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운곡마을회관에서 산행 시작
- 임도 따라가다 흙길 들어서면
- 의병 일으킨 곽재우 장군이
- 왜병 수천 명 섬멸한 벽화산성
- 한 시간 반가량 오르면 정상에
- 산불감시초소 방향 길따라 하산
- 총 9㎞ 거리 5시간가량 소요
광복 70주년을 맞은 8월을 이대로 보내기가 너무 아쉬웠다. 해서, 찾은 곳이 경남 의령(宜寧)이다. 의령은 충절과 화식(貨殖)의 고장이다. 임진왜란 때 망우당 곽재우(1552~1617)가 의병을 일으켜 나라를 구했고, 일제강점기 백산 안희제(1885~1943)가 민족자본을 일궈 국부의 기초를 닦고 항일운동의 재정적 숨통을 틔웠다. 이런 역사적 인물이 나올 것을 미리 알고 '의령'이란 지명을 붙였을까. '마땅하다'는 뜻의 '의(宜)' 자에는 '의로움'이, '편안하다'는 뜻의 '령(寧)' 자엔 '부유함'이 깃들어 있다. '의로운 부'라니, 이보다 더 좋은 게 있을까. 민족자본가 백산이 의령에서 탄생한 연유가 짐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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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벽화산성. 삼국시대와 조선시대 두 번에 걸쳐 축조된 것으로 확인됐다. 둘레 800m의 산성 중 일부가 복원돼 있다. |
망우당은 경상우도의 사림을 대표하는 남명 조식(1501~1572)의 실천철학을 체화한 '행동하는 지식인'이었다. 임진왜란이 발발해 나라의 운명이 백척간두에 서자, 임금의 명령을 기다리지 않고 가산을 털어 의병을 일으켰다. 1592년 5월 하순, 왜적이 함안을 점령하고 의령 남강 정암진에서 도하작전을 전개하자 결사항전한 끝에 대승을 거둬 경상우도를 보존하고 왜적의 호남 진출을 저지했다. 왜적이 이순신 장군과 함께 가장 두려워한 인물이 망우당이었다.
백산은 1914년 부산에서 백산상회를 설립해 무역업에 종사하면서 국내외 독립운동단체들을 적극 도왔다. 1919년 3·1운동이 일어나자 의령에서 군민들과 봉기를 도모하는 한편, 백산상회를 백산무역(주)로 확대 개편해 상해임시정부의 운영자금을 조달했다. '기미육영회'를 조직해 독립운동가를 배출하고, 만주로 건너가 발해의 옛 수도인 동경성에 발해농장을 세워 한국인 소작농을 자작농으로 육성하는 등 평생 독립운동에 헌신했다. 남명과 망우당의 실천철학은 백산으로 면면히 흐르고 있다.
이번 산행은 남명과 망우당, 백산의 지행합일 정신을 좇아가는 역사기행이다. 산행지는 벽화산(522m). 이곳에는 벽화산성이 있다. 벽화산성은 망우당이 왜적을 무찌른 곳이다. 산행은 의령읍 중리 운곡마을회관을 출발해 벽화산성을 거쳐 정상에 오른 뒤 산불감시초소를 지나 기점으로 되돌아오는 코스다. 총길이는 약 9㎞, 소요시간은 5시간가량. 산행길 군데군데 잡초가 무성하게 자라 보행에 지장을 주는 게 문제지만, 이를 제외하곤 다른 어려움이 없는 비교적 무난한 코스다.
운곡마을회관에서 5분쯤 도로를 따라 걷다 '벽화산성 등산로 입구' 이정표를 보고 오른쪽으로 진입한다. 산으로 이어지는 임도는 '칡 세상'이다. 주민들의 강인한 생명력을 상징하듯, 길섶은 칡넝쿨로 뒤덮여 있다. 칡 잎사귀마다 점점이 머금은 아침이슬들은 바람이 불면 옥구슬 구르는 소리를 낼 것 같다. 탐스럽게 열매를 맺은 밤나무와 감나무는 풍성한 가을을 예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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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남 의령 벽화산 하산길의 솔숲. 곧게 자란 소나무들이 무성해 그윽한 정취를 자아낸다. |
40분가량 걸으면 임도준공기념비와 벽화산성고분군 표지석이 나온다. 여기서 딱딱한 임도를 버리고 흙길로 들어선다. 5분 후 갈림길에서 오른쪽으로 가면 벽화산성 동문터와 우물터가 있다. 이를 본 뒤 되돌아나와 15분쯤 산을 오르면 고아한 정취를 풍기는 자그마한 산죽터널을 만난다. 산죽터널을 지나 이정표가 있는 곳에서 오른쪽으로 가면 벽화산성터를 볼 수 있다.
