고 허리가 휘어질 정도였습니다. 많은 돈을 세금으로 빼앗겨서 굶주리고 있었습니다. 그 때 지혜로운 신하가 있었습니다. 그는 왕이 날마다 보는 거울을 뜯어 냈습니다. 그리고 창문을 달아 놓았습니다. 국민들이 헐벗고 굶주린 모습이 모이게 하였습니다. 다음 날 잠에서 깨어난 왕은 역시 화려한 옷을 입고 금관을 쓰고 거울 앞에 섰습니다. 창문밖에 가난하고 초라한 백성들의 모습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왕은 굶주림에 지친 어머니를 보았습니다. 추위에 떨고 있는 아이들의 모습을 보았습니다. 무거운 짐을 지고 허리가 굽어 걸어가는 노인의 모습을 보았습니다. 이런 참담한 모습을 본 왕은 자신이 무능하게 백성을 다스렸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왕은 화려한 옷을 벗었습니다. 소박한 옷으로 갈아입었습니다. 그리고 정치를 잘 하였습니다. 그 후 자기를 위하여 재물을 모으지 않았습니다.
우리가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은 즉 족한 줄로 알 것이니라.
우리의 본향은 천국입니다. 천국에서 영원히 영원히 사는 것이기에 이 땅에서는 검소하게 살라는 것입니다.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으면 족한 줄로 여기고 살라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자기는 욕심스럽게 살면서도 청빈하게 사는 사람을 존경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70년 7월 9일 나라를 잃어 버렸습니다. 그리고 1948년 5월 14일에 독립하였습니다. 우리나라도 같은 해 8월 15일 나라를 세웠습니다.
이스라엘의 국제 공항 이름은 벤구리온(David Ben-Gurion)입니다. 벤구리온(David Ben-Gurion 1886~1973)은 이스라엘 초대 수상이었습니다. 그는 13년동안 나라를 잘 다스렸습니다.
수상직을 마치는 날 그는 기사에게 말했습니다. <차를 네게브 사막으로 몰아라.>
벤 구리온은 네게브 지방의 키부츠 스데 보케르(Sde Boker)로 들어 갔습니다. 그리고 키브츠 가족의 일원이 되었습니다. 그의 나이 77세 때였습니다. 키브츠에서 그에게 베푼 특전은 4평짜리 방 하나였습니다. 그 곳에 도착한 그는 말했습니다. <이스라엘의 앞으로의 희망은 사막 개척에 달려 있다. 나는 이 사막을 개척하여 이스라엘에 쓸모 있는 땅을 한 평이라도 늘리겠다.> 그리고 이어서 이런 말을 하였습니다.
<나는 이 광야에서 우리의 창조능력과 개척정신의 유무를 테스트 받을 것입니다.> 그는 87세에 숨을 거둘 때까지 사막을 농토로 개간하는 일에 헌신하였습니다. 그가 죽자 그의 재산으로 남은 것이라고는 입었던 옷 한 벌과 신발 한 켤레 뿐이었습니다. 그리고 밀밭으로 그가 개간한 사막의 토지만을 남겼습니다.
그리고 두 가지 정신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남겨주었습니다. 하나는 무소유 정신이고 다른 하나는 개척정신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를 존경하여 국제 공항 이름을 벤구리온이라 부르며 영원히 영원히 그를 기념하고 있습니다. 수상까지 지낸 그가 죽기까지 4평에서 살면서 옷 한 벌과 신발 한 켤레를 남긴 것은 큰 교훈이 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런 청빈하게 살아간 사람들을 좋아 합니다. 그리고 감동을 받습니다. 나는 이런 이야기가 좋습니다. 나도 그렇게 할 것입니다. 나도 그렇게 살려고 합니다.
노벨상을 만든 스웨덴의 노벨 이야기도 그렇습니다. 알프레드 노벨은 다이너마이트를 발명하여 엄청난 돈을 벌었습니다. 그가 다이나마트를 발명하고 난 후 그것이 무기가 되어 수많은 사람들을 죽이는 무기가 되었습니다. 어느 날 아침 노벨은 신문을 들고 소스라치게 놀랐습니다. <죽음의 상인 노벨이 죽다.> 그의 형 루드비히 노벨이 죽었는 데 프랑스의 한 신문이 실수로 기사를 잘못 쓴 것이었습니다. 노벨은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노벨은 자신의 삶을 돌이켜 보게 되었습니다. 그는 그의 인생을 죽음의 상인으로 마치고 싶지 않았습니다. 불명예를 씻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결심하였습니다. 다이너마이트를 발명하여 벌어들인 돈을 좋은 일을 위하여 쓰기 시작하였습니다. 보람있는 일에 돈을 풀기 시작하였습니다. 노벨이 죽을 때 그는 재산의 94%인 3200만 스웨덴 크로나(440만 달러)를 기부하였습니다. 50억원 가량인 데 100년 전에 50억이니까 지금으로 보면 5000억이 넘을 것입니다. 그래서 노벨 상이 생겼습니다.
성경은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지족하는 마음이 있으면 경건이 큰 이익이 되느니라. 우리가 세상에 아무 것도 가지고 온 것이 없으매 또한 아무 것도 가지고 가지 못하리니 우리가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은즉 족한 줄로 알 것이니라.>
그리고 성경은 이어서 말하고 있습니다.
<부하려 하는 자들은 시험과 올무와 여러가지 어리석고 해로운 정욕에 떨어지나니 곧 사람으로 침륜과 멸망에 빠지게 하는 것이라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 이것을 사모하는 자들이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 많은 근심으로써 자기를 찔렀도다.>
부하려고 하는 사람은 부하려고 하는 사람은 다음과 같아집니다.
1. 시험과 올무에 빠집니다.
부하려고 하는 사람은 시험과 올무와 여러 가지 어리석고 해로운 정욕에 떨어진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먹을 것이 있고 입을 것이 있으면 만족하는 사람은 시험과 올무에 빠지지 않습니다.
