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을 살아가면서 주님께 구하여야할 것들이 많이 있지만, "복된 만남"을 구하는 기도는 정말로 귀한 것 같습니다.
둘째 아이가 돌 되던 때부터 중학교 1학년 때까지 다니던 교회를 그만 다니기로 결정하면서,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구하며 무더운 여름 여러 교회를 전전하다가 주님의 교회에서의 첫 예배를 드리게 되었습니다.
낡고 비좁은 긴 강당에서, 강단을 향해 걸어가시는 목사님의 뒷모습을 보는 것으로 주님의 교회 교인으로서의 저의 생활이 시작되었습니다.
예배에는 늘 감격과 눈물의 기도가 있었고, 이미 이긴 싸움을 싸우고 있는 듯 승리의 개가와 같은 찬양이 있었습니다.설교 원고가 아닌, 성도 한 사람 한 사람을 보시면서 목사님의 신앙 인격을 통해 나오시는 말씀은, 성경의 한 단어, 한 구절도 무심코 지나치지 않으셨습니다. 때로는 관절과 골수를 쪼개는 듯, 썩어가는 환부를 도려내는 예리한 칼날 같기도 했고, 때로는 더 이상 버틸 수 없어 쓰러져가는 육의 전을 붙잡고 어찌할 바를 몰라 하는 성도들에게 과감하게 영의 성전을 짓도록 도전하시기도 했습니다.
"한치의 오차도 없으신 하나님”, “영원에 잇대어 가는 삶”, “프로 크리스챤" 등은 목사님을 생각하면 바로 떠오르는 귀절들입니다. 목사님의 말씀 속에서는 늘 "자유와 회복" 즉 분명한 목표를 향한 자유와 에덴의 회복을 위한 말씀의 회복에 대한 절절한 외침이 담겨있었던 것 같습니다.
교인들에 앞서 진리의 발자국을 남기는 자로, 모두의 목사로 남기 위해 투철한 자기관리를 하셨던 목사님, 어김없이 금요일 저녁부터 주일 새벽 까지 사투를 벌이는 설교 준비로 2Kg의 몸무게가 빠지시는 목사님, 인간과의 헤어짐이 있는 곳에 주님과의 뜨거운 만남이 있다고, 개척 목사는 떠나기 위해 존재한다고 말씀하시며, 퇴임 몇 년 전부터 퇴임을 준비하신 목사님. 그 목사님을 통해 들었던 귀에 익숙한 말씀들이 지금도 귓전을 울리는 것 같습니다 .
예배 후 목사님과의 악수를 기다리는 긴 행렬은 조금도 지루하지 않았고, 성도들의 눈을 마주치시며 따뜻하게 건네시는 짧은 인사말씀은 고된 인생사에 지친 인생들의 눈물을 닦아주고 힘을 실어주기에 부족함이 없는 시간이었습니다. 그 당시에 참 신기하게 느껴졌던 것은, 항상 예배를 마치고 나올 때마다 교과서에 나왔던 "큰 바위의 얼굴"이 바로 예수님이신 것처럼 크신 예수님 앞에 머물렀다가 나온 것 같은 기분이 들었던 것입니다. 그 크신 주님 앞에서는 제 인생의 크고 작은 여러 문제와 난관들은 더 이상 큰 것이 아니었습니다.
주일예배, 수요예배, 구역성경공부(목사님이 친히 만드신)를 통해 말씀하시는 주님을 만났고, 그동안 경험해보지 못했던 크신 주님을 만났습니다.
10년을 임기로 떠나시기로 한 목사님께서 떠나시던 날, 그 날은 많은 성도들이 눈물로 목사님을 배웅했습니다. 정신여고 교정에 두 줄로 나란히 서있는 성도들의 배웅을 받으시며 교문 앞에 서있는 사모님의 빨간색 티코를 타시고 목사님은 떠나셨습니다. 떠나시는 목사님을 배웅하는 성도들은 목사님의 모습을 보면서 하늘나라의 유업을 받은 자로 나그네 인생길을 어떻게 살아가야하는지 분명한 본을 보이시며 가셨다는 생각을 하며 그 자리를 바로 뜨지 못했습니다.
그 후 목사님이 계실 때 준공되었던 정신여고 강당이 완공되어 정신여고에 기증식을 할 때나, 매년 있는 창립기념일에도 목사님은 뵐 수가 없었습니다. 새로 오신 목사님과 함께 새 역사의 지평을 열어가라는 목사님의 사려깊은 배려이셨나 봅니다. 늘 자신은 주님을 가리키는 손가락 역할을 했을 뿐이고 때가 되어 그 손을 거두고 가신다고, 이제는 저를 잊고 새로운 목사님을 통해 지금까지는 경험치 못했던 더 크신 주님 바라보라고 말씀하신대로 행하신 분이셨습니다. 교회는 교회의 리더만큼 자란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 땅에 완전한 교회가 어디 있고 완전한 목회자가 어디 있겠습니까마는 리더쉽의 부재라는 말을 흔히 듣고 생각케 되는 요즈음, 뵙고 싶고 그리워하며 생각나는 리더 목사님의 추억이 있다는 것 만으로도 주님의 큰 은총이라 생각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