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 <콘클라베>
1. 보통 사람들은 종교 성직자들은 탐욕과 욕망을 경계하며 절제의 삶을 살아간다고 생각하기쉽다. 하지만 그들의 내부 세계로 들어가면 그곳에는 보통의 삶 이상의 끔찍한 모습과 비열한 경쟁이 펼쳐진다. 영화 <콘클라베>는 거대한 권력과 명예를 둘러싼 인간들의 파벌과 경쟁 그리고 음모가 생생하게 조명된다. 교황의 선종 이후 새로운 교황을 선출하기 위한 ‘콘클라베’가 열리게 되고 추기경들의 투표가 시작된다. 투표 전 대립되는 세력은 전통 가톨릭을 회복하려는 보수파와 개혁을 지속적으로 추진하려는 자유파가 대표적이었다. 하지만 투표를 진행하면서 유력한 후보들이 하나 둘씩 윤곽이 잡히는 것과 동시에 그들과 관련된 비리와 스캔들이 폭로되기 시작한다. 젊은 시절 성추문을 저질렀던 추기경, 그것을 인지하고 여성을 불러들여 상대 후보를 무너뜨리려 하는 또 다른 추기경, 거기에 더해 금전과 지위를 약속하면서 표를 모으는 추기경 등과 같이 최고의 권위와 명예를 지닌 교황에 오르기 위한 추악한 암투가 벌어진 것이다.
2. 영화 <콘클라베>는 추기경들의 비리를 통해 내부적으로 무너지고 있는 권력의 세계를 비판하고 있다. 양심과 관용이 중시되고 세속의 욕심에서 벗어나야 하는 종교에서도 현실의 세계 못지않은 인간의 더러운 욕망이 압도하고 있는 것이다. 영화는 이러한 현실을 비판하며 나름 이상적인 방향을 제시한다. 그것은 종교의 진정한 가치를 회복하자는 메시지이다. 예수가 보여주었던 가난한 자와 약자에 대한 사랑과 헌신, 고통받는 자들에 대한 진정한 관심과 연대가 지금 종교 지도자들에게 요구되는 태도라는 점을 강조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러한 모습은 지나친 ‘정치적 올바름’이라는 프레임을 통해 비현실적인 해결책으로 제시된다. 종교의 타락과 관행에 대한 비판은 날카롭지만, 그것에 대한 대안은 허구적으로 인식될만큼 비현실적이기 때문이다.
3. 유력 후보들의 비리가 밝혀지면서 새롭게 선출된 교황은 콘클라베 전에는 인지되지 못했던 아프카니스탄 카불의 종교지도자였다. 그는 추기경들의 혼란 속에서 종교 지도자들이 추구해야 할 방향과 선교의 중요성과 가치를 회복하는 발언을 내놓았다. 그것은 분명 감동을 주는 연설이었지만, 그동안 전혀 알려지지 않았던 한 인물의 돌출적인 발언이 추기경들의 마음을 움직여 그를 교황으로 선출하는 장면은 어떤 환타지 이상의 비현실적인 장면이 아닐 수 없었다. 더구나 선출 이후 밝혀진 그가 여성과 남성 모두의 생식기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은 종교의 변화를 요구하는 취지를 넘어서 가톨릭의 기본질서를 흔드는 위험한 상상이었다. 현세적으로 타락하고 권력지향적인 종교 지도자들의 세계를 비판하고 종교의 참정신을 회복하자는 메시지는 분명 타당하다. 하지만 그러한 변화를 위해 교황 선출의 환타지적 제시는 종교의 참다운 가치의 회복이라는 취지를 무색하게 한다. 누적된 관행을 위하여 급진적인 변화가 필요하다는 점을 제시했지만, 그것은 때론 위험한 반동적인 움직임을 초래 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4. 최근 <백설공주>와 둘러싼 논란이 한참이다. 원작 ‘백설공주’와는 전혀 다른 유색의 피부와 왕자가 등장하지 않는 백설공주의 용감한 이야기가 과연 ‘백설공주’라는 이름으로 등장할 수 있는가에 대한 논쟁이다. 헐리우드 영화계를 새롭게 지배하고 있는 ‘정치적 올바름(PC)’은 분명 인간의 한계를 확장시키고 사회적 약자에 대한 시선을 개선하는 효과를 가져온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그러한 변화가 의미있는 전통과 가치를 존중하는 사람들의 내면에 불편함을 가져다 준 것 또한 사실이다. 더 나은 삶을 위한 변화의 시도가 아이러니하게도 더 큰 퇴행과 반동을 조장하며 변화에 극렬 반대하는 대중들을 집결시키고 있다. 대립은 더 큰 혼란과 약자에 대한 불안을 가중시킨다. 사회적 약자를 위한 발언과 행동이 오히려 그들의 입지를 약화시킬 수도 있는 것이다. 불필요한 비틀기적인 묘사를 중단하고 인간의 보편적 정서와 가치에 기초한 변화의 방향을 추구할 필요가 있다. 가령 존경받는 인물의 개혁적인 변화를 보여주거나 원작의 내용에 대한 신선한 해석을 통해 의미있는 메시지를 던지는 것이 중요하다. 영화적 상상을 통해 급진적인 개혁의 의미를 제시하는 것은 변화를 위해서는 혁명적인 사고나 행동이 필요하다는 취지를 이해하더라도 많은 사람들의 공감을 얻기에는 부족할 것이다. <콘클라베>나 <백설공주>는 의미있는 내용 대신 지나치게 외면적 충격을 통한 변화를 추구하고 있다. 매력있을지는 모르나 위험한 시도이다.
첫댓글 - 어느 곳에서나 인간의 정치적 상상력은 끝없이 펼쳐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