시험이라는 말은 원어로 페이라스모스라고 되어 있습니다. 이 말은 죄를 짓도록 충동질하는 유혹이라는 말입니다. 더 가지려고 하면 죄를 짓게 되는 유혹을 가지게 됩니다.
올무라는 말은 파기스라고 되어 있는 데 이는 올가미를 말합니다. 부하려고 하는 자는 그것 때문에 올가미에 걸려 죽게 됩니다.
필리핀 마르코스 대통령 부인 이멜다의 사치는 잘 알려져 있습니다. 그가 도망간 궁에 들어갔더니 이멜다 구두가 6천 켤레가 있었습니다. 일주일에 한 켤레씩 신고 버린다면 120년 걸립니다.
한 양장점에서 보내 온 옷 계산서가 나왔는 데 6벌에 11만불 1억 4천만원이 적혀 있었습니다. 한 벌에 2,000만원이었습니다. 국민들은 이를 알았습니다. 결국 폭동이 일어났습니다. 그래서 부하려는 마음이 올가미가 되어 쫓겨 나고 말았습니다.
가난한 사람은 많은 것을 가지려고 합니다. 그러나 부자는 다 가지려고 합니다. 사람들은 너무나 욕심이 많습니다.
반대 이야기도 있습니다.
월남 호지명 대통령은 평생 옷 세 벌 가지고 살았습니다. 군복 한 벌, 평상복 한 벌, 그리고 대통령으로서의 예복 한 벌 모두 세벌 뿐이었습니다. 신발은 자동차 타이서를 잘라서 만든 스리퍼 하나였습니다.
그리고 지방에 출장 갈 때에는 도시락을 싸가지고 다녔습니다. 쓸 데 없는 부담을 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시간 낭비하는 것은 죄라고 생각하였기 때문입니다.
이런 것이 내게 맞는 것은 내 영성이 그런 것임을 느끼게 합니다. 나도 그렇게 살고 싶습니다.
2. 해로운 일을 당하게 됩니다.
성경은 말하고 있습니다.
<부하려 하는 자들은 시험과 올무와 여러가지 어리석고 해로운 정욕에 떨어지나니 곧 사람으로 침륜과 멸망에 빠지게 하는 것이라 욕심 때문에 해로운 일을 당하게 됩니다. 해로운 이라는 말은<블랍토>라고 되어 있는 데 이 말은 재물에 대한 끊임없는 욕구로 양심의 눈과 귀가 멀게 된다는 의미입니다.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으면 만족하면 편안합니다. 그러나 부하려고 하는 사람은 오직 돈만 보이기에 눈과 귀가 멀게 됩니다.
지난 주간 성남에서 일어난 사건입니다. 혼자 살고 있는 여인 집 앞에 아기 하나가 놓여져 있었습니다. 그 여인은 하나님이 주신 아들로 여기고 핏덩어리를 정성껏 길렀습니다. 어릴 때 보약도 많이 먹이고 공부도 대학까지 잘 시켰습니다. 장성한 아들에게 유산으로 18억을 주었습니다. 경마장에 가서 3개월만에 다 날렸습니다. 그는 돈으 더 덜라고 졸랐습니다. 어머니가 말했습니다. <18억을 3달동안에 날린 너에게 나머지 재산을 줄 수 없다. 사회에 환원하고 죽을 것이다.> 이 말에 화가난 아들은 청부 살인업자에게 돈을 주고 어머니를 죽이고 말았습니다. 잡혔습니다. 그는 경찰에게 말했습니다. <내가 왜 그랬는 지 정신이 없었어요.>
부하려고 하는 자는 돈만 보이기에 귀와 눈이 멀게 됩니다. 욕심이 잉태한 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 즉 사망을 낳게 됩니다.
3. 많은 근심으로 자기를 찌르게 됩니다.
성경은 말하고 있습니다.
<부하려 하는 자들은 시험과 올무와 여러가지 어리석고 해로운 정욕에 떨어지나니 곧 사람으로 침륜과 멸망에 빠지게 하는 것이라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 이것을 사모하는 자들이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 많은 근심으로써 자기를 찔렀도다.>
부하려고 하는 사람은 욕심이 있기에 근심하게 됩니다. 그 근심이 자기를 찌르게 됩니다. 자기 손가락이 자기를 찔렀습니다. 다른 사람의 손가락이 자기 눈을 찌른 것이 아닙니다. 축구 자기 선수가 자기 골에 골을 넣었습니다.
어린 아이들의 자살율이 30년 전보다 400%가 늘었습니다. 원인을 조사하여 보았습니다. 부모의 욕심때문입니다. 부모가 자녀에게 요구하는 것이 너무 지나치기 때문입니다. 부모의 욕심을 채울 수 없기에 스트레스로 자살하는 자녀가 늘고 있습니다.
부모의 욕심은 사랑하는 자기 자녀를 죽음으로 몰고 있습니다. 자기 손가락이 자기를 찌르고 있습니다.
며칠 전 장로님 몇 분이 저를 잧아 와서 말했습니다.
<강목사님이 우리 감리교 감독회장으로 출마하여 감리교를 맡아 주십시오.> <저는 64세에 은퇴하기 싫습니다.>
<목사님! 은퇴가 문제가 아닙니다. 교단이 문제입니다. 목사님은 너무나 물질적으로 깨끗하기에 돈문제가 없을 것입니다. 그리고 은퇴 후에도 오라는 데가 많을 것이 확실합니다. 그리고 오라는 데 없어도 오라고 하면 올 사람이 많을 것입니다. 목사님이 적격입니다.> <그래도 나는 행정보다 목회를 더 좋아 합니다.>
<만일 안 나오시면 직무 유기입니다. 감리교를 사랑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감독회장에 출마를 권유하였습니다.
나는 정말 물질적으로 나 말고 내 주변이 부요하였으면 좋겠습니다.
