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 달 간 지구촌을 축구열풍으로 몰고 갔던 독일월드컵이 끝난 지 2주가 지났습니다. 언제 월드컵이 열렸냐는 듯이 잠잠해졌습니다. 그 열기가 다 어디로 갔는지 궁금합니다. 32개 본선 진출국들은 각자 성적표를 들고 고국에 돌아갔습니다. 그러면 '장사'를 마친 FIFA(국제축구연맹)는 과연 얼마를 벌고 얼마를 썼을까요?
영국에는 '스포트칼'이라는 스포츠비즈니스 분석회사가 있습니다. 일종의 컨설팅업체입니다. 스포츠와 관련된 스폰서십십이나 광고의 비용 및 효과를 분석해서 파는 회사죠. 스포트칼은 FIFA가 독일월드컵에서 모두 19억유로(약2조2900억원)의 수입을 얻었다고 발표했습니다. 이중 TV방송 등 각종 미디어중계권으로만 절반이 넘는 12억유로(1조4400억원)를 벌어들였습니다. 입장권 판매액(지역예선전 포함)은 2억유로(2400억원)에 달하고, 각종 스폰서계약 및 기타 수입 등으로 5억유로(6000억원)를 추가로 벌었습니다. 계산 방법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파이낸셜 타임스가 총 수입을 2조6000억원으로 예상한 것으로 볼 때 2조5000억원 내외를 벌어들인다고 보면 크게 틀리지 않습니다.
◆미디어중계권 수입이 60% 이상
FIFA 수입에서 방송중계권료의 비중은 절대적입니다. 2001년 FIFA는 독일의 키르히 미디어 그룹에 약 2조2000억원을 받고 2002·2006 두 월드컵의 전세계 중계권을 넘겼습니다. 1998프랑스월드컵 때보다 10배 가량 오른 가격이죠. 키르히는 이걸 되팔아서 2002대회에서 1조1500억원, 2006년에 1조4000억원 가량을 얻은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FIFA가 1990년이탈리아대회에서 840억, 1994미국대회에서 970억, 1998프랑스대회에서 1200억원에 중계권을 판 것과 비교하면 천양지차가 납니다.
그런데 가격은 더 오를 것으로 보입니다. FIFA는 2010·2014년 월드컵 중계권도 한 묶음으로 판매할 속셈인데요. 지난해 방송 3사는 1억달러(1000억원) 정도로 책정된 2010남아공대회 한국 내 중계권료가 부담스러워 입찰 자체를 포기했습니다. 방송사들은 2009년쯤 한국의 본선 진출 여부가 결정된 후 중계권을 가진 대행사들과 협상을 벌일 것으로 관측됩니다. 우리 대표팀이 6회 연속 월드컵 본선에 진출하긴 했습니다만 2010년에도 본선에 오를 수 있을지는 냉정하게 따졌을 때 불확실한 미래죠. 방송사들은 이번에 '타지'에서 열린 월드컵을 치르고 주판알을 튕겨봤기 때문에 4년 후에는 보다 신중하게 접근할 것으로 보입니다.
독일월드컵에서 중계권과 관련해 달라진 게 있다면 그건 용어랍니다. 이전과 달리 기존의 방송중계권료 외에도 각종 인터넷 포털 사업자, 휴대전화 콘텐츠 제공업체로부터도 수익이 크게 늘었습니다. 그래서 ‘방송중계권’이 아닌 ‘미디어중계권’이란 용어가 일반화됐습니다.
◆공식 파트너로도 수천억 벌어
FIFA가 중계권을 다년계약으로 묶어 팔고 중간에 대행사가 되팔기 때문에 계산하기 무척 어렵습니다. 그런데 공식파트너를 통한 스폰서수입은 산출하기가 더 어렵습니다. 정확한 금액을 공개하지 않는 데다 4년, 8년 단위로 패키지계약을 맺기 때문이죠. 독일월드컵 공식 파트너들은 2003~2006시즌을 계약한 15개 기업들입니다. 회사당 200~400억원 가량을 내놓은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즉, 수입의 80% 이상을 차지하는 방송중계권과 스폰서십을 4년 단위로 처리하기 때문에 FIFA의 재정구조나 수입구조를 파악하기란 매우 힘듭니다. 또 한 달 간 열리는 월드컵에서 얼마를 벌었는가를 정확히 계량하기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수입의 10분의 1정도인 입장권 판매만 가닥이 보일 뿐입니다. 오죽하면 스포트칼이 FIFA가 독일월드컵에서 얻은 수입구조를 분석한 문건을 595파운드(105만원 가량)에 팔겠습니까. 스포트칼도 자체 기준으로 계산했고 유럽 언론들도 각자 다른 기준을 적용합니다.
