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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명문리그의 미국 침공, NBA는 안전한가
애틀랜타 호크스의 조쉬 칠드레스(25, 203cm)가 그리스의 명문 팀 올림피아코스와 계약을 맺었다. 이는 시사 하는 바가 크다. 유럽 리그의 명성은 익히 알려진 사실이지만 ‘ NBA 출신의 젊은 유망주가 20대 중반에 건너 갈 정도의 매력이 있는가’에 대한 공통된 대답은 ‘No'였기 때문이다.
칠드레스는 지난 2004년 애틀랜타에 입단하며 약 1200만 달러의 신인 계약을 맺은 바 있다. 이번에 올림피아코스가 제시한 금액은 3년간 2천만 달러로 제법 구미가 당기는 금액이다.
제한적 FA인 칠드레스는 애틀랜타가 해당 금액을 매치 시켰다면 NBA 잔류가 가능했지만 릭 선드 단장은 인터뷰에서 “칠드레스와 절충안을 찾으려 협상을 진행 중이었다. 이는 NBA 시장에 정면으로 도전하는 것”이라며 불쾌함을 드러냈다. 하지만 정작 현지 언론의 입장은 냉담하기만 하다. “칠드레스의 에이전트인 론 바비는 최근 3년 동안의 미국시장에서 유럽리그가 갖고 있는 잠재력과 가능성으로 시선을 돌렸다. 러시아에서 대형 사업가들이 적극적인 투자도 리그에 개입하는 것도 그 예다. 이제 유로리그는 어떤 선수에게도 더 나은 환경을 제공 할 수 있다”며 안이한 구단대응을 꼬집었다.
칠드레스가 이룬 성과가 기대이상은 아니었지만 그동안 이루어진 NBA선수들의 유럽행의 배경을 살펴보면 이번 계약을 선뜻 이해하기 힘든 것이 사실이다. 기량 미달로 자국 하부리그 대신 수준 높은 유럽리그를 택하며 강도 높은 실전경험을 쌓는 젊은 선수들은 어렵지 않게 찾아 볼 수 있었다. 또는 노쇠화와 함께 떨어지는 연봉과 벤치를 전전하는 대신 확실한 노후보장()을 제시하는 유럽 측의 조건을 수락하여 전성기 못지않은 대접을 받으며 케이스도 있다.
하지만 칠드레스의 경우는 로스터의 과부하로 기회를 갖지 못 했을 뿐 일반적인 유럽행의 배경과는 어울리지 않는다. 밀레니엄 시대를 맞이하여 유로피언들의 NBA 침공이 득세를 보였지만 불과 10년도 채 되기 전에 미국에서 유럽으로 노선을 변경하는 기현상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이는 비단 미국선수에 국한된 이야기가 아니다.
유럽 용변선수들도 ‘컴백 홈’을 외치며 금의환향에 앞장서고 있다. 뉴저지 네츠의 보스찬 나크바와 프리모즈 브레첵은 각각 러시아와 이탈리아 비행기에 몸을 실었으며 호르헤이 가바호사 역시 모스크바행이 유력시 되고 있다. 스페인의 영웅 후안 카를로스 나바로는 일찌감치 스페인으로 돌아간 상황.
이는 최근 환율동향과 무관하지 않다. 유가반등과 함께 고개를 들고 있는 미국 경기 침체의 우려로 달러가치의 하락이 이어지고 유로가치가 상종가를 치는 현주소를 보면 고개가 끄떡여진다. 보다 많은 잠재력과 가능성. 더 젊고 건강한 몸을 지니고 있을 때 한 푼이라도 더 벌어야겠다는 선수들의 인식도 한 몫 한 것으로 보인다.
지난 시즌 개막과 함께 37경기나 결장한 칠드레스에게 돈에 눈이 멀었다는 비난을 내릴 수도 있겠지만 이는 별 문제가 되지 않는다. 자국 선수들이 해외로 유출되는 빌미를 제공 할 수 발단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보수적인 생각일지 모르나 하나의 리그는 그 나라를 대변하는 색깔을 갖출 때 비로소 완벽한 리그로 거듭날 수 있다고 생각해 왔다.