나 때문에 성도님들이 잘 되고
나 때문에 교회가 잘 되고
나 때문에 교단이 잘 되고
나 때문에 기독교가 잘 되고
나 때문에 나라가 잘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1948년 미국의 아이젠하워가 참모총장직에서 물러 났습니다. 그가 미국 참모총장에서 물러 났는 데도 재산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타고 다니던 참모 총장 차를 국가에 반납하고 나니까 차도 없었습니다. 청빈하게 살았습니다. 그 후 깨끗한 사람들이 주변에 모여 들었습니다. 국민들이 그를 인정하여 주었습니다.
드디어 대통령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깨끗한 사람을 쓰십니다.
그렇습니다. 오늘 말씀을 그대로 마음에 두시기를 바랍니다.
<그러나 지족하는 마음이 있으면 경건이 큰 이익이 되느니라. 우리가 세상에 아무 것도 가지고 온 것이 없으매 또한 아무 것도 가지고 가지 못하리니 우리가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은즉 족한 줄로 알 것이니라 부하려 하는 자들은 시험과 올무와 여러가지 어리석고 해로운 정욕에 떨어지나니 곧 사람으로 침륜과 멸망에 빠지게 하는 것이라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 이것을 사모하는 자들이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 많은 근심으로써 자기를 찔렀도다.>
마지막으로 이런 이야기 하나 드리고 마치려고 합니다.
조선 시대 이야기입니다. 청빈한 생활을 하던 이 대감의 이야기입니다. 그는 생선을 좋아 하였습니다. 이를 알고 자리를 부탁하려는 관리가 이 대감이 좋아 하는 생선으로 뇌물로 가지고 왔습니다. 그러나 이 대감은 단호하게 거절하였습니다. 그 사람이 물었습니다. <생선을 좋아하시는 분이 왜 생선을 사양하십니까?> 이 대감이 웃으며 말했습니다. <생선을 좋아 하기에 생선을 거절하는 것이요. 내가 뇌물을 받으면 이 자리에서 물러나야 할 텐데 그러면 무슨 돈을 가지고 좋아하는 생선을 사 먹을 수 있겠소? 도로 가지고 가시오.>
하나님의 사람은
딤전 6:7-11 / 오세원 목사
유명기업에 다니는 사람을 지칭할 때 이런 표현을 씁니다. “삼성맨” “엘지맨” “현대맨” 삼성사람, 엘지사람, 현대 사람이란 뜻이지요. 행동하는 것, 업무추진 하는 것을 보면 알게 되는 경우도 있지만 그것을 알리기 위해 유니폼이나 마크를 달고 다니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을 믿는 성도는 “하나님 맨”이 되어야 하지 않겠어요. 이런 경우를 ‘하나님의 사람’이라고 칭할 수도 있습니다. 그리스도인, 교인, 성도 등 다양하게 붙입니다만 오늘 읽은 본문 11절에 보면, 바울은 디모데를 가리켜서, “하나님의 사람”이라고 불렀습니다. 구약 성경에는 이 칭호가 신명기33장1절에서 모세에게, 사무엘상9장8,10절에서는 사무엘에게 사용되었습니다. 이들 외에도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선지자들에게 “하나님의 사람”이라는 칭호가 사용되었습니다.
그러면 오늘날에는 누가 하나님의 사람입니까? 목회자를 비롯한 모든 성도가 다 하나님의 사람이 아니겠습니까? 하지만 그것은 내가 하나님의 사람이라고 해서 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그렇게 불러주셔야 하고 다른 사람들이 그렇게 불러주어야 합니다. 과연 내가 하나님의 사람이라고 불릴 정도의 하나님의 사람이 되어 있는가? 여러분 스스로 생각해 보십시오. ‘나는 하나님의 사람입니다’라고 할 수 있는가 말입니다. 당신을 보고 많은 사람들이 ‘당신은 하나님의 사람입니다’라고 하는지요. 쉽게 말씀드리면 ‘당신은 교인으로 보입니다’라든지, 아니면 ‘당신은 예수맨’입니다고 칭함을 받는지요.
그러면 무엇이 우리를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합니까?
우리를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하는 것은 세상의 학문이 아닙니다. 신비한 체험도 아닙니다. 특별하게 받은 은사도 아닙니다. 오직 성경이 우리를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합니다. 우리를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하는 것은 성경입니다. 성경의 가르침을 받아 삶에서 말씀이 나타날 때 하나님의 사람으로 불릴 수 있습니다. 아무리 우리가 열심을 내더라도, 우리가 말씀을 떠나면 우리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되지를 못합니다. 하나님의 저울로 달아보면 턱없이 부족할 뿐입니다. 그것은 자기 식의 열심일 뿐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이미 ‘하나님의 사람’이라고 자부하며 살고 있지 않습니까? 하나님의 사람은 어떤 것을 갖추어야 하는지를 알면, 과연 하나님의 사람으로 생각하고 사는 것이 합당한지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오늘 읽은 본문 말씀에는 하나님의 사람이 좇지 말아야 할 것과 좇아야 할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선 하나님의 사람이 되면 좇지 말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첫째, 돈을 좇지 말아야 합니다. 즉 돈을 사랑하지 말아야 합니다.
참으로 어려운 조건입니다. 돈을 사랑하지 않기가 쉽지 않습니다. 특히 종말의 시대가 되면 인간들은 ‘돈을 사랑한다’고 디모데후서3장2절에 말씀하고 있습니다. 돈을 좋아할 수는 있으나 사랑하면 안됩니다. 돈을 사랑하는 것은 모든 악의 원인이 되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 10절에 보면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 이것을 사모하는 자들이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 많은 근심으로써 자기를 찔렀도다” 돈을 사랑함이 가장 큰 문제가 무엇인가?
