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침에 읽는 오늘의 詩 〈1402〉
■ 서시 序詩 (김남조, 1927 - )
가고 오지 않는 사람이 있으면
더 기다리는 우리가 됩시다.
더 많이 사랑했다고 해서
부끄러워 할 것은 없습니다.
더 오래 사랑한 일은 더군다나
수치일 수가 없습니다.
요행이 그 능력이 우리에게 있어
행할 수 있거든 부디 먼저 사랑하고
더 나중까지 지켜주는 이가 됩시다.
사랑하던 이를 미워하게 되는 일은
몹시 슬프고 부끄럽습니다.
설혹 잊을 수 없는 모멸의 추억을
가졌다 해도 한때 무척
사랑했던 사람에 대해
아무쪼록 미움을 품는 일이
없었으면 합니다.
- 1976년 시집 <동행> (서문당)
*미국 아이비리그의 하나인 코넬대의 심리학자인 신디 헤이잔 (Cindy Hazan) 교수는 사랑에 관하여 흥미로운 가설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즉, ‘사랑의 감정이란 대뇌에서 도파민, 페닐에치아민, 옥시토신의 3가지 물질이 분비되어 서로 칵테일처럼 섞이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화학반응이다’라고 주장하며, 이 화학물질은 아무리 길어도 18~30개월을 넘지 못하고 사라진다고 합니다. 누군가를 만나 가슴이 울렁거리고 환희에 젖어 그가 없으면 죽을 것 같은 사랑은 길어봐야 2년 반이라는 말입니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그의 주장에 공감이 갈 수도 있을 것입니다만 사랑은 과학이나 의학적으로 분석해서 결론을 낼 수 있을 만큼 간단명료한 것이 아님도 또한 자명한 사실이라 하겠습니다.
여하튼 이 詩는 진정한 사랑에 대한 깨달음과 그 실천을, 겸허하고 부드럽게 노래하고 있는 작품입니다. 시인은 이 詩에서 진정한 사랑이란, 사랑하는 사람이 나를 사랑하는 것보다 더 많이 더 오랫동안 사랑하는 것이며, 헤어진 이후에도 미워하지 않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읽을수록 구구절절이 맞는 내용이 아닐 수 없다고 고개가 끄덕여지는군요.
대체적으로 평범한 사람들은, 오랫동안 변함없이 사랑하기가 어려울뿐더러 사랑하던 마음이 변해서 이별을 한 이후에는 만나기 전보다 훨씬 더 미워하고 백안시하는 것이 현실이라 여겨집니다. 과거 젊은 시절 우리들이 한두 번씩 겪어 본 경험으로 볼 때 말이죠.
그렇지만 나이가 든 지금의 우리는, 자신이 한때 사랑하던 사람을 미워하지 않고 너그러이 포용할 수 있을만큼 원숙해졌을 것이라 생각됩니다만. Cho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