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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풍나무(Maple)
[과명] : 단풍나무과
[원산지] : 북반구
[꽃말] : 자제
[꽃점]
돌아오지 않는 첫사랑의 추억에 푹 빠지고 마는 당신. 사랑할 때 고집도 자주 피웁니다. 스스로 근신하듯 처신해서는 안 됩니다. 새로운 사랑을 찾아야 합니다. 천차만별의 인생이 있는 만큼 마음의 눈을 뜨는 것이 중요합니다. 다른 사람이 화를 내면 이내 욱하고 폭발하고 마는 당신. 그럴 정도의 박력이 있으면 자신을 충분히 변화시킬 수 있습니다.
[유래]
작은 가지는 털이 없으며 붉은빛을 띤 갈색이고 잎은 마주나고 손바닥 모양으로 5∼7개로 깊게 갈라진다.
잎 가장자리에 겹 톱니가 있고 잎자루는 붉은 색을 띠고 길이가 3∼5cm이다. 5월에 꽃이피고 열매는 9∼10월에 익으며 날개는 긴 타원 모양이다.
열매의 날개가 수평으로 벌어지는 것을 내장단풍, 잎자루와 잎 뒷면의 주맥에 흰색 털이 빽빽이 나있는 것을 털단풍, 잎 표면에는 털이 있으나 뒷면에는 없고 길이가 32∼65mm인 것을 아기단풍이라고 한다. 원예 종으로 일본에서 개발된, 잎이 7∼11개로 갈라지고 갈라진 조각이 다시 갈라지며 잎 가장자리에 톱니가 없는 세열단풍이 있다.
관상용으로 심으며, 한방에서 뿌리 껍질과 가지를 무릎관절염으로 통증이 심할 때 달여서 복용하고, 골절상을 입었을 때 오가피와 함께 사용하며, 소염 작용과 해독 효과가 있다.
단풍은 처음 싹이 붉게 나옵니다.
그러다가 잎이 점차 푸르게 자라는데 가을로 들어서면서 다시 붉어집니다.
이 같이 변하는 현상을 이유로 우리나라 사람들은 단풍나무를 좋아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변절의 나무라고 생각하였던 것이지요.
나라에서는 변절의 의미를 붙여 궁궐에 심지 않았으며, 가정의 입장에서도 중풍과 연관지어 집안에 심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런데 지금의 우리 궁궐에는 단풍나무가 많이 있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이는 단풍나무를 좋아하는 일본 사람들에 의해 일제시대때 심어진 것이라고 합니다.
중국사람들도 단풍나무를 좋아해 '단풍나무궁궐'이라고 할 만큼 궁궐에 단풍을 많이 심었다고 합니다.
또 기우제를 지낼 때 강우신목으로 사용할 정도로 신성하게 생각했다고 합니다.
단풍나무과의 단풍속은 100∼150종으로 구성되며 한국에는 단풍나무, 당단풍나무, 복자기, 신나무,
고로쇠나무, 산겨릅나무, 시닥나무 등 총 15종이 분포합니다.
오산의 물향기수목원에는 세계 각국의 약 50종의 단풍나무가 있는 것으로 유명합니다.
단풍나무는 나무의 무늬가 아름답고 단단해 고급 내장재로 쓰이는데, 볼링장의 핀마루바닥, 바이올린 등의 악기재, 조각재로 쓰입니다.
우리가 흔히 체리목이라 부르는 것이 단풍나무류의 나무목재입니다.
단풍나무류 나무 중 단풍나무는 어디에서나 볼 수 있지만 특히 남쪽에서 많이 볼 수 있는 단풍나무로서 아기손가락을 닮은 단풍잎을 매다는 일반적인 단풍나무입니다.
눈과 마음이 맑은 아이가 지은 시 '가을이면 더 예뻐지는 손..'의 주인공 나무이지요.
잎이 주로 5개로 갈라지나 아래로 작은 잎이 두개 더 갈라져 나와 7갈래가 되기도 합니다.
당단풍나무는 중부지방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단풍나무로서 잎이 9~11갈래로 갈라지며 단풍빛이 곱게 물드는 단풍나무입니다.
모양에서부터 고상한 품격이 느껴지는 나무이지요.
중국단풍나무는 오리발같이 셋으로 갈라진 잎을 갖고 있으며 공해에 강하고 단풍이 곱게 물들며 나무의 값이 비교적 싸 새로이 개발되는 도시의 가로수로 요즈음 흔히 볼 수 있는 나무입니다.
신나무(아래)는 중국단풍(위)과 같이 잎이 세갈래로 갈라지나 잎가장자리에 거치가 있습니다.
고로쇠나무는 한국에서 자라는 단풍나무 중 가장 굵고 높게 자라는 나무입니다.
