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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개념에 대하여> 제3강. 예외상태, 새로운 천사: 테제 7,8,9 * 일시: 2024년 4월 3일(수) 오후8시. * 참석자: 박연옥, 서선미, 서은혜, 정단희, 정명수, 이샛별, 유혜숙, 조정은, 조세랑, 박영기 (10 명) * 공지: 총 6회 강의에 더해 1회 추가될 수도 있습니다. 다음 주 세미나는 선거일입니다. 투표하시고 강의 들어요~ |
벤야민/ 역사철학테제 7, 8, 9
벤야민(1892년 베를린 생) 당시의 시대적 상황:
비스마르크에서 빌헬름 2세, 1914년 세계대전 전까지. 독일제국 성립되면서 자본주의 절정. 공업화 중심지 베를린의 변화를 시시각각 보며 자란 벤야민. 근대 자유민주주의 시대. 자유, 평등, 우애 정신을 잇는다고 하나 당시 자유는 재산권 행사의 자유, 인권보다 소유권, 인간의 자유가 아니라 자본의 자유.
엘베강이 독일을 동서로 나누는데 동쪽은 농촌, 서쪽은 도시. 1871년부터 40여 년간 농촌에서 도시로 200만 명 이주(당시 독일 인구 천만 명가량). 농민이 노동자로. 노동자 당이라고 말할 수 있는 독일의 사회민주주의당 결성. 동부 쪽 대농지 소유자 융커가 부르주아지가 되고 전통 귀족과 융커의 연합 체제 형성. 전통적 봉건적 체제에 의지해 자본 이익 실현 상황.
*당시 독일의 3계급 선거제도
1계급: 귀족, 융커_ 1인 3표 / 2계급: 성직자, 교사_ 1인 2표/ 3계급: 농민, 노동자. 도시빈민, 하층민_ 1인1표) 성인 남성. 여성 투표권 없음. 지주나 자본가가 지켜보는 상황에서 투표.
빌헬름 체제 1884년 경 1/3 정도가 사민주의->노동자 농민 이익을 대변하며 분파가 나뉜다. 수정주의자(베른슈타인), 중도주의자(카를 카우츠키), 급진주의자(로자 룩셈부르크)
7장
역사주의의 방법론: 역사를 추 체험하는 것. 연속적 시간에서 발생하는 사건은 고유한 특수성을 가지고 있어서 그때 일어나고 끝난 것. 영원히 과거가 된 것. 그때 사건을 머릿속으로 구성해 보고 그 시대에 감정이입하는 방식으로 과거를 바라봄.
태만: 지옥으로 떨어질 수밖에 없는 7가지 죄악 중 다섯 번째. 중세에 중요한 연구 대상.
*나태- 나태는 왜 멜랑꼴리아(슬픔)와 연결되어 있고 감정과 연결되어 있는지 연구.
<행간 Stanze> 중 태만:
(벤야민의 형이상학적 개념들을 탐구하는 학자 아감벤의 초기작 <행간>(Stanze)은 ‘행간’이 아니라 ‘폐쇄된 한 공간’, ‘공백’을 의미하는 뻥 뚫린 공간 <방>으로 번역되어야 한다)
"정오의 악령. 나태 Acedia, 슬픔 Tristitia, 의욕상실 Taedium vitae, 게으름 Desidia. 페스트보다 무서운 재앙. 고행자들의 사막과 수도원의 회랑과 독방, 은둔자들의 기도실에까지 스며들어 이들의 영적 삶을 침범한다. 정오의 악령은 한 불쌍한 수도사의 머리에 강박관념을 심고 동시에 그가 위치한 곳의 공간에 대한 혐오감을 불러일으키면서 그가 머무는 독방에 대한 불편함과 그와 함께 지내는 수도사들의 추잡함을 상기시킨다. 그의 형제들은 이제 그에게 게으르고 우스꽝스러운 인간으로 보일 뿐이다. 악령은 독방 안에서 이루어지는 모든 활동에 앞서 그를 무기력한 인간으로, 마음을 편히 다스리지 못하도록, 독서에 전념할 수 없도록 만들어버린다. 결국 그의 머리 위에는 대지를 휘감는 안개처럼 혼돈이 내려앉는다. 그리고 그 혼돈은 그를 텅 비우고 무기력하게 만들어버린다… 나태 Acedia의 그리스 어원은 무관심 a-chedomai이다. 