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는 본당에 행사가 있어서 오후6시 퇴근시간이 되자마자 책상과 케비넷을 잠그고 어제도 야근해야하는 직원들에게 양해 구하고, 사무실을 나섰어요.
오후7시부터 본당에서 성 김대건안드레아 신부님 순교 160주년을 맞아 우리(천주교 대전
교구) 교회에서 순교자성월을 기념하며 현양대회를 하는데,
김신부님의 유해를 교구내 전 성당과 수도회를 순회하며 기도회를 하고 있거든요.
4개 코스중 하나가 마지막으로 제 본당(만년동성당)에 오신 거였죠.
여기서 아래에다 제가 인터넷 검색한 김 신부님관련 자료를 소개하겠어요.
성 김대건안드레아 신부님은 1821년 독실한 천주교 집안에서 태어나, 신앙의 깊은 가르침 안에서 성장하였는데, 신부님의 가족들도 모두 순교의 영광을 받으셨다죠.
1836년 모방 신부님에 의해 신학생으로 선발되어, 마카오 신학교에 들어갔고, 몇차례 입국실패 후에, 부제 신분으로 1845년 1월 1일 변문을 통해 서울로 들어오는 데 성공하였다가.선교사 영입 준비를 마친 다음 상해로 되돌아와, 페레올 주교님에게 사제품을 받았다 해요.
우리나라 사람으로 최초의 사제(신부님)가 되신 거였죠.
그리고 그해 8월에 상해를 떠나, 10월에 강경 나바위에 도달하셨다 해요.
새 사제로 입국하여, 숨어 지내는 교우들을 찾아 사목하였고, 조선교구 부교구장으로 임명되어 1846년 5월 선교사를 영입할 뱃길을 개척하려고 백령도에 도착하였다가
6월초 관헌에 체포되어, 서울로 압송되었고 3개월 동안 문초를 받고, 그해 9월 16일 반역죄로 군문효수형을 선고받아 새남터에서 참수(斬首)되셨습니다.
신부님은 1984년 5월 6일 온 교회가 공경하는 성인(聖人)이 되셨구요..
신부님은 한국인 최초의 사제이며, 또한, 최초의 서양학문 유학자(留學者)이시라네요.
비록 짧은 기간 동안 사목하셨지만, 교회를 사랑하는 목자의 열정을 느낄 수 있는 25통의 옥중서한을 통해 탁월한 학문의 지혜와 신자들을 배려하는 목자의 사랑을 보여주셨다죠.
신부님은 한국인으로서 전통 관습을 가장 잘 이해한 목자이셨으며, 관헌들의 온갖 회유에도 흔들리지 않고, 타협을 모르는 불같은 신앙으로 우리 후손들에게 신앙적 귀감이 되십니다.
이젠 어제의 제 이야기로 다시 돌아갑니다.
저는 엊저녁 사무실을 나서며 지하철을 탈까 버스를 탈까 잠시 생각하다 먼저
구청앞 버스승강장으로 갔는데,
마침 선화동ㆍ중촌동을 거쳐 월평동으로 가는 130번 버스가 제가 기다린 지 채 1분도 안되어 도착하는 거였죠.
“우와~! 하느님 감사합니다. ”
신앙이 없는 사람도 위기에 순간에는 “하느님 맙소사~! 또는 에구 어머니~!” 라며,
하느님이나 어머님을 찾는 다는 데,
역시 우리 본성에는 하느님과 어머니를 향한 마음이 있는 가 봐요. 안 그래요?
저는 130번 버스에 앉아서 가며, 잠시 생각했어요.
이 버스를 막 탄 지금시간이 18시 8분인데,
만약 지하철을 타고자, 중구청역으로 걸어가서 10분 정도 기다렸다 정부청사행 지하철을 타면 18분쯤.
중구청역에서 종점인 대전청사 역까지 12분 걸리니, 30분에 도착할 테고,
거기서 성당까지는 20분을 더 걸어가야 하니, 오후 6시 50분에 가겠는데...
지하철과 이 버스 탄 때를 비교한 거였죠.