고로쇠의 어원은 골리수(骨利水)에서 비롯되며 글자 그대로 뼈에 이로운 나무라는 뜻입니다.
수액은 무색이며 당류(糖類)성분으로 인해 약간의 향기와 단맛이 나는데
특히 칼슘, 마그네슘 등이 많이 들어 있어 위장병, 신경통, 관절염 환자들에게 효과가 있다고 합니다.
고로쇠나무의 수액 채취는 경칩을 전후한 약 1주일간(양력 2월20일이후)이 가장 좋다고 합니다.
잎은 주로 7갈래로 갈라지나 잎가장자리가 잔 거치 없이 밋밋한 것과 단풍의 빛이 노랗게 물드는 것이 다른 단풍나무와 다른 점입니다.
자이리톨은 자연계에 널리 분포되어있는 당성분으로 특히 자작나무, 떡갈나무, 단풍나무에 많이 들어있습니다.
복자기나무는 단풍나무 중 가장 단풍이 아름답게 물드는 나무 중 하나입니다.
명품 바이올린은 대부분 복자기나무로 만들어졌다고 하며 명품이 아니더라도 복자기나무로 만든 바이올린은 최고로 쳐준다고 하니 복자기나무는 아름다운 색과 소리를 품고 있는 나무이지요.
잎의 모양이 일반적인 단풍잎 모양 그러니까 장상엽이 아니라 복영ㅂ의 하나인 삼출엽인 것,
열매 표면에 털이 많이 나 있고 수피면이 너덜너덜 떨어지는 것 등이 복자기나무의 특징입니다.
봄부터 붉게 물드는 단풍나무를 주위에서 많이 볼 수 있는데 이는 홍단풍(노무라단풍)이라 불리는 일본에서 개량된 품종입니다.
5월에 짙은 붉은 빛으로 꽃을 피우며 잎이 가늘게 많이 갈라지고 언제나 붉은 빛을 띠고 있는 세열단풍은 공작단풍으로도 불리우며 역시 일본에서 원예종으로 개량된 품종입니다.
잎은 삼출엽으로 각각의 소엽은 아래 보이는 잎과 같은 모양입니다.
고로쇠나무와 같이 단풍이 노랗게 물드는 특징을 갖고 있습니다.
북방계단풍나무는 붉게 물들며 남방계 단풍나무는 노랗게 물드는 것이 단풍나무의 일반적인 경향이라고 합니다.
단풍나무류는 일반적으로 단맛을 갖고 있는데 대표적으로 진한 단맛과 향기를 갖고 있는 나무가 캐나다 국장에 그려진 설탕단풍나무(sugar maple)입니다.
캐나다단풍에서 설탕이 채취된 것은 어린 이로쿼이인디안 소년의 호기심 덕분이라고 하는데요,
아이가, 매일 아침 단풍나무 아래둥지에 이빨을 꽂고 수액을 빨아먹던 다람쥐를 흉내내 본 것이 설탕 채취의 시작이었다고 하네요.
크기와 수형의 특징은 두 나무가 같으나 은단풍에는 단 성분이 그리 많지 않으며, 잎 뒷면이 흰빛을 띠고 있어은단풍이라는 이름을 얻었다고 합니다.
은단풍의 씨앗은 단풍나무의 씨앗 중 가장 큰 씨앗을 갖고 있습니다.
영양가가 많은 종자가 끝에 붙어 있는데 어찌 알고 이렇게 새가 빼먹기도 합니다.
열매가 익는 6월쯤이면 은단풍나무를 두고 벌이는 직박구리들의 싸움이 시끄럽습니다.
단풍나무의 씨앗을 모아 크기를 비교해 보면은가장 큰 것이 은단풍의 씨앗입니다.
그 다음의 크기를 가진 것이 복자기나무의 씨앗입니다.
그 다음이 단풍나무 그리고 중국단풍입니다만 단풍, 당단풍, 중국단풍의 경우 씨앗 크기는 모두 비슷한 것으로 보입니다.
단풍나무류의 나무는 때로 '이게 단풍나무 맞아?' 싶게 잎이 전혀 다른 것도 있습니다.
그러나 열매는 크기만 다르지 한결같이 닮은 꼴입니다.
단풍나무를 동정하는 키 중 하나가 바로 이러한 열매의 모양에도 있다는군요.
잎이 마주나는 것도 단풍나무의 특징입니다.
단풍나무는 숲의 중간층을 이루는 나무입니다.
봄이 오면 물이 빨리 올라 동해를 입기도 하며 청진기를 줄기에 대 보면 그 왕성한 물오름 소리가 생동감 있게 들리기도 합니다.
