엊그제 응씨배 4강 대진이 결정났습니다. 응씨배는 4년에 한번 열리고, 그 규모와 상금액이 가장 큰 국제대회이기에 바둑 올림픽이라고 불리기도 하는데, 이번이 8회째 대회네요. 1회 대회가 조훈현 국수의 그 유명한 단기필마 우승이고, 90년대 한국 바둑 사대천왕이라고 불리었던 조훈현, 서봉수, 유창혁, 이창호가 모두 우승을 거두었던 대회기도 합니다. 1990 ~ 2000년대 중반까지의 한국 바둑의 전성기를 상징하는 대회였죠. 5회와 7회 대회를 제외하고는 모두 한국기사들이 우승을 차지했었습니다.
지난 대회는 중국의 판팅위 9단(당시 3단이었죠)이 한국 최강자였던 박정환 9단을 꺽고 깜짝 우승을 차지했었죠. 박정환 9단이 국내용이라는 불명예스러운 별명을 얻게되는 시초가 되는 사건이었습니다. 다소 무기력한 바둑끝에 최종스코어 3:1로 우승컵을 넘겨줬었죠. 신예 중국기사들의 끝없는 등장에 한국 바둑의 위기감이 급격히 고조되는 시기였고, 조훈현 - 이창호 - 이세돌로 이어지는 지존의 자리를 박정환이 과연 이어갈 수 있을까에 대한 의문이 들던 대회였습니다.
이번 8회 대회의 관심사는 현 세계랭킹 1위인 커제 9단의 독주체제를 과연 막아설 수 있는가 였습니다. 그리고 알파고와의 대국으로 전 세계적인 관심을 받게 된 이세돌이 과연 본인의 커리어에 응씨배 타이틀을 추가할 수 있을까도 주된 관심사였죠. 그렇게 지난주에 28강으로 대회가 시작되었는데, 그 결과가 굉장히 기분 좋습니다.
먼저 4강 대진은 이세돌 9단 vs 박정환 9단 / 스웨 9단 vs 탕웨이싱 9단입니다. 박정환 9단이 8강전에서 커제를 만나 통괘한 승리를 거두고 국내용이라는 꼬리표를 떼버릴 준비를 마쳤습니다. 내용적으로도 굉장히 좋은 바둑이었는데, 중반 이후 잠시 역전을 당했나 싶었지만 커제의 실착을 파고들어 승리를 따냈습니다. 응씨룰로 1점차 승리인데, 집으로 치면 반집승이죠. 그런데 이게 시간 초과에 따라서 2점의 페널티를 받고도 따낸 승리여서 의미가 있습니다. 응씨배 룰은 다른 바둑대회의 룰과 다르게 본인의 제한시간 3시간을 다 쓰게 되면 초읽기에 돌입하는 것이 아니라 2점의 페널티를 받는건데요, 이걸 노리고 속기파 기사인 커제가 시간 공격을 했지만 그 페널티를 받고서도 무난히 승리를 거둬서 정말 통쾌했네요. 이제 당분간은 커제가 독보적인 최강자다! 라는 명제는 통용될 수 없게 되버렷습니다.
그리고 이세돌 9단은 28강, 16강 대진운이 상당히 좋은편이라 수월하게 8강에 안착했고, 8강에서 강동윤 9단을 만나 큰 격차로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알파고의 수법을 사용하며 탄탄하게 앞서가며 마무리했죠. 지금 기세로 봐서는 이세돌 9단이 생애 최초의 응씨배 우승의 가능성도 굉장히 높아보입니다. 최상은 둘이 다른 트리에 있어서 결승에서 만나는 것인데, 아쉽게도 4강에서 만나게 되어버렸네요.
그리고 반대쪽 트리에서는 중국 기사간의 집안싸움인데요, 중국랭킹 2위 탕웨이싱 9단과 3위 스웨 9단의 대결이 되겠네요. 김지석 9단이 탕웨이싱 9단과의 대결에서 초반부터 엄청난 전투를 벌이며 선전했는데, 중반에서 착각을 하며 결정적인 자충수를 두어 불계패하고 말았습니다. 해설자마저도 혀를 내두를 정도의 엄청난 난전이었는데, 허무한 결과가 나와버려 굉장히 아쉽더군요. 그렇지만 이번 응씨배에서 한국 기사와 중국 기사간의 상대전적은 6:1로 한국 기사들이 압도를 하고 있습니다. 중국의 젊은 기사들에게 패권을 넘겨줄 수 없다는 한국 기사들의 결의가 느껴지는 대회입니다.
4강전은 6월에 3번기로 펼쳐지고, 결승은 10월이 되어야 펼쳐지는데요, 아무쪼록 한국 기사들의 선전을 기원합니다.
첫댓글 친구가 얼마전에 응씨배 아냐고 바둑 타이틀 중에는 대단한 거라고 했었는데ㅋㅋ 한국선수들이 선전해서 좋네요. 이세돌 알파고 기법은 뭔가요?ㅋㅋㅋ
사실 88년 1회대회 창설시 상금이 40만달러로 지금이랑 똑같습니다. 당시 가치로는 아마 40억 가치는 될거고 윔블던 테니스 상금보다 더 컸을 정도였으니 어마어마했었죠. 이세돌9단뿐 아니라 탑 프로기사들이 초반 정석과정에서 알파고가 둔 수들을 채용하고 있는데 이것이 기존에는 악수라고 보류했던 교환이지만 상당히 일리가 있다고 판명이 된거죠. 뿐만 아니라 이전과는 좀 다르게 중앙쪽에 더 가치를 두고 판을 운영해나가고 있는듯합니다. 프로들에게는 불확실하고 수읽기가 힘들며 가치판단이 어려운 중앙쪽보다 귀나 변에서 실마리를 풀어가는것이 그동안의 일관된 흐름이었는데 뭔가 새로운 도전을 하는 느낌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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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바둑이란게 원래 예가 중요시되던 종목이고 특별히 나쁜 매너를 보일만한 요소가 애당초 별로 없는 게임이죠. 조훈현 9단이 혼잣말을 계속 늘어놓거나 요다 9단이 땅땅 착수하던게 특이한 케이스이고요. 일단 초일류간에는 실력차가 백지장 차이인데 그중에서도 이세돌, 박정환, 커제, 스웨가 정점에 서있는 기사들이라고 보면 맞을겁니다. 스웨가 우승은 별로없지만 근래 2,3년 4강, 8강에는 가장 많이 진출했을거에요. 아마 공식적인 세계랭킹이 있다면 점수상으로는 1위일지도 모를정도로 안정적이고 최소 세 손가락 안에는 들어갈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