물론, 택시를 타면야 “쩐”이 좀 많이 들어 그렇지 편하게 가겠지만...
아무래도 저 같은 평범한 셀러리맨 서민에게야 택시는 과분하죠.
물론, 아주 바쁠 때는 택시도 이용해야 겠지만요...
그래야 택시기사님들과 가족들도 밥벌어 먹고 살지요. (ㅎㅎㅎ)
퇴근시간 직후라 중촌육교와 삼천교 부근에서 좀 밀리긴 했어도,
일찍 서둔 탓에 별 무리 없이 갔어요.
삼천동과 둔산동을 지나 샛별아파트 앞 승강장에서 내린 게, 18시 27분.
신호등에서 보행자 신호 잘 준수하며 성당 앞에 갔는데도 18시45분.
전 코스인 내동성당에서 출발하신 김신부님의 유해가 아직 도착 않았기에,
저는 갖고 간 제 디카로 성당입구에 도열해 계신 형제자매님들의 모습부터
사진촬영을 할 수 있었습니다.
평소 배차간격이 15분을 기다려야 오는 130번 버스를 불과 1분 만에 탄 덕에 시간 절약이
되었고 늦지 않고 성당에 간 거였습니다.
“하느님이 저를 보우(保佑) 하셨죠.”
이윽고 신부님 유해가 도착되었는데, 저는 백합구역장 형제님께 제 디카를 맡기고 먼저 본당이 있는 3층으로 먼저 올라갔어요.
저희 만년동성당은 상가건물 3층에서 “남의 집 살이”하고 있거든요.
제가 신부님 유해를 모시고 드리는 미사에서 독서봉독을 하려면 미리 준비해야 했거든요.
“독서봉사자” 의상을 갖추고 미리 제가 낭독할 부분을 확인했어요.
특별히 제작된 전례서로 드리는 미사라 준비가 부족했는데... (쩝~!)
이윽고, 유해 안치 하고 드리는 미사에서 제1독서를 제가 하였는데,
봉독하는 성경구절이 읽어가는 제 가슴에부터 와 닿고 실감났어요.
제가 본당 전례분과 위원으로 애쓴 지 1년 9개월이 되었는데,
다른 때도 좋았지만, 어제는 더욱 감격스러웠지요.
연습 않고 낭독하는 때문에 실수할 까 염려스러운 마음이 있었지만, 처음부터 끝 구절까지
저의 낭랑한(?) 음성으로 실력발휘 했습니다요.
아마도 성인이신 김신부님 유해를 모시고 드리는 특별미사라 그분께서도 저에게 용기를 주셨나봐요.
성령님께서도 저와 함께 하셨겠죠.
미사 마치고 형제자매님들과 인사 나누고는 집으로 돌아왔어요.
그러고는 늦은 저녁식사를 하고서,
어제 그 시간까지 미처 못 다한 인터넷 카페(사이트)를 순회하며 어제 글을 올려드렸는데...
다 마치고 나니, 밤 11시 45분.
저녁기도와 제가 평소 드리는 특별기도에, 성무일도까지 마치니 자정이 훨씬 지났는데...
늦은 시간이라도 하루를 보람 있게 보내서, 행복한 잠자리였어요.
제가 잠이 부족해 오늘 새벽3시부터의 본당에서의 한아름구역 기도시간에 함께 하지 못해 죄송하구요.
오늘은 9월19일입니다.
이리 예고해 드렸던 지난 주일 저의 마라톤 완주 이야기는 내일로 미루니, 이해해 주세요. (쩝~!)
저는 감사 받는 기간이라 내일(20일) 솔뫼성지에서의 순교자현양대회에 함께 하지 못하겠어서 아쉬운데...
울 대전교구 신자 형제자매님들께서 제 몫까지 하느님의 은총과 축복을 많이 받고 돌아오시길 바랍니다.
전국은 물론 세계 여러나라에 계신 카페 회원님들께도 하느님이든, 부처님이든, 알라님이든...
님들이 믿고 계신 절대자의 가호가 있고, 복되신 하루가 되시옵길 기원 드리며...
합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