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말은 새가 듣고, 밥말은 쥐가 듣는다
"낮말은 새가 듣고, 밤말은 쥐가 듣는다."
아무리 비밀히 한 말이라도 반드시 남의 귀에 들어가게 되는 법이니
말조심해야 한다는 교훈을 담은 속담이다.
누군가로부터 남의 험담을 들을 때 "절대 발설하지 않겠다."고 약속하지만,
시간이 흐르면 그 약속은 까맣게 잊어버리고 여기 저기 그 험담을 전하게 된다.
험담은 돌고 돌아서, 애초에 험담을 했던 사람에게 그 구업의 과보로 찾아온다.
구업(口業)은 문자 그대로 '입으로 지은 업'이다.
업(業)은 범어 까르마(Karma)의 한역어로 '행위' 또는 '행동'을 뜻한다.
불전에서는 우리의 모든 행위를 그 짓는 기관에 따라서 신업(身業),
구업, 의업(意業)의 셋으로 나눈다.
신업은 손, 발과 같이 몸으로 하는 행동이고,
구업은 입으로 하는 행동인 말이며,
의업은 마음으로 하는 행동인 온갖 생각들이다.
또 우리의 행동은 가치에 따라서 선한 것(善性), 악한 것(惡性),
선도 악도 아닌 것(無記性)의 세 가지로 구분된다.
몸으로 살생, 도둑질(투도), 삿된 음행(사음)을 하거나,
입으로 거짓말(망어), 욕설(악구), 이간질(양설),
꾸밈말(기어)을 짓거나, 마음에서 탐욕, 분노(진에),
삿된 종교관(사견)이 일어나면 악이다. 이를 십악이라고 부른다.
"낮말은 새가 듣고, 밤말은 쥐가 듣는다."는 속담에서는
우리가 삼가야 할 것을 십악 가운데 구업인 '말'에 국한하지만,
악은 몸이나 마음에서도 일어날 수 있다.
또 이 속담은 남과의 대화중에 삼가야 할 것을 가르치지만,
불교의 업 이론에 의하면 목격자가 전혀 없는 악행도 삼가야 한다.
내가 아무도 듣지 않은 혼자말을 하거나, 목격자가 없는 악행을 하거나,
심지어 아무도 모르게 마음 속으로만
나쁜 생각을 했어도 언젠가 나에게 화(禍)가 돌아온다.
나의 일거수일투족을 항상 바라보고 있는 자가 있어서 나를 처벌하기 때문이다.
그 자는 다름 아닌 바로 나다. 업을 짓는 나이고,
내가 업을 짓는 것을 목격한 자도 나이고, 나중에 나를 처벌하는 자도 나다.
나에게 업을 짓게 하고 나로 하여금 그 과보를 받게 한다.
이를 자업자득이라고 부른다.
정신분석학의 창시자 프로이트에 의하면 우리의 마음은 이드(Id),
자아(Eog), 초자아(Superego)의 3원구조로 이루어져 있다고 한다.
이드는 '본능', 초자아는 '양심', 자아는 '양심과
본능을 중재하는 영민한 조절자'라고 풀이 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가 악을 행하여 양심인 초자아의 감시망에 걸려들 경우,
언젠가 나(자아)도 모르게 '초자아'의 처벌을 받는다.
이를 자기처벌(Self-punishment)이라고 부른다.
불교의 자업자득, 인과응보에 대한 정신역동성(Psycho-dynamics)적 해석이다.
낮말이든 밤말이든, 꿈속에서 한 말이든, 남에게 한 말이든,
나 혼자 한 말이든, 내가 한 모든 말들을 다 내가 듣고 있다.
내 마음이 알고 있다. 내 마음 밭에 구업의 씨앗으로 저장되었다가,
시간이 지나면 무르익어서 마치 싹이 트듯이 과보로 나타난다.
불교 유식학 용어로 '마음 밭'을 아뢰야식이라고 부른다.
'창고와 같은 마음'이라는 뜻이다. 낮말은 새가 듣고,
밤말은 쥐가 듣기도 하겠지만, 새나 쥐가 있든 없든 낮말도 언제나 내가 듣고,
밤말도 언제나 내가 들어서, 아뢰야식의 창고에 저장되었다가 과보로 나타난다.
내가 나를 처벌한다. 자업자득의 자기처벌이다
속담 속에 담은 불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