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의 이름은 몇이나 아는가
내가 사는 동네에는 손곡천과 동막천, 탄천이 흐른다. 물가를 따라 걷다 보면 작은 새들은 눈여겨보지 않으면 지나치기 쉽지만, 백로와 왜가리, 오리처럼 몸집이 큰 새들은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다. 그런데 아이들이 엄마 아빠에게 묻는다. “저 새 이름이 뭐야?” 그때 자신 있게 대답해 줄 수 있는 부모가 얼마나 될까. 비슷하게 생긴 새를 보고 엉뚱한 이름을 가르쳐 주기도 한다. 잘못 알고 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굳이 바로잡아 주지 못할 때도 있다. 간섭받기를 싫어할 수 있고, 자녀 앞에서 난처해질까 봐서이기도 하다.
숲이나 들판에 숨어 있는 새는 그렇다 치고, 500원짜리 동전에 새겨진 새의 이름은 알고 있는가? 동전에 새겨진 새는 두루미다. 두루미는 예부터 평화와 장수, 부부의 화목을 상징해 왔다. 한 쌍의 두루미가 함께 있는 모습은 변치 않는 부부의 사랑을 떠올리게 한다. 혼례에 두루미 문양을 사용한 것도 이러한 의미와 무관하지 않다.
생태적 감수성은 거창한 데서 시작되지 않는다. 우리 동네에 사는 새의 이름을 열 가지, 스무 가지쯤 알아두는 것에서 시작할 수 있다. 백로, 왜가리, 오리, 까치, 참새, 직박구리, 박새, 딱따구리처럼 자주 만나는 새부터 하나씩 이름을 익혀보는 것이다. 이름을 알면 전에는 보이지 않던 새가 보이기 시작한다. 새소리가 들리면 어떤 새인지 궁금해지고, 계절이 바뀌면 어느 새가 떠나고 어느 새가 찾아오는지도 관심이 간다.
자연에 대한 관심은 곧 생명에 대한 관심이다. 이름을 모를 때는 그저 지나가는 새 한 마리에 불과하지만, 이름을 알고 나면 그 새의 생김새와 습성, 살아가는 방식까지 궁금해진다. 그렇게 자연을 바라보는 눈이 조금씩 달라진다.
책 속의 지식에는 익숙하면서 집 앞을 흐르는 하천과 그 물가에 내려앉은 새의 이름을 모른다면, 우리는 어쩌면 자연 앞에서는 문맹일지도 모른다. 많이 아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내가 살아가는 세계를 자세히 바라보는 일이다.
오늘부터라도 동네를 산책할 때 새 한 마리를 유심히 바라보자. 그리고 그 이름을 불러보자. 모르면 스마트폰으로 검색하면 쉽게 알아낼 수 있다. 이름을 아는 순간 새는 더 이상 스쳐 지나가는 한 마리의 새가 아니다. 우리 곁에서 함께 살아가는 하나의 생명이 된다.
자연을 사랑하는 마음은 어쩌면 거창한 환경운동에서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내 곁에 살아가는 작은 생명의 이름을 불러 주는 데서 시작되는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