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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보는 대종교와 많이 다른 설명이네요. 지적해달라 하시니 시간내어 해봅니다. 많은 충돌이 있는 내용입니다. 여태 자주 언급했던 내용이기도 하네요. 대종교 대종교는 한배검의 진리와 홍익인간 실현을 목적으로 세계를 지상천국으로 만들고자 하는 한국 고유의 종단입니다. 1) 한배검 : 대종교 공식용어이나, 고경전(신사기, 팔조대고 등) 경전용어는 아닙니다. 일신 '하느님'이 경전용어입니다. 우리 조상은 대대로 '하느님' 모셨습니다. 2) 홍익인간 : 경전용어는 '홍익인세'입니다. 3) 지상천국 : 기독교 용어죠. 그냥 홍익인세라고 하면 됩니다. 살아서는 홍익인세, 죽어서는 천궁가서 영득쾌락이 목표입니다. 4) 한국고유 : 경전에 없는 내용이죠. 오색족을 교화하였습니다. 유불선이 신교의 맥이라 하는 말이 이를 입증합니다.
1. 교명(敎名) 대종교(大倧敎)는 한배검1)께서 처음 세우신 종문(倧門)으로, 대종(하느님)을 신앙하는 종교입니다. 처음에는 단군교라 하였으나 온 인류의 종교라는 것을 밝히기 위하여 대종교로 바꾸었습니다. 대종(大倧)은 하느님을 의미합니다.2) 5) 종문 : 家 < 門 < 敎 < 道 순 입니다. 경전에는 '입대도 설대교'라고 하였죠. 6) 대종 : 하느님이라고 설명하나 사람인 변이 있는고로 신인의 의미로 봅니다. 신과 신인은 엄격히 말하면 다릅니다. 고경전에도 이러한 구분이 있습니다. 7) 신앙 : 기독교 용어입니다. '중성신천'이라고 중간정성이 믿음을 추구합니다. 경전용어는 '경천'입니다. 전통적으로도 경천이라 했습니다. 8) 처음에는? : 1909년 중광당시로 바꾸면 좋겠습니다. 신흥종교로 오해되네요. 2.신앙대상과 신관 10) 한얼님 : 하느님이 전통적 용어입니다. 비록 경전에 한얼님이라고 해석은 되어 있습니다만... 11) 단군 : 경전용어가 아닙니다. 중국이 왜곡한 역사에 의해 단군이라 오인된 것입니다. 여기까지만 하겠습니다. ......
다. 대종교의 철학 – 삼진귀일(三眞歸一)과 삼법수행 1) 삼진귀일: “大倧의 이치는 三一일 뿐이니”6), 대종교의 핵심 진리는 삼진귀일입니다. 하나(一)는 하느님이며 모든 개체(三)는 하느님에서 와서 하느님에게로 돌아갑니다. 참된 하나로 돌아가기 위해 우리는 삼법수행을 하고 하느님이 되기 위하여 애써 노력해야 합니다. 2) 삼법수행: 지감(止感=마음은 늘 평정심을 유지함)·조식(調息= 숨은 늘 깊고 고르게 쉼)·금촉(禁觸=몸가짐은 늘 바르게 함)을 삼법을 수행함으로써 반망즉진(返妄卽眞, 세상의 온갖 미혹迷惑을 이기고 참된 사람이 됨)하고 삼진귀일(三眞歸一, 근본으로 환원)하여 성통공완(性通功完)에 이르는 것입니다. 성통공완을 위하여 우리는 늘 삼법수행을 게을리하지 않아야 합니다. 우리는 모두 일상의 생활 속에서 삼법수행을 통하여 깨달은 사람(철인喆人)이 되어야 합니다. 대종교에서는 사람은 이미 하느님(一)을 몸 속에 간직한 거룩한 존재이며 결국은 하느님과 하나가 될 고귀한 작은 하느님(三)입니다. 어찌 사랑하고 존중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7) 신전(神典) : 《천부경》,《삼일신고》,《참전계경》 보전(寶典) :《신리대전》,《신사기》,《회삼경》,《진리도설》,《구변도설》, 《삼법회통》 보감(寶鑑) : 《단조사고》, 《단조사고 《신단실기 《신단민사 《배달족역사》 《배달족강역형세도》, 《대종교신리》 《종지강연》 《종리문답》 《신형유훈》 《한얼노래》, 《단군교포명서》 《오대종지서》