나태에 대한 교부들의 해석이 가진 특징은 나태한 자를, 내면의 유령이 끊임없이 뱉어내는 생각들(co-agitatio)을 조절하지 못하는 자로 본다는 점이다… 나태가 낳는 것 : 악malitia, 善 자체에 대한 모호하고 멈출 수 없는 애증과 적개심rancor, 선을 권고하는 사람들에 대한 악의적인 저항과 소심함pusilanimitas, 영적 존재로서의 의무와 어려움 앞에서 두려워하며 꽁무니를 빼는 왜소한 영혼의 거리낌과 절망desperatio, 아무것도, 신의 자비조차도 자신을 구원할 수 없다고, 유죄판결을 앞당겨 받았다고 믿고 기꺼이 몰락의 길로 빠져드는 암담하고 오만한 확신과 둔감함torpor, 치유를 가능케 하는 어떤 행동도 마비시켜버리는 둔하고 졸음 섞인 혼미 상태 그리고 정신의 산만함evagatio mentis, 즉 자기로부터의 도주와 상상에 상상을 거듭하며 불안 가운데 계속되는 다변verbositas 혹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허황된 자기중심적 지론, 더불어 궁금증curiositas이 안고 있는 사라지지 않는 갈증, 보기 위해 보고 싶어 하고 항상 새로운 가능성 속에서 분해되는 갈증, 자신의 위치와 의도에 대한 불안instabilitas loci vel proposti, 부적절한 사고importunitas mentis 속에서 끊임없이 질문을 내세우며 자신의 생각에 질서와 조화를 부여할 줄 모르는 무기력한 상태 같은 것들."
“사실 나태의 본질에 대해 교구들이 제공하는 해석들을 살펴보면 우리는 나태가 게으름이란 범주보단 슬픔과 절망의 범주라는 걸 발견할 수 있다. 교구들이 관찰한 내용들을 신학대전 속에 꼼꼼히 집대성한 토마스 아퀴나스에 의하면 나태는 일종의 슬픔, 좀 더 정확히 말해 인간이 가지고 있는 본질적으로 영적인 자산 앞에서의 슬픔, 즉 신이 인간에게 부여한 특별한 영적 존엄성 앞에서의 슬픔이다. 나태한 인간을 괴롭히는 것은 그러니까 악과 병에 의한 의식이 아니라 반대로 가장 위대한 유산에 대한 생각이다. 나태는 정확히 말해 신 앞에 선 인간이 그에 대한 의무로부터 두려움에 떨며 도망가는 현기증 나는 후퇴를 의미한다. 즉 어떤 식으로든 피할 수 없는 것으로부터의 도주인 만큼 나태는 곧 죽음에 이르는 병을 뜻한다. 아니 그것으로는 부족하다. 나태는 죽음에 이르게 하는 가장 혹독한 병이다. 이 병의 처참한 이미지를 키에르케고르는 나태의 가장 무서운 결과를 묘사하면서 또렷하게 그려내고 있다. 스스로가 절망이라는 것을 의식하는 절망은 자아 속에 무언가 영원한 것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리고 이제 절망적으로 자기자신이지 않으려 하거나 혹은 절망적으로 자기 자신이기를 갈망한다."
왜 역사주의적 역사탐구 방법으로서의 감정이입이 벤야민에게 태만과 연결되는가? 벤야민에게 역사 주제는 과거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에 대한 소일거리, 궁금증이 아니라 나태와 관련해 불안과 궁금증이 중요한 증상으로 나타난다는 것.
나태는 정오의 악령이다: 점심때쯤 되면 수도사는 명상하는 방이 너무나 답답하고 갇혀 있기 때문에 스스로 아무것도 못하고 이러다가 죽을 것이란 불안과 절망에 빠져 갑자기 배고픔을 느끼며 보던 책을 한 줄도 읽지 못하고 다른 생각하다가 읽다가 다른 생각하다 읽다가 일어나서 창가에도 갔다가 한숨도 쉬었다가 그러다 갑자기 졸음이 쏟아져서 잠을 자게 되는” 증세.
