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수시 여행] 충민사 유물 전시관..........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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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충민사 유물전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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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랑자는 이제 여수의 자랑이자 이 충무공의 숨결이 살아있는 충민사(忠愍祠)로 향한다, 6월 호국의
달을 맞이하여 달려간곳 ‘충민사‘ 그렇다면 우리 나라에서 이 충무공을 기린 제1호 사당은 어디에 있
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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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여수다, 여수는 이순신 장군을 영웅으로 다시 태어나게 만든 곳이자 제 2의 고향이기도 하다. 당
연히 여수에 가면 충무공 제1호 사당이 있다. 이순신 장군 마지막 전투지였던 이순신 대교가 있는 광
양만, 이곳에 가면 광양으로 들어가는 길목을 지키고 있는 마래산 자락에는 충민사가 자리 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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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민사(忠愍祠)는 국적 제381호로 지정된 사당으로 통영 충열사보다 62년, 아산 현충사보다는 103년
이나 먼저 지어진 충무공 사액사당 제1호이다. 조선 선조 34년(1601) 영의정 오성 부원군 이항복(李
恒福)이 왕명을 받고, 통제사 이시언(李時言)이 건립한 사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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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민사라는 이름도 선조가 직접 지어 현판을 썼다고 한다. 이순신 장군은 임진왜란 때 해전을 승리로
이끈 구국의 영웅으로 투철한 애국정신과 뛰어난 전술로 우리나라를 지킨 가장 존경받는 인물 중 한
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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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로 충민사 건립의 목적은 나라를 위해 죽어간 이순신 장군을 기리고 또한 충민사를 방문하는 이들
의 이해를 돕기 위해 건립됐다.유랑자는 먼저 충민사로 입구를 지키고 있는 유물관으로 향했다. 충민
사에 들어서니 넓은 공원처럼 조성되어 푸르른 잔디가 왼지 시원스러움으로 가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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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물관 입구에는 우리나라 총통과 화포를 모형으로 전시해 놓았다. 어쩐지 아군의 총,화포에 죽어간
왜적들의 아비귀환의 생생하고도 처절함이 들리는 것 같아 섬찟함이 앞선다. 고도로 발달된 현대화의
무기에 비해 애들 장남감 같은 실물들을 보면서 과거 어떻게 저런 무기로 전쟁을 했는지 신기할 정도
로 의아심이 들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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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른편에는 천자총통과 성을 공격할 때 쓰였던 화기인 대완구, 우리나라 고유의 화포인 지자
총통, 임진왜란 때 가장 많이 사용한 현자총통, 황자총통,완구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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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편에는 화력이 강한 대승자총통, 총신이 길어 탄환속도가 빠르고 사정거리가 긴 별승자총통,
유선형 화기인 당총통, 수포승자총통, 소승자총통, 조선시대 휴대용 소형화기인 소총통, 한 번에
탄환 8개를 발사할 수 있는 팔전총통, 소위원포, 호준포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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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신 장군상 칼을 빼어든 이순신 장군을 양각한 청동상이 위용을 자랑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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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왕지사 전시해 놓은거 같은 값이면 쏘는 방법이나 실제로 사용한 모습까지 전시가 되었으면 어땠
을까 하는 아쉬움도 남는다. 그리고 도착한 유물관, 정문을 열고 들어서자 어~라 아무도 없다. 우물
쭈물 하는사이 어지선가 달려온 안내원이 묻는다. 관광이죠?? 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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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적고 전번쓰고 어디에서 왔는지. 적고 손 소독제 바르고 들어 가세요. 요즘 어디를 가나 듣는 이
야기 이고 관례고 의무다, 먼저 유물관 안쪽 입구에는 장군을 필두로 농민과 승려까지도 참여한 역동
적인 청동 조각 조형물이 양각으로 조각되어 오는이들을 반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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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일기 선조 25년(1592) 5월1일부터 26년 3월까지 27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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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긴다기 보다는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어떻게든 위기에 처한 나라를 구하겠다는 굳은 일념으로
농기구와 칼을 든 농민에서부터, 승려, 관군등등 피눈물을 흘리고 있는 조각품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조형물을 보고 있으니 서글프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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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작 나라가 어려울 때 진정 나라를 위해 싸운 사람은 위정자가 아닌 옳고 그른 것 밖에 모르는 순박
한 사람들이었다는 생각에 마음이 아리고 아프다. 전시관 내부로 들어가 본다. 전시관 안에는 이순신
장군 일대를 그린 유물들이 복제품으로 전시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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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쉽다. 좀 더 넓은 공간에 당시의 생생한 전쟁 모습을 담은 작은 모형이라도 만들어 놓았으면 좋을
텐데….
전시실에는 이순신 장군의 친필과 임진일기, 갑오일기, 이충무공 전서, 임진장초 등이 전시되어 있다.
