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듀서로서 제이지(Jay-Z)를 비롯한 많은 힙합 뮤지션들을 세상에 나오게 만든 어브 고티가 54세 한창 나이에 세상과 작별했다고 미국 CBS 뉴스가 6일(현지시간) 전했다.
그런데 그가 언제 어디에서 어떤 경위로 죽음을 맞았는지에 대해선 알려진 것이 현재로선 없다고 방송은 전했다. 고티는 당뇨병과 관련된 문제들로 싸워왔으며, 지난해 초 "경미한 발작"으로 힘들어 했다고 영국 BBC는 전했다. 당시 대변인은 그가 식단을 바꿔 "완전히 회복하는 데 성공했다"고 밝혔다.
1990년대 후반과 2000년대 초반 차트를 장식한 뮤지션들을 많이 배출한 그의 프로듀싱 스타일은 힙합 비트와 부드러운 리듬앤블루스(R&B) 멜로디와 섞는 것이었다.
데프 잼(Def Jam) 레코딩스는 전날 밤 늦게 소셜미디어에 고인의 죽음을 확인하는 메시지를 올리며 "깊은 슬픔을 느낀다"고 밝혔다. "고인은 데프 잼과 머더 인코퍼레이션(Murder, Inc.)의 프로듀서로서 다음 세대나 아티스트들과 프로듀서들이 진입하게 하는 길을 닦고 힙합과 R&B 사운드 지형을 다시 짜는 힘으로 작용했다. 그의 독창적인 천재성과 문화에 대한 지칠줄 모르는 헌신은 셀 수 없는 히트곡들을 배출했고 전 세계 팬들과 계속 조응하게 하는 음악 시대를 규정했다."
6일 아침 일찍까지 이 포스트에는 100개 이상의 댓글과 수천 개의 좋아요!가 달렸다고 방송은 전했다. 추모의 글 가운데 팻 조(Fat Joe)는 사진 한 장을 올리고 설명으로 "얼마나 천재였던가. 신의 은총을 어브에게. 힙합을 위해 당신이 해낸 모두에 (감사). 당신은 우리 삶을 바꿨고 난 항상 당신을 사랑할 것이다. RIP(평안한 휴식을)"이라고 달았다.
1971년 뉴욕 퀸스의 홀리스에서 어빙 도밍고 로렌조 주니어로 태어난 고인은 1990년대 중반 음악에 재능이 있는 인재를 발굴하는 일로 경력을 시작했다. 뉴욕 MC Mic 제로니모의 프로듀서로 일했는데 당시만 해도 DJ 어브란 예명을 썼다. 그러다 제이지의 데뷔 앨범 '리즈너블 다우트'(Reasonable Doubt, 1996)을 내놓으면서 유명 프로듀서로 발돋움했다. 당시 마피아 보스 존 고티를 참조해 "힙합계의 큰손"이란 이유에서 어브 고티란 이름으로 활동하기 시작했다.
그는 미래의 슈퍼스타 DMX와 제이지를 발굴해 데프 잼으로 영입했다. 그는 DMX 데뷔 앨범의 전임 프로듀서였으며 레코드 레이블 머더 인코퍼레이션을 공동 창업해 자 룰(Ja Rule)과 아샨티(Ashanti)의 음악경력을 이끌었다. 영국 BBC는 제니퍼 로페즈를 발굴한 이도 고인이라고 전했다.
제니퍼 로페즈와 자 룰의 듀엣 곡 'Ain't It Funny'와 'I'm Real', 아샨티의 'Foolish'와 'Always on Time', 팻 조의 'What's Luv?' 등이 그가 프로듀스한 멀티플래티넘 앨범에 들어 있는 노래들이었다.
고인은 2002년 영국 일간 가디언 인터뷰를 통해 "마치 팝 음악처럼 팔리기 때문에 사람들은 혼동스러워했다"면서도 "우리는 무엇보다도 먼저 흑인 음악을 만들며, 모든 우리 레코들은 맨먼저 후드를 썼다"고 털어놓았다.
고티는 아샨티의 2002년 데뷔 앨범으로 그래미 최우수 컨템포러리 R&B 앨범상을 수상했다. 또 매리 J 블리지, 팻 조, 카니예 웨스트를 포함한 아티스트들의 프로듀서로서 28차례 미국 차트 히트 곡을 내놓았다.
고티와 그의 형제 크리스토퍼는 2000년대 초반 법정에 선 적이 있는데 널리 알려진 마약왕 케네스 슈프림 맥그리프와 관계가 있다는 억측 때문에 돈세탁 혐의를 받았는데 둘 다 누명을 벗었다. 음악계를 대표하는 몇몇 스타들은 이 사건을 주목했는데 자 룰은 사실상 "힙합에 대한 전쟁"이라고 칭하기도 했다.
미 연방수사국(FBI)은 맥그리프와 머더 인코퍼레이션 직원들이 공모해 래퍼 50 센트를 암살하려는 음모를 짰다고 봤다. 50센트가 '게토 쿠란' 노래에다 맥그리프의 과거 범죄 이력을 자세히 적은 것에 대해 복수하기 위한 것이었다는 의심이었다. 이에 앞서 50 센트의 동료 한 명이 뉴욕에서 자 룰에게 강도짓을 벌였고 레코딩 스튜디오에서 몸싸움을 벌이다 50 센트가 흉기에 찔리는 일까지 벌어졌다. 머더 인코퍼레이션 래퍼 블랙 차일드가 자위권을 행사하는 과정에 흉기를 휘두른 것으로 조사됐다. 나중에 50 센트는 별거 아니다며 문제 삼지 않았으면서도 계속해서 고티와 머더 인코퍼레이션을 원수처럼 여기고 공격해댔다.
고티는 머더 인코퍼레이션이란 부정적인 이미지를 불식시키려고 더 인코퍼레이션으로 회사 이름을 바꿨다. 싱어송라이터 바네사 칼튼을 영입하고, 아샨티 앨범들을 계속해 발매하는 등 발버둥을 쳤으나 레이블은 예전의 영광을 찾지 못했다.
지난해 7월에도 고티는 2020년부터 2022년까지 자신과 관계가 있었다고 주장한 익명의 고소인에게 성폭행 및 강간 혐의로 소송을 제기당했다. 변호인을 통해 그는 기본적으로 혐의를 부인하며 "정말로 유린으로 고통받는 여성들을 모욕하는 것"이라고 반박했다.
고인은 세 자녀 앤지와 소니, 조너선 윌슨, 모친 니 니 로렌조, 두 누이 티나와 앤지, 형제이며 머더 인코퍼레이션 공동 창업자인 크리스 로렌조를 남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