인간은 이런 부정성을 제거하려고 하지만 모든 인간들이 이런 상황에 빠진다. 열정적으로 다른 것을 추구하려고 애쓰는 인간들 사이 이런 증상이 현저하게 나타난다. 아퀴나스가 명쾌하게 잡아낸 이것은 불안과 관계있다. 자기 안에 영적이고 신적인 것의 느낌 때문에 불안함을 느낀다. 세상은 즐길 것이 많은데 신이 나에게 요구하는 것은 엄격하고 지루하고 고루한 것들이므로 불안하다. 그것은 ‘방어’다. 우리가 죽을 수밖에 없는 존재라는 사실이 아니라 우리가 불멸의 존재란 인식 때문에 불안하다. 죽지 않으면 나의 태만과 악행과 진리의 유보에 대한 타협 등이 영원히 나를 쫓아올 것이다.
벤야민에게 위기의 순간 우리에게 구원의 가능성을 열어주는 메시아적 시간이 역사 연구의 관건인데 감정이입이나 호기심적 탐구는 나태함과 태만으로 간주될 뿐이다. 자료에 근거한 역사 탐구는 지배자들이 남긴 것만을 보게 하고 그 시대의 사람들이 어땠는지 감정이입을 하다 보면 오히려 지배자에게 감정이입을 하게 되며 동일시에 빠진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피지배자임에도 지배자의 시선으로 사태를 보게 되고 그것이 너무나 정당하기 때문에 피지배자의 삶은 영원히 지속된다.
8
억압받는 자들의 전리품- 확신, 용기, 유머, 간계(지혜).
약자들은 어떤 면에서 무기가 없으므로 간계가 없으면 늘 진다. 지배자들의 전리품은 문화, 문화재로 전승되고 억압받는 자들의 전리품은 정신적으로 고귀한 것으로 전승되므로 그것을 획득되는 순간을 잊으면 안 된다. 피지배자들의 전리품을 통틀어서 말한다면 바로 신, 하나님이다. 인간이 말할 수 있는 가장 지고한 것과 관련되기 때문이다. 추상적이고 절대적 존재로서의 신이 아니라 구체적 삶 속에서 복종을 강요하는 것에 저항하고 그 이상을 만들어내려는 투쟁 속에서 인간의 고귀함을 느끼는 신. 우리가 ‘신’이라 이름 붙인 것은 그 투쟁을 했던 억압받는 이들의 소망과 깊은 관계가 있다. 하나님이란 이름을 붙이면서 그것이 지고하고 영원한 것이 되기를 기원했다는 의미에서 그렇다. 신이 세계를 창조했다는 사고에서 억압받는 사람들의 투쟁이 이 세상의 근원적 원리라고까지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벤야민의 변증법적 이미지는 초현실주의 개념과 연관해서 전혀 상관없는 두 이미지 사이의 낙차와 관련 있다. 변증법은 원래 둘이 하는 대화술이었다. 두 가지 상반된 개념의 충돌. 인간의 말은 변증법적 성격이 있다. 각자의 관점과 다른 위치에서 바라보기 때문에 그렇다. 이것을 지젝은 ‘적대’로 표현한다. 영원히 화해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인간이 세계를 인식하는 방식에는 서로 다른 위치를 점하기에 적대가 존재할 수밖에 없고 이 적대야말로 진정한 실재이며 이 세계의 진정한 역동성이고 창조의 근원이라고 지젝은 말한다.
신은 변증법적 개념이다. 그는 완전히 충만하나 인간에게는 감추어져 있어서 텅 빈 개념이기도 하다. 우리가 궁극적으로 그 개념의 의미에 도달할 수 없기 때문. 억압받는 자들은 그 자체로 노바디, 아무것도 아닌 자이며 가진 것이 없는 존재이므로 늘 바닥을 경험하고 존재의 텅 빔에 도달하기 쉽다. 반면 지배자들은 텅 빔에 도달하지 않기 위해 온갖 물질적 방편들을 자기 주변에 쌓아 둔다. 억압자는 텅 빔, 자기 자신의 궁핍에 대해 저항할 수 있는 재산(자료)들을 가지고 있으며 자기애를 보존할 수 있다. 우리는 늘 한계라는 경험 앞에 놓인다. 이것은 자신에 대한 극도의 참혹한 경험이다. 내가 이런 존재였다는 깨달음은 늘 바닥에서 느낀다. 형이상학적 차원에서 이야기하는 벤야민은 피지배자들의 전리품과 관련해 사유해야 한다고 말한다. 반면 문화재는 그 찬란함의 이면에 야만성을 가지고 있다. 문화재는 변증법적 이미지이다. 보이는 이미지와 다른, 언뜻 보이는 것을 봐야 한다.