이순신의 생애와 사상, 거북선 건조에 대한 기록 등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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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물326호인 요대와 옥로, 도배 복제품도 있다. 이순신의 전술과 진법은 물론 해전일람표와 이충무
공의 필사품, 전장에서 갖가지 신호용으로 사용했던 구리로 만든 곡나팔과 영패가 보관되어 있다. 조
선장수의 갑주 옆에는 일본장수의 갑주가 있어 눈길을 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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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귀도와 참도도 있다. 귀도의 자루는 박달나무로써 용의 머리를 조각하고 그 아래에는 귀신 모자
를 각각 조각한 후 붉은 칠을 하였다. 액귀를 물리치기 위한 호신용으로 칼집에는 용의 비늘이 새겨져
있다. 참도는 무거운 죄를 지은 사람들을 참수할 때 사용하기 위한 칼이라고 적혀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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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이순신 장군이 남긴 문헌들을 통해 느낄수 있는 그의 충성과 효심, 의리가 투철했다는 사상을 짐
작케 한다.그리고 세계 해전사의 유래가 없는 전승을 거둔 남해바다의 지형과 물질의 특성을 잘 이용
한 조선 수군과 이순신 장군의 뛰어난 전술·전략을 기록해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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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도, 귀도, 조선장수의 갑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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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유물들은 명의 신종이 보낸 하사품으로 임진왜란 당시 명의 수군 도독 진린이 귀국하여 명의 황제
에게 이순신장군의 전공을 보고하고자 이를 치하해 보낸 물건들이다. 또한 유물관 한켠에는 충민사 유
허비를 임시 보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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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비석은 1886년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10세손이 세운 것이다.1868년 서원 철폐시 파비된 비를 여수
향교에서 66년간 단비제를 지내다가 일제 강점기 일본인의 조사를 피해 충민사 앞뜰에 매장했다.
1975년 충민사 정화사업시 화단에서 발견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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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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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견 당시 비신은 상, 하로 분리되어 있었으며, 하부 비신 우측은 박락·손상된 상태였다.좌대 또한 손
실된 상태였으나 현재 보존처리 완료 후 복원된 상태이며 임시 보관중이다.차후에 충민사 내로 이전
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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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랑자는 이제 유물관에서 장군의 모조품들이긴 하지만 유물 하나하나를 보면서 다시한번 장군을 되
새겨 보는 시간을 잠시 가져 보았다. 살신성인(殺身成仁)의 정신으로 나라를 지키다가 가신 순국선열
과 호국영령들의 숭고한 애국애족 정신을 기리고 되새기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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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소령기;홍색 비단 바탕에 남색으로 '영(令)'자를 오려 붙혔는데 이는 문관에게 명령을 내리는 신호기이다.
*남소령기:남색 비단 바탕에 홍색으로 '영(令)'자를 오려 붙혔는데 이는 무관에게 명령을 내리는 신호기이다.
*독전기:홍색 바탕에 남색비단으로 독전이라 오려 붙혔고 중앙에는 범군임적불용명자처참(凡軍臨敵不用命者處斬)
이라고 쓰여 있는바, "무릇 군사로서 명령에 복종하지 않는자는 목을벤다"는 뜻이나 이는 전투를 독려하기 위해
지휘관이 사용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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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와 겨레의 독립과 자유를 수호하기 위해 귀한 목숨을 초개처럼 버린 이들의 고귀한 희생이 있었
기에 우리는 오늘의 삶과 자유를 누리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그 고마움을 잊고 살고 있는 것은 아닌
지 한번 깊이 생각해봐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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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기에 6월 6일 현충일 경건한 마음으로 조기 달고 그날을 생각하며 조용히 보내야 한다. 본시 6월
6일을 현충일로 정한 것은 24절기 가운데 하나인 망종(芒種)에 제사를 지내던 풍습에서 유래한 것으
로, 고려 현종 5년 6월 6일에 조정에서 장병의 유골을 집으로 보내 제사를 지내도록 했다는 기록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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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호국영령의 달을 맞이하여 나라를 위해 몸 바친 의인들을 다시한번 생각해 보면서 유랑자는 유물
관을 나와 장군의 영정을 모시고 있는 충민사로 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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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주화대:석주화대는 조선조 당시 전라좌수사였던 이 충무공이 직접 휘하의 수군들의 야간 조련을
위해 사용한 유물중 하나로 진남관 뜰에 세워져 있으며 석주화대는 글자 그대로 돌기둥에 화대(등불)
을 설치했던 것으로 당시에는 모두 4개의 석주화대가 있었다고 하지만 지금은 2개만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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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랑자 여행기 이어보기 클릭
http://cafe.daum.net/b2345/9to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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홈:www.cha.go.kr/korea/heritage/search/Culresult_Db_View.jsp?VdkVgwKey=13,0381000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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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여수시 충민사길 52-23 (061-690-7339)
지번: 덕충동 산 11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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