6. 대종교의 역사(유래, 중광, 독립운동) 가. 대종교의 뿌리 우리 배달민족은 백두산(白頭山) 남북을 중심으로 원시적 생활을 하고 있었고, 이를 불쌍히 여긴 한배검[天祖]께서는 홍익인간(弘益人間)과 광명이세(光明理世)의 이념을 가지시고 상원갑자(上元甲子) 시월 초사흘날 백두산에 내리시어 교화(敎化)를 펴기 시작하시니 이날이 곧 개천절(開天節)이다. 이로부터 125년 뒤인 무진(戊辰)년 시월 초사흘날 백성들의 추대(推戴)를 받으시어 임금이 되시니 이분이 곧 단군(檀君)이시오(檀君紀元 BC2333년), 그때의 정사(政事)로서는 곡식[穀]·명령[命]·질병[病]·형벌[刑]·선악(善惡)의 다섯 가지 일을 주관하시고 다시 이를 삼백육십사(三百六十事)로 나누어 다스리시니 남녀(男女)·부자(父子)·군신(君臣)의 윤리(倫理)와 의복·거처·음식의 모든 제도가 비로소 잡히어 문화생활을 시작하게 되었다. 원래 우리 배달민족은 밝음을 상징하는 태양을 숭배하여 오다가 단군 한배검께서 천신대도(天神大道)로 교문(敎門)을 열으시고 교화(敎化)를 펴게 되시니 이로부터 한얼님을 받드는 사상이 점차로 깊이 뿌리 박혀졌었다. 그리하여 그 뒤 부여(夫餘)에서는 대천교(代天敎), 신라는 숭천교(崇天敎), 고구려는 경천교(敬天敎), 발해(渤海)는 진종교(眞倧敎), 고려는 왕검교(王儉敎), 만주(滿洲)에서는 주신교(主神敎)라 하였고 다른 나라에서는 천신교(天神敎)라 불러 왔다.10) 나. 중광 중광이란 대종교(大倧敎)가 다시 일어나 거듭 빛났다는 뜻이니 여러 천 년 동안 우리 민족의 한얼을 받드는 정신이 국교(國敎)로 내려오다가 고려(高麗) 원종(元宗) 임금 때에 원(元) 나라의 침입으로 국권은 빼앗기고 점점 억눌리게 되어 마침내 교문이 닫히고 말았다. 칠백 년 가까이 교문을 다시 열지 못하고 있던 중 한국말엽(韓國末葉)에 기울어져 가는 국운을 일으키려고 몸과 목숨을 바쳐 오시던 홍암(弘巖) 나철신형(羅喆神兄)은 을사오적을 쳐 없애려다가 그 뜻을 펴지 못하고 지도(智島)에서 귀양살이를 하던 차 고종황제(高宗皇帝)의 특사(特赦)를 받아 돌아온 뒤, 일본과 외교적인 교섭을 벌여 나라를 구하려 했느나 실패하고, 백두산 보본단(報本壇)에 감추었던 [삼일신고(三一神誥)]를 찾아 수도하던 백봉신사(白峯神師)님으로부터 두 차례에 걸쳐 「삼일신고」, 「신사기」, 「단군표포명서」, 「고본신가집」, 「입교의절」, 「봉교절차」, 「봉교과규」 등을 받으시고 또 오랜 수행과 한얼님의 묵시(默示)를 얻어 기유(己酉)년(서기 1909) 음력 정월 보름날에 서울 재동(齋洞) 취운정(翠雲亭)에서 한얼님께 제사를 올리고 포명서(布明書)를 선포하고 교문을 열으시어 교우(敎友)들의 추대로 교주(敎主)가 되시니 이날이 곧 대종교가 세상에 다시 일어나 거듭 빛난 중광절(重光節)인 것이다.11) 다. 독립운동12) 1) 중광 후 일제의 탄압에 만주로 망명하여 독립운동의 정신적 지주가 되었으며, 직접 적극적인 무력항쟁을 수행했다. 그곳에서 신흥무관학교를 비롯한 독립군 양성소를 만들고 청산리전투를 비롯해 벽오동·대전자전투 등 수많은 독립전쟁을 주도했다. 2) 1918(戊午)년 음력 10월 개천절에 무오독립선언(대한독립선언서)을 해외 독립운동 지도자 39인 명의로 선포했다. 무오독립선언은 무제한 무력투쟁을 선언한 데 비해 3·1독립선언은 평화적 항쟁을 선언했다는 데 차이가 있다. 3) 포교활동은 독립운동으로 이어졌으며 독립운동은 곧 포교활동이었다. 따라서 만주에서 40여 곳의 교당(敎堂)은 독립운동 기지화했다. 4) 국가와 민족의 장래를 설계하기 위한 민족교육학교를 설립했다. 이로써 신흥학교·동창학교·배달학교 등의 배움터가 만들어졌다.(광복 이후 홍익대학, 국학대학, 단국대학, 경희대학) 5) 무력항쟁과 문화항쟁 양면작전으로 교육 및 문화운동을 전개해 만주에서의 민족학교, 국내에서의 교육계 중진을 배출했고 한글(언어)창달 운동을 벌였다. 일제의 언어말살정책에 맞서 조선어학회 조직 및 한글큰사전 편찬활동을 벌였다. 6) 독립군 및 임시정부에 독립운동 자금을 조달했다.13) 7) 임오교변(壬午敎變)과 조선어학회사건: 1942년에 일제가 두가지 정책사건을 동시에 일으켰다. 