FIFA는 파트너 숫자가 너무 많아 홍보효과가 떨어진다는 불만이 제기되자 2007~2010시즌부터는 6개로 축소시켰습니다. 지난 20년 동안 FIFA의 밥(?)이었던 네덜란드의 필립스 같은 회사들은 공개적으로 FIFA의 문어발 스폰서십을 비난했습니다. 양보다 질을 택한 FIFA의 장사속은 이미 귀신의 경지에 이르렀습니다. 독일월드컵이 열리기도 전인 지난 4월까지 내년부터 손을 잡을 6개사와 모두 계약을 체결했습니다. 현대자동차, 소니, 에미레이트항공, 아디다스, 코카콜라, 비자카드가 그 주인공들인데요. FIFA는 이에 그치지 않고 이들 6개사와 아예 2014년까지 계약을 맺어버렸습니다. 그러니까 4년도 아니고 8년 단위로 늘려서 안정적으로 돈줄을 터놓은 겁니다. 그만큼 4년 단위로 끊을 때보다 FIFA로 들어가는 돈의 액수를 외부에서 파악하기는 더 어려워졌죠. 회사당 3000억~4000억원 정도 내놓기로 했답니다. 내년부터 2014년까지 FIFA가 주최하는 대회는 44개 가량인데요. 6개 파트너들은 이중 두번의 월드컵을 바라보고 나머지 대회까지도 모두 지원하는 셈입니다.
◆상금 규모 엄청나지만 수입에 비하면 초라해
벌기만 할까요? 당연히 쓰기도 합니다. FIFA는 독일월드컵 본선 진출국에 줄 상금으로 모두 2400억원 가량을 풀었습니다. 한·일월드컵 때보다 42% 가량 늘어난 금액입니다. 우승팀 이탈리아는 185억원을 거머쥐었구요. 준우승팀 프랑스도 170억원을 챙겼습니다. 3·4위에 오른 독일과 포르투갈은 똑같은 액수(각163억원씩)랍니다. 8강에서 멈춘 네 팀은 115억원을 받았구요. 16강에 진출하고 탈락한 8팀은 65억원씩입니다. 한국, 일본, 토고 등 16강 진출에 실패한 팀들도 45억원의 배당금을 받았죠. 이와 별개로 FIFA는 모든 본선 진출팀에게 대회가 시작하기 전에 준비금 조로 7억5000만원 가량을 선지급했습니다.
상금규모가 엄청난 것 같지만 이는 FIFA가 이번 월드컵으로 얻는 총 수입 19억유로(2조2900억원)에 비교하면 10분의 1 수준입니다. 스포트칼은 FIFA가 대회 운영비용, 각종 상금, 6개대륙연맹·207개 각국 협회에 줄 지원금 등 쓸 돈을 다 쓰고도 11억유로(1조3000억원)를 이익으로 남길 것으로 내다봤습니다. 노다지를 캔 거죠.
◆세금은 이익의 0.4%만 납부
FIFA도 대차대조표나 손익계산서를 공개합니다. 매년 재정보고서라고 해서 이익, 자산규모, 지출 등을 공개하죠. 그런데 곧이곧대로 믿기는 어렵습니다. 왜냐하면 본부가 있는 스위스법상 비영리기구로 등록돼 있기 때문에 외부감사를 받아야 할 의무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냥 FIFA 내 재정위원회에서 자체적으로 결산한 다음에 회계상 오차 여부만 미국계 세무컨설팅회사 KPMG로부터 점검을 받는 정도입니다.
올해 독일월드컵을 앞두고 뮌헨에서 열린 56차 총회에서 FIFA는 ‘2005 재정보고서’를 발표했습니다. 여기서 FIFA는 총 자산이 1조1100억원 가량이라고 밝혔지만 세간에서는 실제로 4~5조원은 거뜬히 넘어설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FIFA가 밝힌 지난해 세전 이익은 1658억원 규모입니다. 그러나 이에 대한 세금은 0.4% 수준인 내국세 7억2000만원에 불과했습니다. FIFA는 법인세를 내지 않습니다. 이 역시 비영리기구이기 때문입니다.
우승은 이탈리아가 했지만 뒤에서 마냥 웃고 있는 건 FIFA가 아닌가 합니다.