죄를 짓게 되는 것이고, 그리고 믿음에서 떠나게 만듭니다. 하나님의 사람은 돈을 사랑하지 않아야 합니다. 돈을 사랑한다는 것은 모으려고 합니다. 모으려고 하는 것은 결국 부자가 되려고 하는 것입니다. 부자가 되려고 하는 마음을 먹으면 시험과 올무가 되어 여러 가지 어리석고 해로운 정욕에 떨어집니다. 결국은 멸망에 빠지게 됩니다. 그러므로 돈을 사랑하지 않는 가장 좋은 방법은 ‘공수래공수거’임을 기억하고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으면 그것으로 만족할 줄 알아야 한다고 7-8절에 말씀하고 있습니다.
지나치게 부자 되려고 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이 주신 것을 만족하며 사십시오. 많이 가졌다고 생각하면 나누는 삶을 사십시오.
이런 면에서 볼 때 여러분 자신은 ‘하나님의 사람’입니까? 아닙니까?
두 번째, 하나님의 사람은 우상숭배를 피해야 합니다.
고린도전서10:14 “그런즉 내 사랑하는 자들아 우상 숭배하는 일을 피하라”
우상숭배는 보다 적극적으로 피해야 합니다. 이유는 갈라디아서5:20-21에 보면 ‘우상숭배자는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한다’고 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상숭배의 행위는 철저하게 막아야 합니다. 이런 면에서 당신은 하나님의 사람입니까? 아닙니까?
돈을 사랑함과 우상을 피하면서도 보다 적극적으로 좇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람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11-12말씀에 보면, “오직 너 하나님의 사람아 이것들을 피하고 의와 경건과 믿음과 사랑과 인내와 온유를 좇으며 /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라 영생을 취하라 이를 위하여 네가 부르심을 입었고 많은 증인 앞에서 선한 증거를 증거하였도다”여기에 보면 하나님의 사람으로서 좇아 행하여야 할 삶의 내용이 여섯 가지를 나열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람은,
첫째, 의롭게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의롭게 여기는 삶이 어떤 삶일까요? 공의를 말합니다. 즉 올바른 삶입니다. 정직한 삶입니다. 하지만 아무리 의롭게 산다 하여도 하나님 앞에 의롭다 칭함을 받을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시편143편2절 “...주의 눈 앞에는 의로운 인생이 하나도 없나이다”그렇습니다. 주님 앞에는 의로운자가 한 사람도 없습니다.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습니다. 로마서3장20절 “그러므로 율법의 행위로 그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나니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니라”그래서 우리는 늘 실수하고 허물어지는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 하나님은 공의로우시지만 우리를 사랑하시고 용서하십니다. 시편11편7절 “여호와는 의로우사 의로운 일을 좋아하시나니 정직한 자는 그의 얼굴을 뵈오리로다”그러므로 성경에 보면 하나님은 공의롭게 사는 자를 들어 사용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육신의 아버지 요셉을 가리켜 ‘의롭다’(마1:19)고 표현했습니다. 헤롯이 세례 요한을 ‘의로운자’(막6:20)라고 했습니다. 누가복음 2장25절에 보면 아기 예수님을 만난 ‘시므온’을 의로운 사람이라고 칭하고 있습니다. 누가복음23장50절 말씀에 보면 예수님을 위해 자기 무덤을 제공하였던 요셉을 ‘의로운 요셉’이라고 칭하고 있습니다.
둘째, 경건하게 살아야 합니다.
이것은 하나님과 더불어 살고 있다는 경외심을 간직하는 것으로서 하나님의 성품을 닮아가는 행위로 볼 수 있습니다. 베드로후서1:3 에 보면, “그의 신기한 능력으로 생명과 경건에 속한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셨으니 이는 자기의 영광과 덕으로써 우리를 부르신 이를 앎으로 말미암음이라”
경건에 속한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셨다고 했습니다. 주신 그것이 무엇인가 하면 4절에 해답이 있습니다. “신성한 성품에 참여하는 자의 삺”입니다. 신의 성품에 참여하는 자의 삶은 어떤 살밍어야 하는가? 그 해답을 5-7절에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너희가 더욱 힘써 너희 믿음에 덕을, 덕에 지식을, / 지식에 절제를, 절제에 인내를, 인내에 경건을, / 경건에 형제 우애를, 형제 우애에 사랑을 더하라”
위 말씀을 요약하면 경건한 삶은 결국 하나님의 성품을 닮는 삶이요, 그 삶은 구체적으로는 덕스러운 믿음이어야 하며 종국에는 사랑이 나타나야 합니다. 사랑은 다양하게 표현됩니다.
야고보1;26-27말씀을 봅시다.
“누구든지 스스로 경건하다 생각하며 자기 혀를 재갈 물리지 아니하고 자기 마음을 속이면 이 사람의 경건은 헛것이라 /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정결하고 더러움이 없는 경건은 곧 고아와 과부를 그 환난중에 돌보고 또 자기를 지켜 세속에 물들지 아니하는 그것이니라”
우리가 경건하게 산다는 것을 정의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참된 경건은 혀를 잘 통제해서 말을 잘해야 합니다. 말이 덕스럽지 않으면 경건한 삶이 아닙니다. 그리고 참된 경건의 삶은 작은 자를 돌아보는 삶이어야 합니다. 세속에 물들지 않는 삶이 경건의 삶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경건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셋째, 믿음을 가진 자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사람이라면 당연히 하나님을 경외하는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이 믿음의 모습이 삶을 통해서 나타나야 합니다. 믿는다고 하면서도 믿음 없는 불신자의 모습이 나타난다면 믿음이 아닙니다. 믿음이 없으면 하나님의 사랑이 될 수 없습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을 온전히 믿습니까? 그렇다면 반드시 믿음의 모습이 나타나야 합니다. 믿는다고 말은 하면서도 행동은 불신자의 모습이라면 위선된 믿음에 불과합니다. 하나님의 사람이라 불릴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사람이라 칭함을 받은 모세, 사무엘, 선지자들과 디모데를 보면 믿음이 확고한 사람들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사람은 확고한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어떤 환경에서도 변절되지 않는 믿음이어야 합니다.
