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음의 예술혼 품고 젊음의 가능성 판다
◆문화 생태계로 떠나는 예술 테라피
이상한 반복이 계속 되고 있다. '홍대 앞 다시 보기', '홍대 앞 재발견' 같은 슬로건에 관한 이야기다. 홍대 앞이 젊음의 특구로 자리 잡은 지 벌써 15년여. 홍대는 예나 지금이나 거기 그대로 있을 뿐인데, 홍대 앞의 원숙미를 저지하려는 혹은 질책하려는 사람들의 목소리는 점점 더 크고 거세진다. 하긴, 누군가의 눈에는 홍대 앞의 명물 '조폭 떡볶이'가 허름한 트럭을 버리고 번듯한 가게로 들어간 것이나 '드럭'·'빵' 같은 그들만의 클럽이 뜨내기손님들로 바글거리는 것이 영 편치 않을 법하다. 하지만 홍대 앞도 세월에 따라 그만큼 나이를 먹고, 문화도 안정적인 기류를 형성해야 하는 것이 마땅하다. '홍대 앞 다시 보기'가 새롭게 유행하는 이유다.
시인이자 뮤지션, '홍대 앞 새벽 세시'의 공동 저자이기도 한 성기완씨는 "기타를 들고 다니는 젊은 친구들은 그때나 지금이나 제법 많지만 예전에는 그 모습이 스스로도 조금 낯설었고 어깨에 뭔가를 짊어진 듯했던 반면, 지금은 너무나 자연스럽고 마치 아무것도 짊어진 것 같지 않아 보이고 진짜 그냥 아무렇지 않다"고 요즘 홍대의 문화를 돌아본다. 홍대 앞이 10여년 전 젊은이들을 위한 작은 문화의 해방구였다면, 지금은 스스로 젊은 문화를 생성해내는 자연스러운 예술의 진원지가 되고 있는 셈이다.
- ▲ 주인장이 전 세계를 돌며 공수해온 가구와 소품으로 가득한 디자인 박물관 aA. / 영상미디어 이경호 기자 ho@chosun.com
이런 홍대 앞 문화의 흐름을 이끌고 있는 주축은 서교동 전역에 촘촘히 들어서 있는 다양한 대안공간들이다. 1990년대 말 대안공간 루프(02-3141-1377)가 대관 중심의 상업 화랑에 짓눌려 날개를 뻗지 못하는 신인 작가들에게 전시 기회를 열어주면서 한국 대안공간의 역사가 시작됐다. 처음엔 대안공간 루프를 비롯한 몇 개의 갤러리만이 간소하게 운영되었지만, 점점 스타일과 규모가 다른 클럽, 갤러리 등 2세대 대안공간들이 들어서기 시작했다. 지금은 복합문화를 지향하는 3세대 대안공간들까지 가세해 홍대 앞 전역에 건강한 예술의 기운을 불어넣고 있다.
홍대 앞에는 클럽이나 뮤직바도 많지만, 그만큼 갤러리도 충분하다. 두 개의 공간은 별개로 흩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로 뭉뚱그려 숨 쉰다. 숨어 있는 갤러리를 둘러보며 예술의 기운을 흡입하려면 우선 두 개의 거점을 중심으로 루트를 잡는 것이 적당하다. 여성, 소수자, 비주류를 대변하는 대안영상 전문 상영공간인 미디어극장 아이공(02-337-2870)을 중심으로 대안공간 팀 프리뷰(02-337-7932), 대안공간 루프 등을 돌아보는 홍대 앞 서쪽 탐방 코스와 KT&G상상마당(02-330-6200)을 기점으로 아트스페이스 휴(02-333-0955), 갤러리 미스 홍(02-334-8255), 갤러리 킹(02-322-5495), 서교예술실험센터(02-333-0246), 갤러리 잔다리(02-323-4155) 등을 둘러보는 홍대 앞 동쪽 탐방 코스가 있다. 두 개의 코스를 따라 이리저리 골목을 기웃거리다 보면 홍대 앞 젊은 예술의 현재를 빠짐없이 훑을 수 있다. 홍대 앞 전시 대안공간들은 입장료가 모두 무료다. 작가들 역시 대관료 대신 '가능성'을 팔고 있다.
갤러리 미스 홍, 상상마당, 대안공간 루프가 전시를 메인으로 카페를 겸하는 공간이라면, 'aA'나 '무연탄(Anthracite)' 같은 공간들은 그 반대를 지향한다. 카페에 전시나 공연장의 정체성을 덧입힌 복합문화공간이다.
디자인 박물관 aA(02-3143-7312)는 주인장이 전 세계를 돌며 공수해온 가구와 소품들로 천장 높은 실내를 가득 채운 가구 전시장 겸 카페다. 갤러리 한쪽 기둥으로 사용된 가로등은 실제 영국 템스 강변에 세워졌던 것을 어렵게 공수한 생활 골동품이다. 예사롭지 않은 의자들 사이를 비집고 지하 계단을 따라 내려가면 입이 떡 벌어지는 디자인 전시회가 다시 한 번 두 눈을 즐겁게 한다. 일반에게 공개하는 공간은 아니지만 벽이 온통 유리로 되어 있어 어깨너머로 눈동냥 하는 건 충분히 가능하다.
구두 공장을 개조해 카페로 꾸민 무연탄(02-322-0009)은 요즘 새롭게 뜨고 있는 당인리 발전소 근방의 멋진 복합문화공간이다. 허물어져 가는 공간을 예술적으로 뒤바꾼 공간 재활용 사례다. 커피 로스팅 기계를 들여놓은 1층은 공장 분위기를 그대로 살렸고, 2층은 전시 공간 겸 공연장과 카페로 꾸몄다. 이곳의 테이블은 한 팀이 하나씩 차지하는 것이 아니라 타인과 공유하며 자기 스타일에 맞게 새롭게 꾸며나가야 하는 공간이다. 작은 창으로 새어 들어온 햇살이 철문을 재활용한 테이블 위로 한가롭게 쏟아지고, 회벽에 걸린 그림들까지 환하게 비춘다.
찾아가는 길
대안공간 탐방의 기점이 될 만한 미디어극장 아이공과 KT&G 상상마당<사진>은 모두 지하철 2호선 홍대 역에서 도보로 약 10분 거리에 있다. 아이공을 찾아가려면 홍대역 4번 출구로 나와 좌회전한 뒤 홍익돼지갈비 골목으로 진입, 두 번째 골목에서 좌회전하면 되고, 상상마당을 찾아가려면 홍대 역 5번 출구로 나와 주차장 거리 쪽으로 직진해서 걸어가면 된다. 현재 상상마당은 홍대 앞 랜드마크로 자리매김한 상황. 두 곳을 중심으로 다양한 복합문화공간들을 찾아다니다 보면 밤과는 다른 홍대 앞의 건강한 예술 문화를 즐길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