칼 슈미트- 벤야민과 동시대인. 주 저서로 <정치신학>, <정치적인 것의 의미>. 그의 정치신학의 핵심 테제: “주권자는 비상사태를 결정하는 자이다.” 비상사태는 폭력과 관련한 개념이다. 아감벤의 <호모사케르>(성스러운 인간)는 오늘날 ‘난민들’이다. 모든 사회보장으로부터 소외된 사람들. 이들이 왜 성스러운 인간인가? 테제와 어떤 관련이 있나? 비상사태는 법이 위기임을 결정하는 것. 결정하는 사람은 주권자이고 그는 적과 동지를 구별하고 결정하는 자이다. 주권자는 법을 제정함으로써 하나의 세계를 구성한 사람들이다. 왜 이 개념이 <정치신학>이란 책에서 나왔는지가 중요하다. 근대의 정치체제는 정교분리로 종교에서 벗어난 것이 아니라 종교가 세속화된 체제다. 주권자는 신의 형상으로 법을 제정함으로써 세계를 창조한 사람이며 이 세계를 일소해버리고 폭력적 수단을 동원할 수 있는 자이다. 벤야민은 ‘진정한 예외 상태’를 도래 시키는 것이 우리의 과제라고 했다. 진정한 예외 상태는 신적 폭력을 통해서 도래하는 새로운 법적 체계다. 메시아는 이 신적 폭력과 함께 도래하는 자이다.
폭력이란 개념은 무력이 아니라 하나의 질서를 붕괴시키고 세우는 힘을 의미하는 넓은 개념. 벤야민은 두 개의 예외 상태를 대립시킨다. 즉 주권자가 선포하는 예외 상태VS 역사적 유물론자가 도래 시키는 예외 상태. 이 글은 1939년에 히틀러의 예외 상태가 눈앞에 다가왔을 때 쓴 글이다. 1차 세계대전은 부흥한 독일이 선발 자본주의가 차지한 식민지를 빼앗기 위한 비상사태였다. 이 전쟁과 관련해 로자 룩셈부르크는 진정한 비상사태의 도래를 선포하는데 그것은 제국, 황제, 부르주아지의 세계를 위한 전쟁을 철폐하고(반전) 진정한 비상사태, 즉 프롤레타리아 혁명을 구상하는 것이다.
억압받는 자들의 전통은 지금, 그들의 삶의 상태가 상례임을, 비상사태가 상례임을 선포하는 것. 주권자가 선포한 법에 의해 늘 억압받는 상태에 처해 있으므로 예외 상태가 상례인 것. 이것을 벗어나기 위한 진정한 비상사태를 도래시키는 것이 역사적 유물론의 과제다. 진정한 비상사태란 역사주의적인 역사 기술, 감정이입을 통해 지배자들이 세계를 구성한 내러티브 역사, 균질적이고 인과적인 항상 이기는 자만 승리하는 역사를 중지시키는 그 순간이다. 이야말로 진정한 예외상태이다. 승리자들의 내러티브를 중지시키고 그 속에서 사라지고 억압되었던 이야기를 발굴해 내는 것.
19세기는 기계문명을 통해 물질문명이 풍요로워지고 이를 통해 인간의 정신성도 고양될 것이라 믿었고 이것이 자본주의 물질문명의 꿈이며 동시에 19세기 계몽주의 꿈이었다. 이 꿈은 세계 대전을 통해 망상에 불과한 것으로 드러났다. 물질문명을 통해 인간의 정신은 조금도 고양되지 않았고 이 물질문명 때문에 인간은 망상에 사로잡혀(판타스마고리아) 사태를 제대로 보지 못하는 존재로, 휘황찬란한 물질문명의 기술만 가진 폭력적인 존재로 드러났다.