넷째, 사랑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여기서 사랑은 아가페 사랑입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위해 하신 일 중 가장 위대한 것으로서 인간이 본받아야 할 신앙의 핵심 요소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엄한분으로 여길 때가 많습니다. 시편116편5절 “여호와는 은혜로우시며 의로우시며 우리 하나님은 긍휼이 많으시도다”의로우시면서도 은혜롭고 긍휼이 많으시다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도 산상설교 중 마태복음5장38절이하에 보면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또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갚으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악한 자를 대적하지 말라 누구든지 네 오른편 뺨을 치거든 왼편도 돌려 대며 / 또 너를 고발하여 속옷을 가지고자 하는 자에게 겉옷까지도 가지게 하며 / 또 누구든지 너로 억지로 오 리를 가게 하거든 그 사람과 십 리를 동행하고 / 네게 구하는 자에게 주며 네게 꾸고자 하는 자에게 거절하지 말라
/ 또 네 이웃을 사랑하고 네 원수를 미워하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요한일서4:10말씀,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속하기 위하여 화목 제물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라”
하나님의 사람은 사랑의 사람이어야 합니다. 요한일서4:7-8말씀,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서로 사랑하자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 사랑하는 자마다 하나님으로부터 나서 하나님을 알고 /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
사랑이 없으면 하나님의 사람이 아닙니다. 아가페의 사랑을 해야 합니다. 힘들어도 그 사랑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본질이 사랑이시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공의롭게 해도 사랑이 들어가지 않으면 하나님의 사람이 아닙니다. 성도 여러분! 하나님이 죄인된 인간을 조건 없이 사랑하셔서 독생자를 주셨고, 독생자로 오신 예수님은 조건 없이, 아니 자기를 핍박하는 자를 위해서도 죄를 징계하지 않으시고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십자가에 죽어주셨던 그 사랑을 받았으니 우리도 서로 사랑하는 것이 마땅합니다. 요한일서4:11말씀, “사랑하는 자들아 하나님이 이같이 우리를 사랑하셨은즉 우리도 서로 사랑하는 것이 마땅하도다”
주님의 사랑을 본받아 사랑하는 삶을 살아 하나님의 사람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다섯째, 인내함으로 살아야 합니다.
불행과 고난에도 불구하고 흔들리지 않고 ‘견디는 것’을 말합니다.
데살로가전서1:3말씀, “너희의 믿음의 역사와 사랑의 수고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소망의 인내를 우리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끊임없이 기억함이니”
하나님의 사람은 인내가 필요합니다. 핍박을 받아도 인내해야 합니다. 조롱을 받아도 인내해야 합니다. 욕을 얻어먹어도 인내해야 합니다. 억울한 일을 당해도 인내해야 합니다. 심한 고통과 고난이 닥쳐와도 인내해야 합니다. 신앙생활 잘하려고 하다가 실패해도 인내해야 합니다. 남이 나를 화나게 만들어도 인내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사람은 인내의 사람이어야 합니다. 어느 정도 인내해야 하는가? 하나님이 우리가 돌아 올때까지 인내하면 기다리듯이 인내해야 합니다. 끝까지 참아야 합니다. 생각난다고, 화가 치밀어 오른다고 해서 인내하지 못하고 절제하지 못하여 행동하거나 말을 하면 반드시 실수를 하게 됩니다. 오히려 더 큰 화를 불러오기도 합니다.
죄를 범하고 싶은 욕정이 타오를 때 잘 참아내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의 길에서 어긋난 길로 가려고 하는 생각이나 유혹이 찾아왔을 때 인내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인내합니다. 하나님의 사람으로 인내하지 못했을 때 돌아온 결과는 엄청난 일입니다.
아브라함과 사라가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인내하지 못하고 하갈을 아브라함에게 주어서 애기를 낳아서 이스마엘이 되었을 때 그 민족을 통해서 얼마나 많은 고통을 받았습니까?
노아의 두 딸이 인내하지 못하고 근친상간을 일으켰을 때 모압과 암몬 자손을 낳아 그들로 말미암아 이스라엘이 얼마나 많은 괴롭힘을 당하지 않았습니까?
모세가 인내하지 못하고 지팡이로 반석을 쳐서 물은 내었지만 가나안 땅을 밟아보지 못하는 안타까운 사람이 되었습니다.
삼손이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고 욕정을 인내하지 못했을 때 그는 비참한 꼴을 당했습니다.
가룟 유다가 돈의 욕심을 극복하지 못하였다가 결국 자살하고 말았습니다.
마태복음24:11-13절 “ 거짓 선지자가 많이 일어나 많은 사람을 미혹하겠으며 / 불법이 성하므로 많은 사람의 사랑이 식어지리라 / 그러나 끝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그렇습니다. 종말의 시대에는 인내가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우리의 믿음을 허물어뜨리기 위한 유혹과 미혹이 심하기 때문입니다. 그것을 인내하지 못하면 믿음을 잃어버리게 됩니다. 그러면 구원받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사람은 인내를 잘해야 합니다. 인내를 잘해서 하나님의 사람으로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시길 축원합니다.
여섯째, 온유한 마음을 갖고 살아야 합니다.
온유라고 번역하지만 헬라어 원문의 단어로는 여기에만 사용한 단어입니다. ‘프라워파디안’인데‘온순(meekness,KJV)’으로 번역됩니다. 이것은 그리스도의 성품을 닮은 자가 지니는 특징 중의 하나로서 다른 사람들에게 안위를 제공하고 대인 관계에 있어서 늘 여유있는 상태를 말합니다. 영어의 단어 ‘meekness’는 온순하다는 의미입니다. 마음이 따스하고 부드러우며 여유있는 모습입니다. 뭔가 푹신한 느낌을 받는 마음의 상태입니다. 그래서 어떤 과격한 행위나 말이라도 일단 쿠션이 있어서 들어갔다가 천천히 나오기 때문에 급격한 변화가 일어나지 않습니다. 반면에 온유하지 못하면 바로 반사되어 과격한 말이나 행동이 나옵니다. 하나님의 사람은 온유해야 합니다.
