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단골 꽃집이 안암동 고려대학교 앞에 있다.
어제, 외출길에 마침, 버스가 그 앞을 지나길래 잠깐 내렸다.
후리지아 한다발이라도 사려구.
그런데 화이트 데이 전날이라서
주인 언니는 꽃바구니 만드느라고 너무 바빴고
후리지아 한단만 달라는 내게
좀 시들한 후리지아를 한삼태기 줬다.
한삼태기... 집까지 들고오려면 참 무거운 양이었다.
보통 후리지아는 노란 색에, 숨막히게 달콤한 향기가 퍼진다.
그런데 최근에는 노란색, 주홍색, 자주색, 보라색 등등
변종, 변색의 후리지아가 많아졌다.
한마디로, 요즈음의 후리지아는 알록달록해진거다.
anyway
어제밤에 후리지아를 방안에 꽃아놓으니
알록달록하며 향기로운 것이 아름다웠다.
그런데 오늘 아침에 일어나 보니
상태가 좋지 않은 꽃이라선지
확연히 맛이 가면서 지저분해보이기까지 했다.
버리자니 아깝고, 두자니 예쁘지 않고 ...
해서, 나는
줄기마다 만개해서 시든 꽃잎은 다 떼내고
줄기 끝에 대롱대롱 매달려 아직 피지 못한 꽃봉오리만 남겨두었다.
워낙 한 삼태기를 가져와서, 한참 꽃잎을 따야했고
워낙 한 삼태기를 가져와서, 꽃봉오리만 남겼는데도 푸짐한 꽃다발이 되었다.
정갈하고 아름다운 후리지아 꽃봉오리들!
이제 며칠동안 싱싱하고 아름답게 피어서 꽃으로의 존재감을 다할 것이라며
뿌듯한 마음으로 꽃을 보는데 ,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만약
줄기 끝에 매달려 있던 꽃봉오리들만 추려내지 않았다면
그 꽃봉오리들은 꽃이 되어 피지도 못한 채,
먼저 피어 화려함을 뽐내다가 시들어버린 꽃잎이 버려질 때 같이 버려졌을거다.
꽃이었음에도 꽃으로 피지 못한채 일찍 만개한 꽃에 치여서.
그 억울함과 쓸쓸함이 어디 꽂봉오리 뿐이겠는가.
1등만 기억하는 더러운 세상~~~ ^.^ 에서는
더더욱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면서
피지 못한 꽃봉오리로 버려지는 인생이 너무 많지 않은가.
anyway
내가 오늘 꽃봉오리가 꽃으로 필 수 있는 희망을 남겨둔 것은
나도, 그대도, 꿈 꾼대로 존재하며 행복하게 살 수 있는 희망을 찾은 기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