산저릅나무, 참겨릅나무라고도 불리우는 산겨릅나무는 깊은 산 계곡에서 자라며, 나무껍질에 섬유가 발달해 있어 토담집을 지을 때 흙과 섞어 벽을 바르는 등 산간지방에서 새끼 대신 사용했다고 합니다.
대부분의 단풍나무는 꽃이 산방꽃차례로 달리나 시닥나무와 산겨릅나무, 네군도단풍은총상꽃차례로 꽃이 달립니다.
단풍나무로 방풍림을 한 곳이 우리나라에 몇 군데 있습니다.
서정주님의 고향인 질마재와 가깝고 풍천장어로 잘 알려져 있는 풍천마을과 고양시의 풍동이 대표적인 단풍나무 방풍림 지역입니다
단풍나무는 크게 내자단풍, 털단풍, 아기단풍으로 구별합니다.
캐나다는 이 잎새를 국장(國章)으로 삼고 있습니다.
이런 전설이 계기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어느 이른 봄날, 남편이 사냥해 온 사슴을 요리하던 아내가 물 긷는 곳이 너무 멀어서 단풍나무에 구멍을 뚫어 그 구멍에서 흘러나온 수액으로 고기를 익혔답니다.
잠시 후에 솥을 열어 보니 고기가 너무 탄데다 딱딱하기까지 해서 도저히 먹을 수 없을 것 같았습니다.
마침내 남편이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갈팡질팡하던 아내를 곁눈으로 힐끔 보고는 솥 안의 고기를 꺼내 들고 입에 넣었습니다.
와아! 남편이 깜짝 놀랐습니다.
그 고기가 너무도 맛이 좋았기 때문입니다.
핫케이크에 잘 어울리는 메이플 시럽은 이렇게 해서 발견되었습니다.
[전설]
어느 나라의 왕이 세 명의 공주에게, 딸기를 가장 많이 따온 공주에게 왕위를 물려주겠다고 했다.
부지런하고 착한 첫째 공주는 순식간에 딸기 바구니를 가득 채웠다.
그러나 나머지 두 공주는 게으름을 피우다바구니를 다 채우지 못했다.
그러자 두 공주는 첫째 공주를 질투하여 죽이고 단풍나무 아래에 묻어버렸다.
그후 어느 날 양치기 청년이 이 단풍나무의 어린 가지로 피리를 만들어 불자 사랑하는 당신 나는 옛날에 왕의 딸이었으나 지금은 단풍나무가 되었습니다라는 소리가 흘러 나왔다.
왕이 이 사실을 전해 듣고 두 공주에게 피리를 불게 하자 우리가 첫째 공주를 시기하여 죽였습니다 라는 소리가 났다.
그래서 왕은 한 공주를 시기하여 죽인 두 공주를 나라 밖으로 내쫓았다는 단풍나무에 얽힌 이야기가 있다.
[개천절(開天節)] 제천의식의 경우만은 전통적인 선례에 따라 음력10월 3일 거행되는 우리나라 국경일의 하나. 서기전 2333년(戊辰年), 즉 단군기원 원년 음력 10월 3일에 국조단군이 최초의 민족국가인 단군조선을 건국하였음을 기리는 뜻으로 제정되었다. 우리나라의 건국에 관한 기록은 고려 시대의 일연이 지은 <삼국유사(三國遺事)>에 실려 있으며, 그 내용은 대략 다음과 같다. 『아득한 옛날에 하늘에 계시던 환인(桓因)의 아들 환웅(桓雄)이 널리 인간을 이롭게 하기 위하여 인간 세계로 내려가기를 원하였다. 환인은 그 뜻을 살펴 환웅을 태백산으로 내려보냈는데, 환웅은 거기에 신시(神市)를 베풀었다. 환웅은 바람, 비, 구름을 맡은 이들을 거느리고 곡식? 생명? 형별? 선악 등 여러 가지 세상 일을 다스렸다. 이 때 곰에서 화신한 여인과 환웅은 혼인하여 단군 왕검(王儉)을 낳았다.단군 왕검 이라 함은 하늘을 모시고 세상을 다스리는 큰 어른이라는 뜻이다. 단군은 도읍을 지금의 평양에 정하고 나라를 조선(朝鮮)이라 하였다.』 그리고 특히 우리민족은 10월을 상달〔上月〕이라 불러, 한 해 농사를 추수하고 햇곡식으로 제상을 차려 감사하고 경건한 마음으로 제천행사를 행하게 되는 10월을 가장 귀하게 여겼고, 3일의 3의 숫자를 길수(吉數)로 여겨왔다는 사실은 개천절의 본래의 뜻을 보다 분명히 한다고 하겠다. 즉, 1900년 1월 15일 서울에서 나철(羅喆: 弘巖大宗師)을 중심으로 대종교가 중광(重光: 다시 敎門을 엶)되자, 개천절을 경축일로 제정하고 매년 행사를 거행하였다. 