민수기12:3에 보면, 모세의 온유함이 지면의 모든 사람들 보다 승하다고 했습니다.
마태복음11:29에 보면 예수님은 자기를 가리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온유하고 겸손할 때 마음이 쉼을 얻는다고 하셨습니다.
갈라디아6:1말씀, “형제들아 사람이 만일 무슨 범죄한 일이 드러나거든 신령한 너희는 온유한 심령으로 그러한 자를 바로잡고 너 자신을 살펴보아 너도 시험을 받을까 두려워하라”
형제가 무슨 범죄한 일이 드러나거든 어떤 마음으로 다가가야 합니까?
완악한 마음으로 다가가야 합니까? 죽일 듯이 달려가야 합니까? 당장에라도 감옥에 넣을 것처럼 고발하고 고소로 다가가야 합니까?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신령한 너희는 온유한 심령으로 그러한 자를 바로 잡고”하나님의 사람은 신령한 사람들입니다. 신령한 하나님의 사람들은 온유한 심령으로 바로 잡아야 합니다. 그러면서도 자신을 돌아봐야 합니다. 왜냐하면 나로 시험을 받을까 두려워해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성도 여러분, 온유한 마음을 갖고 살아 하나님의 사람이 되십시오. 하나님의 사람으로서 신령한 성도라면 다른 사람의 허물과 죄를 발견할 때에 온유한 마음으로 다가가서 바로잡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교회 성도들 모두가 이런 마음을 가지고 주님 앞에 설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의 사람이 좇아야 할 삶의 여섯 가지를 기준을 놓고 볼 때에 여러분은 자신있게 ‘하나님의 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까? 하나님의 사람 맞습니까?
하나님의 사람으로 사는 삶은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며 사는 삶입니다. 믿음의 선한 싸움에서 승리해야 합니다. 승리하는 삶을 위해서는 바로 앞에서 말씀드린 대로 피할 것은 피하고 좇아야 할 것은 부지런하게 좇으며 살아 삶의 현장에 나타나도록 해야 합니다. 왜 우리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살아야 하는가? 믿음의 선한 싸움에서 승리해야만 하는가? 영생을 얻기 위함입니다. 우리 신앙의 궁극적인 목적이 영생, 구원, 부활하는 것입니다.
12절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라 영생을 취하라 이를 위하여 네가 부르심을 입었고 많은 증인 앞에서 선한 증거를 증거하였도다”
돈을 사랑하지 마시고 우상을 철저하게 치하십시오. 그리고 의와 경건과 믿음과 사랑과 인내와 온유의 삶을 살아 반드시 하나님의 사람이 되어 믿음의 선한 싸움에서는 승리하는 자가 되기를 축원합니다. 영생을 온전히 얻는 승리자가 되기를 축원합니다.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
디모데전서 6:7-10 / 김정호 목사
일상(日常)에 쫒기며 사는 현대인들이 가장 많이 쓰는 말은 ‘시간(時間)이 없어’입니다. 하지만 시간이 많이 주어진다고 해서 어떤 일을 꼭 잘 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삶의 중요(重要)한 우선순위(優先順位)를 정하고 가치(價値)있는 일을 시작 하십시오. 해야 할 일을 자꾸 미루다보면 1년, 2년은 금세(今歲)지나갑니다. 가치(價値)있는 하고 싶다면 지금 바로 시작하십시오. ‘시간은 아무리 있어도 충분(充分)하지가 않다. 해야 할 일은 지금 곧 해치워야 한다.’ 벤저민 프랭클린(Benjamin Franklin)의 말입니다.
누구나 돈은 실제적이고 민감합니다. 돈 때문에 행복한 사람도 있고 불행한 사람도 있습니다. 돈이 많은 사람도 돈 걱정, 돈이 없는 사람도 돈 걱정, 돈을 주는 사람도 돈 걱정, 돈을 받는 사람도 돈 걱정을 합니다. 어린이부터 노인에 이르기까지 돈에 대한 관심이 많고 걱정을 많이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돈 때문에 아파하고 너무 힘들어 하고 있습니다. 돈 자체는 선하거나 악한 것이 아닙니다. 돈을 사용하는 사람과 목적에 따라 선과 악의 도구가 될 수 있습니다. 분명한 진리는 돈으로 구원을 받을 수 없습니다. 죽으면 한 푼도 가지고 갈 수도 없습니다. 돈의 가치가 제한적입니다. 소유가 아닌 하나님 뜻대로 사용한 것만이 진정한 가치이며 영원한 재산이며 하나님께로 가지고 가는 진정한 재산입니다. 오늘 돈과 물질에 대하여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깨달음과 은혜와 새로운 결단과 출발의 시간이 되시기를 축원 드립니다.
