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5월 이달의 훈화 1
저 여자가 누구여?
김형수·비오 신부
저 여자가 누구여? 하는 소리가 성당에 울려 퍼졌습니다.
예비자 입교식이 한참 진행되고 있을 때 몇몇의 할머니들이 웅성거렸습니다. 성모상을 바라보던 예비자 할머니 한 분이 “저 여자가 누구여?”하고 외쳤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여러분은 맨처음 성당에 들어왔을 때 뭐라고 하시겠습니까? 성모상을 보고 “저 분이 누구십니까?” 아니면 “저 석상이 누구의 것입니까?” 하고 물으시겠습니까? 누군가가 미리 알려주지 않았다면 무슨 질문을 던졌을지 상상하기 어렵습니다. 그 할머니는 “저 여자가 누구여?” 하고 질문을 던질 수밖에
없는 가슴속의 비밀이 있었습니다. 저 여인이야말로 십여 년 전에 꿈속에 나타나서 묵주를 손에 쥐어준 여인이기 때문입니다.
십여 년 전에 군대에 간 막내아들이 엄청난 죄명을 쓰고, 군사 재판을
받고 있을 때의 일입니다. 어찌할 바를 모르고 근심걱정만하며, 초조한 마음을 달랠 길이 없어 눈물로 밤을 지새우던 어느 날 밤, 비몽사몽(非夢似夢)간에 꾼 꿈속에 한 여인이 나타나 다정히 미소 지으며 손에 묵주를 쥐어주며 말씀하셨습니다. “네 아들은 아무 죄도 없다. 끝까지 싸워라.” 염주 같기도 한 그것이 무엇일까? 하고 곰곰이 생각하던 할머니는 어느 날 묵주를 들고 기도하며 걸어가는 신자를 만났습니다. “그것 나줘” 하는 말과 함께, 빼앗을 듯이 대들었습니다. 줄
리가 없었죠. 그래서 어디서 구할 수 있느냐고 물었더니, 성당에 가면
구할 수 있다고 냉정하게 말하곤 지나가버렸습니다. 성당으로 달려가서 묵주를 사들고, 재판 중인 아들의 손에 묵주를 쥐어주며 말했습니다. “끝까지 싸워라. 너는 이긴다. 죄가 없지 않느냐? 꿈속에 어느 여인이 이걸 주면서 기도하라고 하더라." 그리고 아들은 대법원까지 가는 재판을 통해서 승소 판결을 받고 무죄가 입증되었습니다.
그래도 할머니는 성당에 발걸음을 옮기지 못했습니다. 인도하는 사람이 없고 한글도 몰라서 성당에 성큼 발을 들여 놓지 못했습니다. 화창한 5월의 어느 날 밤, 과일 장사하는 손수레를 끌고 집으로 돌아가는데, 성당에서 아름다운 노래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다 팽개치고 성당에 들어가 먼발치에서 보니 성대하게 성모의 밤을 하고 있었습니다.
신자들이 성모상을 제대 앞에 모셔놓고, 아름다운 꽃으로 장식을 하고, 아름다운 노래를 부르고, 기도를 드리고 있었습니다. 성당 안의
모든 여인들은 한복으로 단정하게 차려입었습니다. 얼마나 성스럽고
평화로웠는지 모릅니다. 그리고 다음날 성당에 다니는 할머니 한 분을 붙들고, 자기도 성당에 다니고 싶다고 말해버렸습니다. 그리고 얼마를 기다려서야 성당에 가자는 전갈을 받았습니다.
그리곤 성당에 와서 성모상을 보고 “저 여자가 누구여?” 하고 소리를 지른 것입니다. 그 후 할머니는 열심이 예비자 교리를 배울 뿐 아니라, 매일 미사도 빠지지 않았습니다. 그러면서 신자들이 노래하는
소리를 귀로 듣고 눈으로 성가집을 바라보며 한글을 깨우쳤습니다.
할머니가 영세하는 날, 할머니의 마음을 어둡게 짓누르던 두 부부를
마음으로부터 용서했습니다. 남편이 살아계실 때 남편을 엄청나게 괴롭힌 천주교 신자 부부와 남편이 돌아가신 다음 둘째아들을 결혼시킬
때 지독히도 괴롭힌 천주교 신자 부부도 용서했습니다. 그보다 더 신기로운 일도 있습니다. 할머니는 할아버지가 십여 년 전에 돌아가셨을 때 할아버지의 묘지 앞에 십자가를 만들어서 세웠습니다. 그렇게
해야 할 것 같아서 했을 뿐입니다. 그리고 신자가 된 다음에 묘지를
찾아가신 할머니는 남편의 무덤을 바라보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여보! 나 잘했지. 당신 무덤엔 십자가를 세웠고, 나는 세례를 받았어요.
나에게 묵주를 주신 분이 성모님이시래요.”
광주 농성동성당 주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