조선어 말살정책으로 조선어학회 사건을, 조선민족정신 및 항일운동 핵심체 말살정책으로 임오교변을 일으켰다. 이때 10명의 대종교 지도자가 순교했다. 8) 민족주의 사학자들은 대종교 2세교수 김교헌의 영향으로 시작되며 신채호(申采浩)· 박은식(朴殷植)· 이상룡(李相龍)· 유인식· 정인보(鄭寅普)· 안재홍·장도빈(張道斌) 등이 민족 주체성을 가진 역사 연구의 맥을 형성하였다. 9) 대종교 지도자들의 국어 사랑은 그대로 독립투쟁이었다. 주시경 선생과 김두봉, 최현배 등 그 제자들과 이극로 같은 대종교 원로들의 조선어학회 활동이 그것을 증명한다. 10) 대한민국 건국내각에는 이시영 부통령을 비롯해 이범석(국무총리)·안호상(문교부장관)·명제세(심계원장)·정인보(감찰위원장)·신성모(국방부장관)씨 등 6명의 대종교인이 참가하고. 또 미군정 시절에는 안재홍 선생도 민정장관을 지내기도 하며 민족사를 바로잡기 위해 애썼으나, 나중에 ‘흩어지면 죽고 뭉치면 산다’는 구호로 친일반역자들을 끌어 모은 이승만의 독재에 협조하지 않았기 때문에 대종교는 오히려 그 탄압의 대상이 되고 말았다.
7. 신앙 생활 가. 경일 경배 전국의 모든 교당에서 매주 일요일 11시부터 12시까지 경배의식을 행하고, 경배의식은 한배검께 올리는 네 번의 절(四拜)로 시작하고 감사와 원도와 한얼말씀이 중심을 이룸 나. 경축일 중광절 – 대종교를 중광한 1909년 1월 15일(음력)을 기념 어천절 – 한배검께서 다시 하늘로 돌아가신 날(음력 3월 15일)을 기념 가경절 – 홍암 대종사님께서 조천하신 날(1916년 8월15일 음력)을 기념 개천절 – 한배검께서 이 땅에 오신날(음력 10월 3일)을 기념하여 제천의식을 행함 제천의식은 선의식14)이라 하며, 예로부터 내려온 삼신일체 하느님께 드리는 천제(天祭)를 복원시킨 것입니다. 다. 평소 대종교인으로서 홍익인간 이화세계의 꿈을 가지고 남을 사랑하고 자신을 발전시키는 진종대도를 실천해야 하는바, 늘 평정심을 가지고(지감) 숨을 깊고 고르게 하며(조식) 몸을 바르게 하여(금촉) 삼법을 수행함으로써 모든 사람들에게 대종교인로서 품위와 올바른 생활을 해야 함.
8. 대종교 조직 나. 중앙기구(中央機構) : 대일각(大一閣-총전교의 집무기관), 원로원(元老院-원로원장과 위원들로 대일각의 자문 기관), 삼일원(三一園), 종무원(宗務院) 다. 삼일원 1) 종리원(倧理院) : 총본사(總本司) 도서(圖書)를 보존(保存) 관리(管理) 및 종리 연구 2) 선도원(宣道院) : 교역자(敎役者) 양성(養成) 및 시교선도(施敎宣道)를 관장(管掌)하고, 선도회의(宣道會議)를 주관(主管), 장·단기 교육계획과 시교당 순방지도, 교질(敎秩)·품위(品位) 사정(査定), 종리대학(倧理大學)을 운영 3) 수도원(修道院) : 삼법수행(三法修行)의 지도, 성직자(聖職者) 및 일반교인(一般敎人)의 수도정진(修道精進), 각 수도원(修道院)에서 지도하는 신앙(信仰)과 수행(修行)을 감독 다. 종무원(宗務院) 1) 전리실(典理室) : 대일각(大一閣)의 전교회의(典敎會議)에서 결의(決議)한 바에 따라 총전교(總典敎)가 교정수행(敎政遂行)을 위해 지시(指示)하는 사항(事項) 집행 (執行), 도본사(道本司) 산하(傘下)에 시교당(施敎堂) 및 수도원(地方修道院)의 설치(設置) 허가(許可)와 운영(運營) 감독(監督), 사회사업(社會事業)과 육영교육사업(育英敎育事業) 및 교우후생사업(敎友厚生事業), 예산(豫算)의 편성(編成)과 집행(執行) 및 결산(決算), 출판물(出版物), 종경(倧經)의 발간(發刊) 및 보급(普及), 제반(諸般) 인사발령(人事發令)과 인사서류(人事書類) 관리 3) 전강실(典講室) : 시교(施敎)·선도(宣道) 사업(事業), 교직자(敎職者) 및 성직자(聖職者)와 일반교우(一般敎友)들의 교육, 교질(敎秩)과 품위승선(品位昇選), 교적(敎籍)·교보(敎報) 기타 간행물 등의 편찬(編纂) 9. 대종교 교기와 천진 대종교의 교기는 '천신교기(天神敎旗)'라고 하며, 줄여서 '천기(天旗)'라고 부릅니다.