1. 자족하라
본문 7-8절 “우리가 세상에 아무 것도 가지고 온 것이 없으매 또한 아무 것도 가지고 가지 못하리니 우리가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은즉 족한 줄로 알 것이니라”
6절에도 “자족하는 마음이 있으면 경건은 큰 이익이 되느니라“라고 하였습니다. 스토아 학파의 철학자들은 현자란 지상의 행복과 불행에서 완전히 독립하여 마음의 평강을 누리는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오직 평강의 근원이신 하나님과 교제함으로써 얻어지는 자족을 말하고 있습니다. 자족의 마음을 소유한 자는 세상적인 유혹과 물질에 대한 지나친 관심을 떨쳐버리고 하나님께만 소망을 둠으로 부족함을 느끼지 않을 뿐 아니라 오히려 풍족한 삶을 살게 됩니다. 진정한 행복이란 물질의 많음에 있지 않고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에 있기 때문입니다. 사도 바울은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으면 만족하라는 것입니다. 바울이 여기서 강조하는 것은 어느 것에 관심을 가지고 생활해야 하느냐 하는 점입니다. 최소한의 먹을 것과 입을 것만을 취하라는 의미보다는 하나님 나라와 의에 더 큰 관심을 가지라는 권면입니다. 대단히 많은 것을 가지고도 감사하거나 자족하지 못하고 평생 거미처럼 더…더 하다가 인생 끝나는 불행한 인생이 아니라 작은 것에도 감사하고 찬양하고 자족하는 행복한 인생이 되어야 합니다. 행복은 물질에 비례하는 것이 아니라 믿음에 비례하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 내것은 하나도 없다’ 매일 세수하고 목욕하고 양치질하고 멋을 내어보는 이 몸뚱이를 “나라고” 착각하면서 살아갈 뿐입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이 육신을 위해 돈과 시간과 열정과 정성을 쏟아 붓습니다. 예뻐져라, 멋져라, 날씬해져라, 병들지 마라, 늙지 마라, 제발 죽지 마라.! 하지만 이 몸은 내 의지와 내 간절한 바램과는 전혀 다르게 살찌고 야위고 병이 들락 거리고 노쇠화되고 암에 노출되고 기억이 점점 상실되고 언젠가는 죽게 마련입니다. 이 세상에 내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우리들이 꿈을 꾸고 비전(vision)을 향(向)해 나아갈 때 가장 큰 걸림 돌은 바로 두려움입니다. 꿈이 있다면 과감(果敢)히 시도하십시오. 시도조차 하지 않는다면 아무 것도 얻을 수 없습니다. 때로 역경(逆境)을 만나기도 하겠지만 당당히 맞서야 합니다. 우리들이 역경을 이겨 내었을 때 강(强)한 사람이 됩니다. 성공(成功)을 확신(確信)하는 사람이 성공(成功)할 수 있습니다. ‘당신이 두려워하고 있는 일을 실천(實踐)하라. 그 두려움이 분명(分明)히 사라질 것이다. 이길 수 있다고 믿는 사람이 이긴다.’ 램프 왈도 에머슨(Ralph Waldo Emerson)의 말입니다.
자족(自足)이란 자기의 분수에 만족하는 것입니다. 세상의 물욕을 끊고 의식주 생활에 청렴하고 담박하여 항상 스스로 만족하는 생활입니다. 부족해도 넉넉하다고 생각하면 항상 여유가 있고 넉넉해도 부족하라고 생각하면 항상 부족하다(구봉집-송익필)고 했습니다. 불평과 원망은 인생과 가정과 교회와 사회를 망치고 파괴합니다. 누구도 웃거나 행복할 수 없습니다. 불평은 풀행이고 불신앙이고 지옥에 이르게 됩니다. 우리는 범사에 감사해야 합니다(살전 5:18). 감사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믿음이 충만한 사람은 어떤 상황에서도 감사하고 찬양합니다. 모든 일과 상황에 자족하고 감사면 반드시 행복하고 기적이 일어납니다. 지금 소유에 자족해야합니다. 지금 얼마의 돈이 있든지 불평하거나 욕심을 부리지 말고 자족하고 감사해야합니다. 적어도 자족하고 많아도 자족해야합니다. 돈이 풍성한 사람이 되기 보다는 자족과 감사가 풍성한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어떤 상황과 소유와 돈 앞에서 자족하고 감사하고 찬송하는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성도가 되시기를 축원 드립니다.
2. 조심하라
본문 9절 “부하려 하는 자들은 시험과 올무와 여러 가지 어리석고 해로운 욕심에 떨어지나니 곧 사람으로 파멸과 멸망에 빠지게 하는 것이라”
부자가 되려는 강한 욕구를 가지고 있는 자들은 여러 가지를 조심해야 합니다. 시험과 올무를 조심해야 합니다. 부자가 되려는 지나친 욕망에 사로잡힌 자는 유혹을 받아 마귀의 올무에 걸리게 됩니다. 재물에 대한 지나친 욕구는 영혼의 눈을 어둡게 만들며 결과적으로 하나님과의 교제가 단절되는 결과를 초래합니다. 이러한 결과는 인간의 영적 죽음이며 완전한 파멸입니다. 사람을 파멸과 멸망에 빠지게 합니다. 사도 바울은 물질을 소유하려는 욕구 자체를 죄악시 하지는 않았습니다. 바울은 결코 금욕주의자가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물질적인 욕구를 제어하지 못하고 물질의 획들에 지나친 관심을 두어 거기에만 몰두하는 것은 잘못된 삶의 형태입니다. 모든 인간관계와 하나님까지도 재물의 도구로 생각하게 됩니다. 재물에 대한 지나친 욕심은 영혼의 눈을 어둡게 만들며 하나님과의 교제가 멀어지거나 단절되는 결과를 초래합니다. 몸과 영혼의 완전한 파멸에 이르는 고통과 자주에 이르게 됩니다. 그래서 돈과 하나님 모든 것을 잃어버리게 됩니다.