이는 NBA가 바르셀로나 올림픽을 기점으로 본격적인 글로벌화와 개방을 한 이후로 확고해졌다. 물론 세계 정상급의 기량을 최고의 리그에서 보여 줄 수 있다는 점에서 데이빗 스턴 총재의 전략은 여지없이 들어맞았다. 유럽의 전설 드라잔 페트로비치나 토니 쿠코치, 블라디 디박 등 불세출의 용병들은 성공적인 평가를 받으며 경력을 마쳤고 덕 노비츠키나 마누 지노빌리같은 2세대 용병들은 현 리그를 주름잡으며 명성을 떨치고 있다.
하지만 지금의 행태는 그러한 바람과 역행하고 있다. 마치 현대인들이 조미료로 인해 미각을 잃어가는 것과 다를 바가 없는 것이다. 고유의 맛은 잊은 지 오래다. 무분별하고 맹목적인 유럽 용병 발굴은 정작 본토 선수들의 입지를 좁혀놨으며 MVP는 더 이상 미국인의 전유물이 아니다. 안에서 새는 바가지 밖에서도 샌다는 말이 있다. 국제무대에서도 미국은 수년간 종이호랑이에 그치며 자존심을 구긴지가 오래다.
최근 KBL은 하승진의 데뷔와 함께 용병 키 제한 해제를 발효시키는 강수를 두었다. 장신의 하승진을 견제하려는 협회 측의 의지가 반영된 것은 불을 보듯 뻔하지만 가뜩이나 좁은 토종 빅맨들의 입지를 더욱 더 좁히는 결과가 우려된다. 농구 팬들이 국내 선수들의 활약을 등에 업는 리그 분위기가 조성될 때 경기장과 TV를 찾을 것임은 자명하다. 용병 중심의 경기라는 굴레를 10년 이상 벗어나지 못하고 90년대의 농구인기를 회복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국내실정이다. 결국 자국 선수들의 힘을 실어 주여야 한다는 점에서 일맥상통하는 부분이다.
NBA가 미국의 리그라면 적어도 자국민의 영웅과 주류층은 아메리칸 농구선수여야지 않겠는가. 유럽이나 타국 선수들의 진출을 무작정 막자는 이야기는 아니다. 하지만 리그 비중의 무게가 기울어지고 있다면 리그가 발 벗고 나서기 전에 기본적인 내 집단속이 선행돼야 한다는 이야기다. 이번 칠드레스 계약이 NBA에 경종을 울리는 계기가 되어야 한다.
얼마 전에 모 방송사의 무릎팍 도사에 출연했던 전 씨름선수 이만기씨의 말이 생각난다. 유명무실해진 씨름협회와 각종 단체를 두고 “애초에 내 것이니 알아서 찾아주겠지. 내 것이니 알아서 좋아해주겠지. 사랑해주겠지 라는 마인드가 그릇된 것 이었다”는 지론을 펼친 부분은 특히나 공감이 간다.
내 것일수록 더욱더 관심을 가지고 발전방향을 도모해야 최소한 ‘존속’을 할 것이 아닌가. NBA나 KBL을 남의 일인 마냥 관망할 수 없는 이유다. 비록 지금은 미국 출신의 스타플레이어들은 즐비하지만 언젠가 유럽에서 올스타 급 NBA 선수들이 뛰는 날이 올 수도 있을 것이다. NBA 중심의 글로벌 리그를 꿈꾸는 스턴 총재의 야망은 한 여름 밤의 꿈처럼 날아갈 지도 모를 일이다.
한 때 지구상의 모든 농구선수가 진출하고 싶어 하는 리그 1순위가 NBA였지만 자만심을 버릴 때가 오지 않았나 싶다. 변화는 순식간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