둘레가 약 800m에 달하는 벽화산성터에는 삼국시대와 조선시대 두 번에 걸쳐 성을 쌓은 흔적이 있다. 조선시대 성은 임진왜란 전후 급박한 상황에서 축조한 것으로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벽화산성에서 망우당이 왜적 수천 명을 섬멸했다는 기록이 전해진다. 산성은 일부가 복원되었지만, 산성터에 이르는 길은 어른 키 만큼 자란 잡초에 가려 사라져버렸다. 적도의 밀림을 헤쳐나갈 때처럼 칼을 휘둘러 잡초를 베어내야 할 판이다. '흥망이 유수하니 만월대도 추초(秋草)로다'라는 고려 유신 운곡 원천석의 시구절이 떠오를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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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의령 남강 정암. 곽재우 장군이 왜적을 물리친 곳이다. |
산성터에서 되돌아나와 1시간가량 오솔길을 오르내리면 왼편에 제법 영험한 기운이 서린 바위가 나온다. 산행 기점에서 만난 운곡마을 주민 주이돈(60) 씨는 "가뭄 등 마을에 위기가 닥치면 바위에서 기우제 등 제사를 지낸다"고 말했다. 여기서 30분가량 더 오르면 정상이다. 정상은 우거진 숲에 가려 '시계 제로' 상태다. 정상에서 10분쯤 내려가면 임도가 나온다. 오른쪽으로 길을 잡아 철탑 쪽으로 오른다. 20분 후 헬기장에 닿고, 5분 더 오르면 산불감시초소에 도달한다. 여기서 비로소 정상에서 보지 못했던 의령군 일대 마을 풍경이 펼쳐진다.
산불감시초소에서 오른쪽으로 30분가량 내려가면 다시 임도를 만난다. 임도를 따라 5분쯤 걸으면 나오는 갈림길에서 오른쪽으로 하산한다. 임도변에는 감나무밭이 많고, 곳곳에 감나무밭으로 들어가는 샛길이 있다. 샛길에 현혹되지 말고 큰길을 따라 30분쯤 가면 기점인 운곡마을회관이 나온다.
◆떠나기 전에
- 이병철 생가 등 '부자 기받기' 관광상품 곧 출시
의령 관문 앞 남강에는 정암(鼎巖:솥바위)이라는 바위섬이 있다. 지금은 사라졌지만 원래 이곳에는 정암진이란 나루터가 있었다. 임진왜란 초기 곽재우 장군이 의병을 일으켜 정암진에서 경상우도로 침공하려는 왜적을 소탕했다.
예로부터 정암을 중심으로 반경 20리(약 8㎞) 안에 큰 부자가 난다는 전설이 있었다. 삼성 창업주 고 이병철(의령) 회장과 LG 창업주 고 구인회(진주 지수) 회장, 효성 창업주 고 조홍제(함안) 회장을 배출해 이 전설은 현실이 됐다. 세 사람의 출생지는 다 다르나 세 지역의 경계지점인 정암으로부터 반경 20리 안에 포함된다.
최근 경남개발공사와 코레일이 정암과 이병철 생가 등지를 방문 코스로 잡은 '부자 기받기' 관광상품을 개발 중이다. 이 상품은 오는 10월께 출시될 예정이다.
의령군 유곡면 세간리에는 곽 장군의 생가가 있다. 조선 중기의 전형적인 사대부 가옥 형태로 꾸며진 생가는 안채 사랑채 별당 등 7개의 건물로 구성돼 있다. 생가 앞에는 600년 된 은행나무(천연기념물 제302호), 마을 입구엔 수령 520년으로 추산되는 느티나무(천연기념물 제493호)가 있다. 이 느티나무는 곽 장군이 의병을 모아 훈련시키면서 북을 매달아 쳤다고 해서 현고수(懸鼓樹)라 불린다.
의령읍 하리 보천사지에는 3층석탑(보물 제373호)과 승탑(보물 제472호)이 있다. 통일신라 말에서 고려 초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현재 절은 남아 있지 않다.
◆교통편
- 의령시외버스터미널서 내려 운곡마을로 가는 버스 이용을
부산 사상구 서부시외버스터미널에서 출발하는 의령행 버스는 오전의 경우 7시, 7시40분, 8시30분, 9시20분, 11시, 11시50분 등 6차례 있다. 요금은 일반 6200원. 의령시외버스터미널에서 산행 기점인 운곡마을로 가는 시외버스(진주·화정행)는 오전 7시와 11시20분에 있다. 농어촌버스(덕교·화정행)는 오후 1시 30분에 있다. 개인택시 이용 문의 (055)572-2323.
문의=스포츠레저부 (051)500-5147 이창우 산행대장 010-3563-025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