10. 대종교 인물 종교 – 홍암(나철)대종사, 백산 안희재, 동산 최전, 손암 오기호, 단애(윤세복)종사 역사연구 – 무원 김교헌(종사), 백암 박은식, 단재 신채호, 동산 유인식, 산운 장도빈, 위당 정인보, 한뫼 안호상 국어연구 – 주시경, 김두봉, 권덕규, 최현배, 이병기, 김영숙, 홍명희, 이극로, 정열모, 안재홍, 이윤재, 한징, 유근, 안확 문화 – 나운규, 이세정, 안창남, 손기정, 백련 지운영, 채동선, 춘초 지성채, 애산 이인(법) 의학 – 지석영, 김두종, 윤필한, 양봉근, 정관, 김준 항일 – 서일(종사), 이기, 이동녕, 이시영, 이회영, 지청천, 김좌진, 김동삼, 이시열, 이상설, 신규식, 나중소, 이범석, 조성환, 박찬익, 한훈, 신성모, 조완구, 정원택, 조경한, 김일두, 우덕순, 홍범도, 엄주천, 신건식, 김규식, 김혁, 신순호, 서상일, 김승학, 조병준, 이규채, 홍충희, 이호길, 이광, 이동하, 황학수, 신백우, 신팔균, 권오설, 현익철, 홍주일, 명제세 교육- 이회영(신흥무관학교 설립), 이시영(신흥대-현 경희대 설립), 이흥수(홍익대 설립), 장형(단국대 설립)
1) 한배검은 하느님을 대종교에서 부르는 명칭이며, 일반인이 알고 있는 단군왕검의 神稱입니다. 2) 1910년 단군교명을 대종교로 고칩니다. 大는 ‘한’을 倧은 ‘옛적 神人 종’자이며, ‘神人이란 하느님이 사람으로 변화하여 이땅에 오신 분입니다. 3) 강우, 「종리문답」, 대종교출판부,1925 4) 대종교 경전 「삼일신고」 신훈 5) 최현배, 「民族的 更生의 原理」『朝鮮民族更生의 道』, 정음사, 1962, p.135. 6) 나철, 「神理大全(神敎)」『譯解倧經四部合編(全)』, 대종교출판부, 1968, p.65. 7) 대종교 경전 삼일신고 신훈 ‘自性求子’는 하느님이 이미 우리 ‘머리골 속에 내려와 계시느니라.’라고 하고 있습니다. 8) 대종교 경전 삼일신고 진리훈 9) 대종교 경전 삼일신고 천궁훈 10) 대종교총본사 사이트 www.daejonggyo.or.kr 대종교 유래 11) 김동환, 「己酉重光의 民族史的 意義」『國學硏究』제1집, 1988, 참조. 12) 대종교총본사 www.daejonggyo.or.kr의 대종교 소개에서 요약 편집함 13) 대종교 원로 백산 안희재 선생이 경주 최부자의 돈을 강도질하여 김구 주석께 독립운동 자금으로 전달하고 광복후 김구 주석이 경주 최부자를 불러 확인한 이야기는 유명한 일화이다. 14) 선의식은 단절된 민족 전래의 천제로서, 홍암이 순교하기 직전인 1916년 8월 15일 근 |
첫댓글 이 사람이 미처 몰랐던 대종교에 대한 자세한 글 잘 읽었습니다.
수긍이 가는 면도 있고
일반적으로 대종교에서 쓰던 말을 쓴 것도 지적하기도 했군요. 좀더 기다리며 검토를 더욱 깊이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문제가 되는 부분은 모두 함께 검토하도록 해 봅시다.
근거 제시를 위해 오래된 원로의 글을 끌어오기도 하여 저도 만족스럽지 않은 부분이 있기도 합니다.
제 원칙은 최대한 경전용어를 사용하자는 것이죠. 그것도 고경전위주로. 대종교 선배들의 용어보다.. 한 글자 바꿈으로 인해 뜻이 와전될 수 있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