9
‘클레’의 <신천사>(앙겔루스 노부스 angelus novus)는 벤야민이 선물 받은 그림이었고 오랫동안 간직했으며 도망 다닐 때 숄렘에게 맡겨 두었다. 신천사는 역사의 천사다. 벤야민의 해석은 알레고리적 해석. 역사철학적 비평. 잠재되어 있고 작가도 의식 못한 것을 보충하는 형식의 글. 그림 번역. 벤야민의 역사 개념을 드러내는 해석.
테제 7에서 “역사적 유물론자는 ‘결’을 거슬러 역사를 솔질하는 것을 자신의 과제로 본다”로 끝남. 프랑스어로 번역했을 때 ‘결’은 윤기가 좔좔 흐르는 털. ‘결’은 내러티브로 구성된 역사주의적 역사, 역사에 의해 감춰진 것들이다. 윤기 흐르는 털의 골짜기의 아우성을 드러내는 것이 역사가의 과제다. 이 아우성이야말로 <앙겔루스 노부스>가 응시하고 있는 하나의 지점이다. 천사의 눈은 과거를 향해있다. 변증법적 유물론자가 봐야 한다는 과거, 행복의 이미지가 존재하고 사람들이 부러워하는 과거, 구원의 이미지가 있는 그 과거를 천사가 바라보고 있다. 잔해는 반질반질한 털 밑의 수많은 이미지이고 스쳐 지나가는 것들이다. 그 흘러가는 이미지들에서 메시아적 이미지를 주시하고 있다. 하지만 점점 멀어져 간다. 그 잠재적 이미지들은 멀어지면서 역사의 천사의 발 앞에 잔해로 쌓이게 된다. 천사는 머물고 싶어하고 오늘 억압받는 자들의 삶의 해방을 위한 가능성을 드러내고 싶다. 천사는 죽은 자를 불러일으키고 산산이 부서진 것을 모아 결합하고 싶어 한다.
이것은 카발라(유대교 신비주의 문서) 개념과 관계있다. 카발라 랍비가 보여준 신화. 디아스포라 유대인은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예루살렘 땅을 회복할 날을 끊임없이 기다리고 있다. 이런 기대는 현실의 실현 불가능성 속에서 신비주의적인 방식으로 나타날 수밖에 없었다. 억압받는 현실에서 회복된 예루살렘의 신비를 체험하는 그런 종교적 운동이 유대인 사회에서 일어났다. 이 신비주의 대표가 카발라. 신이 세계를 잘 빚은 그릇으로 창조하나 그것이 깨지면서 그 파편들로 세계가 구성됨. 구원의 종말은 그 깨진 것의 최초 형태를 재구성하는 것. 역사적 유물론자가 주시하는 섬광같은 이미지는 깨진 잔해들이다. 이것은 헤겔의 총체성 개념처럼(총체성과 구체성 개념 대립) 이 파편들은 전체와 부분이 아니라 총체와 구체(성)다. 파편들 하나하나에 전체가 있다. 그렇기에 이 파편 하나로부터도 우리는 구원의 이미지를 획득해낼 수 있다. 벤야민 비평의 핵심은 자신이 번역하는 책도 파편이고 그 파편 속에 존재하는 구원의 이미지를 또 하나의 구체적 파편으로 구성해 내는 것. 이 파편들은 전체의 이미지를 간직한 구체적인 어떤 것이다. 부분이 아니다.
천국은 진보주의자들의 이상이고 물질적 풍요를 통해 정신적 합에 도달하는 환상이다. 천사는 보아야 할 파편들을 제대로 보지 못하고 역사적 유물론자들도 진보의 폭풍이 너무 거세서 휩쓸려가고 있다. 벤야민은 자기 세계의 절망을 보고 있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세계가 절망스러운데 희망적이라고 생각하는 미친 자가 있고 세계가 절망적이라고 같이 절망하는 미친 자가 있다. 역사적 유물론자는 이 절망 속에서 가능성을 놓지 않는 자이다. 밀려가면서도 눈을 부릅뜨고 버티면서 응시하고 있는 자이다. 벤야민은 역사적 유물론자의 이미지를 <앙겔루스 노부스>로 보여주고 있다.
첫댓글 넵~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올 출석 달성^^~ 박성호님은 건강 상의 이유로 이번 세미나 쉬십니다.
공부 내용 추가했습니다. 수정할 부분 있으면 알려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