1949년에 문교부가 위촉한 ‘개천절 음, 양력 환용(換用) 심의회’의 심의결과 음, 양력 환산이 불가능하다는 이유와 '10월 3일'이라는 기록이 소중하다는 의견에 따라, 1949년 10월 1일에 공포된 〈국경일에 관한 법률〉에 의거, 음력 10월 3일을 양력 10월 3일로 바꾸어 거행하게 되었다. [단군신화] 1. 천신(天神)인 환인은 서자 환웅에게 천부인(신권을 상징하는 부적과 도장) 3개를 주어 천하에 내려가서 세상을 다스리게 했다. 환웅은 무리 3천명을 거느리고 태백산(지금의 묘향산) 신단수 아래에 내려와 신시(神市)를 열고 홍익인간(弘益人間 : 인간세계를 널리 이롭게 하다)의 이념으로 이화세계(理化世界 : 세계를 다스리다)의 대업을 시작하였다 2. 그는 풍백(風伯)·우사(雨師)·운사(雲師)를 거느리고(농경생활을 중시하였음) 곡(穀, 곡식)·명(命, 수명)·병(病, 질병)·형(刑, 형벌)·선(善, 선함)·악(惡,악함) 등 인간의 360가지 일을 맡아서 세상을 다스리고 교화했다. 3. 이때 곰 한 마리와 호랑이 한 마리가 같은 굴속에 살면서 항상 천신인 환웅 에게 사람이 되게 해달라고 빌었다.(수렵에서 농경으로 전환) 환웅이 이들에게 신령스러운 쑥 1자루와 마늘 20쪽을 주면서 이것을 먹고 100일 동안 햇빛을 보지 않으면 사람이 된다고 했다. 곰은 이것을 받아서 먹고 근신하여 3×7일(21일, 산모의 회복기간) 만에 여자의 몸이 되었다. 웅녀는 그와 혼인해주는 이가 없으므로 신단수 아래 에서 아이를 가지게 해달라고 기원했다. 이에 환웅(신)이 잠시 변하여 결혼해서(천상과 지상의 결합) 아들을 낳으니 그가 곧 단군왕검이다.(단군=하늘, 왕검=임금) 4. 단군은 요 임금이 왕위에 오른 지 50년인 경인년에 평양성에 도읍을 정하고 비로소 조선이라 불렀다. 그 후에 도읍을 백악산 아사달(아침의 땅)로 옮겼다. 그는 1500년 동안 여기에서 나라를 다스리다가 장당경으로 옮겼다가 후에 다시 아사달에 돌아와 산신이 되었는데, 그때 나이가 1908세였다.
10월 3일에 거행하고,
그러나 개천절은 ‘개천(開天)’의 본래의 뜻을 엄밀히 따질 때 단군조선의 건국일을 뜻한다기보다도, 이보다 124년을 소급하여 천신(天神)인 환인의 뜻을 받아 환웅이 처음으로 하늘을 열고 백두산 신단수 아래에 내려와 신시(神市)를 열어 홍익인간(弘益人間), 이화세계(理化世界)의 대업을 시작한 날인 상원 갑자년(上元甲子年: 서기전 2457년) 음력 10월 3일을 뜻한다고 보는 것이 더욱 타당성이 있다.
따라서 개천절은 민족국가의 건국을 경축하는 국가적 경축일인 동시에, 문화민족으로서의 새로운 탄생을 경축하며 하늘에 감사하는 우리민족 고유의 전통적 명절이라 할 수 있다.
민족의 전통적 명절을 기리는 행사는 먼 옛날부터 제천행사를 통하여 거행되었으니, 고구려의 동맹, 부여의 영고, 예맥의 무천 등의 행사는 물론이요, 마니산의 제천단(祭天壇), 구월산의 삼성사(三聖祠), 평양의 숭령전(崇靈殿) 등에서 각각 행하여진 제천행사에서 좋은 사례를 볼 수 있다.
이러한 명절을 개천절이라 이름짓고 시작한 것은 대종교에서 비롯한다.
그리하여 일제강점기를 통하여, 개천절 행사는 민족의식을 고취하는 데 기여하였으며, 특히 상해임시정부는 개천절을 국경일로 정하여 경하식을 행하였고, 충칭(重慶) 등지에서도 대종교와 합동으로 경축행사를 거행하였다.
광복 후 대한민국에서는 이를 계승하여 개천절을 국경일로 정식 제정하고, 그때까지 경축식전에서 부르던 대종교의 〈개천절 노래〉를 현행의 노래로 바꾸었다.
개천절은 원래 음력 10월 3일이므로 대한민국 수립 후까지도 음력으로 지켜왔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