아들이 아버지에게 충고 문자 메시지를 네 통이나 보냈다고 합니다. 아들이 보낸 문자 메세지 제 1신입니다. 아버지, 조심해야겠습니다. 젊은 아이들 만날 때 아버지는 잘못을 바로 잡아 주시려고 하는데 요즘 그 행동이 나쁜 행동이랍니다. 처녀애들이 짧은 바지를 입던 말던 아뭇소리 마셔요. 이렇쿵 저렇쿵 하다간 성희롱범으로 몰립니다. 눈 감고 사세요 아버지 못 참는 성격 걱정 됩니다. 아들이 보낸 문자 세지 제2신입니다. 아버지, 동네 어린아이들 만나면 예쁘다고 "고추 따먹자" 그런 소리 절대 마세요. 아이 엄마가 고발하면 성추행범이 됩니다. 가문의 수치가 되니 아버지 조심하세요. 아버지 때문에 걱정입니다. 아들이 보낸 문자 메세지 제3신입니다. 아버지, 길거리에서 중고등학생들 담배 피운다고 아버지 식대로 야이놈들아, 버릇없이 어데서 담배 피워 호통 했다간 이건 동네 망신당합니다. "뭔데 네가 뭔데-- 당신이 뭔데~! 대들면 뭐라고 할겁니까. 주의 준다고 뺨 한대 때리면 아버지 폭행범으로 몰립니다. 아들이 보낸 문자 메세지 제4신입니다. 세상일을 아버지 식대로 살다간 망신만 당합니다. 세상이 남이야 전봇대로 잇빨 쑤시던, 남자가 여자 옷을 입고 여자가 남장을 하던, 이제 모두 제멋에 사는 세상이란 것을 아셔야 합니다. 동네 처녀 총각들에게 결혼 이야기 하지 마세요. 그 사람들도 결혼 못한 것 독이 올라 있답니다. 잘못 말했다간 큰 코 다칩니다. 이런 식의 문자메세지를 아들이 네 통씩이나 보냈는데 아버지 하는 말이 아 ~말세여 말세여~! 세상이 말세여~!
우리가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조심해야 할 일들이 너무 많습니다. 아무리 조심하여도 지나침은 없습니다. 젊은 아이들, 동네 아이들, 학생과 청년들, 모든 사람에 이르기까지 조심하고 또 조심해야 합니다. 내 생각과 방법대로 말하거나 행동하면 엉뚱한 오해와 저항을 받을 수도 있습니다. 물질과 재정과 돈에 있어서도 시험과 올무와 어리석음과 해로운 욕심과 파멸과 멸망에 빠지지 않도록 경계하고 기도하고 조심을 해야 합니다. 불조심과 물조심과 사람 조심 뿐 만아니라 물질에 대한 조심을 많이 해야 합니다. 물질로 인하여 더 많고 중요한 것을 잃어버리기 때문입니다.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임을 기억하면서 범사에 조심하면서 살아가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축원 드립니다.
3. 믿음을 지키라
본문 10절 “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 이것을 탐내는 자들은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 많은 근심으로써 자기를 찔렀도다”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라고 하였습니다. 돈을 사랑함이 모든 행동과 삶의 척도라는 말도 있습니다. 돈을 사용하는 것을 보면 사람의 마음과 인격과 신앙을 알 수 있습니다. 돈을 넘어 서기가 쉽지 않습니다. 돈 그 자체는 악하지 않으나 돈에 탐욕을 품게 될 때 여러 가지 다양한 죄와 악이 발생합니다. 사도 바울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된다고 말한 것은 돈을 사랑함이 모든 악의 유일한 근원임을 말하기보다 재물을 지나치게 탐하게 될 때 일어나는 극단적인 결과를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돈이나 재물의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게 됩니다. 별이 자신의 일정한 궤도에서 이탈하여 유성처럼 떠돌아다니는 것을 의미합니다. 돈에 대한 지나친 탐욕을 품은 자들은 믿음보다 물질에 더 관심을 갖게 되어 결국 믿음을 버리거나 잃고 방황하게 되고 극심한 슬픔으로 고통을 받게 됩니다. 물질에 욕심이 생기게 되면 모든 마음과 생각과 시간과 인생 전체를 물질이 원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게 되어 믿음과 하나님의 반대 방향으로 곤두박질하게 됩니다.
미국의 20대 대통령 제임스 가필드의 일화입니다. 그는 대학생 때 한 친구를 따라잡기 위해 열심히 노력했지만 번번이 지기만 했고 도저히 이길 수가 없었습니다. 기숙사에서 생활하던 가필드가 하루는 그 친구의 방으로 갔습니다. 그러던 중 마침내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바로 그 친구 방의 불이 언제나 자신의 방보다도 10분 늦게 꺼진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입니다. 그 후에 가필드는 10분을 더 공부하여 결국 좋은 성적을 내게 되었습니다. 훗날 대통령으로 취임했을 때 그 당시를 회상하며 말했습니다. “10분을 잘 활용하십시오. 그러면 이 10분이 모든 일을 성공으로 이끄는 원동력이 될 것입니다!” 지금보다 더 건강해지고 싶다면 10분 더 운동하세요. 지금보다 더 상식을 키우고 싶다면 10분 더 책을 읽으세요. 지금보다 더 사려 깊어지고 싶다면 10분 더 생각하세요. 지금 누구보다도 더 큰 노력을 해야 합니다. 정답이고 성공입니다.
우리는 믿음을 지키기 위해서 누구보다도 10분 더 기도하고 예배하고 봉사하고 영적인 일에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영적으로 충만할 때 모든 욕심과 유혹을 넉넉히 이기게 됩니다. 돈이나 무엇이나 누구 때문에 결단코 믿음에서 떠나면 안 됩니다. 믿음 떠나면 근심과 불안과 두려움이 찾아옵니다. 그것이 평생 자신과 가정을 찌릅니다. 아프고 피가 납니다. 믿음 떠나면 다 잃게 됩니다. 결국 영생과 면류관을 잃어버리게 되고 멸망하고 지옥에 이르게 됩니다. 믿음을 지키면 돈과 건강과 장수와 행복을 지키게 됩니다. 모든 것은 하나님 손 안에 있습니다.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라는 사실을 기억하며 오직 믿음으로 모든 시험과 유혹을 이기고 믿음의 대장부가 되시기를 축원 드립니다.
사랑하는 번동 가족 여러분!
누구나 돈이 필요하고 좋아합니다. 그러나 돈 때문에 건강과 사람과 믿음과 영혼을 잃어 버린 사람들이 너무 많습니다. 돈은 사용하는 것이지 사랑하는 것이 아닙니다. 평생 자족하고 조심하고 믿음을 지켜서 돈의 주인이 되어 돈을 종으로 다스리는 승리하는 성도가 되시기를 축원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